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59화 (59/226)

59화

은석이 레벨 보상을 확인하고 있는 그 시간.

대한민국 최고 헌터로 불리는 불산 길드의 윤혁은 그의 전용 벤 안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은석과 하데스 길드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노트북을 부술 듯 세게 닫고는 며칠 전 김도운 비서가 보여 준 은석에 대한 자료를 다시 펼쳤다.

“어떻게 고작 F급 힐러가 저렇게 싸울 수 있는 거지?”

종이를 앞뒤로 넘겨 가며 읽고 또 읽었지만 윤혁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새끼도 나처럼 마력을 흡수하는 건가? 아니야. 싸우는 방법이 전혀 다른데. 저건 도대체…….”

순간, 윤혁 왼쪽 손등의 피부가 불쑥 솟아올랐다.

앞에 있는 상자를 급하게 열어 포션 하나를 꺼내 들이켜자, 부풀어 오른 피부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갑자기 왜 또 이래. 미치겠네.”

손등을 어루만지는 윤혁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했다.

마력 흡수로 강한 힘은 얻었지만 여러 종류의 마력을 마구잡이로 흡수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윤혁의 몸 안에서 마력끼리 충돌해 부작용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큰돈을 주고 포션을 만들어 먹고는 있었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운전석을 막아 놓은 가림막이 내려갔다.

“대표님, 이제 던전에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의자에 올려져 있는 포션 병을 보이지 않게 치우고 잔뜩 구겨진 얼굴 표정을 풀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문 열어.”

윤혁이 말하자, 벤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찰칵- 찰칵-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카메라를 쉴 새 없이 눌러 댔다.

윤혁은 조금 전과 전혀 다른,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으며 벤에서 내려섰다.

“윤혁 헌터님! 오늘은 높은 등급의 던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비서가 말해 주지 않았네요. 좋은 정보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자님.”

그의 비꼬는 듯한 농담에도 기자들은 즐거운 듯 소리 내 웃었다. 기자들 사이를 빠져나와 던전 게이트 앞에 섰다.

이미 불산 길드의 헌터들과 용병은 게이트 입장을 마친 후였다. 가볍게 몸을 푸는 윤혁 옆으로 김 비서가 다가왔다.

“놈은?”

“용병 중에 빨간 머리를 한 헌터입니다. 최근에 각성한 자로 C급입니다. 현재 길드 몇 곳과 이야기 중인데 경험 삼아 참여하는 거라고 합니다.”

윤혁이 빈정거리며 웃음을 뱉었다.

“경험? 지X라고 있네. 저승으로 가는 경험을 선물로 주지. 가족 없는 놈인 게 확실하지? 저번처럼 가족이 길드 앞으로 찾아와서 시끄럽게 하면 알지?”

“확실합니다. 그리고…….”

김 비서가 할 말이 남은 듯 윤혁의 옆에 서서 입술을 움찔거렸다.

“대표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윤혁을 부르는 김 비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빨리해.”

“이번 던전은 B-랭크입니다. 거기에 초보 각성자이기는 하지만 C급이고…….”

“요점만 말해.”

“최근에 대표님의 마력 충돌 증상이 잦아지니까…….”

윤혁이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자, 김 비서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윤혁이야.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몰라?”

그의 반문에 김 비서는 입술을 굳게 다물며 뒤로 물러섰고, 윤혁은 곧장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 * *

“역시 윤혁이야.”

“그렇지? 소문대로야. 마력 덩어리를 몬스터한테 막 쏴 대는데……. 와, 나 지릴 뻔했잖아.”

“마력탄. 실제로 보니 엄청나더라.”

“윤혁 없었으면 밤을 꼴딱 새워 싸웠어야 했을 건데. 든든하다, 든든해.”

1차 공격이 끝난 후 윤혁은 자신의 천막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는 그에 대한 칭송이 끊이질 않았으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능력도 없는 새끼들.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왜 던전에 들어온 거야?”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몬스터가 몰려들었다.

윤혁은 늘 던전에 들어오면 마력 흡수를 가장 먼저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던전 입장과 동시에 몬스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미처 피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흡수하기 전에 많은 양의 마력의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오늘 밤 그놈을 흡수해야겠어. 아니면 일주일을 버티기 힘들겠는데…….”

