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무슨 날파리가 이렇게 많이 붙은 건지.’
무기 숍에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한 놈이었는데, 거기 들어갔다가 나오니 하나둘 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새 10마리도 넘는 날파리가 붙어 있었다.
대체 뭐지? 나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을 텐데 뭐가 이렇게 많이 붙은 거지?
어디서 감을 잡은 건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미치겠네.’
갑자기 하나둘 늘어나는 추적자들의 숫자 때문에 아영이와 놀면서 조심스럽게 사건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수수께끼의 S급 각성자 황금 기사에 대해 떠드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나름 들키지 않게 신경 써서 물러났다고 생각했지만 전장에 설치된 드론과 카메라, 블랙박스에 내 존재가 잡혔던 것이다.
‘젠장! 이걸 이제야 알다니!’
거기에 여파가 엄청 큰 패황천검류의 스킬 패황천검류(覇皇天劍流) 제1장-지성섬(地星閃)이야 당연히 찍혔고, 그것으로 S급 마인 정민수를 일격에 쓰러뜨린 수수께끼의 S급 각성자 황금 기사의 존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협회, 길드, 스캐빈저 모두가 지금 전력을 다해서 정체를 밝히기 위해 쫓고 있다고 했으며 토벌을 같이한 길드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일이 이렇게 된 건 결국 나 자신의 일 처리를 너무 과신한 탓이다.
기껏해야 스태프로 일한 게 전부였는데, 길드의 일 처리를 너무 얕본 점도 있었다.
아무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으니 이제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
‘이제 어쩐다? 후우~ 일단은 내 스테이터스에 대해서는 들키지 않은 것 같은데… 문제는…….’
[‘금빛 수호신수의 갑옷’이 알 수 없는 대상이 사용한 ‘탐지 마법’을 차단했습니다.]
[‘금빛 수호신수의 갑옷’이 알 수 없는 대상이 사용한 ‘천리안 마법’을 차단했습니다.]
[‘금빛 수호신수의 갑옷’이 알 수 없는 대상이 사용한 ‘기량 측정 마법’을 차단했습니다.]
[‘금빛 수호신수의 갑옷’이 알 수 없는 대상이 사용한 ‘탐지술’을 차단했습니다.]
저 망할 추적자들이 나름 몰래 나에 대해 알아본답시고 시전한 이 산더미 같은 마법들.
한 놈만 했으면 모를까, 아주 제각각 다들 한 번씩 찔러 대니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 새끼들, 알면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나라는 걸 감 잡은 건가? 아니, 확실하다고 생각했으면 이러지 않았겠지.’
확신을 얻었다면 저렇게 찔러 보는 게 아닌 누구든 접촉해 왔을 것이다.
혜성처럼 갑자기 등장한 S급 각성자를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다행인 건 나를 쫓는 놈들끼리의 눈치 싸움이었다.
‘우선 이 오해 아닌 오해부터 풀어야겠군.’
일단 녀석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는 큰 이유는 자신들이 건 탐지 계열 마법을 내가 모두 차단해 버린 점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일개 스태프가 어떻게 마법 차단 능력 혹은 장비를 가지고 있느냐? 이 점을 먼저 해소시켜 줘서 나에 대한 의심을 풀어야만 했다.
‘보자. 어떻게 해야 하지?’
갑자기 과제를 받은 것처럼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걸 넘기지 않으면 결국 황금 기사를 찾는 양반들이 날 옥죄어 올 것이다.
그렇다고 저 추적자들을 모조리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황금 기사가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 줘야만 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지. 젠장!’
한번 든 의심을 종식시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인간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꼬여진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한 올, 한 올 천천히 풀어 나가야만 한다.
‘우선 고쳐야 할 것은 내 정보 차단에 대한 이유. 내 장비로 인해서가 아니라 외부 요인이라는 것으로 덮어야 해.’
이것부터 수정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난리를 부려도 안 된다.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이걸 수정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 스스로는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의혹이었다.
장비, 스킬, 저주, 무슨 생각을 해도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젠장, 장비 탓을 하려고 해도 일개 스태프가 마법 저항 장비를 가진 것도 이상한데…….’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의혹을 키우면 내가 그 망할 황금 기사라는 걸 들키고 말 것이다.
지금 휴대폰으로 알리바이를 맞추려고 해도 이 주변에 있는 추적자 놈들이라면 그것을 볼 가능성도 있다.
‘방법이… 없나?’
최악의 상황. 그냥 서울을 떠나서 잠적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진짜로 내가 황금 기사라는 걸 알리는 일이었다.
S급 각성자라는 게 알려지면 인생이 엄청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문명 생활과 거리를 두고 싶지도 않고, 또 사라지는 걸 납득하지 못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달려올 것이다.
‘그 양반들이 걸어 다니는 핵미사일을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지만 식은땀만 날 뿐 뭔가 확! 하고 떠오르는 건 없었다.
딱 하나 기대할 방법이 있긴 했는데… 그건 내가 잘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상대방이 잘 대처해 주는 것뿐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나는 백야 길드의 입구에 도달해서 절차를 밟는다.
정규 길드의 일은 주야를 가리지 않기에 길드 건물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길드장들은 던전을 가지 않더라도 할 일이 매우 많기에 대부분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곧장 길드장 사무실로 가서 아영이 어머님을 알현한다.
“이런 시간에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거죠?”
“…….”
“…그렇군요. 기본적으로 길드는 일반적인 보안뿐만 아니라 마법에 대한 저항 및 차단 주문을 항상 걸어 놓으니 편하게 말해도 됩니다.”
