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마지막 회)
무엇보다도 차은성이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2차장 선우종은 내심 매우 기뻤다.
‘후후후.’
그렇지 않아도 차은성 때문에 마음 한구석으로 적잖은 불안을 느꼈다. 이제 마음 놓고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자도 될 것 같다.
* * *
수십여 초 후.
2차장 선우종이 3층 복도로 올라섰다.
그의 눈에 복도 좌측 벽에 기대 누운 차은성이 보였다.
두 다리를 복도 바닥에 길게 뻗고 목과 등을 벽에 기댄 모습이다.
가슴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붕대는 흘러나온 선혈로 붉게 물들어, 한눈에 보아도 중상임을 알 수 있다.
차은성을 감시하는 서너 명의 무장 병력.
2차장 선우종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자리를…….”
그들이 서로 돌아보더니 난처한 눈으로 2차장 선우종을 돌아보았다.
“차장님.”
“이미 죽어 가고 있잖아. 위험한 것 없어.”
“휴우. 알겠습니다.”
“저희는 그럼.”
서너 명의 무장 병력이 계단으로 돌아섰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벽에 기대 누운 차은성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서 있는 2차장 선우종을 보았다.
“으으…… 2, 2차장…….”
“유감이네, 차 팀장.”
2차장 선우종의 말에, 차은성이 힘없이 미소 지었다.
피식.
2차장 선우종이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했다.
“유능한 요원인 자네의 최후가 이런 거라니. 쯧쯧.”
혀를 차자, 차은성이 힘없이 물었다.
“바, 박 과장님. 왜 주, 죽였습니까?”
“흣.”
“…….”
“왜일 것 같은가?”
“…….”
“지나치게 파고들어서네. 적당히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데. 도가 지나치더군. 어쩌겠나?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데 말이야.”
“뭐, 뭐가 부족해서 배, 배신을…… 하, 한 겁니까?”
“이런, 이런. 다 죽어 가는군. 이제 곧이겠어.”
2차장 선우종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2차장…….”
“엄밀히 말하면 배신은 아니지. 난 처음부터 AOA 사람이었지, NIS 사람은 아니었으니깐.”
“왜……애……?”
“뭐, 별거 아니야. 북과 남의 사이를 적당히 벌리고, AOA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남북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고 때로는 증폭시키는, 뭐, 그런 용도에서지.”
“…….”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 있지 않나? 당연히 눈여겨보아야 할 나라라고.”
“…….”
“그런 나라의 정보 조직 내에 사람을 심어 두는 건 기본이지 않나?”
“겨우 그런 이유로?”
“겨우 그런 이유가 아니지. 한국이 미국에서 무기를 도입할 때 기본적으로 30~40억 달러이네. 그 커미션만 해도 족히 4억 달러. 한국 돈으로 4, 5천억 원은 가볍게 넘지.”
2차장 선우종이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지금까지 회사 내부에서…….”
“하하하.”
2차장 선우종이 마음껏 웃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뚝 그쳤다.
“죽어 가는 자네에게 상세하게 말해 줄 시간이 없긴 하네만. 자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해냈다네. 덕분에 나도 떨어지는 콩고물깨나 주워 먹었고.”
“…….”
“게다가 조만간 난 NIS 원장으로 취임한다네.”
2차장 선우종이 말하며 미소 지었다.
씨이익.
그 순간.
차은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흑!”
그 모습에 2차장 선우종이 깜짝 놀랐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나며 대경한 표정을 짓는 한편으로 눈을 치켜떴다. 극명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2차장 선우종이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보이는, 일어나 선 차은성.
양손을 들어 상의의 붕대를 서둘러 풀기 시작했다.
붕대를 다 풀고 난 후.
차은성이 상의 안쪽에서 바디 카메라와 집음기 등 일련의 장비를 떼어 냈다.
2차장 선우종은 차은성의 행동에 영문 몰라 했다.
“…….”
차은성이 2차장 선우종을 바라보았다.
