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2화 (22/226)

22화

집으로 돌아온 은석이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힐러(F등급)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저승형 Lv5)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500/500

[스킬]

정보탐색: Lv2

팔귀의 재생력

[귀속령]

지박령: 일시적인 속박

해머(이문성)

‘중급 악귀를 잡아서 한 번에 레벨이 5까지 올라갔구나.’

팔귀에게서 얻은 재생 능력 스킬도 생겨났다.

짤랑-

팔찌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사라졌던 푸른 문양이 생긴 걸 보니 저승에서 청안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와라, 청안.”

고등어 물결이 팽팽하게 당겨진 돼지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팔귀와 굼은 잘 주고 왔고?”

“당연하지. 지옥 감옥에 처넣었다. 재생력을 빼낸 덕분에 16개나 달렸던 팔이 단 하나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팔 없이 살려면 괴로울 거야.”

청안이 신나는 듯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넌 진짜 앞으로 이승에서 살 생각이야?”

“물론이지.”

“팔찌 안에 머무를 생각은 없어? 내가 부르면 이렇게 나오면 되잖아.”

은석의 말에 청안이 눈을 번뜩였다.

“팔찌 안이나, 지옥 감옥 안이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

거실에 나가기 위해 청안을 안아 들려고 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인간 옆에서 살고 싶으면 몸무게부터 줄여.”

무게를 조절해 가벼워진 청안을 안고 거실로 나가자, 은석의 누나들이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은돌, 웬 고양이야?”

“며칠 전에 집 앞에 쓰러져 있길래, 병원에 잠시 입원시켜 놨었어. 주인도 없는 길고양이 같은데 우리가 키우면 어떨까 해서.”

누나들이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털 안 날리게 관리 잘하면.”

엄마의 조건부 허락에 김은영이 청안을 덥석 안아 갔다.

“내가 청소 더 자주 할게. 고마워요. 엄마.”

김은희가 청안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런데 은돌. 이거 다 큰 고양이 같은데. 중성화 수술은 했어? 안 했으면 당장 병원 가고.”

김은희의 말에 청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몸을 한껏 둥글게 말았다.

그 모습에 은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치료받을 때 했던가? 안 했던가? 기억이 잘 안 나네.”

은석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거리는 청안.

방문을 닫으며 누나들에게 말했다.

“했네. 내가 해 달라고 했었어. 그러니까 따로 수술할 필요는 없어. 누나.”

집을 나선 은석의 곁으로, 어김없이 근처에 숨어 있던 다온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 좀 따라다니지?”

“내 소원은 언제 들어줄 거야? 내가 굼이 도망가지 못하게 지켜 줬잖아.”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청안 때문에 다온은 집 근처에 얼씬도 못 했다.

“잡귀야, 귀신이라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가 지킨 게 아니라 내가 널 굼에게서 구해 준 거지.”

“잡귀 아니야. 다온이라니까. 그래서 소원은 안 들어주겠다는 거야?”

“안 들어주는 게 아니지. 널 구해 준 게 나니까 말을 제대로 해야지. 네가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게 맞는 거야.”

다온과 말장난을 하며 걷던 은석을 향해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헌터님! 이런 곳에서 다 만나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남자는 한울 길드의 백재현 팀장이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다치신 건 이제 괜찮으신가요?”

“하하하. 이제 멀쩡합니다.”

백재현의 옆에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아! 이분은 얼마 전에 저희 한울 길드로 모셔 온 헌터님이십니다. 이분 스카우트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하하하.”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중년이었지만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의 인상이 좋았다.

“반갑습니다. 조민우입니다.”

남자의 얼굴을 본 은석의 귀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조민우, 45세, B급 헌터, 마법사]

그는, 은석의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인스턴트 던전 가는 건 잠시 미뤄야겠네.’

* * *

“민우야, 이 자식. 축하한다. 이번 던전에서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역시 내 친구.”

은석이 조민우를 향해 소주잔을 내밀었지만 이미 혼자 마시고 있는 조민우.

머쓱해진 은석이 슬그머니 잔을 내려놓았다.

