[37화]
“이제야 길이 보이는군요.”
“찾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면 저는 저대로 추적자로 보일 수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아, 적당히 하다가 보고서도 내야겠군요. 아영이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겠죠?”
“예. 그러는 게 좋겠죠. 대신 제가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다른 임무를 좀 부탁했다고 말이죠. 그리고 이거 받아 가시지요. 제게 아이템을 받았다는 물리적 기록은 남겨야 하니… 실제로 쓰지는 않더라도 소지하시길. 또 당연한 소리겠지만 추적자들끼리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날 경우엔 아시죠?”
알아서 정체를 들키지 말라는 소리다.
더 말할 필요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 또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
과연, 이게 동료가 있다는 든든함인가?
혼자서는 해결 못할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니, 확실히 좋다고 느껴진다.
“협회와 길드 쪽은 제가 나서서 당신 의혹에 대한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볼게요. 그러니 당신은 처신에 주의하면서 추적자 연기를 잘해 주세요.”
“오케이, 잘 알았습니다.”
“다만 근 5년 만에 새로이 나타난 S급 헌터에 대한 사건인지라 쉽게 의심과 의혹을 풀려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만 주의하세요.”
“음, 중간중간 아예 다른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방안도 괜찮겠군요. 시선을 싹! 돌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거기서 나타난 저를 가지고 추적했다고 하는 보고서를 올리고~”
“후훗, 그것도 괜찮네요. 이변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해진 방침을 실행하기 위해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자신의 일을 하려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아영이와의 대화에서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아, 맞다. 한 끼 대접 말인데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리고 저 생각보다 입이 싸구려라서 기대치는 낮습니다. 그럼!”
“…아, 아영이군요. 정말 말하지 말라니까. 걔도 차암!”
훗, 얼굴 붉어져서 부끄러워하는 것 좀 봐.
이걸로 길가메시니, 성투사니, 황금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니 뭐니 하는 걸 되갚았다.
나란 놈은 지고는 못 사니 말이다.
제길! 나라고 이 황금 갑옷을 입고 싶어서 입는 게 아닌데!
‘자, 그럼 일을 시작해 볼까?’
수수께끼의 S급 각성자 ‘황금 기사’를 쫓는 추적자로서의 일을 말이다.
일단 소문을 내기 위해서 먼저 나를 쫓는 녀석들을 찾기로 한다.
당연하지만 이미 다들 한 번씩 나에게 탐지 마법 같은 짓거리를 했고, 지금도 일정 거리 내에서 쫓아오고 있는 덕분에 상태창의 맵을 여니 놈들의 모습이 찍힌 채로 훤히 보인다.
‘자, 그럼 사냥을 시작해 보자.’
우선 나에게 씌워진 황금 기사 의혹을 풀기 위해 맨 처음 할 일은 날 쫓는 추적자 놈들을 조지는 일이었다.
놈들은 아마 여러 길드의 귀와 눈일 터이니 놈들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서 정보를 얻고 혹은 도망치는 형세를 보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나도 추적자 중 하나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보자. 가장 어설픈 애부터 가자.’
할 일을 정하니 그다음은 쉬웠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 어설픈 애는 시야 밖으로 가서 뒤를 덮칠 게 아니라, 그냥 바람처럼 달려들어 덮치는 걸로 충분했다.
아마 다른 추적자들도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으리라.
“아아~ 오늘 낮부터 더럽게 거슬렸는데! 딱 걸렸어. 이 초짜 아가씨!”
순식간에 달려와서인지 그녀는 대항하거나 도망칠 생각도 못한 채 쓰러져 나에게 양팔을 제압당한다.
자세히 보니까 지(地) 클래스의 제복과 청룡 길드의 엠블럼이 확인되었다.
과연, 청룡 길드에서 보낸 끄나풀인가?
“어, 어떻게? 내가 쫓는 걸……?”
“어떻게는! 나도 동업을 하는데, 그렇게 티를 내면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하지. 오히려 모른 척하기가 힘들었어! 그리고 듣고 있나? 거기, 집 담벼락 아래 숨은 놈이랑 나무 뒤에 숨은 다른 동업자 양반들도 기다려. 곧 찾아갈 테니까!”
“뭐, 뭘 원하시는 거죠?”
“뭐긴, 정보지. 나 쫓으면서도 다른 애들이랑 소통하고 있었을 거 아냐? 안 그래? 누굴 빙다리 핫바지로 보나?”
