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4화 (24/226)

24화

“어차피 여기서 다친 것은 금방 회복된다. 청안이 놈에게 들으니 도적 팔귀의 재생 능력까지 흡수했다던데.”

“네.”

“그럼 더욱 훈련하기에 좋은 상태겠구나. 팔다리 몇 번 뜯긴다고 죽을 염려도 없고.”

은석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팔다리가 뜯길 일이 있을까요?”

은석의 말에 최 차사가 껄껄 웃었다.

인간 냄새에 눈이 먼 승냥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천천히 다가왔다.

“악귀 놈아, 오랜만에 산 자의 냄새를 맡으니 미치겠지. 어디 한번 실컷 뜯어 먹어 보아라.”

최 차사의 허락을 기다렸는지 그의 말이 끝나자 승냥이가 은석을 향해 뛰어올랐다.

“내가 먼저 간다. 넌 기다려.”

은석의 명령에 해머가 뒤로 물러섰다.

은석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승냥이의 주둥이를 내려쳤다.

빠각-

턱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승냥이의 아래턱이 덜렁거렸다.

금세 부서진 턱이 회복된 승냥이가 진짜 짐승처럼 하울링을 했다.

은석이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냈다. 귀검을 본 승냥이가 잠시 주춤했지만, 곧 그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촤악-

정확하게 승냥이의 목을 베었다.

붉은 피 대신에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악귀가 사라졌다.

[귀력이 증가하였습니다. 저승에서는 귀력 증가에 제한이 있습니다]

“저승에서만 죽치고 있지 말라는 거군. 그럼 귀속령으로는 만들 수 있어?”

[지옥에 있는 영혼은 귀속할 수 없습니다]

“아쉽네. 싸울 때 써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검신에 붙어 있는 악귀의 연기를 털어 냈다.

“멋진 검이구나.”

최 차사가 은석의 검을 보며 감탄했다.

“고블린 주술사 던전을 클리어하고 구한 검입니다.”

“음, 영혼을 베는 검이라. 네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검이군.”

은석이 아공간으로 검을 다시 넣었다.

“훈련을 벌써 끝낼 것이냐.”

“팔다리 하나쯤 뜯기려면 칼이 없어야지요. 해머, 너도 무기 쓰지 마. 오늘은 주먹으로 싸운다.”

최 차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승냥이 악귀를 다시 불러냈다. 이번에는 다섯 마리였다.

은석이 주먹을 쥐며 복싱 자세를 취했다.

“해머, 내가 세 마리, 네가 두 마리다.”

해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인트 좀 쌓아 볼까.”

은석과 해머가 침을 흘리며 달려오는 승냥이 떼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들을 보며 최 차사가 팔짱을 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실컷 싸워 보아라. 지옥에는 항상 악귀가 넘쳐나니까.”

“재생 능력이 기대 이상인데.”

막 승냥이에게 물어뜯긴 왼쪽 팔에서 새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상처가 회복된 후 은석은 훈련장을 나와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콜라 하나를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캬아! 시원하다.”

“은돌, 변태 고려 무사 놈이랑 무슨 훈련을 그렇게 오래 하는 것이냐?”

“고려 무사?”

“그래, 최 차사 놈 말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너도 이제 훈련 변태가 되어 가는 것이냐.”

거실 소파에 털썩 앉는 은석.

청안이 그의 옆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너 왜 날 은돌이라고 불러. 죽을래?”

“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사들이 너를 그렇게 부르던데.”

“부르는 거야 네 마음대로지만, 밥값은 해야 되는 거 알지? 내가 없는 동안 잡귀들 얼씬 못 하게 해라.”

청안이 픽 코웃음을 쳤다.

“내가 누군 줄 모르느냐. 이 몸은 지옥 제1감옥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아, 깜빡했었네. 여기 살던 고양이인 줄.”

콜라를 다 마신 은석이 일어서자, 청안이 발톱을 꺼내 그의 바지를 꽉 눌렀다.

