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김은희는 백재현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던전 폭발로 사람이 죽었는데 저 사람은 뭐가 저렇게 즐거워서 히죽거리는 거야?’
인상을 쓰고 있는 김은희를 발견한 백재현. 한눈에 그녀가 은석의 가족임을 알아차렸다.
‘누나군.’
백재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혹시 김은석 헌터님의 동생분 되십니까?”
어느새 안정을 찾은 김은희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한쪽 입술을 삐뚤게 치켜올릴 뿐, 대답이 없었다.
당황한 백재현을 보며 은석이 픽 웃었다.
“누나입니다.”
“아, 누나셨구나. 와우! 엄청난 동안이셔서 저는 당연히 김은석 헌터님 동생인 줄 알았습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열에 여덟은 좋아했고, 둘은 억지 미소라도 지어 보였다.
‘애쓰십니다. 백재현 헌터님. 은영 누나라면 좋아했겠지만, 오늘은 상대가 틀렸어요. 상황도 좋지 않았고…….’
이중우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김은희.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그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김은희는 붙임성 있게 인사를 건네는 백재현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은석은 그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백재현은 냉랭한 김은희를 보며 생각했다.
‘김은석 헌터님의 시니컬함은 가족력이었어. 내가 귀찮았던 게 아니었어. 좋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스카우트할 수도 있겠군.’
“은석아, 치료가 다 된 거면 병원은 안 가는 거야?”
김은희의 질문에 백재현이 빠르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저희 한울 길드에서 특별히 에스코트해 드리겠습니다. 누워 계시는 이분도 가족이시죠? 그럼 당연히 병원에 가셔야지요.”
백재현이 옆에 서서 그들을 멀뚱히 바라보던 헌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의 신호를 알아챈 헌터가 이동 침대를 응급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도 검사받아야 해?”
“응, 병원에 가서 간단히 검사만 받으면 돼. 나도 가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은석이 김은희를 따라 응급차에 올랐다.
백재현도 같이 응급차에 오르려 했지만 은석은 그를 제지했다.
“팀장님은 여기 마무리하셔야죠. 굳이 따라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 하, 하지만…….”
어떻게 만난 은석인데 놓치고 싶지 않은 백재현이었다. 응급차 문을 닫기 위해 일어난 은석이 백재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전리품 정리, 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 계좌는 잘 아시죠? 언제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언제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듣고 싶은 대로 받아들인다.
백재현은 방긋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확실히 정리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쾅.
응급차 문이 닫히자 곧바로 출발했다. 멀어져 가는 응급차를 향해 백재현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꼭 연락 주셔야 합니다!!!”
* * *
응급차 안.
피로 얼룩진 옷과 달리 이중우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사라진 오른팔이 아니었다면 깊은 잠을 자는 사람 같았다.
“선배, 앞으로 어떡하지…….”
김은희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은석이라도 사라진 손을 다시 만들 순 없기에 침묵만 삼켰다.
따르릉-
적막했던 응급차 안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황희준이었다.
“형님! 지금 어디 십니까? 혹시 미술관이십니까?”
은석이 대답도 하기 전에 황희준이 다시 소리쳤다.
“형님, 지금 인터넷에 미술관 헌터라고 형님 얼굴이 막 올라오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내 이름이 올라온다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은석은 눈을 크게 떴다.
“잠시만, 확인 좀 해 보고.”
휴대폰 검색창을 열었다. 미술관이라고만 적었는데 연관 검색어가 주르륵 나타났다.
그중 가장 상위에 있는 것을 클릭하자, 개인 SNS로 연결되었다.
‘여긴 조금 전 그 도서관인데?’
이중우를 치료하고 도서관을 나가려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김은희가 고개를 내밀어 그의 휴대폰을 쳐다봤다.
“뭐야? 네 사진이 왜 있어?”
사진 아래에는 #미술관헌터 #우리의구원자 #존멋 #누나구하러온동생 등의 태그가 달려 있었다.
