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은석 군, 앞으로 용병으로 레이드 뛰고 싶은 곳이 있거나, 혹시…….”
잠시 말을 멈추는 이상균.
“인스턴트 던전도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은석 군처럼 뛰어난 헌터에게는 기회가 많을수록 나라에 도움이 되는 거지요.”
‘나라는 무슨. 네놈들의 든든한 돈줄이 되니까 좋은 거겠지.’
황희준이 있어서 이제 이상균과 정종렬은 필요가 없어졌다.
그의 말대로 길드에서 자신을 찾는다고 하니,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용병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연락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백재현 팀장도 있었다.
‘아직 빼먹을 게 있으려나……. 조금 더 놔둬 볼까?’
“은석 군? 은석 군?”
늘 먼저 전화 끊기에 바빴던 이상균이 은석을 다급히 불렀다.
“이상균 부장님과 일을 계속하려면…….”
눈치 빠른 이상균이 빠르게 대답했다.
“내가 잘 막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헌터의 귀중한 개인 정보를 함부로 알려 주면 안 되지요.”
“역시 이 부장님이십니다.”
“은석 군, 우리 밥이나 한번 먹읍시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은 은석.
잠시 후 기다렸다는 듯 어김없이 백재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단도직입적으로 길드에 들어오라거나,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는 문자까지.
“참, 이 사람도 끈질겨.”
* * *
다음 날, 은석은 황희준을 고깃집으로 불러냈다.
“형님과 이렇게 밥을 먹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황희준이 불판에서 익고 있는 삼겹살을 뒤집었다.
“내가 이것저것 부탁만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닙니다, 형님. 형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이런 밥이 아니라도 저는 형님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밥은 네가 사라. 생명의 은인한테.”
들고 있던 집게를 툭 떨어뜨리는 황희준.
은석이 픽 웃었다.
“인마. 내가 먹자고 불렀는데 설마 너보고 돈을 내라고 하겠냐?”
“아닙니다, 형님. 역시 제가 사야…….”
“고기나 구워라.”
“넵.”
황희준이 잘 구워 놓은 고기를 쌈에 올려 한입에 넣었다.
“요즘 헌터들 사이에서 형님 이름이 많이 오르내립니다.”
“어, 알고 있어.”
“알고 계셨습니까?”
“누가 그러더라고. 내가 요즘 베일에 싸인 라이징 스타라고.”
황희준이 은석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래서 말인데, 형님. 혹시 저와 인터뷰 한 번…….”
“밥이나 먹자. 희준아.”
“넵.”
불판을 갈고 다시 열심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스턴트 던전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거냐?”
“맞습니다. 형님.”
“가격은 어떻게 책정되는 거지?”
“인스턴트 던전이 많이 나오면 가격이 내려가고, 요즘처럼 없을 때는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갑니다.”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르는데도?”
“그게, 럭키 박스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번 좀비 고블린처럼 꽝도 있지만 엄청난 아이템이나 몬스터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스트 던전 예고한 다음에 올라오는 인스턴트 던전은 없고?”
“네, 형님. 그렇지 않아도 레이드 모집을 하지 않아 헌터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대부분 돈이 필요한 용병이라.”
“너도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잡아 봐야 실력이 빨리 늘 텐데…….”
은석이 콜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황희준이 감격한 듯 바라봤다.
“형님, 저를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다니! 정말 형님은 제게 귀인이십니다.”
‘네가 빨리 마나석 빼는 방법을 익혀야 내가 편하거든. 사냥하고 마나석까지 빼내려니 번거로워 죽겠다.’
황희준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건넸다.
“희준아, 여기 맛집이네. 많이 먹어.”
식사를 마친 후, 황희준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정지 신호에 멈춰 있는데,
퍼엉! 펑!
갑자기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소리에 이어 땅이 진동하고 폭발음에 머리가 징 울렸다.
거리로 뛰어나온 사람들이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석과 황희준도 급하게 차에서 나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쪽을 바라봤다.
“뭐야? 가스 폭발이라도 난 거야?”
