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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4화 (14/226)

14화

“덕분에 편하게 왔다.”

“아닙니다. 제가 형님 덕분에 던전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는걸요.”

“사이트에 가입해 놓고 연락해 줘.”

은석이 차에서 내렸다.

“아! 해골은 되도록 빨리 팔아. 저주템 오래 가지고 있어 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알겠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당장 팔겠습니다.”

황희준을 보내고 돌아선 은석의 앞에 이문성이 서 있었다.

“걸으면서 이야기 듣지. 삼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하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버스도 끊긴 늦은 밤, 은석이 망자 이문성과 함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던전 안에서 죽은 건가?”

“그렇다.”

“용병?”

“아니, 나는 유성 길드에 소속된 헌터다.”

“유성 길드라……. 거기 연봉이 꽤 세지 않나?”

“많이 벌었지. 하지만 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아내가 많이 아팠거든. 이름난 병원,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봤지만, 아내의 병명조차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정령의 보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 *

“이번에 나무 정령의 숲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 정말 확실하지?”

이문성이 김호철에게 물었다.

김호철의 가는 눈이 반달을 그렸다.

“그럼요. 헌터님. 제가 인스턴트 던전을 하루 이틀 들어가 봅니까. 이번에는 확실하다니까요.”

“알겠소. 마지막으로 믿어 보지.”

“진짜 정령의 숲이면 그 안에서 잡은 몬스터의 마나석은 전부 제게 준다는 말, 잊지 않으셨지요?”

뱀 같은 김호철의 표정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문성에게 정령의 보석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도 그였고, 인스턴트 던전을 소개해 준 것도 김호철이었다.

“다 주지. 나는 정령의 보석만 있으면 되니까.”

김호철이 손바닥을 소리 나게 부딪쳤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던전 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솟은 나무들이 빽빽했다. 나무들 사이로 날개가 달린 작은 생명체가 바쁘게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나무의 정령…….”

이문성은 눈물이 왈칵 솟아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이곳에서 아내의 병을 낫게 해 줄 정령의 보석을 구할 수 있다.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이문성의 아내.

유성 길드 던전에 용병으로 참여한 김호철에게서 나무 정령의 보석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령을 찾기 위해 던전에 들어가야 했지만, 길드에 소속된 그가 마음대로 여러 던전을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김호철의 말만 믿고 길드를 탈퇴했다.

그 대가로 던전을 들어갈 때마다 김호철에게 일정량의 마나석을 바쳤다.

드디어 그토록 찾고 싶었던 나무 정령의 숲 던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문성 헌터님, 축하드립니다.”

김호철이 감격에 북받친 이문성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나무 사이를 걸어가던 그들의 눈에 거미줄에 꽁꽁 싸인 작은 정령 하나가 보였다.

온몸이 초록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나무의 정령이었다.

거미줄을 벗어나기 위해 나뭇잎처럼 생긴 작은 날개를 흔들었지만 단단히 얽혀 있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이문성이 달려가 온몸에 칭칭 감겨 있는 거미줄을 끊어 냈다.

김호철이 작은 칼을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보석이 어디 있는지 물어봐야지요. 비켜 보십시오. 칼로 몇 번 그으면 바로 실토할 테니.”

그 모습에 이문성의 품에 안긴 작은 정령이 벌벌 떨고 있었다.

초록의 커다란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 찼다.

“아직 어린애야. 미쳤어?”

누구보다 정령의 보석이 필요한 이문성이었지만 작은 정령을 고문한다는 김호철의 의견에는 반대했다.

“애라뇨. 헌터님. 저건 몬스터입니다.”

이문성은 비켜 줄 마음이 없었고, C급인 김호철은 A급 헌터 이문성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짜증이 났지만 일단 보는 눈도 많으니 순순히 물러났다.

이문성의 곁에서 헌터들이 사라지자, 떨고 있는 정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집으로 가. 거미줄 조심하고.”