“대단했지. 천하의 이 조민우 님이 아니었다면 길드원 모두 지금쯤 삼도천을 건너고 있었을 거다.”

조민우는 은석의 보육원 동기였다.

그가 단 하나뿐인 가족이라고 믿고 있는 남자.

그리고 은석의 피땀 눈물을 빼 먹고 있는 친구였다.

조민우는 멀끔한 얼굴과 달리 촉망받는 동네 건달이었다. 운 좋게 던전이 생긴 초반에 각성자가 되었다.

눈치 빠르고 잔인한 성격 덕분에 지방의 작은 길드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역시! 조민우 헌터님. 나는 민우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내 친구이자 가족이라는 게.”

은석이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와 달리 기뻐해야 할 조민우의 표정은 심각했다.

“왜? 무슨 걱정 있냐? 뭔데? 형님한테 말해 봐라.”

“걱정은 무슨. 내가 이런 말을 또 하면 인간이 아니지. 괜찮다, 친구야. 신경 쓰지 마라.”

“이 자식이… 나를 뭐로 보고. 마! 우리 가족 아이가! 가족끼리 숨기는 게 있으면 쓰나.”

탁-

조민우가 마시던 소주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은석아, 사실 내가 이번 던전에서 죽을 뻔했다.”

“뭐라고? 천하의 조민우 헌터가 왜!”

조민우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아……. 아티팩트 하나만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저승사자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더라고. 그런데 은석아.”

“그래……. 말해라.”

“딱 죽는구나 싶었을 때 네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은석이 휴대폰을 꺼내 조민우에게 건넸다.

“그 아티팩트 이름이 뭔데. 찍어 봐라.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가 될 조민우가 그런 쪼잔한 거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 쓰나.”

조민우는 예의상 몇 번 사양하는 몸짓을 취했다.

하지만 이내 은석의 휴대폰을 받아 아티팩트를 검색했다.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지난번 할부도 아직 안 끝났는데 새로운 아티팩트라니…….’

은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 가족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면 안 되지. 조민우가 보통 친구도 아니고. 돈은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되지.’

조민우가 원하는 아티팩트를 찾아 은석에게 보여 줬다.

지난번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은석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얼굴을 살피던 조민우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은석아! 내가 진짜 괜찮은 아가씨 한 명을 알거든. 보는 순간 네 짝으로 딱 맞겠다 싶더라고. 여기로 불렀으니 잘해 봐! 이제 너도 장가가야지.”

잠시 후 연한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최순정이라고 합니다.”

최순정이라는 여자를 만난 후부터 은석은 2배로 일을 했다.

늘 새로운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는 조민우, 결혼을 미끼로 은석에게 돈을 받아 가는 최순정.

“은석아, 너 그 새끼들 호구야? 힘들게 번 돈을 왜 그것들한테 다 주는 건데!”

옆에서 지켜보던 지인들의 충고도 많았다.

은석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돈뿐이라는 걸.

그럼에도 잡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가족이라는 허울을 두르고 싶었다.

“민우야! 내가 각성했다! 나도 이제 헌터로 일할 수 있어!”

각성한 은석이 제일 먼저 조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축하 인사를 받을 줄 알았다.

“어, 그래? 힘들게 뭣 하러 헌터를 해. 은석아, 내가 조금 바쁘거든.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할게.”

그날 저녁 은석에게 낯선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조민우 헌터님이 던전 공략 중 부상을 당했습니다. 큰 수술을 해야 하니 가족분은 수술비를 아래 계좌로 입금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족과 수술이라는 글자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돈을 입금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겠지.

수술비는 그의 금고에 들어 있는 딱 그만큼이었다.

당장 은행에 가 돈을 입금하고 문자에 적혀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당연히 그곳에 조민우는 없었다. 그리고 최순정의 연락도 끊겼다.

* * *

“안녕하십니까. 조민우 헌터님, 팬입니다.”

“제 팬이요? 20대가 저를 아신다고요?”