“뭐야. 왜 이래. 구멍 나잖아.”

“어딜 가는 것이냐.”

“체육관 갈 건데.”

“금방 훈련을 마치고 왔으면서 또 체육관을 간단 말이냐.”

“왜? 뭐 때문에?”

은석이 청안의 발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이 몸이 심심하다. 날 모시는 인간들이 모두 나가 버렸다.”

은석이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심심하신 손님, 저승으로 가시는 지름길은 저쪽입니다.”

청안이 벌떡 일어나 햇살이 잘 비치는 창가로 가서 벌러덩 누웠다.

띵동-

백재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김은석 헌터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동하기 불편하시면 제가 모시러 갈까요?]

[괜찮습니다, 팀장님. 그럼 게이트 앞에서 뵙겠습니다.]

* * *

“곧 던전에 들어가겠습니다. 헌터님들 모두 준비하십시오.”

성성이 던전에서 한울 길드 헌터들이 몰살당했다. 잃은 만큼 헌터를 모집해야 하는 상황.

피해자 대부분 활동이 왕성했던 헌터였기에 신입보다는 바로 전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원한 한울 길드.

그들이 결정한 것은 용병으로 활동 중인 헌터 중에 모집하는 것이었다.

레이드를 통해 실력을 확인한 용병들을 스카우트한다는, 면접을 겸한 던전 공략.

신입부터 교육하는 길드 시스템에서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경력 있는 용병들이 던전 앞에 잔뜩 모여 있었다.

그 옆에는 한울 길드 헌터들이 감독관 겸 인솔자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테스트를 위한 것이라 던전 랭크는 낮았고 다들 여유로워 보였다.

“어이! 동생.”

그들과 조금 떨어져 서 있던 은석에게 조민우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마음껏 즐거워해라. 오늘이 네 마지막 던전이 될 테니까.’

은석이 조민우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깍듯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조민우 헌터님.”

우연히 만나 술 한 번 마셨을 뿐인데 조민우는 은석이 꽤 마음에 들었다.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그래, 은석 동생. 그동안 잘 지냈고? 오늘 면접 보러 온 거야?”

“아닙니다. 백재현 팀장님이 배려해 주셔서 일반 용병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들어 보니 F급에 힐러라면서?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없으면 용병으로 들어가기도 힘들지. 짐꾼이라면 모를까.”

은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요. 팀장님께 감사하지요.”

조민우가 은석의 어깨를 툭 쳤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누구의 도움을 좀 받으면 어때? 그렇게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거지. 안 그래? 오늘도 괜히 기죽지 말고. 이 조민우가 은석 동생 뒤에 딱 버티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조민우의 허세에 은석은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현재 조민우는 한울 길드와 가계약 상태였다.

이번 던전을 통해 계약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조심성 없이 그사이 만취 상태로 몇 번이나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것도 한울 길드의 이름을 들먹이며.

본인만 자각하고 있지 못할 뿐, 이미 한울 길드와의 계약은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힐러라도 사냥을 해야 마나석 수당을 받아 가지. 내가 사냥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헌터님.”

조민우가 가슴을 내밀며 대기 중인 용병들에게로 갔다.

아마 은석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며 거들먹거리겠지.

조민우가 사라지자 백재현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언제나 능청스러운 그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다크서클이 짙어졌고 얼굴은 형편없었다.

“백 팀장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일은 무슨. 다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런 거지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김은석 헌터님은 면접에 신경 쓰지 마시고 사냥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게이트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용병들부터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흡혈박쥐 무리 안에 숨어 있는 모스맨을 제거하십시오]

‘E랭크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흡혈박쥐에 모스맨이라고? 마력 측정이 잘못된 건가.’

예상보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였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헌터들은 각자 사냥 준비에 한창이었다.