“히익! 저, 전 아무것도 몰라…….”
쾅!
나는 말주변이 좋은 스타일은 아니라서 곧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머리 바로 옆에 아스팔트를 깨부수고 팔뚝까지 들어갈 정도의 힘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주먹을 다시 들어 올려 그녀의 눈앞에 대면서 짧게 말했다.
“딱 한 번만 물을게. 아니면 저승행 편도 티켓을 타든가. 정보 있어? 없어?”
“…흐, 히끅!”
“그래, 길드를 위해 한 목숨 바치겠다는 정신! 참 좋아. 너 말고 물을 사람 많으니까 더 안 물을게. 잘 가.”
“여, 여기 있어요! 휴, 휴대폰 단톡방에 보고받은 거 보세요!”
역시 설득보단 폭력이 빠르다.
게다가 각성자라곤 해도 아직 아카데미아의 학생이기에 굴복이 매우 빨랐다.
정말 죽기 싫은 건지 그녀는 바로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휴대폰을 꺼내어서 내게 건네준다.
보자. 뭐라고 나와 있지?
‘생각보다 내용이 많네. 아무튼 개꿀.’
“저, 저 그럼 가 봐도 될까요?”
“어, 가. 그리고 이거 받고!”
“가, 감사합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 순순히 정보를 내줬으니 이쪽이 감사할 따름이지.
아무튼 그녀를 시작으로 나는 계속해서 날 쫓던 추적자 놈들을 역으로 쫓아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다.
놈들의 뒤를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일은 순순히 진행되었다.
“이, 이 녀석, 언제?”
“죽을래? 정보 줄래?”
“주, 줄게! 알았다고! 가, 가져가!”
또 스캐빈저나 다른 길드의 외주를 받은 놈들의 경우에도 쉽긴 했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한 번의 실패가 낫기에 다들 휴대폰, 수첩을 모두 쉽게 내주었던 것이다.
전투하자니 내가 먼저 압도적으로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를 잡거나 아니면 이미 다들 먼저 도망쳤기에 직접 전투를 하는 일은 없었다.
‘좀 거칠지만 내 소문을 퍼뜨리는 동시에 의혹을 풀기엔 이 정도가 딱 좋아.’
어차피 길드, 스캐빈저 간의 첩보전은 늘 있는 일이고, 서로의 뒤통수를 치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건 일상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추적자들을 상대하며 정보를 모은 나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와 언론 보도 자료와 함께 보면서 현재 상황이 어떻고 어떤 이야기들이 길드 간에 오갔는지부터 채팅과 대화 목록, 또 협회 게시판 등을 확인한다.
“일이 엄청 커졌군.”
[황금 기사 정보 좀 나온 거 없음?]
[없음. 코빼기도 안 보임. 스캐빈저 쪽은 나온 거 없음?]
[거기도 지금 난리임. 미친 ‘이 목사’ 새끼가 개성에 있는 도시 잡아먹어서 거기에다 ‘인간 목장’ 만든다며 세력 확장 중이라.]
[협회에서는 지금 회장부터 해서 어떻게든 협회 소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테스크 포스 만들었던데?]
[에이, S급이면 길드를 가지, 누가 감? 크큭.]
아니, 애초에 나는 길드고 협회고 어디든 갈 생각이 없는데?
아무튼 길드, 협회가 지금 미친 듯이 나를 찾아서 자기네 세력에 속하게 할 생각으로 가득한 걸 보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행복 회로가 거의 ‘형, 이 새끼 웃는데요?’급인데?
“직접 보니 더더욱 역겹고 기분 나쁘네. 아무튼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싸움을 일으키고 불을 좀 더 지르고 나는 다치거나 도망쳤다는 메시지를 남겨서… 나에 대해 신경을 못 쓰게 해야겠지.”
그것도 그나마 이렇게 글로 봐서 덜 기분 나쁜 거지, 실제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회의하고 있을 놈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끔찍했다.
어우, 소름 돋아.
아무튼 이제 내가 할 일은 이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열심히 숨어 다니고, 다시 레벨 업의 궤도로 올라가는 일이리라.
***
일주일 뒤, 협회 대회의실.
눈에 띄게 달아올랐던 황금 기사 탐색은 당연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길드끼리 서로 감시하고 추적하는 등의 행동으로 인해서 인적 손해와 시간의 손해가 심각해진다.
