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니지. 그냥 버리면 곤란하지.”
재활용인지 아닌지 고민하면서 쓰레기봉투를 꺼내고, 고철로 만들려던 나는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각성자와 헌터들을 교육하는 이곳 아카데미아에서 일하는 직원이기에 ‘전설’급 아이템의 가치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 옵션과 힘에 따라서 길드의 위상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어떤 경우에는 국가 간 밸런스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말 그대로 밸런스 브레이커였다.
하나가 발견되면 그것으로 인해 길드에서부터 국가 간의 전투까지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물건을 그냥 버렸다가 이 주변에 큰 전쟁이라도 나면 내 ‘적당한’ 일상을 뺏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일단 출근부터 하자.”
고민을 하다가 어느덧 출근할 시간이 다 되었고,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먼저 출근부터 한다.
물론 이 망할 ‘전설’ 아이템은 일단 상자의 문을 닫아 둔 채로 구석에 숨겨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걸 어떻게 처리한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 순서가 꼬이지 않았나, 한 번 더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부하 직원에게 적당히 둘러댄 뒤, 계속해서 업무를 해 나가며 고민한다.
내가 맡고 있는 팀은 유지 보수팀 중 하나로, 아카데미아 내부 시설 점검 및 각종 비품 보충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그래,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SCV다.
‘음, 역시 함부로 파는 것도 위험하니까 버리는 게 최선책 같아.’
[유성원 팀장, 거기 업무가 끝나면 연구동으로 와 줘요.]
“예, 알겠습니다.”
아무튼 SCV 일을 계속하면서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망할 황금 갑옷, 팔아 치워 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그 획득처를 비롯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일어나는 분란에 나는 100퍼센트 말려들어서 죽을 확률이 높았다.
비관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설’급 아이템의 가치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그럼 아카데미아에 넘겨 버릴까? 일단 정부 소속이고 하니…….’
그것도 직접 건네는 방식이 아니라 습득물을 확인했다는 식으로 넘기면?
정부에서 가져가면 더 이상 뭐라고 못할 거고, 소소한 포상금과 아카데미아의 성과도 되는 만큼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또 하나의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
‘젠장, 그 망할 SSS급 특성 스킬!’
[기사도의 가호(SSS급 특성)]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전설’ 등급 장비를 얻었다고 한다면 보통 기연을 만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협회 놈들이 만만한 놈들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상세 검사를 실시할 테고, SSS급 특성을 들키는 순간 자연히 요주의 인물이 되어서 ‘적당히’ 사는 건 꿈도 꾸지 못하게 될 터였다.
‘그럼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버리는 것뿐이군.’
결론적으로 몰래 야산에 파묻어 버리거나 바다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귀결이 된다.
스킬, 특성은 내가 말하지만 않으면 들킬 일이 없으니 당장 오늘 반차라도 써서 다녀와야겠다.
“갑자기 반차냐?”
“예. 급한 볼일이 생겨서…….”
“뭐, 급한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역시 사람은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고 했는가?
가족도 친지도 없이 직장에만 충실한 덕에 부장님에게 반차 승인이 매우 쉽게 났다.
점심 식사 후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그 망할 황금 갑옷이 있는 상자에서 갑옷만 꺼내어 캐리어에 나눠 넣고 빠져나왔다.
‘내 인생의 안녕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악한 물건! 바로 버려 버린다!’
인천 바닷가로 행선지를 결정한 나는 평일 낮이라 한적한 버스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SSS급 특성 스킬을 살펴보았다.
일단 장비는 버리면 끝이지만, 각성하고 난 뒤 얻은 이 스킬은 멋대로 버리지 못하니 주의 사항이나 발동 조건을 알아 두기 위해서였다.
‘기사도라는 게 와 닿지가 않아서 말이지.’
