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같은 시각, E급 던전 내부.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식욕은 생물의 3대 욕구 중 하나이며 군의 사기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KMG 시리즈들은 모두 다양한 레시피 및 식사 기능의 향상을 계속 개선해 가고 있습니다.]
현재 나는 던전 내에서 아칼론의 요리 기능을 체험하며 감탄 중이었다.
재료는 어떻게 구했냐면 어제 자는 동안 미리 요리 재료를 따로 수납해서 던전 내부에 가져온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린 이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만 남겨 둔 채 야외 파티 같은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정은 언제쯤 진행하실 겁니까? 단장님.”
“으음… 가능한 천천히? 지금 여기를 처리하는 것보다 바깥의 상황이 더 중요하니까~”
아마 슬슬 나를 쫓던 청룡 길드 녀석들과 스캐빈저들이 만나서 한바탕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죽였던 스캐빈저에 대한 정보 때문에 놈들은 민감해져 있을 게 분명했다.
보통 스캐빈저들은 남이 죽으면 두려워하기 마련이지만 그건 누가 죽였는지 알 경우이고, 미지의 살인에 대해선 역으로 조사하려고 든다.
‘미지의 공포는 엄청 무서운 거니 말이지.’
그런 상태로 바짝 날을 세운 스캐빈저들이 있는 영역에 청룡 길드원들이 나타나면 당연히 과민 반응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부딪치게 될 터였다.
‘음~ 어디가 이기려나? 분명 청룡 길드 그 도련님은 B급이면 C급 각성자 두셋은 데려올 거고~ 민감한 스캐빈저들은 아마 온 힘을 다해서 조사하겠지? 그러면 아마~’
아마도 청룡 길드 그 학생들이 스캐빈저를 상대하기엔 아무래도 까다로울 것이다.
아카데미아 학생들을 저평가하는 게 아니라, 일단 위치부터가 여긴 스캐빈저들의 영역인 도시 밖이다.
수적 우위도 있고, 무엇보다도 스캐빈저들은 더럽게 싸우는 걸 가리지 않는다.
‘반면 도련님과 그 학생들은 더러운 싸움에 대응하는 법을 모르지.’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기습, 독, 암기, 덫 등등 각종 수단을 사용하며 비열한 수단을 안 가리는 스캐빈저들에게 대응하기엔 고성준 일행의 경험과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다.
물론 그런 비겁한 수단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거나 장비의 성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서 섣불리 예상하는 건 무리였다.
“음~ 스캐빈저가 6이고, 청룡 길드가 4 정도?”
하지만 어차피 스캐빈저가 이기면 그놈들이 흔적도 없이 청룡 길드원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시체도 싹 정리해 줄 것이기에 걱정할 게 없다.
그러면 이후를 생각할 일은 바로 청룡 도련님이 이겼을 때였다.
‘그 도련님 쪽이 이겼을 때는 아마 나에 대한 적대감이 끝을 달릴 테니, 청룡 길드원들을 본격적으로 호출해서 조지려 하겠지.’
어쩌면 던전에서 나가자마자 청룡 길드원이 쫙 깔려 있을 수도 있다.
멍청하지 않은 이상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아차릴 테니, 아마 날 죽이려고 포위 섬멸진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나가자마자 그런 게 보이면 문답무용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군.’
그렇게 되면 나에 대해 E급 던전이나 도는 저랭크 각성자라 생각하는 그 점을 노려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분간 잠적해서 스캐빈저 활동이라도 하며 사는 게 최선이리라.
“만약을 대비해 그놈에게서 연락처 훔쳐 놓길 잘했어.”
[마스터, 커피입니다.]
“어, 고마워.”
그렇게 마음의 대비를 마친 나는 아칼론이 건네주는 커피를 받는다.
“던전에서 즐기는 커피도 별미군. 섬멸은 어때? 아칼론이야 못 마실 거고~”
“전 괜찮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음~ 이제 문제는 얼마나 있어야 하느냐는 건데…….”