휴대폰에서 경고 문자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형님,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가디언 길드에서 공략에 들어간 던전인데, 실패했나 봅니다.”
은석은 황희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하늘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승차사가 저렇게나 많이 간다는 뜻은…….’
은석의 눈에 수십의 저승차사가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많이 죽었나 보군.”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저기가 나름 이 동네에서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 던전 때문에 통제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그리고 가디언 길드는 중급 길드라 설마 던전 브레이크가 날 꺼라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던전 브레이크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도 함께 폭발한다.
중급 길드가 들어갔다면 최소 C-랭크 정도의 던전은 아닐까.
‘마력에 이끌린 놈들도 곧 모여들겠군.’
“가자.”
“네?”
“우리도 명색이 헌터 자격증 있는 놈인데 가서 시민들을 구해야지.”
“형님, 저는 지금 강화복도 없고 무기도 없는데요.”
은석이 아공간에서 이승원 팀장이 준 조끼형 강화복과 검 하나를 꺼냈다.
“이거 입어라. 단도가 편하다고 했으니 이 정도 검이면 괜찮겠지?”
“형님은 어떤 인벤토리를 사용하시길래…….”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지만 흔하지 않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아티팩트, 인벤토리.
높은 가격의 인벤토리라도 고작 포션 몇 병이나 무기 몇 개 정도만 보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은석의 아공간은 그가 알고 있는 인벤토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형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저런 아티팩트를 사용하시는 거지?’
은석도 자신의 귀검을 꺼내 들었다.
‘저렇게 레벨 올리라고 밥상을 차려 주는데 그냥 지나치면 안 되지.’
은석과 황희준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곳을 향해 뛰어갔다.
“해머, 나와라.”
해머가 은석의 옆에 나타났다.
“너는 게이트 앞에 모여 있는 귀물들을 소멸시켜라. 인간에게 빙의하려는 악귀 놈도 있을 것이니, 그런 놈부터 보이는 족족 터트려 버려.”
“네, 대장.”
“내가 전갈이랑 개미 몇 마리 잡아 왔는데, 필요하면 말해.”
해머가 씩 웃어 보였다.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해머가 빠르게 날아갔다.
“형님! 같이 가요. 너무 빠르십니다.”
황희준이 은석의 뒤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뛰어오고 있었다.
브레이크가 일어난 던전 게이트는 고층 건물 사이에 길게 찢어진 듯한 형태였다.
그 안에서 뱀형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헌터들이 던전을 빠져나오는 몬스터를 빠르게 죽여 갔다.
경찰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부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출입 금지선 앞에서 멈춰 선 은석과 황희준.
저승차사들이 곳곳에서 망자들을 데리고 사라지고 있는 게 보였다.
은석의 예상대로 귀물과 원귀가 마력이 흘러나오는 게이트를 향하고 있었다.
마력을 흡수해 강해지면 빙의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때를 노린 악귀들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경찰에게 출입을 저지당한 은석과 달리 해머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하급 악귀들을 소멸시켰다.
첫 폭발로 인해 다수의 일반 사망자들이 나왔지만, 이후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길드라 그런지 대처가 빠릅니다. 형님.”
가디언 길드 헌터 주변에 뱀 사체가 빠르게 쌓여 갔다.
“저 정도로 죽일 수 있으면 던전 안에서 클리어를 해야지.”
도망가지 않은 시민들이 가디언 길드의 전투 장면을 지켜봤다.
대부분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클리어를 실패한 길드는 비난받아 마땅했다.
무고한 일반 시민들이 죽었고 구경하고 있는 그들 역시 몬스터에게 죽을 뻔 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벌써 잊은 듯 가디언 길드의 싸움에 환호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마지막으로 던전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구렁이가 두 동강 나자, 건물 사이에 열렸던 던전 입구가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디언 길드 헌터들이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무슨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짓들이야.’
은석은 클리어 실패로 많은 피해를 입혔음에도 뻔뻔한 그들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이상한 장면이 은석의 눈에 띄었다.
‘저 새끼 뭐야.’