밤이 깊어지자, 시끌벅적했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윤혁은 조심스레 천막을 열고 빨간 머리 헌터를 찾아다녔다.

막 꺼진 모닥불 주변에 누워 있는 그를 향해 윤혁이 수면탄을 굴려 넣었다.

피슉-

소리도 냄새도 없는 수면탄의 흰 연기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연기를 마신 헌터들은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윤혁은 빨간 머리를 한 헌터의 다리를 잡아끌어 근처 숲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에 가려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하자, 윤혁은 헌터의 목을 쥐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억!”

잠에 취한 헌터는 눈을 뜨지는 못했지만, 숨이 막혀 넘어가는 소리를 계속 내뱉었다.

윤혁이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자 남자의 고개가 점점 더 뒤로 젖혀졌다.

“거기 누구야?”

누군가 윤혁과 남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란 윤혁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윤혁 헌터님……?”

한 손으로 헌터의 목을 꽉 쥐고 있는 윤혁과 금방이라도 목이 부러진 듯 젖혀진 남자의 모습에 놀란 헌터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 지금 뭘 하시는…….”

놀란 헌터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도망가려는데, 파앙-

윤혁이 그를 향해 마력탄을 쏘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헌터는 울컥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고, 윤혁은 빨간 머리 헌터를 바닥에 내던지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귀찮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바닥에 엎어져 연신 피를 토해 내는 헌터를 발로 밀어 똑바로 눕혔다.

그는 최근 불산 길드에 입사한 신입 헌터 중 한 명이었다.

“신입님, 던전 안에서도 밤에는 잠을 자는 겁니다. 여긴 왜 오고 난리야.”

겨우 눈을 떠 자신을 바라보는 신입 헌터의 볼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오늘 본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신입 헌터의 애원에 윤혁이 낮고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오늘 네가 본 것들 다 말해. 저승 가서.”

눈을 동그랗게 뜬 신입 헌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의 목을 쥐고 단번에 꺾어 버렸다.

동시에 신입 헌터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했고 윤혁은 그것을 빠르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바닥에 누워 있는 빨간 머리 헌터에게 다가갔다.

“이번 던전은 재수가 좋네. 알아서 죽으러 와 주고 말이야.”

* * *

[불산 길드 윤혁! B-랭크 던전 닷새 만에 정복하다.]

[더욱 강력해진 그의 마력!]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윤혁. 그에게 한계가 있을까?]

불산 길드 신입과 빨간 머리, C급 헌터 두 명의 마력을 흡수한 그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윤혁이 왜 대한민국 최고 헌터인지를 증명하듯 빠르게 몬스터를 죽였지만, 실상은 마력 충돌 때문이었다.

낮지 않는 C급 마력인 만큼 마력 충돌 역시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어.”

그리고 그의 활약 덕분에 B-랭크 던전을 닷새 만에 클리어한 것이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진동이 울리자, 게이트 밖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도 바빠졌다.

윤혁의 비서 역시 벤을 대기해 놓고 포션 몇 병을 주머니에 챙겼다.

“저기! 윤혁 헌터가 나온다!”

사상자와 불산 길드 소속 헌터, 용병들이 차례대로 나온 후 마지막에 윤혁이 나왔다.

누군가가 소리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게이트로 향했다. 김 비서도 빠르게 뛰어가 들고 있던 재킷을 윤혁에게 둘렀다.

“윤혁 헌터님! 닷새 만에 던전을 클리어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 비서가 온몸으로 카메라를 막았다.

“헌터님은 몹시 피곤하신 상태입니다. 인터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그사이 윤혁은 비서가 재킷 안에 넣어 둔 포션 두 병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던전에서 나올 때 그의 목덜미는 이미 한껏 부풀어 있던 상태였다.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나온 윤혁. 김 비서의 빠른 대처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털썩-

벤에 올라타 재킷을 벗어 던졌다.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윤혁이 눈을 감고 의자를 한껏 뒤로 눕혔다.

“불산 신입 중에 C급, 키가 작고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는 놈이 있어.”

“이번 레이드에 들어간 헌터들 중에 말입니까?”