이틀 동안 수없이 많은 거미를 베었지만 정작 보스는 찾을 수 없었다.

인스턴트 던전 클리어까지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문성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봤던 수많은 정령.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더 많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살려 준 작은 정령을 제외하고는 아직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러길래, 왜 착한 척하셔서 몬스터를 놓아주셨습니까? 이문성 헌터님.”

김호철의 비아냥에 근처에 서 있던 헌터들이 킥킥거렸다.

“정령의 보석을 찾는 건 헌터님의 몫이니까 마나석은 전부 다 제 것, 잊지 마십시오.”

해머를 들고 있는 이문성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마지막 밤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헌터들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문성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고만 있었다.

‘어떻게 보석을 찾아야 하지. 시간이 없는데…….’

그때, 누군가 그의 이마를 두드렸다.

눈을 떠 보니 어둠 속에서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는 정령이었다.

이문성이 던전 입구에서 구해 준 나무의 정령이었다.

“여긴 왜 왔어? 거미들이 많아서 위험한데…….”

정령이 이문성의 얼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까르르 웃었다.

“혹시, 날 보러 온 거니?”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로 포르르 내려가 이문성의 손 앞에 섰다.

받으라고 하는 듯 정령이 작은 손을 내밀었다.

이문성이 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에 작고 동그란 물체 하나가 톡 떨어졌다.

“어? 이건…….”

정령이 이문성의 커다란 손가락을 잡고 배시시 웃었다.

잡은 손을 통해 정령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나무의 정령은 평생 한 번 자신의 눈물로 보석 하나를 만든다.

원하는 소원, 단 하나만 들어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보석이었다.

이문성이 화들짝 놀랐다.

“평생 단 하나만 만들 수 있다니……. 난 이렇게 귀한 것인 줄은 몰랐다.”

이문성의 난감한 표정에 정령이 그의 얼굴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이걸 받아도 될까…….”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문성이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정령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정령은 헤헤 웃으며 이문성의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그대로 숲속으로 날아갔다.

이문성은 손바닥 안에 놓인 작은 정령의 보석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는 몰랐었다.

정령이 이문성을 찾아왔을 때부터 모든 장면을 보고 있던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진짜로 정령의 보석이 있었네. 소문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어. 아깝네. 부르는 게 돈일 텐데.’

그를 노려보고 있던 김호철이 입맛을 쩝 다셨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보스만 찾으면 끝난다.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보다 두 명씩 나눠 찾아보도록. 통신석은 모두 챙겼겠지?”

이문성이 맡은 구역은 늪지대였다.

키를 훌쩍 넘는 긴 갈대숲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갈대 사이를 들어가던 이문성이 뒤따라오는 조원에게 외쳤다.

“이봐, 조심해. 생각보다 깊은 곳이야.”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문성이 고개를 돌려 조원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순간.

푸욱-

둔탁하면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머리 안으로 쑥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갈대 사이로 쓰러진 그의 눈앞에 김호철이 서 있었다.

생명을 잃어 가는 이문성의 주머니를 뒤지는 김호철.

“헌터님, 아무래도 마나석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요.”

* * *

“그게 마지막이었다.”

“시신은 인스턴트 던전 늪 안에 있겠군.”

“그렇다.”

“던전은 이미 클리어됐고.”

“그래.”

은석이 팔짱을 끼며 침대 헤드에 등을 붙였다.

“김호철이 훔쳐 간 정령의 보석을 찾아 달라는 건가?”

이문성의 표정이 밝아지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팔지 않았을까? 그렇게 귀한 걸 아직 가지고 있겠어?”

“아직 팔지 않았다. 내가 며칠 전에도 봤다.”

“어디서?”

“김호철의 빌라 지하에 그의 컬렉션이 있다. 그곳에 아직 있다.”

은석이 잠자코 이문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컬렉션이라……. 나도 구경 한번 해 보고 싶네. 내일 가 보지.”

