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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3화 (13/226)

13화

‘뭐야, 저 새끼. 힐러가 왜 저렇게 빨라.’

은석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김호철도 빠르게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속도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던 그였다.

그런데 도저히 은석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보스를 죽이기 전에 검을 빼앗을 수 없겠는데.’

조급해진 김호철이 속도를 높였다.

그가 달리는 속도를 높이자, 은석 역시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날 따라잡을 수 있겠어?’

저승의 훈련장에서 달리고 또 달렸던 은석이었다.

‘그래도 기습에 특화된 김호철보다 빠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눈앞에 숲길의 끝과 작은 토굴 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저기다.’

주술사의 토굴을 확인한 은석이 급하게 방향을 틀어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무 뒤에 숨어 김호철이 오기를 기다렸다.

앞서 달리던 김은석이 갑자기 사라지자, ‘내가 따라가는 걸 눈치채고 숨은 거군.’

김호철 역시 자리에 멈춰 섰다.

주변은 굵은 나무가 빽빽해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김호철이 칼을 꺼내 들면서 한 발씩 천천히 걸었다.

“김은석 씨, 쫄았습니까? 왜 달리다가 갑자기 숨은 거지요.”

F급치고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래 봤자 던전에 처음 들어온 초보 각성자였다.

김호철이 은석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걸었다.

“자기가 죽인 거는 자기가 먹는 던전이라지만, 혼자서 보스를 클리어한다는 건 욕심이 과하지 않습니까. 처음으로 던전에 들어온 초보 주제에 말이죠.”

은석을 도발하듯 끊임없이 말을 하며 다가가는 김호철.

김호철의 위치를 확인한 은석이 귀속령을 소환했다.

“나와라.”

그의 앞에 귀속된 지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새끼 붙잡고 있어.”

지박령이 김호철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의 허리를 잡고 하체를 그대로 땅속으로 박아 넣었다.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김호철이 당황해 팔을 휘적거렸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팔과 달리 허리 아래는 어찌된 일인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은석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갔다 와서 풀어 줄 테니까.”

“이 새끼, 네가 이런 거였어? 빨리 풀어라.”

“풀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아!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소리 지르면 고블린 오니까 조용히 숨죽이고 있어. 그럼 아무 일 없을 거야.”

은석이 고블린 주술사의 토굴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그 모습에 김호철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김은석! 이 새끼야! 빨리 풀어!”

끼에!!

김호철의 고함을 들은 고블린 몇 마리가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이씨……. 이게!”

그나마 팔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달려드는 고블린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등 뒤에서 달려든 고블린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토굴을 향해 달려가는 은석의 귓가에 김호철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길래 조용히 있으라고 했잖아. 말을 안 들어요.”

* * *

쿠아악!

토굴로 뛰어든 은석을 본 주술사가 괴성을 질렀다.

토굴 안은 주술사가 피운 검붉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키엑투악!

은석을 향해 작은 해골이 주렁주렁 달린 지팡이를 흔들어 댔다.

“놀랐어? 좀비랑 싸우고 있어야 할 인간이 여기 있다니 말이야.”

은석이 아공간에서 검을 꺼냈다.

영혼을 다루는 고블린 주술사였기에 은석이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은석이 작은 토굴 안을 빠르게 훑었다.

주술사를 지키는 고블린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릴 만만하게 봤나 봐. 호위할 놈을 하나도 두지 않다니.”

은석이 주술사에게 다가가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휘잉-

공기를 가르는 검의 서늘한 소리가 토굴 안에 울렸다.

고블린 주술사가 은석을 향해 손을 뻗자, 토굴 안의 검붉은 연기가 그에게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연기에 둘러싸인 은석.

급하게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하지만 숨을 쉬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헉.”

극소량의 연기였지만 은석의 눈앞이 순간 흐려졌다.

‘독인가, 아니면 환각?’

그렇다면 빠르게 주술사를 공격해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입을 굳게 다문 은석이 고개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어갔다.

검을 가로로 빠르게 휘두르자, 눈앞을 가득 메운 연기가 순간 갈라지듯 벌어졌다.

그 사이로 주술사의 처진 볼살이 보였다.

서걱!

은석의 칼에 주술사의 배가 갈렸으나 깊지 않았다.

쿠에엑!!

칼에 베인 주술사가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들고 있던 지팡이를 흔들자, 연기가 다시 은석을 향해 모여들었다.

최대한 가볍게 숨을 쉬었으나 머리가 어지러웠고,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은석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이빨에 찍힌 아랫입술이 터져 턱 아래로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은석이 칼을 세워 잡고 주술사가 서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빠르게 검을 그었다.

내려친 칼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은석의 얼굴에 주술사의 몸에서 솟구쳐 나온 피가 튀었다.

연기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투둑.

주술사의 한쪽 어깨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진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에서 해골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쓰러진 주술사의 가슴에 칼을 꽂아 아래로 죽 그어 내렸다.

아직 피를 뿜어내고 있는 주술사의 붉은 심장이 보였다.

은석이 심장을 손으로 잡아 터트리자, 그 안에 흥건했던 피를 빠르게 빨아들이는 작은 마나석 하나가 있었다.

[고블린 주술사를 제거하였습니다. 유니크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고블린 주술사의 아이템은…….]

은석이 아이템을 확인하려는 순간, 황희준이 토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은석이 마나석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좀비들이 모두 쓰러졌습니다. 역시 형님이 보스를 처치하셨군요.”

황희준이 쓰러진 주술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역시 보스도 좀비인가요?”

“어? 좀비?”