“그래, 그놈 죽었어. 알아서 잘 처리해.”

윤혁이 주로 죽여서 흡수한 자들은 연고가 없는 용병 위주였기에 김 비서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 떴다.

만약에 가족이 있어도 실종 위로금 몇 푼 쥐여 주면 입 다물, 경제적으로 힘든 용병을 타깃으로 삼았다.

절대 같은 길드의 헌터는 건드리지 않았었는데…….

“혹시, 이유가…….”

김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놈이 내가 사냥하는 걸 봤어. 그뿐이야. C급을 두 놈이나 흡수한 덕분에 이 모양이고.”

부풀어 오른 것은 가라앉았지만, 몬스터와 싸우면서 생긴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급기야 누런 진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불산 병원으로 가자. 며칠 좀 쉬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연락하겠습니다. 가는 동안 쉬십시오.”

가림막이 올라가고 윤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해. 혹시 김은석은 알고 있을까? F급인 힐러가 저렇게 싸운다는 건 분명 나처럼 계기가 있었다는 말인데.’

* * *

‘여기에 있다고 나오는데…….’

윤혁이 던전 안에서 헌터를 죽여 흡수하는 동안, 은석은 미술관 안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으로 엉망이 되었던 미술관은 정리를 마친 후 다시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어오긴 전,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화가 이중우 특별전 COMING SOON> ‘은희 누나 선배라는 그 사람이 이중우였지? 오른팔이 잘렸는데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가?’

은석은 제1전시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난번, 마법사 망자가 사라진 그곳이었다.

‘역시 저기 있군.’

[망자 박가(家), 29세, A급 헌터, 마법사(유니크)]

[딱 한 번……. 딱 한 번만 마음껏 그려 봤으면…….]

이전보다 많이 회복된 듯 그의 인영이 조금 더 선명해 보였다.

바닥에 앉아 멍하니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망자 박가(家).

은석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네가 미술관 유령 맞지?”

갑자기 나타난 은석에게 놀란 망자가 사라지려고 하자, 그는 보호막을 둘러 망자를 안에 가뒀다.

하지만 망자는 제 발아래에 마법진을 만들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망자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한 은석이 헛웃음을 뱉었다.

“허! 죽은 놈이 텔레포트를 사용해?”

망자의 상태창에 나타난 유니크라는 말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리자드맨이 시민들을 습격할 때 갑자기 외부로 떨어져 죽은 이유 역시 그의 텔레포트 마법진 덕분이었다.

“아, 탐나는 인재네.”

은석이 씨익 웃으며 맵을 불러냈다.

미술관 지박령답게 그는 여전히 미술관 안에 있었다.

“겨우 도망간 게 옆 전시실이냐.”

리자드맨의 공격으로 소멸 직전이었던 망자. 은석의 생력 덕분에 겨우 마법진 하나를 그릴 수 있었다.

다시 마력을 사용한 탓에 힘이 다한 듯 망자 박가(家)는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그의 앞에 은석이 다시 나타나자,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봐, 왜 자꾸 도망가는 거야? 내가 죽이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 좀 하자니까?”

은석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망자 박가(家)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 * *

“팀장! 왜 이래?”

누군가의 비명에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들 앞에는 던전의 몬스터보다 더 괴이한 모습으로 변한 팀장이 서 있었다.

“꺄아악!”

처음에는 영화 속 좀비 같다고 생각했지만, 번뜩이는 안광과 마주하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며 근처에 서 있던 여자 헌터를 향해 달려갔다.

누군가 그녀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드러낸 이빨에 목을 물어뜯겼을 것이다.

“죽여! 죽여야 해!”

“야! 어떻게 팀장을 죽이라는 거야!!”

그때였다.

궁수인 팀장이 자신의 스킬을 사용해 팀원들을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을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화살받이가 된 동료들이 눈앞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혼자 남은 그는 전투계가 아니었기에 날아오는 화살 전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도망, 도망가야 해……!’

팀장이 괴성을 지르며 다시 한번 더 화살을 날리자, 그는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그 안에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세 발의 화살이 그의 목과 심장을 관통했다.

마법진에 닿은 발을 통해 화살을 맞는 순간 육체를 빠져나온 영혼만 미술관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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