“그럼요. 한때 경상도 지역을 주름잡던 헌터 조민우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은석의 칭찬에 조민우와 백재현이 큰 소리로 웃었다.

“한때죠, 한때. 그래도 지방에서 올라온 저를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분위기가 좋았다. 백재현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절호의 기회다. 김은석 헌터의 능력은 이미 성성이 던전에서 충분히 봤고. 한울의 대표 헌터가 될 만한 실력이야.’

연합 던전을 나온 후부터 백재현은 은석을 만날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팬과의 만남, 어떻습니까? 우리 어디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할까요? 제가 쏘겠습니다.”

“아닙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마시죠. 오늘은…….”

은석이 거절 의사를 밝혔다.

“에이, 김은석 헌터님. 원래 이렇게 우연처럼 만나서 진짜 인연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은석? 이름이 김은석인가요?”

조민우가 큰 소리로 웃으며 은석을 자세히 쳐다봤다.

“제가 알았던 사람 중에 김은석이라는 놈이 있었는데, 이렇게 같은 이름을 들으니 반가워서 물어봤습니다.”

은석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십니까.”

“캬! 같은 이름인데 외모는 전혀 다르네요. 김은석 씨는 모델처럼 생기셨는데 제가 알던 그놈은 우락부락한 게 꼭 야차 같았지요.”

백재현이 은석과 조민우의 등을 떠밀었다.

“자, 그럼 맥줏집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조민우는 지역에서 유명했다.

금방 수도권 길드에 스카우트되어 유명한 헌터가 될 거라고들 말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최악의 술버릇 때문이었다.

‘네가 술 먹고 친 사고 수습에 들어간 돈도 어마어마했었지. 지금 생각하니 나도 진짜 X신이었네.’

“은석아, 은석아, 김은석!”

길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백재현은 취해 잠든 지 오래였다.

술에 취한 조민우가 은석의 이름을 불렀다.

“김은석이라는 분이 친한 친구였나 보네요.”

“푸하하! 친해? 음, 그걸 친하다고 하는 건가?”

조민우가 술집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었다.

“우리 은석이가 내 돈줄이었어.”

은석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던 다온이 깔깔거렸다.

“돈줄이요? 친구가 아니었어요?”

퉤-

조민우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침을 뱉었다.

“친구는 무슨. 우리가 같은 보육원 출신이긴 했지만, 그 새끼 혼자 날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충성했지.”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자, 은석이 빠르게 빈 술잔을 채웠다.

“생긴 건 딱 뒷골목 형님인데 그 새끼가 그렇게 또 착하고 성실했지. 덕분에 나도 우리 은석이 덕 좀 보고 살았고. 순정이 고것도 잘 뜯어먹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 흘러나왔다.

“순정이요?”

“아, 내 애인. 자꾸 돈을 달라고 해서 알아서 뜯어먹으라고 은석이한테 소개시켜 줬었지.”

최순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조민우의 애인이었다고?

“……그렇군요. 김은석이라는 분과는 아직 연락하시나요?”

“아니, 5년 전쯤에 각성했다는 전화 받고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한 다음에 내가 숨어 버렸지.”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문자가 떠올랐다.

“아……. 헌터로 활동하시는구나.”

조민우가 오징어 다리 하나를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몰라. 제대로 된 헌터였으면 벌써 내 앞에 나타났을 텐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던전에 들어갔다가 뒈져 버렸겠지. 등신 새끼, 주제를 알아야지. 각성했다고 좋아하는 꼴이라니. 에이, 이건 왜 이렇게 질겨.”

씹던 오징어를 뱉고 맥주를 들이켰다.

은석에 대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조민우.

그를 보는 은석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냉정을 유지했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은석의 온몸에서 하얀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석의 분위기에 기가 눌린 다온이 술집 천장 구석에 붙어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때 술집 테이블 사이를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던 귀물 하나가 은석의 옆을 지나갔다.

탁-

은석이 손을 뻗어 귀물의 머리를 잡았다.

그대로 힘을 줘 최하급 귀물을 터트려 버렸다.

[귀력이 증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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