“자백!”
“…….”
“아주 잘 들었습니다.”
순간.
“커허억!”
2차장 선우종이 숨넘어갈 것 같은 다급성을 삼켰다.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함정이다!
차은성의 덫에 자신도 모르게 걸려들고 말았다.
차은성은 2차장 선우종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2차장 당신이 이중 스파이라는 심증은 있었는데, 이중 스파이임을 입증할 수 있는 단서나 증거가 없어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입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다 밝혀…….”
선우종은 자신이 차은성에게 당했음을 깨달았다.
―NIS 2차장.
그 자리는 1차장과 함께 NIS의 2인자를 의미한다.
요직 중 요직으로, 그 자리에 있는 선우종이 이중 스파이라는 것을 밝히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중 스파이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우종은 자신이 이중 스파이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남겨 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부득불 2차장 스스로 자신이 이중 스파이임을 밝히게 만들어야 했다.
위장과 변장은 차은성의 특기 중 하나!
차은성은 선우종을 대상으로 일종의 몰카를 계획했다.
“다들 올라오시죠.”
차은성의 말에, 선우종은 매우 당황했다.
타타탁.
일단의 이들이 빠르게 3층 복도로 올라왔다.
최관우. 선임 팀장, 정가연, 감찰실 직원들 등.
그 수가 꽤 많았다.
그들 중 정가연과 감찰실 직원들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다들 설마 했다.
이제 곧 원장이 되는 2차장이 이중 스파이였다니.
방금 전.
선우종이 자백하는 영상을 직접 보고 듣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정가연은 재빨리 선우종에게 걸어가 앞에 서며 말했다.
“대단히 유감이에요. 2차장님.”
그녀는 성난 목소리로 말하며 주변으로 모여 서는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체포해.”
“네.”
“예.”
직원들이 대답하며 2차장 선우종에게 다가갔다.
* * *
잠시 뒤.
감찰실 직원들이 선우종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정가연은 복도 끝에 서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네, 네.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사이.
차은성은 최관우와 선임 팀장에게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하하하. 별말을 다 하는군.”
“최 팀장님을 통해 말을 듣긴 했지만, 진짜였을 줄이야.”
선임 팀장은 등골이 서늘한지 정색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차장이 이중 스파이였고, 그의 명령에 자신들이 차은성을 죽였으면 어쩔 뻔했는지.
“모든 것이 최 팀장님 덕분입니다.”
차은성이 최관우에게 고마워했다.
회사 타격 팀 팀장들 상당수가 최관우의 후임이었다. 최관우가 선임이자 사수로 예의 팀장들을 교육 및 훈련시켰었다.
그런 이유로 타격 팀 팀장들을, 그중에서 선임 팀장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한 편의 멋들어진 연극!
그것으로 2차장 선우종을 잡은 차은성이었다.
* * *
며칠 후.
조혜선이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정원을 바라보았다.
멍한 모습이었다.
차은성 때문에 쓰러져 입원했었다. 그 후 퇴원했지만.
조혜선은 지금처럼 하루 온종일 정신 줄을 놓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정병훈을 비롯하여 가족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누군가가 걸어오는 기척을 알아챈 듯.
의자에 앉아 있던 조혜선이 돌아보았다. 집에서 가사를 도와주는 아주머니.
그녀가 다가와 서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 심부름이라고…… 회사 직원이 사모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조혜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였다 든 후 뒤돌아섰다.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뜻밖에도 정가연이 앉아 있는 조혜선에게 걸어가 서더니.
“안녕하세요. 정가연이라고 합니다.”
공손하게 인사했다.
“무슨 일로 날 만나려고 한 거죠?”
조혜선이 힘없이 물었다.
정가연은 방긋 웃더니 말없이 상의에서 폰을 꺼내 조혜선에게 내밀었다.
조혜선은 영문 몰라 했다.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정가연을 바라보았다. 정가연은 밝게 미소 지으며 조혜선에게 말했다.
