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60화 (60/226)

60화

‘악귀군.’

던전 안에서 망자 박가(家)를 포함한 모두를 몰살시킨 팀장은 악귀에 빙의된 상태였다.

‘던전 마력으로 폭주해 버렸고.’

기억을 들여다보던 은석의 눈에 겁에 질린 표정의 망자가 보였다.

어깨에서 손을 떼고 망자를 일으켰다.

“일어나. 미술관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카페로 가자. 도망가면, 알지?”

앞서가는 은석을 보던 망자가 마지못해 일어나 그를 따라 미술관 카페로 갔다.

은석이 커피를 주문해 들고 오는 사이, 쭈뼛거리며 걸어오던 망자가 테이블에 앉았다.

“마셔.”

커피 한 잔을 망자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던전 폭발 이후 재개관을 했지만, 아직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커피를 마시며 혼자 중얼거리는 은석에게 관심을 보일 사람도 없었다.

커피 한 모금을 후룩 마시고 물었다.

“왜 미술관이야?”

뜬금없는 은석의 질문에 망자가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던전에서 여기로 도망 온 거냐고.”

망자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어, 어떻게 그걸……!”

“내가 귀신이랑 커피도 마시는데 그거 하나 모를까 봐?”

놀란 망자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답해. 왜 미술관이야.”

하지만 망자는 커피 잔만 내려다볼 뿐, 아무 대답이 없었고 은석 역시 가만히 기다렸다.

산 자와 죽은 자, 둘은 한동안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각성 전에 그림을 그렸었습니다.”

“오, 화가였어? 화가가 마법진을 그리는 마법사가 된 거군. 멋진데?”

그의 칭찬에 망자는 쓴웃음만 지었다.

“화가라……. 화가가 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발악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군요.”

“맞아. 그림 그리는 데 돈이 많이 들지.”

은석의 첫째 누나인 김은희 역시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김은희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아 힘들어하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각성하고 난 다음에는 벌이가 괜찮지 않았어?”

망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죽이는 걸 보고 나니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더라고요. 웃기죠? 돈이 없을 때는 그렇게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돈이 생기니까 붓을 잡아도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헌터가 되었지만, 본래 그는 감수성이 뛰어난 예술가. 그런 자가 던전 안의 무자비한 사냥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계속 미술관 지박령으로 있다가 원귀라도 될 거야? 원한다면 저승으로 보내 줄 수 있는데.”

“아니요. 저승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단호한 그의 모습에 은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럼, 내 팀원이 될래?”

생각지도 못한 은석의 제안이었으나 망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 손에, 피가 아닌 물감을 묻히고 싶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껏 그림을 그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흐릿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망자.

그를 바라보던 은석이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내가 그림을 그리게 해 줄까? 원한다면 네 이름으로 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열어 줄 수 있어. 어때?”

망자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제가 아무리 귀신이지만 아직까지 정신은 남아 있습니다.”

죽은 자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전시회라니. 망자는 은석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두고 보면 알 거고. 할 수 있다면? 할 거야, 말 거야?”

은석의 눈빛과 표정이 진지했기에 망자는 그의 제안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하겠습니다.”

탁-

망자의 대답과 동시에 커피 잔을 내려놓은 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케이, 접수! 미술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 * *

집으로 돌아온 은석.

소파에서 청안을 쓰다듬고 있는 김은희 옆에 앉았다.

“이중우라는 화가, 전에 그 선배라는 사람 맞지?”

“어, 맞아. 그건 왜?”

“혹시 그 사람 지금 뭐 해?”

김은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은석을 쳐다봤다.

“선배가 왜 궁금한데?”

“미술관을 지나가는데 이중우 화가 특별전을 다시 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더라고. 그 사람 오른팔이 없는데 다시 그림을 그리나 싶어서.”

김은희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TV를 바라봤다.

“워낙 그림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그리고 있기는 한데……. 평생을 오른손을 사용했던 사람이 왼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겠어? 도와주려도 해도 싫다고만 하고.”