여기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너무 오래 있어도 문제이고, 너무 빨리 나가면 스캐빈저와 청룡 길드의 싸움에 휘말릴 것 같아서 문제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일단 반나절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대기하기로 한다.
“아무튼 반나절은 있어야 하니까 시간도 죽일 겸 공부나…….”
[적을 계략으로 처치하는 솜씨는 좋았지만 명예 한 줌 없는 싸움은 기사의 도리가 아니며, 악(惡)을 강하게 만들었노라.]
[페널티:보상 1회 감소]
“친절하기도 하셔라.”
정말 친절하신 SSS급 특성 덕분에 바깥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페널티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보자… 일단 결국 이긴 건 악(惡)이라고 했으니, 스캐빈저 쪽이 이겼나 보군. 흠…….”
천(天) 클래스에 청룡 길드면 전용 클래스 청룡 투사일 가능성이 높다.
TV 방송에서 한국 최강의 격투가 클래스 집단이라고 떠들었 댔던 걸 보면 쉽게 지지 않을 텐데…….
그런데 스캐빈저에게 패배하다니.
역시 각성자는 스테이터스 등급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내가 빠뜨린 함정이지만 교훈을 하나 더 얻은 나는 이제 일어나서 던전을 돌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으으! 갑주 장착!”
철컥!
나의 호출에 황금빛 갑옷이 인벤토리에서 나와 내 전신을 감쌌다.
나는 뒤이어 검을 꺼낸 다음 이제 마지막 남은 보스 몬스터의 방을 향해서 걸어갔다.
이번 보스 몬스터는 동굴에 있는 몬스터로, 피에 물든 생고기를 우적우적 뜯는 ‘고기에 굶주린 마견’이었다.
황소만 한 크기의 개로 물리면 몸통의 절반이 날아갈 것 같은 무시무시한 마수가 우리를 쳐다본다.
크르르르르릉!
“영광과 명예는 오직 나 자신에게 깃들 뿐! 오늘도 악(惡)을 토벌하기 위해서 전진하겠노라! 출진! 사악한 짐승이여, 오늘이 너의 최후다!”
컹컹!
정말 마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형 보스나 악마가 이걸 들었으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나 스스로도 오그라들어 미칠 것 같은데 말이다.
“악은 섬멸! 단장의 명대로!”
[명령 이행, 아칼론 출격.]
하나, 아칼론과 섬멸은 마음에 드는지 내 대사에 잘 맞춰 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시작된 아칼론과 섬멸의 공세를 고기에 굶주린 마견이 받아 내면서 전투가 시작된다.
물론 나 역시 이 황소만 한 마물의 빈틈을 노려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데…….
“음, 아칼론 경, 제법이군요. 성천 기사단인 저와 이렇게 합을 맞출 줄이야.”
[나는 그저 빈 공정을 채웠을 뿐이다. 섬멸 경, 그대의 솜씨야말로 우수하군.]
니들은 왜 멋대로 서로 칭찬하면서 소년 만화를 찍고 있냐?
기묘한 소외감을 맛보면서 나는 마견의 뒷다리의 힘줄을 노려 검을 찌른다.
캐애앵!
‘아니, 힘줄만 베려고 했는데… 다리가 날아가 버리네.’
나름 섬세하게 힘줄을 노렸는데……. 다리 자체가 펑 하고 터지는 걸 보며 스테이터스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고기에 굶주린 마견은 매우 쉽게 토벌이 되었고, 곧장 보상 메시지가 나타난다.
[훌륭하게 악을 섬멸했노라! 하나 보상은 페널티로 인해서 줄 수 없다!]
[곧 출구가 열립니다.]
[레벨이 상승하여 19레벨이 되었습니다.]
“예예. 보상은 역시 페널티 때문에 지워졌군. 레벨은 19레벨인가? 아무튼 바깥 상황부터!”
페널티로 인해 보상을 받을 수 없기에 곧바로 포탈이 열리고 경험치 정산이 되어서 레벨이 상승한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포탈을 나가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상황을 살펴본다.
“음, 미니맵은 조용하네. 아칼론은?”