몬스터 사체 주변에 수많은 하급 귀물이 맴돌고 있었다.
하급 귀물을 창으로 찌르고 있는 한 남자.
물론, 영혼 상태의 그가 찌르는 창은 귀물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찌고 베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놈도 자신이 죽은 걸 모르는 거야?’
남자는 길고,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창으로 의미 없는 공격을 계속했다.
“대장, 저기.”
어느새 옆에 다가온 해머가 한곳을 가리켰다.
검붉은 연기에 휩싸인 악귀가 몬스터의 사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곧 몬스터의 사체가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해머, 준비해.”
사체 옆에 서 있던 가디언 길드 헌터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꺄악! 저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디언 길드에서 화려한 공략으로 두 동강 낸 던전 보스, 거대 구렁이가 다시 눈을 떴다.
크에엑-
2미터가 넘는 긴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했다.
[하급 악귀 망자 유가(家), 교통사고 화재로 사망]
[‘여기 있는 인간들을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정보 탐색 레벨이 올라간 덕분에 현재 망자의 생각을 짧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구렁이에게 빙의한 악귀가 사람들을 향해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꺄아악!”
다시 살아나고 있는 구렁이를 보며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에 가디언 길드 헌터들도 당황했다.
하지만 괴성만 내지를 뿐 아직까지 움직이지는 못했다.
몸통의 반이 잘린 뱀은 대가리만 꼿꼿이 세운 채였다.
“야! 죽은 거 확인했어?”
“게이트가 닫혔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죽었으니 닫힌 거잖아요.”
“보십시오. 분명히 잘렸습니다. 움직이지는 못하는 거 같습니다.”
아가리를 한껏 벌린 구렁이가 근처에 쌓여 있던 다른 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없어진 꼬리를 만들려는 속셈인가.’
은석의 예상대로였다.
먹어 치운 뱀의 사체가 뭉쳐져 잘린 몸통 아래를 비집고 나왔다.
기괴한 장면을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이 구역질을 했다.
“공격!”
가디언 길드 헌터들이 꼬리를 만들고 있는 구렁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쌍검을 들고 있는 헌터가 구렁이의 몸통을 칼로 내려쳤다.
내장이 보일 정도로 베어져 벌어진 몸통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잘려서 너덜거리던 힘줄 사이를 다른 뱀의 껍질이 메꿔 버렸다.
“이 괴물은 도대체 뭐야!”
재생 능력을 가진 몬스터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들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재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워진 곳을 다른 뱀의 사체로 메꾸며 구렁이는 점점 더 커졌다.
시민들 대부분은 도망갔다.
호기심이 넘치는 몇 명만 남아 여전히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실시간 스트리밍을 진행 중이었다.
가디언 길드 헌터는 포기하지 않고 공격을 계속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다친 헌터들이 늘어났고, 거대해진 구렁이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듯 보였다.
출입을 통제하던 경찰들도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저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는다.’
은석이 해머와 함께 구렁이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형님!”
그 뒤를 황희준이 따랐다.
은석은 가디언 길드 헌터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 순식간에 구렁이 앞에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놀란 가디언 길드.
“저 새끼, 누구야!!”
“끌어내.”
“야! 너 뭐야? 빨리 안 나와! 죽고 싶어!?”
윽박에도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은석을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
화아악-
귀검에 푸른 화염이 입혀졌다.
[귀검의 전투력이 상승하였습니다.]
귀검을 들어 구렁이 몸통 옆에 찔러 넣었다.
마법의 불꽃이 구렁이의 몸통에 불을 붙였다. 타는 냄새도, 연기도 없었다.
타들어 가는 사체를 보지 못했다면 불이 붙었다는 것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은석이 꽂은 검을 그대로 그으며 꼬리까지 내달렸다.
툭-
사체를 삼켜서 만든 몸통 아래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구렁이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내가 다 태워 버렸는데 이제 먹을 게 없어서 어쩌나.”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귀를 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그것은 몬스터가 아니라 원한에 휩싸인 악귀의 발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