백재현 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면접 레이드를 시작하겠습니다. 한울 길드 감독관분들은 던전 랭크보다 높은 레벨의 헌터분들입니다. 인원 역시 평소보다 많습니다. 위험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지원자분들은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 주시길 바랍니다. 모두 한울 길드의 동료 헌터가 되셨으면 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백재현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박쥐는 소리에 민감한데.’

각성 후 길드에 스카우트되지 못해 용병으로 활동했던 자들이었다.

신입이 아닌 헌터가 길드와 계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모두 한껏 들떠 있었다.

은석이 주변을 살폈다. 나무 사이로 동굴이 있을 법한 절벽이 보였다.

박쥐와 모스맨이 동굴 안에 숨어 있다가 공격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

‘버드나무처럼 나뭇잎이 길게 늘어져 있어 시야 확보도 힘들겠어.’

“동생,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거야? 왜? 던전 클리어라도 하게?”

몬스터가 날아올 만한 위치를 찾아보던 은석의 앞에 조민우가 불쑥 나타났다.

“우리 동생이 던전을 클리어해 보고 싶다면 내가 도와줘야지. 나만 믿어. 사실 나한테 좋은 아티팩트가 많아. 이 정도 던전쯤이야 껌이지.”

은석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어 보였다.

‘허세하고는. 미친놈. 그 아티팩트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건지는 기억하고?’

조민우는 마법사였지만 특별히 내세울 만한 스킬이 없었다.

그래서 더 아티팩트에 집착했는지도 몰랐다.

우연히 구하게 된 천리안이라는 아티팩트 덕분에 그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출현을 예지하는 마법사.

조민우는 그의 천리안을 예지 능력으로 둔갑시켰다.

몬스터의 등장을 알린 후에 누구보다 빠르게 몸을 숨겼다.

자신을 보호할 아티팩트 역시 충분했다. 그는 언제나 살아남았고 점점 진짜 예언자가 되어 갔다.

조민우가 은석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들어봤지? 이 조민우 님의 예지력에 대해.”

“저는 헌터님만 믿겠습니다!”

은석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만족한 듯 조민우가 껄껄 웃었다.

* * *

한울 길드 감독관들은 용병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용병들은 삼삼오오 팀을 만들어 움직였다. 은석은 지원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 걸어갔다.

꺄아아-

고음의 괴성이 숲 안에 울려 퍼졌다.

“으악!”

모두 귀를 양손으로 감쌌다.

꺄아아-

다시 한번 더 귀를 찌르는 듯한 고음이 들렸다.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살폈지만 흔들리는 나뭇잎조차 보이지 않았다.

쉬이익-

이번에는 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어 누군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일제히 돌아보니, 흡혈박쥐가 헌터의 목에 붙어 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으아아! 흡혈박쥐다.”

“E랭크에서 왜 저런 몬스터가 나오는 거야?”

주변에 서 있던 헌터들이 빠르게 물러났다.

목이 물린 헌터가 박쥐를 떼어 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듯 손을 내밀었지만 모두 그에게서 더욱 멀리 떨어졌다.

그때 뒤에 서 있던 백재현이 뛰어나왔다. 피를 빨고 있는 흡혈박쥐를 움켜쥐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미 헌터는 정신을 잃었다. 백재현이 칼을 꺼내 신중하게 흡혈박쥐의 등에 찔러 넣었다.

칼을 빼내자 흡혈박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동시에 목이 물린 헌터도 그대로 쓰러졌다.

“힐러!”

백재현이 급하게 힐러를 찾았다. 한울 길드의 힐러가 나와 피가 흘러내리는 구멍을 막으며 맥을 짚었다.

“늦었어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빨렸다. 숨이 끊어졌지만 감지 못한 두 눈이 피가 물든 것처럼 시뻘겋게 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백재현이 한울 길드 감독관을 중심으로 팀을 나눴다.

면접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죽었다.

E랭크 던전에서 생각지도 못한 흡혈박쥐가 나온 것도 문제였다.

제대로 된 면접을 진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그가, 면접보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단 한 명, 조민우만이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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