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은석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상균과 정종렬은 표정 관리 따위 잊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이, 이봐. 인스턴트 던전을 어떻게 알지? 설마 삼촌이 그것까지 얘기해 줬나?”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은석 삼촌이 알려 주셨습니다.”
정종렬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고 이상균은 식은땀을 닦았다.
“자네……. 그게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건가? 거기는 자네 같은 막 각성한 헌터가 가는 곳이 아니야. F등급은 근처에도 가서는 안 되는 곳이야.”
“저도 잘 압니다. 이미 삼촌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은석 씨도 거절했어. 위험하다고.”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은석의 말에 이상균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후회?”
“네, 부장님이 인스턴트 던전을 제안해 주셨을 때 왜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늘 마음속 한 켠에 후회로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은석이 입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더욱 자네는 안 돼. 김은석 씨는 몇 년 동안의 던전 경험이라도 있었지. 자네는 뭐가 있어? 던전을 들어가 봤어. 전투계 헌터도 아니야. 무슨 용기로 거길 들어간다는 건가.”
은석이 단호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F등급입니다. 어느 던전에 들어가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상균과 정종렬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김은석의 조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말일 뿐.
남의 뒷돈을 받아 살아온 그들이 쉽게 남을 믿을 리가 없었다.
특히 사진까지 들이밀며 협박으로 시작한 저 어린놈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안 되는 거는 안…….”
이상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석이 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이상균이 인스턴트 던전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을 적은 일기의 한 부분이었다.
종이에 적힌 것을 읽은 이상균의 손이 덜덜 떨렸다.
참다못한 정종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어린 새끼가 어디 감히 어른한테 겁 없이 협박을 해!”
화를 내는 그들과 달리 은석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삼촌이 던전에 들어가서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렇지요? 부장님과 실장님이 소개해 주신 던전에서 말이죠.”
대답 없이 은석을 노려보는 이상균과 정종렬.
“저는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말인즉슨, 두 분의 돈줄 하나가 떨어졌다는 거지요.”
예상하지 못한 은석의 말에 둘이 서로 마주 봤다.
“협박해도 소용없네. 이따위 종이를 누가 믿을 것 같나!”
“제가 아쉬운 입장인데 협박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 드리는 거죠.”
“무, 무슨 상황…….”
“제가 삼촌을 대신해 두 분의 새로운 돈줄이 되어 드리겠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고작 이십 대인 어린 은석에게 휘둘리는 상황에 화가 난 상태였다.
그런데 돈줄? 알아서 수수료를 주겠다고?
은석이 이상균의 손에 든 복사본을 잡아당겨 그들의 앞에 대고 흔들었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일종의 안전장치 같은 겁니다. 제가 원하는 던전을 못 들어갈 경우를 대비해서.”
정종렬이 벌떡 일어나 이상균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잠시 시간을 좀 주게.”
빠르게 포차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보며 은석이 젓가락을 들었다.
‘옛날에는 돈이 아까워 저 새끼들이 처먹는 거만 보고 있었지.’
은석이 안주 몇 개를 더 주문해서 저녁 삼아 먹기 시작했다.
포자 밖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표정을 보니, 빨리 끝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모님, 여기 공깃밥 하나만 주세요.”
은석의 예상대로 밥공기 하나를 다 비우고 나서야 이상균과 정종렬이 포차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얼마나 열정적인 회의를 했는지 둘 다 기운이 쏙 빠져 보였다.
자리에 앉은 둘의 잔에 은석이 술을 채웠다.
“일단 목부터 축이십시오.”
은석의 말에 둘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채워진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인스턴트 던전을 소개해 주지. 단, 조건이 있네.”
“어떤 조건입니까?”
이상균이 은석의 앞에 놓인 복사본을 가리켰다.
“통장을 비롯해 김은석과 우리가 관련되었다는 자료를 모두 넘기게.”
“그럼요. 드려야지요.”
은석의 순순한 대답에 표정이 환해졌다.
“인스턴트 던전에서 나오고 난 후에 드리겠습니다.”
“그건…….”
“뭐, 싫으시다면 저도 어쩔 수 없고요. 아마 이 정도 거래라면, 음……. 각성자 특별법까지 더해져서 칠순 잔치는 밖에서 하실 수 있으려나.”
노골적인 협박에 이상균이 신경질적으로 은석의 앞에 자신의 휴대폰을 던졌다.
“여기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저장하게. 알아보고 연락해 줄 테니.”
은석이 빙긋 웃으며 그의 휴대폰에 이름을 입력했다.
“김은석?”
“하하하. 신기하죠. 삼촌과 생일이 똑같아서 이름도 똑같이 지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를 워낙 예뻐하시기도 했고.”
은석이 휴대폰을 돌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직 술과 안주가 많이 남았으니 두 분은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면서 드십시오. 아! 그리고 이왕이면 빠른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석이 예의 바르게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했다.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에 정종렬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씨는 사람이 참 좋았는데……. 이름까지 똑같은 조카 놈은 싹수가 없어. 젊은 놈이.”
“좋게 좋게 생각하십시오. 스트레스 받으면 술맛만 떨어집니다. 실장님.”
이상균이 정종렬 앞으로 그가 좋아하는 안주를 밀어 주었다.
“저 새끼랑 이야기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배가 아주 고픕니다. 드십시오.”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비싼 안주와 술 몇 병이 다시 차려졌다.
“이런 건 또 삼촌한테 잘 보고 배웠구만.”
“자기가 돈줄 하겠다는데 저희야 땡큐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거나하게 취한 이상균과 정종렬이 포자를 나가려는데 주인이 그들을 잡아 세웠다.
