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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45화 (45/226)

45화

천막을 둘러서 만든 현기주의 치료실 안은 신음으로 가득했다.

삼각 코뿔소 두 마리의 위력은 대단했다. 다친 사람과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들어온 용병들이 뒤엉켜 있었다.

혼란스러운 치료실 안에 서 있는 현기주의 얼굴에서 온화한 미소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헌터님! 저 좀 치료해 주십시오!”

“너무 아픕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저부터 치료해 주세요. 빨리!!”

언제나 그렇듯 그의 힐을 간절히 원하는 용병들.

하지만 현기주의 모습이 어제와 달랐다.

치료할 생각이 없는 듯 가만히 서서 손을 내미는 용병들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다친 사람들을 옮기던 용병이 현기주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잠시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오늘 다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회복 포션을 좀 챙겨 왔는데 도와드릴까요?”

현기주는 용병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들릴 듯 말 듯 혀를 찼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욱 헌터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정욱 헌터님.”

“네.”

정욱이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 치료실 안에 쓸데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치료받을 분들만 남고 모두 나가라고 해 주십시오.”

늘 부드럽고 온화하던 현기주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욱에게만 하는 말 같았지만, 눈치챈 용병이 하나둘씩 천막을 나가기 시작했다.

치료실에서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갈 때쯤, 은석이 도착했다.

“하이드.”

몸을 숨긴 채 치료실 입구를 향해 질주했다.

마지막 용병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 치료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섰다.

“밖에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아.”

사람들이 사라지자 소름 끼칠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현기주의 목소리.

정욱이 식은땀을 흘리며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워서 서로 힐을 달라며 아우성치던 용병들이 달라진 현기주의 모습에 눈치만 살폈다.

조금 전까지 아프다며 온몸을 비틀던 자들이 어느새 반듯하게 누워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서 화가 많이 났군.’

은석이 입꼬리를 올렸다.

현기주가 치료실 중앙에 섰다. 양손을 아래로 내리며 두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뿜어낸다고?’

은석에게만 보이는 악귀의 연기가 손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막 안이 순식간에 거무튀튀한 연기로 가득 찼다.

은석은 환각에 대한 방어력도 있었고, 쉴드까지 친 상태였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순식간에 깔리는 연기에 저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섰다.

환각을 일으키는 악귀의 연기라고 해도 힐러인 현기주의 손에서 나온 영향인지, 잠이 든 용병들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인상을 쓰며 괴로워하는 용병들.

‘그동안 이런 식이었다는 거지?’

그때, 현기주의 입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현기주, 어제 제대로 힐을 넣은 게 맞느냐?”

“맞다니까 몇 번을 말해, 악마 새끼야! 너도 안에서 봤잖아. 네가 제대로 못 처먹은 걸 왜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전혀 다른 두 개의 목소리.

은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희뿌연 연기 사이를 집중해서 쳐다봤다.

짙은 연기에 가려 현기주의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저건?’

은석의 눈에 현기주 외에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또 다른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들어가길 반복하고 있었다.

“현기주, 오늘은 제대로 해라. 내가 정기를 흡수하지 못하면 네놈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거다.”

달라지는 목소리에 따라 현기주와 악귀의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악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은석이 정보탐색 스킬을 발동했다.

[중급 악귀 김헌, 묘귀를 다루는 주술사, 정기 흡수.]

[‘빨리 더 많이, 살아 있는 자의 생명력을!’]

‘저놈이 현기주가 넣은 힐을 통해 정기를 빨아 먹는군.’

상대방의 몸 안에 연기로 된 독을 흘려 넣어 정기를 빼앗아 먹는 악귀 김헌.

사람들은 기분 나쁜 꿈을 꾼다고 생각할 것이다.

매일 밤 계속되는 악몽.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생명력을 빼앗기고 있었다.

‘어제는 내가 다 치료해서 못 들어간 거였고. 그래서 아침부터 현기주 표정이 좋지 않았었군.’

은석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빙의가 아니라 악귀와 육체를 공유하고 있는 건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거지?’

악귀와 육체를 함께 쓰는 것은 아주 위험했다.

빙의는 악귀가 산 자를 굴복시켜 억지로 몸을 빼앗는 것.

하지만 육체 공유는 산 자의 허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였다.

이 상태에선 악귀를 퇴치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악귀의 힘이 강해질 경우, 영혼마저 빼앗겨 악귀의 일부가 될 가능성도 컸다.

“네놈이 윤지은을 죽이지 못했다고 나까지 정기를 못 먹게 하는 건 아니겠지?”

“닥쳐라. 더러운 주술사 놈아. 능력 없는 네놈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전부 내 덕이라는 걸 몰라? 내가 아니었으면 넌 벌써 뒈졌어.”

빠르게 얼굴이 바뀌는 현기주를 보고 있으려니 마치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은석이 저승 훈련장에 있는 창왕에게 말을 걸었다.

‘창왕, 들려?’

‘네, 대장. 들립니다.’

‘현기주 몸에 들어 있다던 악귀의 특징이 뭐라고 했지?’

‘오른쪽 귓불이 너덜거립니다. 몸이 투명하게 보이고요.’

은석이 천천히 걸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현기주가 소리를 질렀고, 순간 화가 난 악귀 김헌의 몸 대부분이 빠져나왔다.

다시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오른쪽 귀를 쳐다봤다.

‘네가 찾는 놈을 찾은 것 같다.’

‘대장, 저를 불러 주십시오. 제가 나가서 죽이겠습니다.’

‘그건 안 되지.’

‘왜 안 됩니까?’

‘천상의 힐러인 현기주를 죽일 순 없잖아.’