나가라는 은석의 손짓에 이문성이 그의 방에서 사라졌다.

은석이 휴대폰으로 아이템 거래 사이트 몇 곳을 검색했다.

아직 주술사의 해골이 올라오지 않았다.

[황희준, 해골 빨리 팔아라. 가위눌린다.]

황희준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상태창.”

상태창 아래에 깜빡이고 있는 메시지가 보였다.

확인하지 않은 아이템이 있다는 신호였다.

[확인하지 않은 유니크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은석이 주머니에 넣어 둔 마나석을 꺼내 손바닥 위에 두고 바라봤다.

[사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 주는 아이템입니다. 명령어는 ‘확인’입니다.]

은석이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았다.

“확인.”

메시지가 알려 주는 대로 명령어를 말했다.

어떤 게 나올지 기대감에 부풀어 눈을 떼지 않았다.

작은 돌이 허공으로 떠올라 번쩍 빛을 내뿜었다.

밝은 빛에 은석이 눈을 찌푸렸다가 떴다.

빛을 뿜어낸 돌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이템 형성에 필요한 시간은 여덟 시간입니다.]

“뭐? 여덟 시간이나 저러고 있다고?”

은석이 시계를 보니 자정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나타나 있겠군.”

혹시 돌이 허공을 돌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올까 싶어 방문을 잠갔다.

침대에 누워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는 마나석을 바라봤다.

“쪼는 맛이 있는 아이템이야.”

은석이 씨익 웃으며 눈을 감았다.

예상대로 아침이 되자 손잡이가 철컥거렸다.

“야! 은돌! 왜 문을 잠근 거야? 밥 먹으러 나와.”

둘째 누나인 김은영이었다.

대답 대신 베개 옆에 놓아둔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일곱 시 반.’

천장을 바라봤다. 잠들 때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마나석이 보였다.

저렇게 빨리 돌다가 창문을 깨고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쾅쾅!

“야! 빨리 나와! 방에 있는 건 맞지?”

김은영이 방문이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잘 거야.]

김은영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윙- 윙-!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잠이 든 은석의 귀에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끝났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 빠르게 회전하는 아이템.

슈욱- 슈욱-

소리 역시 속도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다. 은석은 눈을 떼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이템 형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에 이어 카운트 숫자가 떴다.

일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후 은석의 방안에 밝은 빛이 한 번 번쩍였다.

밤이었으면 소리 없는 폭탄이라도 터졌을 거라 믿을 만큼 강한 빛이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가 천천히 시각이 돌아온 은석의 앞에 검고 긴 물체가 나타났다.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았다. 온몸을 부르르 떨리게 할 만큼 차가운 금속의 감촉.

당겨서 내린 아이템은 검은색의 칼집이었다.

[악귀를 베는 귀검]

“귀검?”

은석이 칼을 꺼냈다.

60센티가 넘는 길고 날렵한 철제 검신은 칼집처럼 검었다.

붉은 직물을 두른 손잡이 끝에는 도깨비 얼굴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검신은 아래로 갈수록 폭이 조금씩 좁아졌고 한쪽에는 28수의 별자리, 다른 쪽에는 신령한 기운이 느껴지는 낯선 문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칠흑같이 검었지만 푸른 오라가 검에서 흘러나왔다.

“서슬이 퍼렇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검이군.”

영혼을 벨 수 있는 은석에게 귀검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무기였다.

은석이 자세를 잡고 사선으로 검을 빠르게 내려쳤다.

그때 은석의 방에 나타난 이문성.

스릉.

푸른빛이 감싸는 검은색의 검을 보고 깜짝 놀라 방구석으로 몸을 바싹 붙였다.

“그, 그게 뭐냐!?”

이문성이 은석의 검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어? 이거? 그냥 칼인데.”

이문성에게 다가가며 칼을 내밀었다.

“으악! 저리 치워라!”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이문성.

‘오! 귀신이 두려워하는 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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