[특성-위대한 기사의 길]
등급:SSS
상세 설명
‘위대한 기사의 길’은 당신을 세계를 수호하는 기사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정의를 지키고, 악(惡)을 섬멸하며, 약자를 돌볼 때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또한 모든 ‘기사’ 계열 클래스의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페널티:마법 사용 불가, 원거리 무기 장비 사용 불가, 독 암기 관련 장비 사용 불가
‘뭔가 메리트에 대해선 불명확한데… 디메리트에 대해선 확실하네?’
대체 정의를 지키고, 악을 섬멸하고, 약자를 돌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써져 있지 않았고, 그냥 보상으로만 되어 있어서 메리트에 대해 체감하기 어려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기사’ 관련 클래스의 스킬을 모두 습득할 수 있다는 점뿐인데, 그래도 SSS라는 등급이 있는 이상 저 보상 쪽은 생각보다 성과가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아무 문제없어. 이 조건이 생기면 뭔가 터지거나,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거나 하는 게 아니니! 내 행동으로 인해서 사고가 터질 위험도 없다는 거니까!’
‘적당히’ 사는 게 목표인 이상 저 스킬에 나온 행동들을 할 이유가 없으니, 나는 안심하고 장비만 처리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
“좋아. 아무도 없지? 읏챠아아아! 사라져라.”
인천 바닷가에 도착한 다음, 나는 사람이 없는 절벽 쪽에 올라가 그 망할 황금 갑옷이 든 캐리어를 바다로 던져 버렸다.
첨벙하는 물소리와 함께 캐리어들이 바다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괜히 쓸 필요 없는 반차였지만 그냥 가스 뺄 겸 쉬는 거라고 생각하자. 캐리어는 좀 아깝지만~”
이 정도면 ‘적당한’ 인생에서 가끔 있는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기왕 바다에 온 김에 회라도 한 접시 먹고 가자고 생각하며 근처 횟집에서 광어에 소주 한 잔을 걸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때 일찍 나가서 가볍게 일을 본지라 돌아왔는데도 아직 5시 정도였다.
이른 퇴근 같아 더욱 기분이 좋아진 나는 ‘푹 쉬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경악했다.
“뭐야? 뭐야?”
집 안엔 익숙한 캐리어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신발도 벗는 것을 잊고 다가가서 열어 보았다.
“이런, 젠장…….”
아니나 다를까?
안에는 오늘 아침에 버리고자 마음먹었던 그 화려한 황금 갑옷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번쩍번쩍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혼란에 빠졌지만 나는 간신히 회복하고 현 사태를 다시금 파악해 보았다.
“후우~ 일단… 일단 이게 어떻게 돌아온 건지 알아보자. 후우~”
그래, 충격받은 채로 있어 봐야 나아지는 건 한 개도 없다.
이 망할 핵폭탄을 처리하기 위해 우선 장비의 옵션을 보기로 했다.
나는 상태창을 열고 기본적으로 주어진 감정 메뉴를 선택해서 해당 장비의 옵션을 확인한다.
9년간 아카데미아 스태프로 있으면서 다른 각성자 직원과 학생들이 하던 것을 보기만 하다가 직접 해 보니 느낌이 색달랐지만, 지금은 이놈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전설)금빛 수호신수(守護神獸)의 갑옷]
장비 타입:전신 보호형 갑옷
옵션:수호신수의 서약-수호신수는 신에게 서약했습니다. 자신의 주인이 어디에 있건 끝까지 따라가며 그를 지킬 것이라고. 그 혼과 함께하며 죽음까지 함께하겠다고. 이미 당신의 혼과 일체화하여 삶과 죽음 모든 것을 함께하며 다양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신성으로 물든 가죽-신성의 가호를 받은 가죽은 각종 마법에 저항할 힘을 얻습니다.
정화의 기운-신성한 수호수의 힘이 뿜어져 나와 사용자가 부정한 것에 물들지 않도록 해 주며 주변의 독, 오염을 정화합니다.