은석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났다.
“미친 것들 아니야? 그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살겠다고 서로를 밀치면서 구석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은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욕은 둘째 누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쌍둥이지만 성향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비슷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았다.
“야! 이거 어떻게 할 방법 없어? 이 미친 것들!!”
은석이 어깨를 들썩했다.
“이미 실검까지 올라갔으면 막을 방법이 없어.”
이미 사진은 여기저기 퍼 날랐을 테니까.
[수련미술관 던전 폭발! 혜성같이 나타나 시민들을 구한 헌터. 그는 누구인가?]
“휘유! 제목 한번 어마어마하네.”
김은희가 휴대폰을 낚아채 읽어 내려갔다. 기사를 보던 김은희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꼭 이렇게 과장되게 적어야 하는 거야? 부끄러워서 소름이 다 끼쳐…….”
은석이 황희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길드의 문자와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이상균의 전화번호도 액정 안에서 번쩍거렸다. 걸려 오는 전화를 모두 끊고 황희준과 다시 통화했다.
“기사 봤는데 엄청나더라. 이제 나 제대로 유명해지는 거냐?”
황희준의 예상과 달리 불편해하지 않는 은석의 반응.
“형님, 축하드립니다. 형님의 외모에 그 실력이면 곧…….”
“됐고.”
“넵!”
“휴대폰 배터리도 다 됐고, 지금 여기저기서 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 집에 전화 드려야 하는데 그전에 끊어질 것 같아.”
“아!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다.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 성신 병원으로 간다고 전해 줘.”
“당장 전화 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황희준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린 듯 휴대폰이 전원이 꺼졌다.
* * *
이중우와 김은희가 검사실로 들어갔다. 은석은 병원 복도에 앉아, 검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은석을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맞지? 미술관 헌터.”
“어. 그런 거 같은데. 어머, 사진보다 더 잘생겼다. 얘.”
“그렇지? 무서워하는 누나 토닥이는 사진 봤어? 헌터가 스윗하기까지 하면 반칙 아냐?”
은석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예전에는 인기 있는 헌터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는데, 막상 관심 받고 보니 좀 쑥스럽네.’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한 은석이었다.
“은석아!”
다급하게 걸어오는 엄마와 둘째 누나가 보였다.
“괜찮은 거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누나도 다치지 않았고요.”
“그래, 전화해 주신 분이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그때 검사를 마친 김은희가 엄마와 김은영을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복도 한가운데 서서 서로 안고 대성통곡하는 모녀의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은석이 팔을 둘러 그녀들을 감싸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울면서도 은석이 미는 대로 걸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곧 담당 의사가 들어왔다.
“선생님,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넘어지면서 인대가 살짝 늘어나긴 했지만 입원할 정도는 아니고. 원하시면 바로 퇴원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김은희가 급하게 물었다.
“저기, 이중우 씨 상태는 어떤가요? 저희와 함께 병원에 오신 분요.”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다른 차트를 의사에게 건넸다. 잠시 살펴보던 의사가 말을 이었다.
“피를 많이 흘려 쇼크가 왔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팔이 잘렸는데도 치료가 아주 잘 되어서 추가 수술도 필요 없어 보이고요.”
의사의 말에 김은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지금 가서 만나도 되나요?”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검사받는 도중에 깨어나셨는데, 팔을 보고 잠시 발작을 일으키셨습니다. 수면제를 투여했기 때문에 아마 내일 아침은 돼야 일어나실 겁니다.”
“그렇군요…….”
의사가 나가자, 엄마는 퇴원을 서둘렀다.
“가자. 괜찮다는데 집에 가서 쉬는 게 더 편하지.”
“선배 한번 보고 가고 싶은데…….”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옆에서 김은영이 옷을 꺼내 들었다.
“내일 아침까지 잔다며? 내일 다시 오면 되잖아. 빨리 옷 갈아입어. 집에 가자.”