“진짜 전시회를 다시 하는 거야?”

“지난번 특별전이 그렇게 끝나 버려서 미술관에서는 언제든 열어 준다고 했다네. 그런데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게 문제지. 옆에서 보고 있으려니 안쓰러워 죽겠어.”

김은희의 말을 듣고 있던 은석이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의지는 있어?”

“무슨 의지?”

“팔이 없어졌으니까 술이나 퍼마시고 자포자기할 수도 있잖아.”

“그럴 선배 아니야. 그 자리까지도 어떻게 왔는데. 며칠 전에 다시 시작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뭐래?”

“포기하지 않을 거래.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다시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 낼 거라고 하더라. 그런 사람이야, 선배는.”

은석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 일어나.”

“어?”

“일어나. 이중우 화가 작업실에 같이 가자.”

김은희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거긴 왜?”

“왜긴, 내가 좀 도와주려고 하지.”

도와준다는 은석의 말에 김은희와 품에 안겨 있는 청안, 둘 다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갑시다. 빨리.”

은석의 재촉에 김은희가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은석의 옆으로 청안이 다가왔다.

“인간, 또 무슨 작당을 하려는 거냐?”

“작당은 무슨.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어 착한 일 한번 하려고 하는데.”

청안이 실소를 흘렸다.

“네놈이? 얻는 게 없는데 설마 그럴라고.”

“뚱냥이. 너 사람을 어떻게 봤길래…….”

그때, 김은희가 방에서 나왔다.

청안은 빠르게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갔고 은석은 후다닥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 * *

허름한 건물의 옥탑방에 이중우 화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은석과 김은희는 이중우 화가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옥탑방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건물만큼 낡아 보이는 문 앞에 선 둘. 하지만 선뜻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작업실 안에서 괴로운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소리가 잦아들고 김은희가 심호흡 끝에 조심스레 노크했다.

“……누구세요?”

“선배, 저예요. 은희.”

딸칵-

잠긴 문이 열리고 초췌한 모습의 이중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술관에서 봤었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은석은 잠깐 놀랐다.

‘많이 힘든 모양이군.’

김은희 뒤에 서 있는 은석을 본 이중우가 눈을 껌뻑였다.

“아, 은희 네 동생?”

“안녕하십니까, 김은석입니다.”

은석을 알아본 이중우가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전에……. 그, 구해 준 거 너무 고마웠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 해서 늘 미안했는데…….”

퀭한 눈 아래 다크 서클이 짙었다. 김은희가 반쯤 열린 문을 밀며 들어갔다.

“선배, 이번에는 며칠 밤을 안 잔 거예요?”

익숙한 듯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작업실 안은 지저분했고, 곳곳에 그의 분노한 흔적이 남아 있는 찢어진 캔버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화가가 그렸다고 할 수 없을 어설픈 그림들이었다.

“화실이 너무 지저분해서 부끄럽네요. 음, 드릴 만한 음료수도 없고.”

은석이 바닥을 치우는 김은희에게 말했다.

“누나, 커피 좀 사와 줄래?”

“내가?”

“그럼? 난 오늘 여기 처음 오는데?”

김은희의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본 이중우가 급하게 겉옷을 집어 들었다.

“아니야.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가야…….”

김은희가 문을 열고 나가며 물었다.

“아메리카노?”

은석이 손을 동그랗게 만들며 오케이라고 말했다. 김은희가 문을 닫고 나가자, 작업실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이중우가 엉거주춤하게 반쯤 걸친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쳤다.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작업실의 작품들을 살펴보던 은석의 눈에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붓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에 문외한인 은석이 보기에도 이중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혹시 다시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다면 뭐까지 하실 수 있으세요?”

갑작스럽고 두리뭉실한 은석의 질문.

“네? 무슨 말인지…….”

작은 작업실을 한 바퀴 돌아 이중우의 곁에 도착한 은석이 그를 바라봤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예술가들도 있잖아요. 혹시 화가님도 그럴 수 있으세요?”

