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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화 (1/293)

[1화]

‘적당히 살자.’

스물 중반에 깨달음을 얻어서 서른 초반에 이른 지금까지 평온하게 살게 해 준 내 인생의 지론이다.

대체로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난이란 능력을 벗어나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것을 버리면 평탄하게 살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후우~ 오늘도 지겨운 하루 일과가 끝났는데, 망할 잔업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근데 저기 애들은 아직도 열심히 하네. 얼씨구, 젊음이 좋지. 그래~ 아, 고작 서른 초반인데 이런 말은 너무 이른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 법이다.

그래, 어느 날 세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성좌니 하는 기묘한 존재가 등장하고, 사람들에게 ‘각성’이니 뭐니 하면서 마법 같은 판타지스러운 힘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내가 찾은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늘 보면서도 신기하다니까~”

나는 손에서 마법진을 그려 내고 검에서 빛을 뿜어내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감상을 내뱉는다.

이곳은 대한민국 서울 아카데미아.

성인이 ‘각성’할 경우 연수원으로 가서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곧바로 헌터가 되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사회 시민으로서 익혀야 할 기본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교육 시설을 지어서 모아 놓고 교육한다.

“읏챠, 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왔다. 내 쉼터~”

그리고 나는 이 아카데미아에서 근무한 지 9년이 된 스태프로, 팀장 직위를 단 덕분에 이렇게 홀로 사용할 수 있는 단독 숙소까지 받을 수 있었다

“후우~ 시원하다. TV도 틀고, 맥주랑 세팅! 이 맛에 사는 거지.”

고단한 일을 마친 뒤 TV로 뉴스와 예능을 틀어 놓고, 휴대폰에서는 자신의 엘프 여기사 캐릭터가 자동 사냥하는 모습을 보며 맥주를 들이켠다.

호화로운 삶은 아니지만, 마음을 놓고 휴식할 수 있으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보자. 뉴스는 별거 없네. 북쪽에서는 도살왕이 난리고, 서쪽의 중국은 여전히 분리 상태, 동쪽의 바다는 영원한 분노에 의해서 또 배편이 끊겼다고 난리군. 일상이야, 아주 일상.”

세계의 위기와 공포,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하던 이야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마련이다.

물론 인류에게도 성과가 있긴 한 건지 가끔 위험하다는 성좌의 이름이 바뀌거나 몬스터의 종류가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젠 당연한 일이었다.

“또 늘 나오는 화제네. 헌터님들은 고생하시니까 협회에 예산 좀 vs 세금이 니들 쌈짓돈이냐? 로 싸우는군. 캬아아아아! 음, 저건 노잼이니까 딴 데 보자.”

맥주를 들이켜며 채널을 돌린다.

시대가 바뀌어도 결국 이득 볼 놈들은 오늘도 이득 보면서 잘살고 있다는 소식뿐이고,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건이 일어나는 것도 똑같았다.

세상은 변한 것처럼 보여도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 무서운 게 잔뜩이라며 바람은 넣고 있지만, 챙길 건 다 챙기시는 걸 보면 아직 멀었지.”

마신(魔神)이라 불리며 몬스터를 몰고 오는 성좌의 위협과 인류를 적대시하는 스캐빈저, 그리고 마인(魔人)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들은 여전히 부정을 저지르고, 욕심에 눈이 먼 자들도 많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상황을 나아지게 할 사람도 없고, 의욕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똑똑하고 능력 있으신 분들이 그러니 나라고 별수 있겠어? 능력도 없고, 나이만 먹어 가는 놈에게 남은 선택지는 적당히 살다 가는 게 전부지. 오? 유니크 아이템 떴네? 오늘 운이 좋은걸? 치킨 값 벌었다.”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도 있으신 분들이 그러는데, 나 따위가 무언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진작 깨달은 지 오래다.

꿈과 희망, 노력이라는 건 10대 혹은 20대 애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서른 넘은 아저씨에겐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깨달은 진리가 바로 ‘적당히 살자.’였다.

“뭐,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이거 되게 편하다고~”

비록 나는 가족도 없고, 일가친척도 없고, 애인도 없는 삶이라 남들이 보기엔 쓸쓸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자유로웠고, 적당히 살기에 딱 좋았다.