김은희는 퇴원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와 김은영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섰다.
은석은 아무 말 없이 그녀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던전 정리가 끝났는지 병원 문을 밀며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백재현이 보였다.
‘하이드.’
자신과 엄마, 누나들을 은신 보호막으로 감쌌다.
그들의 옆을 지나쳐 달려가는 백재현의 손에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열심히 하셔서 이제는 좀 미안하네.’
그래도 한울 길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은석이었다.
* * *
“네가 왜 여기 있어?”
집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이는 황희준이었다.
“형님, 기다렸습니다.”
“인마, 내가 오늘 안 들어왔으면 어떡하려고 무작정 기다리는 거야?”
“헤헤, 그럼 차에서 자면서 기다리면 되지요.”
은석이 황희준의 뒤통수를 툭 치자, 그는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엄마, 아는 동생이 왔는데 저녁 먹고 올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자. 집에 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먹어.”
“괜찮아요. 요 앞에 가면 식당도 많고…….”
“감사합니다, 어머님!”
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희준이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아유, 무슨 인사를.”
넉살 좋은 황희준은 은석의 엄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형님의 거실이군요.”
“아니, 아버지 거실인데.”
“그렇군요. 여기가 형님 아버님의 거실이군요.”
황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을 둘러봤다. 그 모습에 은석이 고개를 저었다.
지친 김은희를 침대에 눕히기 위해 세 모녀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 형님! 고양이도 키우십니까?”
황희준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청안의 곁으로 다가갔다.
“야! 야! 조심해라. 그거 몬스터보다 무서운 놈이야. 특히 남자를 싫어한다.”
“에이, 무서워 봤자 고양이지요. 제가 또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뱃살을 요렇게 문질러 주면…….”
황희준이 청안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청안의 입이 머리 뒤쪽까지 주욱 찢어져 크게 벌어졌다.
그 모습에 놀란 황희준은 손을 앞으로 내민 채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청안은 찢어진 입으로 그의 손을 덥석 물어 버렸다.
“으악! 형님!!”
눈 깜짝할 사이에 괴상하게 변한 청안의 모습. 황희준이 기겁을 하고 은석을 불렀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김은영이 방에서 나오자, 찢어진 입으로 손을 물고 있던 청안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김은영이 다가와 청안을 번쩍 안아 들고 볼을 비볐다.
여전히 놀란 황희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헛것이라도 봤냐. 정신 차려. 방으로 들어가자.”
“어, 어. 네…….”
얼이 빠진 것 같은 황희준을 당겨 방으로 들어갔다.
“오! 여기가 형님 아버님 집에서의 형님 방이군요!!”
“뭔 소리야. 그만 서성대고 앉아.”
은석이 그를 향해 의자를 내밀었다.
“도대체 왜 온 거야? 이야기는 전화로 다 한 거 아니었어?”
황희준이 매고 있던 백팩을 열어 클리어 파일 하나를 꺼내 은석에게 건넸다.
“알아보시라고 한 윤혁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때 저녁을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석이 파일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일어났다.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하자.”
황희준은 밥을 먹는 내내 계속 청안을 힐끗거렸다. 청안은 소파 팔걸이에 앉아 그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식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잠깐씩 황희준과 눈이 마주칠 때만 입을 쫘악 찢어 보였다.
“히익!”
황희준이 얼른 눈을 내리깔자, 청안은 기분 좋은 듯 그르렁거렸다. 보다 못한 은석이 숟가락으로 청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소파에 있지 말고 캣 타워에 들어가 있어!”
청안은 기분 나쁘다는 듯 이빨을 드러내더니 은석의 말대로 캣 타워로 올라갔다.
“형님, 저 고양이가 사람 말귀를 알아듣나요?”
“우리 파돌이가 얼마나 똑똑한데요.”
황희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파독? 아! 파독 광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풉!”
은석이 큰 소리로 웃자, 김은영은 뽀로통하게 황희준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