은석이 내려다본 주술사는 조금 전과 전혀 달랐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던 피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살집이 두둑했던 주술사는 비쩍 마른 미라로 변해 있었다.

갈라진 몸통 안 역시 좀비 고블린과 다를 것이 없었다.

‘마나석이 사라져서 그런가?’

“역시 대단하십니다. 형님.”

황희준이 은석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그의 옆에 이문성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오랜만에 몬스터를 잡으니 기분이 아주 좋다. 주술사는 죽였나?”

은석이 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주술사를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이문성이 껄껄껄 웃었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으니 나가자.”

고개를 들어 카운트 시계를 바라봤다.

곧 던전이 클리어될 시간이었다.

은석 일행이 토굴 밖을 나와 다시 숲길 안으로 들어섰다.

“살려……. 나 좀, 살려 줘…….”

지박령에게 잡혀 움직이지 못한 채 상체만 휘청거리고 있는 김호철이 보였다.

고블린에게 물린 어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김호철을 본 이문성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해머를 들고 달려가려는 그를 은석이 막았다.

“희준아, 업을 수 있겠어?”

“네, 업혀 주십시오.”

황희준이 무릎을 꿇고 등을 내밀었다.

“소환 해체.”

잡고 있던 지박령이 사라지자, 김호철이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졌다.

은석이 쓰러진 김호철의 그나마 멀쩡한 팔과 다리를 잡았다.

다친 사람에 대한 배려 따위 없이 있는 힘껏 들어 황희준의 등에 올렸다.

갑자기 강해진 고통에 김호철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정신을 잃었다.

“이번 던전은 실패야. 이게 뭐야. 수익도 전혀 없고…….”

막 던전을 빠져나온 헌터들의 투덜거림이 끝나지 않았다.

누구의 탓도 할 수는 없었다. 인스턴트 던전을 선택한 각자의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친 백훈섭과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김호철을 노려봤다.

“은석 형님이 조금만 늦었어도 우리 모두 죽었을 겁니다. 그건 아시죠?”

황희준이 백훈섭에게 따지듯 말했다.

백훈섭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은석만 노려보고 있었다.

“진짜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나?”

백훈섭이 은석에게 같은 질문을 또 했다.

은석의 대답 역시 같았다.

“네, 제가 도착해서 쓰러진 주술사를 칼로 찌르니 좀비로 변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심장도 없는 상태였고요.”

“제가 봤다니까요. 진짜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상한데……. 아무리 별것 없는 던전이라도 보스 아이템이 없는 경우는 없는데.”

백훈섭이 은석을 향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왜 저기 누워 있는 김호철 헌터님은 의심하지 않으시는 거죠? 저분도 보스를 죽이기 위해 토굴로 간 것 아닙니까? 제가 토굴에 도착했을 때, 아직 죽지 않은 주술사의 가슴은 이미 갈라져 있었습니다.”

“가슴이 갈라져 있었다고?”

은석의 말에 백훈섭이 누워 있는 김호철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저는 F급 힐러입니다. 무슨 수로 제가 첫 던전에서 보스와 싸울 수 있겠습니까. 운 좋게 거의 죽어 가는 주술사니까 죽일 수 있었던 거죠.”

의심은 들었으나 김호철에게 물어볼 수 없으니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백훈섭의 표정이 답답해 보였다.

“깨어나시면 물어보세요. 던전도 클리어되었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돈이라도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인스턴트 던전도 소문일 뿐이군요.”

은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문성을 찾았다.

그는 해머를 들어 누워 있는 김호철의 머리를 계속 내려치고 있었는데, 생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라 아무런 대미지도 줄 수 없었다.

그에게 타격을 줄 수 없자, 신경질적으로 더 강하게 휘두르고 있었다.

“갑시다.”

은석의 외침에 이문성과 황희준이 그의 곁으로 뛰어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 은석을 황희준이 막아섰다.

“형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제 차로 가시죠.”

“너 차 있어?”

“제 차는 아니고, 어머님 차입니다. 하하하.”

은석은 황희준의 옆에, 이문성은 뒷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 덕분에 저 위험한 곳을 살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입으로만?”

“네?”

황희준이 은석을 돌아봤다.

“야! 운전. 앞을 봐.”

“아, 네.”

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혹시 얼마를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황희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가 삥이나 뜯을 사람으로 보이냐?”

“아닙니다, 형님.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황희준이 강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른 건 아니고 네 능력 좀 쓰자.”

“제 능력요?”

“실력 있는 해커라면서.”

“그렇지요.”

“그럼 네가 해킹했던 인스턴트 던전 사이트에 나도 가입시켜.”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불법인 해킹은 언제나 보안이 생명이다.

던전 안에서 해킹을 고백한 것은 그의 목숨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던전 밖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의 고민을 눈치챈 은석이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고블린 주술사의 지팡이에 달려 있던 크고 작은 해골들을 꺼내 황희준에게 보여 줬다.

“어? 이건…….”

“주술사의 해골이야.”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10개의 해골이었다.

“저주에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야. 너도 알고 있지?”

물론 황희준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무척 비싸게 거래되는 물건.

“너 줄게. 대신에 던전 사이트에 가입시켜 놔. 어때?”

황희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도면 돈이 얼마야.’

황희준이 외투의 오른쪽 주머니를 벌리며 말했다.

“어떤 등급과 직업으로 등록시켜 놓을까요? 형님이 원하시는 캐릭터를 말만 하십시오.”

은석이 그의 주머니에 해골들을 집어넣었다.

“등급은 빼고 힐러라고만 적어 놔. 돈이 필요해서 급하게 들어갈 던전 찾는다고 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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