신수의 힘-사용자에게 신수의 힘을 실어 줍니다. 모든 스테이터스 1랭크(2배) 상승
“…즉, 이미 이걸 예상하고 계정 귀속템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거군. 그리고 날 따라오던 그 기능은 아무리 봐도 저기에 있겠지?”
다양한 기능이라고 쓰여 있는 곳을 눌러서 이 전설 아이템의 옵션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냥만 해도 마법 방어, 독, 오염 정화, 스테이터스 1랭크 상승, 전용 소환수 소환까지 달린 개사기 아이템인데, 편의성까지 갖춰지다니 말도 안 된다.
[수호신수의 서약 부가 기능-호흡 유지, 체온 조절, 아공간 보관, 자동 장착, 자동 회수, 자동 보수, 생존 보완]
“아무튼 편리한 건 다 있네. 그리고 여기서 자동 회수로 아마 내게 돌아온 거려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것의 존재를 들키는 순간 이제 내 목숨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한다.
X나게 좋은 만큼 존재를 알아채면 갖고 싶어 할 인간들이 바닷가의 돌보다 많을 것이기에 내 목숨도 위험해지는 건 당연했다.
“…결국 이걸 입은 다음에 내가 아공간 보관을 해야 한다는 거네. 하아~”
바닷속에 집어 던져도 쫓아오는 판국이다.
집에 보관했다가 누군가가 발견하거나, 혹은 누군가가 숙소에 들어오거나 할 때 들키면 곤란하니 남은 방법은 항상 입고 다니는 것뿐이었다.
“이걸 어떻게 입지? 음… ‘착용’ 같은 시동어라도……!”
샤아아!
그 순간, 갑옷이 빛으로 변하면서 빨려 들어오듯 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자동으로 착용된 모습이 된다.
전신은 물론 얼굴까지 완전히 가린 밀폐형. 무게감은 있었지만 불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편안했다.
거기다 이제 슬슬 여름이라 더운데, 입고 있으니 안에 쿨러가 돌아가는 양 시원했다.
‘확실히 좋은 물건은 맞네. 하지만… 외양이 너무 부담스러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았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빛의 갑옷에 청색 망토, 수호신수(守護神獸)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자랑 비슷한 짐승 같은 느낌도 있어 본래 내 체격보다 훨씬 육중해 보였다.
“으아아… 조금 멋있다고 생각해 버렸어. 정신 차려! 으아아아! 이런 거 나한테 줘 봤자 아무 소용없단 말이야. 어디 보자. 아공간 보내는 옵션이…….”
멋있긴 멋있었지만, 그래도 현실을 잊을 정도로 어리지 않았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결국 나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각성했지만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고, 이 망할 갑옷은 그냥 편리한 도구가 생긴 걸로 생각하면 된다.
‘젠장, 사람 피곤하게 하고 있어.’
꿈과 희망, 사랑과 우정이 가득 담긴 스토리는 나 같은 놈보다 파릇파릇한 10대 청소년이나 20대 초반한테나 어울린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게 주어졌을까? 시련인가? 아니면 고통을 주려는 건가?
아무런 걱정 없던 어제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내 현실이었다.
“…하아~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있을 순 없겠지?”
나는 이런 게 주어져도 별로 헌터가 되고 싶지 않고, 영웅도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안전이 내가 입만 놀린다고 지켜질 리가 없다.
영혼에 귀속돼서 벗겨지지 않는 전설 템만 해도 날 죽이고 갖고 싶어 할 놈이 세상천지에 깔려 있을 거고, 내 특성을 노리고 덤벼들 놈도 많을 것이다.
‘그냥 줄 수 있으면 모를까, 내 영혼과 몸에 귀속된 상태라 지킬 힘이 없으면 백방 꼭두각시 혹은 보물 고블린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거야.’
갑작스럽게 변한 운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남들이 탐내는 것을 가진 이상 지켜야 하며,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힘이 필요했다.
지금 이럴 시간도 아까울 만큼 바로 움직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