가족이야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으니 뭐라 할 말 없지.

애인은 몇 년 전엔 생각이 좀 있었지만 요새는 연애에 대한 생각 자체가 피곤하기도 했고, 내가 가정을 가지면 과연 가족이라는 집단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서 포기해 버렸다.

“주제 파악이 최고지.”

그렇게 포기하니 마음은 더욱 편해진다.

또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크리스마스엔 커플들은 호텔과 모텔에 가득했고, 요즘은 시대도 많이 바뀌어서 눈치 주는 일도 없다.

누구는 이런 나를 패배 의식에 찌든 자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현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힘도, 권력도, 지혜도, 돈도 없는데 도대체 뭘 하란 말인가? 기껏해야 선거 날 던질 수 있는 투표용지 한 장이 전부다.

그리고 세금, 연금, 보험도 다 착실히 내었고 엿 같은 국방의 의무도 준수하고 국민으로서 해 줄 건 다 했으니, 그 이후 어떻게 살지는 내 자유였다.

“하아암~ 이제 슬슬 잘까? 아, 오토 돌리고 아이템 정리 한번 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 버렸네. 내일 업무는 훈련 무구 창고 쪽 정리였지? 하아암~ 자야지.”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다시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 눕는다.

포기하는 게 많아지면 삶도 그만큼 가벼워진다.

노력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며 울 필요도 없고, 재능이 없음을 탓하지 않는 등등 자신의 모자람을 슬퍼하고 남에게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냥 질 수 있는 만큼만 짊어지고, 나머지는 적당히 포기하고 사는 게 역시 최고였다.

“쿠우울…….”

위이이잉!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으, 으음? 뭐야? 내일 일정 변경이라도 있나? 아, 제발 누가 사고 쳐서 수습해야 하는 것만 아니길…….”

막 잠에 들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고, 깜짝 놀라 들어 보니 메시지가 와 있다고 나와 있었다.

퇴근하고 자려는 순간이니 제발 긴급 소집만 걸리지 않길 빌면서 잠금을 풀고 게임을 끈 다음 메시지를 확인한다.

「♚♚각성자가 되고 싶습니까?♚♚100퍼센트 성좌와 매칭 가능☜☜※ ♜인생 역전의 기회♜사도 임명 시 각성 시스템 및 특성 스킬과 장비 무료 증정@@트랜드 추구! Lv 업, 스테이터스 시스템 완비✫✫✫지금 당장 승낙만 하시면 바로 매칭[email protected]@이거 스팸 아닙니다.」

“뭐야? 이거 개그? 대체 언제 적 낚시 문자 수법을 쓰는 거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한데, 메시지를 보자 당혹스러움이 몰려온다.

각성자가 되고 싶습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F급이라도 각성자가 되면 아카데미아 스태프로서 급여가 오르니 당연히 되고 싶지.

“에휴, 되고 싶다고 될 수 있으면 그게 망할 세상이냐? 잠이나 자자. 스팸 메일 때문에 괜히 일어났네.”

위이이잉!

또 하나 문자가 날아온 것 같았지만 나는 바로 무시해 버리고 잠을 청했다.

정 급한 일이거나 진짜 긴급 소집이라면 메시지를 받지 않으면 분명 전화를 할 테니, 그때 움직여도 상관없을 터였다.

자고 있던 중이라고 하면 변명도 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쓸데없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 내일도 적당히 살기 위해서 잠을 청한다.

***

다음 날.

메시지를 무시한 덕분에 푹 잔 나는 눈뜨자마자 혹시나 잠든 사이 부재중 전화가 쌓였는지부터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찾았다.

<부재중 전화 0건>

<새로운 문자 메시지 7건>

“휴우~ 다행이다. 일단 부재중 전화는 없네. 근데 그 각성자 낚시하던 놈은 문자를 7개나 보냈나? 징하네. 미친 자식, 상대 안 해 주길 잘했… 어? 시벌? 이게 뭐야? 상자?”

대충 문자만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이불을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눈앞에 낯선 상자가 있었다.

게임 속에서나 볼 법한 나무로 되어 있고 쇠로 덧대어진 상자였다.

