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94)
“끄응.”
고든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관련 한국 정부 부처와의 협의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안 유지가 마음에 걸리는데…….”
고든이 차은성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실이나 관련 정보의 은폐가 어려움을 거의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 같다.
당연히!
보안 유지가 장난이 아닐 것이다. 엄청 힘들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차은성에게는 꼭 필요했다.
“한미 연합 사령부를 통해 국방부나 ADD에 바로…… 아마 주한 미국 대사가 슬쩍 청와대를 찾아 협조 요청을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무조건 최대한 빨리, 확보해 주었으면 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고든이 기막혀 했다.
“아니. 아직 한국군에 실전 배치가 되지 않은, 성능 테스트 중의 시제품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고든이 항의조로 말했다.
구하기가 엄청 어려울 것이라고 내심 판단한 모양이다.
차은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만.”
고든은 황당함에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차은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난, 원하고.
넌 내가 원하는 것을 무조건 충족시켜 줘야 해.
차은성이 그런 무언의 눈으로 고든을 보았다.
흔한 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고든이다. 자국 군에도 아직 배치하지 않은 시제품을, 달라고 한다고 덜컥 내줄 리가 없다.
100%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자면 월터 부국장에게 보고하는 수밖에 없다.
고든이 차은성에게 물었다.
“꼭 그것이어야만 합니까? 다른 것은 안 됩니까? 미국 내에 유사한 무기가 있을 것 같은데…….”
고든이 말끝을 흘리며 대용 무기를 언급했다.
차은성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벌써 잊었습니까? 한국 ADD 독점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내에서 구할 수 없다!
차은성이 그렇게 말하며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고든은 어쩔 수 없었다.
“휴우.”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일단 상부에 말은 해 보겠지만, 구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고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은성이 말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합니다!”
차은성은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무조건 구해 와!
차은성의 무언에 고든은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듯이 이마에 댔다.
머리가 넘 아프다!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는 듯한 고든의 모습에, 차은성은 내심 실소했다.
‘후후후.’
아마 엄청 힘들 것이다.
ADD.
한국 국방과학연구소가 그렇게 만만한 기관이 아니다.
미국 측에서 달라고 한다고 줄 리가 없다. 그럼, 결국에는 ADD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필요로 하는 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협조는 필수다.
싱그레.
차은성이 내심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고든이 모르긴 몰라도 엄청 고생할 것이다.
그 고생이 눈에 선하다.
그리 나쁘지 않다.
고든을 적당히 길들이고, 필요로 하는 무기를 확보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 * *
수십여 일이 지났다.
그동안 차은성은 일절 움직이지 않았다.
하비에와 그의 팀 동향을 살피는 한편, 루이 고머트의 동정과 그의 주택 동향 역시 살폈다.
토미는 루이 고머트의 주택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계 태세를 살폈다.
AOA에서 루이 고머트를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다.
마린 레이더스.
차은성은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호크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린 레이더스의 동향을 지켜보려고 했다.
마린 레이더스가 만만한 이들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고든이 차은성에게 각별히 강조했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완벽한 테러리스틉니다. 그것도 프로급이죠. 그들이 루이 고머트를 지킨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루이 고머트를 죽이지 못합니다. ……저택 잠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고든은 주의를 촉구했다.
차은성은 그런 고든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귀담아들으며 경각심을 가졌다.
* * *
토미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이 고머트와 그의 저택을 호위 및 경계하는 경호 인력들.
그들이 어느새 긴장이 풀려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수십여 일 전에는 다들 칼날처럼 예리한 눈빛을 번득였다. 긴장한 모습으로 호위와 경계에 있어 한 치의 허술함도 없었다.
철통같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엄중하고 삼엄한 경계 태세를 갖췄다.
당시.
그들 모두 차은성이 루이 고머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경계에 만전을 기했다.
다들 차은성이 저격보다는 저택 내부로 잠입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여 철저히 대비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며 아무 일이 없자, 차츰 경계를 풀고 안일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보기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토미는 그들을 몇 번이나 다그치며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 다시 안일해지고 해이해져 버렸다.
토미 터버빌의 직속 부하들.
마린 레이더스 두 개 팀, 스무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이 고머트를 호위, 경계하는 경호 인력에게 물들어 버린 것처럼 느슨해졌다.
* * *
토미 터버빌이 루이 고머트의 저택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자, 맷 바튼이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토미는 맷 바튼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날 기다린 건가?”
물으며 토미가 바튼에게 걸어갔다.
“그게…….”
맷 바튼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에 이르러 서는 토미를 바라보았다.