이곳은 현기주의 레이드고, 그는 모두에게 칭송받는 최고의 힐러였다.

악귀에게 빙의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그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창왕, 넌 무슨 이유로 저놈한테 죽은 거냐?’

* * *

“성찬 형님, 저 이번에 천상의 힐러님과 레이드를 뛰게 되었습니다.”

이주승은 유성찬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운동한 후배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각성했지만, 유성찬과 달리 아직 길드에 소속되지는 못했다.

용병으로만 생활하고 있는 그가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 현기주 헌터의 레이드는 대기 중인 용병이 항상 많다고 들었는데. 잘됐다.”

“엄청 기대됩니다. 저 같은 용병이 언제 S급 헌터와 던전에 들어가 보겠습니까. 힐러라 다치는 거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말입니다. 형님.”

불안정하고 위험한 용병 생활을 이어 온 후배.

그런데도 늘 유쾌함을 잃지 않는 낙천적인 놈이었다.

며칠 후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형님, 던전 클리어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이번 던전은 좀 피곤하네요.]

그 문자가 끝이었다.

길어도 3, 4일에 한 번씩 연락을 주던 후배였는데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후배가 걱정되는 유성찬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 보고 싶었지만 던전 공략 때문에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 드디어 후배의 집을 찾아갔다.

한참 동안 벨을 누르고 현관문에 귀도 대 보았지만, 집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질 않았다.

“어딜 간 건가?”

돌아서려는 순간, 현관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주승아, 왜 이렇게 연락이…….”

후배의 얼굴을 본 유성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운동을 오래 한 후배는 적당한 잔근육과 살집이 보기 좋았던 이십 대 후반의 훈남이었다.

“이주승. 너 얼굴이 왜 이래? 어디 아파!?”

유성찬이 알고 있는 후배의 얼굴이 아니었다.

“형님,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각혈할 것처럼 심하게 쿨럭거렸다.

시커멓게 변한 얼굴은 마치 큰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살도 너무 빠져서 도저히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승아, 어디가 아픈 거야? 병원은 가 봤어?”

“네, 병원도 가고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네요.”

“뭐? 얼굴이 이렇게 상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거실에 들어선 유성찬은 한 번 더 놀랐다.

집 안에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싱크대 안은 깨끗했고 음식을 먹은 흔적도 없었다. 냉장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도대체 이 썩은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성찬이 킁킁거리며 걸어가다 멈춰 서 있는 후배의 등에 부딪혔다.

“윽!”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그것은 후배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곧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걸어간 후배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당장 일어나라. 병원 가자.”

그의 말에 언제나 방긋 웃으며 대답하던 놈이, 성가시다는 듯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겼다.

“형님, 모든 게 너무 귀찮습니다. 피곤하고 피곤합니다. 그냥 이대로 누워만 있고 싶어요.”

천장을 바라보는 후배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형님,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똑같은 꿈을 꿉니다. 정신과 상담도 받고 약도 먹어 봤는데 효과가 없어요.”

긴 호흡에 숨이 찬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어떤 꿈인데.”

“잠이 들면 온통 회색인 공간에 서 있어요. 잠시 후에 어김없이 그놈이 나타나고요.”

“그놈?”

“낡아서 너덜거리는 두루마기를 입고 있어요. 양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낫을 들고 있는데, 그걸로 제 목을 그어요. 그었는데……. 저는 죽지 않아요. 이상하죠? 그러면 또다시 목을 긋고, 역시 죽지는 않아요.”

“악몽을 꾸는구나.”

“악몽? 그걸 악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 목이 낫에 베이는 느낌이 생생한걸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주승아, 지금 빨리 병원에 가자.”

갑자기 후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더니 유성찬을 가까이 불렀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님, 사실 그건 악몽이 아니에요. 저는 느낄 수 있어요. 그놈 낫에 제 목이 한 번씩 떨어질 때마다 제 생명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거든요.”

유성찬이 눈을 크게 뜨고 후배를 쳐다봤다.

“믿지 않으시겠죠. 그럴 거예요. 당하는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니까요.”

“주승아, 언제부터 그런 꿈을 꾼 거지?”

후배가 눈동자를 천천히 돌렸다.

“던전 안에서도 비슷한 꿈을 꾸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고, 본격적으로 놈이 나온 건 던전을 나오고 난 후부터인 것 같아요.”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아뇨.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심하게 다쳐서 천상의 힐러님 치료를 받은 것밖에 특별한 건 없었어요. 그분 치료가 아니었음 후유증이 남았을 거예요. 아주 고마우신 분이에요.”

후배는 그 말을 끝으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말처럼 악몽을 꾸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성찬은 그길로 후배가 들어간 레이드의 용병 명단을 구했다.

명단 속 용병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이 되지 않으면 직접 찾아다녔다.

대부분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후배처럼 악몽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신 병원에 입원하거나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헌터들을 찾아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던전에서 현기주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다시 후배의 집을 찾았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후배의 이름을 부르며 침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으윽!”

더욱 지독해진 썩은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주, 주승아!”

후배는 며칠 전 그 모습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무언가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채 죽어 있는 후배.

“대체 왜 이런 일이…….”

밖은 30도가 훌쩍 넘는 더운 여름이었다. 하지만 후배의 집 안은 서늘하다 못해 냉기가 흘렀다.

에어컨을 살펴봤지만 코드도 꽂혀 있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전해 들은 후배의 사망 원인은, 원인 불명이었다.

“이 기괴한 죽음의 원인은 현기주일 것이다. 그놈을 잡아야 해. 무슨 이유로 주승이가 그렇게 억울하게 죽게 되었는지 내가 알아내겠어.”

유성찬은 그때부터 현기주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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