“단축 번호 1번을…… 은성이 받을 겁니다.”
순간.
조혜선이 엄청 놀라며 눈을 치떴다.
쩍.
무의식적으로 크게 벌린 입이 조혜선이 얼마나 놀랐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 * *
잠깐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조혜선이 폰을 오른쪽 귀에 댔다.
“으, 은성아!”
더듬거리며 급히 아들 차은성을 부르는 모습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모성애가 물씬 풍겼다.
* * *
꽤 떨어진 한 주택 옥상.
차은성이 망원경으로 모친 조혜선을 보며 무선으로 통화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그래, 그래.”
“전처럼 찾아뵙기는 힘들지만. 지금처럼 간간이 안부 전하겠습니다.”
“은성아…….”
조혜선은 아들 차은성은 몹시 걱정했다.
NIS의 일을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차은성은 자신을 생각해서 말하는 모친 조혜선의 말에.
“저, 이미 퇴직했어요.”
라고 말하며 모친 조혜선을 안심시켰다.
* * *
두 달 후, 북관동 모 카페.
차은성은 최관우를 마주하고 앉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상황이 그렇게 안 좋습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최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30일 내로 미군이 철수하기로 결정했어. 그 때문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 공관들 역시 철수 준비에 들어갔어.”
“흠. 그렇담 상황이 심각하겠군요.”
“반군의 공격이 너무 거세. 정부군이 일방적으로 밀리며 속속 반군에 항복 중이야. 지금의 기세라면 수도가 반군들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은 곧이야.”
최관우는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설명했다.
“……문제는 수백여 명의 우리 교민들이 있다는 거야. 현재 공항이 폐쇄됐어. 미군 애들은 지들 철수하느라 다른 나라의 철수를 도와줄 여유가 없어.”
“그래도 육로로 수백여 명을 바로 옆 나라로 대피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큽니다. 이동 중에 반군이 장악한 지역을 비스듬히 통과해야 한다는 건…….”
“그래서 자네 도움이 필요해.”
“흠.”
“반군 쪽에서 얘기가 가능한 놈을 찾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들이 장악한 지역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최관우는 이면 협상을 통해 통행 안전을 도모하려 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동 수단은 충분히 확보하셨습니까?”
“일단 버스란 버스는 모조리 다 구하고는 있지만. 워낙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이다 보니 버스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하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최관우의 말에, 차은성이 눈을 반짝였다.
“정부군 애들 장비를 빼돌리면 어떨까요?”
차은성의 말에 최관우가 흠칫거렸다.
“정부군 장비?”
“네. 반군에게 밀려 속속 항복 중이라면 정부군이 가진 장비는 사실상 버리는 거잖습니까? 그러니 정부군 장비를 관리, 운용하는 놈에게 달러를 좀 쥐여 주면 정부군이 보유한 이동 장비를 넘겨줄 것도 같은데…….”
차은성이 말끝을 흐렸다.
최관우의 눈이 반짝였다.
“나쁘지 않은데. 어차피 정부군 놈들. 장교나 일반 사병이나 국외로 도망치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으니, 정부군의 장비에 일절 관심을 주지 않을 거야.”
“일단은 최대한 빨리 칸다바르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움직여 주는 건가?”
최관우의 기대 어린 물음에 차은성이 씩 웃었다.
“당연히 움직여야죠.”
“고맙네.”
“별말씀을요.”
차은성이 대답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수 초 후.
차은성이 카페를 나오며 급히 이창희에게 전화했다.
“지급이야. 다 불러 모아.”
“네에에. 팀장님.”
“서둘러.”
“알겠습니다.”
차은성은 이창희의 대답에 서둘러 귀에서 폰을 뗐다. 그리고 상의에 집어넣으며 도로로 돌아섰다.
차은성은 눈에 띄는 빈 택시를 보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서둘러야 한다.
Pressing Strategy!
《NIS의 천재 스파이》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