나는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 놀라며 두리번거렸다.

“뭐야? 이거? 설마?”

어제 본 문자에 대해 생각이 닿은 나는 다급히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걸 보면 필시 어제 왔던 문자가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해당자의 동의 및 승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곧바로 성좌 매칭 및 시스템 부여가 시작됩니다.]

“아니, 그러면 좋겠다고 했지, 동의한 적은 없는데? 이거 완전 날치기 아니야?”

[현재 해당자께서는 수면 중이시기에 성좌 매칭은 취소되었습니다. 하나 각성자 시스템 부여는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특성 스킬’이 랜덤으로 제공되었으며 ‘장비’ 또한 랜덤으로 놔두고 가니 잘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상자에 장비가 있다는 건가?”

아직도 열리지 않은 RPG 게임 스타일의 상자를 흘깃 본 다음 계속해서 문자를 읽어 나간다.

이 정도면 그냥 퍽치기 수준의 강매였다. 기껏 평온하게 자리 잡은 나의 일상을 방해하는 물건이니 어떻게든 환불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추신-해당자의 변심으로 인한 환불은 받지 않습니다. 화이팅!]

“일단 진짜인 것 같은데, 화이팅의 의미는……? 아무튼 다음 문자는 대략적인 설명서인가?”

엿같이 굴러서 고생해 보라는 건가? 아무리 봐도 악의(惡意)밖에 느껴지지 않는 문구였다.

그리고 그다음 문자는 ‘시스템’이랍시고 주어진 물건의 사용법과 각종 능력치에 대한 설명 등등이 적힌 간단한 설명서였다.

“사, 사사상태창? …와, 이거 직접 말하는 거 생각보다 X팔리네.”

[Lv.1 유성원]

스테이터스 성장치:1/1/1/1

Str:14 Dex:12 Vit:14 Mag:0

[보유 특성]

위대한 기사의 길

“와, 진짜로 나오네. 세상에…….”

눈앞에 열린 반투명의 창을 본 순간, 이제야 자신이 각성자가 된 것이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현실을 거부할 수 없기에 나는 일단 랜덤으로 주어졌다는 특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뭐, 별건 없겠지? 성좌님에게 가호를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랜덤 돌려서 받았으니까…….”

기본으로 주는 만큼 분명 흔하디흔한 기초 특성일 것이다.

그래도 아무리 미약한 클래스라도 각성을 하면 스태프로서 승진 점수도 오르고, 보너스 수당도 붙으니 손해 보는 건 아니었다.

그래, 작은 행운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일이었다.

[특성-위대한 기사의 길]

등급:SSS

상세 설명 열람

SSS급? 나는 혹시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등급엔 정확하게 S가 자그마치 3개나 달려 있었다.

“후우~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봐. 후우~”

아직 능력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SSS급 특성이라는 것을 인지한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혹시나 싶어 일어날 때부터 있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이미 사건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적이라면서 좋아했을 SSS급 특성에 대해서도 지금 미칠 듯한 부담감에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그리고 역시나 무엇이든 어긋나는 것을 좋아하는 운명이라는 놈은 나에게 시련을 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와아, 이거 아주 제대로 엿 되어 보라는 거네?”

[귀하에게 랜덤으로 주어진 장비는 ‘전설:금빛 수호 신수의 갑옷’입니다.]

상자 안엔 아침 햇살을 받아 태양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갑주 한 벌이 들어 있었다.

풀 플레이트 메일 형태였지만 자세히 보면 투구도 그렇고, 갑옷도 밀폐형이라서 SF틱한 디자인이 섞인 느낌이었다.

SSS급 특성 스킬에 ‘전설’ 등급 장비까지, 그야말로 인생역전의 대찬스였다.

10년? 아니, 5년 전의 나였다면 순수하게 기뻐서 날뛰었을 것이다.

“으으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만족을 안다.

모자라도 문제이지만, 과한 것은 모자람보다 더 파멸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축복으로 보이는 혜택이 내 삶을 파괴할 저주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버리자.”

적당한 내 삶을 빼앗으려는 운명의 손아귀에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 망할 저주를 버릴 쓰레기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당장! 당장 이걸 버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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