뜬금없는 은석의 질문에 이중우가 낮게 웃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요. 그런 건 없습니다. 저같이 재능 없는 화가는 노력만이 살길이죠.”

“음.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노력에 제가 버프 하나 넣어도 될까요?”

“네? 버……프?”

은석이 아공간에서 작은 붓 하나를 꺼내들자, 이중우가 화들짝 놀랐다.

“누나가 오기 전까지는 끝날 겁니다. 아프지도 않고 죽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저를 믿고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이중우는 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진지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 어차피 바닥이야. 이렇게 죽어도 상관없을 판에 뭔들 못 하겠어.’

은석이 들어오기 전에 찢은 캔버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오늘 작업은 글렀습니다. 한번 받아 보죠. 그 버프라는 거. 어떻게 받으면 됩니까?”

“뒤돌아 등을 보여 주십시오.”

“네?”

“믿으시는 거 아닌가요?”

“아, 그건 그렇지만…….”

이중우는 주저하며 은석에게 자신의 등을 내보였다. 그의 등에 작은 붓으로 문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열린 창문 하나 없는 작업실 안의 물건들이 덜컹거리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이중우가 돌아보려고 했지만, 왼쪽 어깨를 잡고 있는 은석의 힘에 꼼짝할 수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다물어진 입도 벌어지지 않아 그는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글자까지 적은 후 은석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망자 박가(家)는 이리로 와 이가(家) 중우의 몸에 들어가라.”

위이잉-

엄청난 회오리가 부는 듯했다. 이중우는 부들부들 떨며 작업실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무언가 그의 몸 안으로 쑤욱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암전된 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이중우를 은석이 덥석 잡아 의자에 앉혔다.

“으아악!!”

잠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중우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은석을 발견하고는 그의 양팔을 덥석 잡았다.

“이게 지금, 내가…….”

갑작스럽고 낯선 상황에 놀란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은석은 피식 웃으며 잡고 있던 팔을 내렸다.

“어때? 오랜만에 살아 있는 자가 되어 보니.”

이중우가 자신의 팔과 얼굴을 더듬거렸다. 곧 오른팔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은석을 다시 쳐다봤다.

“너도 아는 사람이지? 그때 네가 미술관에서 구해 준 화가.”

지금 은석의 앞에 서 있는 이중우의 몸 안에는 망자 박가(家)가 빙의되어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빙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지. 그 누구보다 더.”

“빨리 빼내 주십시오!!”

“그림 그리고 싶다며?”

“……네?”

“내가 그림 그리게 해 줄게.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까지.”

이중우의 모습을 한 망자 박가(家)가 콧방귀를 꼈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릴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만둘 때까지라고요?”

휘이잉-

작업실 안에 다시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검은 도포와 갓을 쓴 최성운 차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차사의 모습에 망자가 혼비백산,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그 모습에 저승차사가 혀를 쯧쯧 찼다.

“김은석, 나를 이리로 부른 이유가 저 녀석 때문이냐?”

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차사님. 여기서 저승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이중우 화가님을 데리고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이중우의 작업실에 들어오기 전, 은석은 해머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해머.’

‘네, 대장.’

‘내가 지금부터 죽은 자를 빙의시킬 거다.’

‘네? 빙의요?’

‘그래, 그리고 빙의가 완료된 살아 있는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갈 생각이야.’

은석의 말에 놀란 해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세한 건 저승에 가서 말해 줄 테니까, 너는 최 차사님에게 가서 나를 저승 훈련장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해.’

‘알겠습니다. 대장.’

최 차사는 은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직접 이승으로 나온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최 차사님.”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너를 믿으니 살아 있는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은석은 테이블 아래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망자를 끌어냈다.

“난 죽기, 죽기 싫습니다!”

“이미 죽은 놈이 무슨…….”

은석은 그의 목덜미를 잡고 최 차사를 따라 저승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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