“휴우우우! 정말 다행이다.”
정말 말이 통하… 아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해자라는 건 좋구나.
아무튼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내 사정을 이해하는 뒷배경의 힘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애초부터 이 망할 스태프로 근무만 안 했으면 아무 지장 없었겠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고!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 새로운 S급 각성자인 황금의 기사님?”
“아니, 제발 그러지 마세요.”
“침착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모습과 달리 본래 모습은 아주 눈에 띄는 모습이시네요. 길가메시 님? 후훗.”
정정하자.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해자도 그리 좋지 않았다.
아주 제대로 놀리는 걸 보면 여기 온 순간 이미 내 정체까지 통찰해 낸 게 틀림없었다.
그나저나 길가메시는 뭐지? 대충 황금 갑옷 입은 캐릭터 같은 건가 보군.
지금은 그거에 주목할 때가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드러날 거 기왕이면 그때 직접 알려 주시지, 거짓말한 건 심한 것 같습니다만?”
“하아~ 아무튼 내가 도움이 필요한 건 알죠?”
“예. 저도 황금 오리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 도와 드리죠.”
“그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아주 사람 놀리는 솜씨가 아영이 못지않은 게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아무튼 그때 나선 일이 이렇게 된 마당이니 어떻게든 나에게 씌워진 의혹을 수습해야만 했다.
“어쨌든 의심의 고리가 나에게까지 왔어요. 트레이너 스태프인 놈이 땜빵이라곤 해도 갑자기 토벌팀 스태프로 들어갔으니까 수상할 법도 한데……. 이거 수습할 방법 있습니까? 저 혼자서는 수습이 안 돼서요.”
“차라리 그냥 정식 헌터로 등록하고 데뷔하는 건 어떨까요? 황도 12궁의 위대하신 황금의 성투사님, S급 마인을 쓰러뜨린 점을 봐도 전투의 자질은 충분하신 것 같은데요?”
“평안 감사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 그냥 적당히 조용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습니까?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고 도와주지 않을 거면 저 그냥 서울 떠날 겁니다?”
헌터로서의 사명감이니 뭐니 가르칠 생각이라면 딱 질색이다.
대체 내가 왜 니들이 강요하는 영웅이니 헌터니 하는 기준을 따라야 하는 건가?
내가 원해서 선택받은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각성자로 만들어 놓고 강요하는 건데!
“후우~ 알았습니다. 이 이상은 선을 넘는 것 같으니 저도 물러나죠. 아무튼 골든 헤라클레스 장수풍뎅이 님? 어떻게 의심이 커진 건지 한번 여쭈어봐도 될는지요?”
그냥 서울을 빠져나갈까? 순간 고민이 들었지만 그러면 준비도 안 되어 있는 방랑 생활을 하게 될 테니 꾹 참았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의심의 껍질을 벗길 수 있을지 물어보기 위해 사정을 설명한다.
“즉, 그 황금 갑옷이 너무 열심히 일했다는 거군요. 평소에 벗고 다니지 그랬어요?”
“그러면 탐지에 제 스테이터스가 드러나는데요?”
아마 그쪽이 더 놀랍겠지?
“아~ 그렇군요. 아무튼 마법 차단으로 인해 의심의 고리가 커진 거라면 다행히 제가 어떻게든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요?”
“제가 걸었다고 하면 됩니다. 저에 대해서 잊으신 건가요? 엄연히 A급 헌터. 거기에 던전 내의 탐사, 탐지, 정보 수집에 전문화된 저지먼트 아이즈입니다. 차단 마법은 같은 분야라서 익히고 있습니다.”
오오? 과연! 길드장님이 마법 차단하는 마법이나 장비를 건네줬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될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왜 걸어 줬냐? 라는 합리적 이유만 보충해 주면 지금 날 추적하는 이들을 충분히 떼어 놓을 수 있으리라.
“그 부분은 이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으음~ 당신, 클래스가 뭐였죠?”
“그게 확정된 건 아니고, 일단 기사 계열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근접 전위 담당이죠.”
일단 각성하면서 배운 위대한 기사의 길(SSS) 스킬 때문에 기사 계열이지만 클래스는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다른 각성자들은 다 클래스가 정해져 있는데, 왜 나만 없는 걸까?
아무튼 지금 그 답을 내기엔 시간이 부족했으니 일단 내가 하는 역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나무는 숲에 숨기라고 했으며, 바위는 강가에 숨겨야 한다는 말 알고 계신가요?”
“대충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은 있네요. 그게 왜요?”
“당신은 오늘부터 우리 길드 소속의 황금 기사 추적 담당이 되세요.”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그 망할 황금 기사인데 그걸 추적하라고?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아주 잠깐 생각을 해 본 결과, 곧 그녀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하! 그런 방법이!”
“마침 저희 길드에서도 황금 기사에 대한 화제가 나왔기에 일단 제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거든요. 그 토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의심받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물론 진실은 이렇게 눈앞에 있지만요.”
“과연, 이해했습니다. 나무를 숲에 숨기라는 말~ 이제 더 확실히 이해되네요.”
황금 기사가 황금 기사를 찾아 쫓아다닌다?
보통 사람에게 말하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냐면서 고개를 갸웃할 일이며, 미친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 유성원, 이 개 같은 세상에 휩쓸리기 싫고 적당히 살아가는 걸 원하기에 기꺼이 시간 낭비에 미친 소리라고 할 법한 짓을 받아들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