“루이 고머트가 취미인 승마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바튼의 말에.
“뭐?”
토미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차은성의 잠입이나 저격과 같은 일은 없을 거라고…… 고집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무리 안 된다고 말해 봐도 도통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튼은 답답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의 말에, 토미가 인상 썼다.
마음에 안 든다!
경호 인력처럼 루이 고머트 역시 안일에 젖었다. 그의 목숨을 지키려 이제까지 자신과 부하들이 동분서주하였는데…….
토미는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지그시 누그러뜨리며 성난 눈빛을 띠었다.
루이 고머트에게.
아무리 안 된다고.
아직은 취미인 승마를 즐길 때가 아니라고.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종종.
윗대가리라 부르는 이들 중에 그런 자가 몇 있다.
부하들에게는 보안에 각별히 신경 쓰고 유의하라고 당부하고.
실상 자신은 보안 규정을 아예 지키지도 않고 개무시한다.
“음…….”
토미는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루이 고머트가 그와 같은 윗대가리 중 한 명인 듯한데.
‘하지만…….’
토미는 생각해 보았다.
루이 고머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
‘만약! ……차은성이 잠입하려고 했더라면 이미 오래전에 했어야 해.’
루이 고머트의 저택 주변이 저격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는 점을 토미가 상기했다.
위장을 위한 엄폐물, 저격이 가능한 각도 등.
저격을 위한 필수 요건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는 지형 조건이다.
그 때문에 토미는 마음 한편으로 저격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았다.
저격에 관해서는 안심해도 된다. 저격당할 위험도가 현저히 낮다.
바튼이 생각 중인 토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승마라면 저택에 딸린 울타리 내에서겠지?”
토미가 반문했다.
“네.”
“그렇담 하라고 해. 단! 주변 경계는 철저히! 알겠지?”
“그래도 되겠습니까?”
맷 바튼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눈치다.
“주변 지형은 현실적으로 저격이 어려워도 너무 어려워. 그러니 경계만 확실히 선다면 울타리 내에서 말을 타는 것은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야.”
“그렇담…….”
바튼이 말을 흐렸다.
토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차은성 그자가 루이 고머트를 죽일 생각이 없는 걸까?”
“글쎄요. 죽이려고 했다면 이리 오래전에 시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혹시 몰라. 우리를 방심시키려고 지금까지 내버려 둔 것인지도 말이야.”
토미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럴 리가요.”
“아무튼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해. 다들 해이해졌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저격 포인트가 될 만한 곳에는 우리 애들 꼭 배치해 둬.”
“차은성이 나타나면 곧바로 제거하실 생각이십니까?”
바튼의 말에 토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미가 재차 말했다.
“언제 차은성이 나타날지 모르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겁니다. 틀림없이 애들이 적잖게 불만을 가질 텐데.”
“…….”
“차라리 해당 포인트 인근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여 24시간 감시하고. 우리 애들을 비상대기조로 돌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바튼의 말에, 토미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애들 교대는 확실하게 시켜 줘. 불만 적게 나오게.”
“네.”
바튼의 대답에, 토미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바람을 담아 중얼거리는 토미에게 바튼이 다시금 말했다.
“차은성이 루이 고머트를 모르는 것이 분명합니다. 알았다면 이미 움직였을 겁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루이 고머트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토미가 대꾸하며 슬쩍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씨익.
그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토미 역시 마음을 놓고 있었다.
수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 차은성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라도 밤에 잠입할까 봐 야간에 경계에 만전을 기했다.
야간에 경계를 서는 이들로 하여금 칼같이 긴장을 바짝 세우게 하고 경계에 흐트러짐이 없도록 단단히 단속했다.
한데.
차은성의 잠입이 일절 없었다. 저격 시도 역시 없었다.
이미 저격이 가능한 몇몇 포인트를 점검 및 확보하여 팀원들로 하여금 감시하게 했었다.
만약 차은성이 해당 저격 포인트에 나타난다면 그 즉시 부하들로 하여금 차은성을 사살하게 할 작정이었다.
‘음…… 찜찜해.’
마음 한구석으로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다. 뭔가 남아 은근 자신의 신경을 자극한다.
‘아무 일 없겠지.’
토미는 내심 중얼거리며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역시 나태해져 있음을 토미는 깨닫지 못했다.
* * *
이틀 후, AM 11시.
저택에 딸린 울타리 내에서 루이 고머트가 한 마리 흑마의 등에 앉아 천천히 크게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쯧!”
루이 고머트는 혀를 차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울타리 내에서 말을 타려니 답답하다. 예전처럼 말을 타고 저택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달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