[제 색적 시스템에 걸린 것은 없습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단 주변의 풍경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스캐빈저든 청룡 길드원 일행이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안심한다.
그리고 나는 던전이 있던 위치 너머의 풀숲을 뒤져서 그 안에서 작은 기계를 찾아낸다.
“음, 다행히 작동하고 있네.”
“그건 뭡니까?”
“녹음기. 포탈에 들어가기 전에 슬쩍~ 인벤토리에서 꺼내서 던져 놨지. 밖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하니까~”
그래, 여기서 스캐빈저와 그 청룡 길드 녀석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면 두려움만 커질 뿐이다.
물론 친절한 SSS급 특성님께서 대략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 주셨지만, 그걸 확신하지 못하고 깔아 둔 것이니 아무튼 들을 가치는 있었다.
“세세한 내막을 알아야 또 날 지킬 수 있으니 돌아가서 듣자. 아칼론은 미안하지만 눈에 띄니까 성소로 들어가 줘.”
[명령대로…….]
아칼론을 성소로 보내고, 나 또한 황금 갑주를 해제시킨 뒤 조심스럽게 원룸으로 돌아온다.
“아~ 피곤하다. 대체… 각성자란 다 이런 건가?”
정말 인생 열나게 꼬인 기분이다.
각성자가 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긴장과 복잡함, 공포의 연속이다.
집에 돌아와서 녹음된 것을 체크하려던 순간, 갑자기 급변한 내 인생에 대한 충격이 몰려오는 건지 분노, 짜증, 우울함이 일어났다.
“하지만! 징징대는 게 허락될 나이는 아니지. 하아~”
절망과 비극, 포기는 10대, 20대 때 충분히 맛본 만큼 금방 털고 일어난다.
아프든 슬프든 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내 운명은 결국 내 손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걸 깨달았기에 시간을 아껴야 했다.
다만 기분 전환을 위해서 냉장고에 사 둔 맥주 한 캔 까서 원샷으로 들이켠 다음 나는 녹음기를 틀어서 내용을 확인한다.
『아, 안 돼! 나, 나는 이런 데서……! 커억!』
『오~ 역시 B급은 B급인가? 오오~ ‘도살왕’님의 가호가 내려진다! 대박! 대박!』
“음, 특성이 알려 주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리얼하네. 으음~ 함정에 빠뜨려 손 안 대고 처리했지만 마인(魔人) 하나를 강하게 만든 셈이군.”
이름 모를 마인(魔人)을 강하게 만들고, 질투심에 날 쫓은 것치고는 죽음에 이른 결과는 가혹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죄책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세상에 얼마나 더러운 꼴이 많은가. 인간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놈들이 벌이는 더러운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충분히 정당방위였다.
또 이 세상에 얼마나 더 위험한 게 많은데~ 고작 B급 마인 하나 더 생겼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으리라.
“다만 그쪽으로는 당분간 가선 안 되겠군. 그리고…….”
분명 청룡 길드에서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성좌의 가호까지 받은 천(天) 클래스 유망주와 그 파벌의 추종자 둘을 잃어버렸으니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분명 길드와 협회, 아카데미아 차원에서 조사를 시도하고 행적을 확인할 터였다.
“아마 도시 CCTV라든가, 다 조사하겠지?”
대한민국 3대 길드면 어지간한 대기업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길드 유망주가 실종된 사건에 대해 평범 이상의 대처를 할 것은 안 봐도 뻔하다.
“그 아영 아가씨랑 엮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만 역으로 그 아가씨 덕에 용의 선상에 올라도 벗어나긴 하겠군.”
공식 스테이터스는 F급으로 신고, 레벨은 19, E급 던전이나 겨우겨우 클리어하는 능력이다.
거기에 스캐빈저랑 엮으려고 해도 나름 규모 있는 중견 백야 소속의 전속 스태프라서 최소한의 신용이 있으니 스캐빈저의 끄나풀로 의심하진 않을 거고, 조사를 한다고 해도 가볍게 끝나리라.
그렇게 결론을 지은 나는 혹시 모를 조사에서 어떻게 대답할지만 미리 대비를 해 둔 다음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