결국 협회가 나서서 이런 사태를 끝내기 위해 토벌에 참여했던 청룡 길드를 포함한 5개의 길드, 블레이드 엑셀리온, 극천대, 불굴, 페이션트 어벤저, 백야뿐만 아니라 다른 3대 길드인 청룡, 서울과 올림푸스까지 총 8개의 길드 관계자들과 협회장까지 모인 대회의가 시작된다.
“자, 다들 오셨으니 회의 시작하죠. 현재 S급 마인 정민수의 토벌 이후 경쟁적으로 황금 기사의 수색을 벌이는 것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본래 정민수가 있던 개성에 이 목사 그 미치광이가 자리 잡은 상황이라 그쪽에 대비해야 함에도…….”
“그쪽 이야기는 이번 안건이 아니니 빼 주시죠, 회장님.”
고천수는 대놓고 협회장을 견제하며 안건이 다른 곳으로 새는 것을 방지한다.
협회장은 분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상대는 3대 길드의 일각인 청룡인지라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이 협회장이지, B급 각성자이자 그마저도 각성자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실적이 없는 협회장은 길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개 같은 길드 새끼들!’
분한 마음을 참고 협회장은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다시금 회의를 진행한다.
“후우~ 알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지금 이 황금 기사를 찾기 위해서 모든 길드와 협회마저 여력을 낭비하고 있는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다들 대한민국의 안보와 정의, 균형을 위해 모두 성실히 회의에 임해 주시길 바랍니다.”
‘결국 자기들끼리 싸움 나서 피해가 커지니 이런 일이 발생한 거지만~’
신소미는 지난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황금 기사를 찾기 위해 상대의 길드를 의심하고, 추적자끼리는 서로 싸우고 심한 곳은 죽이기까지 했다.
아직 자취도 찾지 못한 황금 기사로 인해 생긴 이 분쟁 때문에 일주일 만에 대한민국 각성자 생태계가 상당한 손해를 입은 건 사실이었다.
‘과연 어떻게 하려나?’
모두가 찾는 황금 기사의 정체를 아는지라 그녀는 다른 길드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보기로 한다.
그때, 회의장 가운데 황금 기사의 모습이 담긴 3D 화면이 떴다.
그리고 토벌 당시 참여한 길드들의 블랙박스, 드론 카메라, 위성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찾아낸 전투 사진과 영상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지금 S급 각성자로 추정되는 황금 기사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추격하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는 분쟁과 살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 성과는 전혀 없죠. 일단 블랙박스와 각종 자료가 있다곤 하지만 S급 마인 정민수 토벌 과정에서 상당량이 유실되었고, 위성 자료 또한 정민수를 초점으로 맞추지 않고 본진의 전투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거군.’
“특히 토벌 참여자의 3분의 1이 사망이라는 거대한 피해 상황, 시신 대부분이 몬스터에게 먹혀서 확인이 되지 않기에 토벌 참여자에 대한 검증을 하려고 한들 황금 기사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은 무리이며, 남은 자료와 블랙박스를 모두 합친다 해도 전장의 모든 것을 확인 불가능한 게 현재 상황입니다.”
일단 토벌대 안에 황금 기사가 있다고 추측이 되긴 해도 증거가 부족했다. 또한 죽은 인원들로 위장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애초에 제삼자인 경우를 제외하고 검증하려고 해도 자료와 증거가 부족한 상황. 서로 추적과 의심 때문에 사상자가 나오기에 결국 협회와 3대 길드는 이것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그래서 협회와 한국 정부는 S급 마인을 불법적으로 ‘스틸’한 황금 기사를 S급 마인(魔人)으로 지정하고 발표 및 수배를 할 생각입니다. 이 이상 그로 인한 혼란과 분쟁으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며 정부와 협회의 자수 권유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이 지정에 대해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즉, 가질 수 없으면 부수겠다는 건가?’
“이 발표는 일주일 뒤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미리 참여하신 분들에게 알린 것은 혹시나 황금 기사를 비장의 카드 혹은 협력자로서 숨겨 두신 분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해 마지막 기회를 드리고자 한 것이니, 잘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이 회의의 결론은 토벌대 참여 길드 안에 만약 황금 기사가 있을 경우 숨겨 두지 말고 빨리 밝히라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마인(魔人)으로 지정되면 이제 그와 연관된 자들은 더 이상 길드로 활약할 수 없게 된다.
하나, 신소미는 일말의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협회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