“계산 안 하십니까?”
“어? 무슨 계산?”
포자 주인이 빈 접시와 술병으로 넘치는 테이블을 쳐다봤다.
“드신 건 계산하셔야죠.”
계산이라는 말에 술이 확 깬 이상균이 정색하며 다시 물었다.
“우리랑 같이 있던 젊은 남자가 계산한 거 아니었나요?”
“아뇨.”
“나갈 때 보니 카운터에서 이야기를 나누던데.”
“아, 그거요. 계산한 게 아니라 주문을 더 한 거예요. 돈은 두 분에게 받으라고 하시던데요.”
주인이 카드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정종렬은 모른 척 이미 밖으로 나간 후였다.
이상균의 붉은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 * *
많은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이미 어둠은 짙게 깔렸고 꽤 늦은 시간이라 골목에는 인기척도 없었다.
고장 난 가로등만 일정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간다면 나는 살아 나올 수 있을까?’
상태창을 불렀다.
‘어? 확인 안 한 메시지?”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승형 네크로맨서의 특성이 개방되었습니다. 레벨은 1단계입니다]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힐러(F등급)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저승형 Lv1)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100/100
[스킬]
정보탐색: Lv1
F등급의 힐러 클래스가 생겼고, 미개방이었던 네크로맨서가 레벨 1로 바뀌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걸귀를 소멸시켜 개방된 건가?’
“으아악!”
앞서 걸어가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더니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 버둥거렸다.
남자가 은석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더 크게 질렀다.
“살려 주십시오! 저 좀 살려 주세요!!”
은석이 천천히 걸어 누워 있는 남자의 옆에 섰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제 다리가 마비되었습니다. 허리 아래로 움직여지지 않아요!”
남자는 다리를 움직일 수도, 그렇다고 팔을 이용해 몸을 돌릴 수도 없었다.
하반신이 마치 끈끈이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평범히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남자의 간청에도 은석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눈은 계속 일어서려는 남자의 허리를 부여잡고 있는 손과 그 손의 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하급 귀물, 지박령]
고장 난 가로등 아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지박령이었다.
어둠에 갇혀 그곳을 떠날 수도 없는 존재.
기가 약한 사람을 붙잡아,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최하급 귀물이라.’
서 있기만 할 뿐,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은석을 향한 남자의 간청이 이어졌다.
“제발……. 119라도 좀 불러 주세요.”
은석이 무릎을 굽혀 남자의 옆에 앉았다.
“종교가 뭡니까?”
“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줄 거라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종교라니.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믿는 종교 없어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뭐라도 좀 도와 달라고요!!”
“아주 중요합니다. 깨어나시면 뭐든 좋으니까 종교 믿으세요. 운동도 중요하지만 약한 기부터 좀 채워 넣으셔야 앞으로 이런 일을 안 당합니다. 종교가 싫으시면 명상도 좋고요.”
“아니, 지금 이 상황에 그게 무슨 말…….”
퍽!
남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은석이 주먹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주먹에 얼굴을 맞은 남자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뺨을 두어 번 툭툭 쳐 보며 기절한 것을 확인했다.
은석이 혀를 차며 길게 늘어져 있는 지박령을 노려봤다.
“야! 바빠 죽겠는데 뭐 하는 거야!”
남자의 허리를 잡고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지박령이 은석의 고함에 깜짝 놀랐다.
자신을 똑바로 보며 말까지 거는 은석을 보고 남자를 잡은 손을 풀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참 동안 은석을 쳐다보던 지박령.
“아! 너구나. 생기 넘치는 인간. 기운이 달라져서 누군가 했네. 호호호. 웬일로 먼저 말을 거니? 꼬마야. 오늘은 내가 안 무서워?”
쉰 듯 긁어 대는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켁켁거리는 웃음을 내뱉으며 은석을 향해 더럽고 긴 손톱을 뽑아냈다.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이제 우리 친해진 거야? 그럼 나한테도 너의 생기를 좀 줘…….”
은석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지박령의 손을 세게 쳐 내자, 손톱이 그대로 바닥에 박혀 버렸다.
살아 있는 사람의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지박령이 흠칫 놀라며 은석을 쳐다봤다.
“허약한 사람 붙잡아 빌붙을 생각하지 말고, 저승으로 꺼져.”
지박령의 팔과 손톱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나자, 마치 날카로운 칼날을 뭉쳐서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기를 줘! 생기만 있으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은석을 감싸 안듯 옭아매며 그대로 허리를 조일 것처럼 빠르게 좁히기 시작했다.
은석이 양손으로 지박령의 팔을 하나씩 잡아 쥐었다.
“생기를 주는 거야?”
“아니.”
지박령의 거무튀튀한 팔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뒤로 세게 잡아당겼다.
“꺄아악!”
강한 힘에 지박령의 두 팔이 뜯기자, 괴성을 지르며 가로등 아래 어둠 속으로 빠르게 숨어들었다.
은석이 찢어 낸 두 팔은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가로등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 가로등 뒤 어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가로등 귀신, 그만 나오시지.”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으며 놀라게 하는 가로등 귀신.
망자 김은석이 어렸을 때 지독히도 그를 괴롭히던 동네 지박령 중의 하나였다.
은석이 직접 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기억 동기화로 김은석의 추억은 그의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로등 귀신을 보는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그만 나오지? 그렇게 나오고 싶어 했으면서 왜 숨는 거야. 어?”
더듬거리던 은석의 손에 지박령의 거칠고 눅눅한 머리카락이 잡혔다.
“잡았다. 요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