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65)
아디오스 타이완
장샤오츠의 말대로 CIA가 미 국무성을 통해 타이완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이 타이완에 있는 것에 장샤오츠가 속한 타이완 법무부 조사국 고위 인사들이 부담을 느끼고.
CIA를 핑계로 조속한 출국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은성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습니까?”
“이틀!”
장샤오츠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틀 후에는 출국하도록 하죠. 대신, 그동안 CIA 쪽은 확실하게 틀어막아 주었으면 합니다.”
“좋소.”
장샤오츠가 선선하게 받아들였다. 도움을 받았으니 그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럼.”
차은성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장샤오츠가 옆으로 돌아서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차은성은 담배를 피우며 시야에서 천천히 멀어지는 장샤오츠를 바라보았다.
“이틀이라…….”
빠듯한 시간이다.
* * *
타이베이 국제공항 출국장.
장샤오츠가 미리 손을 써 놓은 모양이다. 출국 수속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끝났다.
차은성은 탑승 게이트를 지나 항공기에 탑승했다.
일등석 창가에 앉으며 돌아보았다. 창밖으로 공항 전경이 보였다.
“후우우.”
차은성은 심호흡하며 지난 이틀을 생각했다.
엄청 바쁘게 보냈다.
‘절반의 성공인 건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미국 화교 조직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기대가 무위로 돌아갔다.
그래도 양승조와 패도맹주, 황하회주가 도움을 주겠노라고 약속해 주었다.
그런 이유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흠.”
차은성은 침음을 흘렸다.
타이완에 있는 동안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큰 난리를 겪은 기분이다.
설마 당우희가 양승조의 암살 배후에 있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차은성은 천천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 * *
그리 오래지 않아.
탑승한 항공기가 활주로로 이동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관제탑과의 교신을 마친 항공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더니 하늘 높이 솟구쳤다.
* * *
그 시각.
“안 돼에에에!”
양령이 벽 전체가 유리로 된 곳에 서서 작은 점이 되어 가는 항공기를 바라보며 마구 고성을 질러 댔다.
뒤에 서 있는 두 심복 부하가 양령의 모습에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심복 부하가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가는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이상하다는 눈으로 양령을 돌아보았다.
양령은 도망치듯 출국한 차은성이 탑승한 항공기를 바라보며 계속 고래고래 고성을 질렀다.
“이 개에에…….”
화가 이만저만 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말 한 마디 없이 도망치듯이 출국한 차은성이다.
지룽 항에서 있었던 일을 뒤늦게 알았다.
당중산, 당우희, 좌종당, 류사오칭, 청방, 당가의 조직원들.
이제까지 까맣게 몰랐다.
차은성이 자신에게 일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진행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알게 되었을 때.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차은성에게 이만저만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살짝 귀띔이라도 해 줄 수 있는 일인데.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곤 쫓기는 사람처럼 부리나케 출국해 버렸다.
마치 자신에게서 멀리 도망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이유로 양령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이성을 잃고 계속 고래고래 차은성에게 욕을 퍼부었다.
개 새끼, 소 새끼 등등.
그 모습에.
두 심복 부하가 서로 돌아보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못 말려!
두 심복 부하가 그런 속내를 드러냈다.
* * *
항공기가 정상 비행고도를 유지하자 차은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은성은 좌석 사이에 있는 통로로 나와 곧장 기내 화장실로 갔다.
* * *
화장실 문을 걸어 잠갔다.
철컥.
차은성은 이어 돌아서더니 앞에 있는 변기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상의에서 약병을 꺼냈다.
뚜껑은 하얀 플라스틱이었고 몸체인 병은 검은 플라스틱인 약병.
차은성은 손에 쥔 약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이제까지 억눌러 왔던 내면의 악마가 눈을 뜬다.
지금까지 늘 조마조마했었다.
혹여 약을 먹는 주기를 놓쳐 내면의 악마가 깨어나지나 않을까, 마음 한구석으로 두려워했었다.
차은성의 얼굴은 무척 경직되어 있었다.
보기에 소나무 껍질이 연상되는 경직이었다. 두 눈동자에서 진중한 빛이 어른거렸다.
약을 버림으로써 내면의 악마를 깨우려는 차은성.
“내가 과연 잘하는 것인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지…….”
차은성은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없었다.
혹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어렸을 때.
박영광의 도움으로 병원을 나오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다.
이후.
간신히 약물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내면의 악마를 억눌러 왔다.
그리고 NIS에서 요원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몇 번 내면의 악마를 깨웠다. 그때마다 그는 항상 후회했다.
“음…….”
차은성의 다문 입술 사이에서 나직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더니.
천천히.
차은성이 손에 쥔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약병의 약을 변기에 버리기 시작했다.
하나둘.
다수의 캡슐 약이 변기에 떨어지고 이내 둥둥 떴다.
차은성은 손을 뻗어 변기의 물을 내렸다.
쏴아아아.
그리고 손에 쥔 빈 약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세면대로 돌아섰다.
차은성이 수도를 틀자.
쏴아아아.
시원하게 물이 쏟아졌다.
차은성은 양손을 씻으며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비친 자신의 얼굴.
낯빛이 어두웠다. 두 눈동자에는 언제부터인가 불안이란 감정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 * *
좌석으로 돌아온 차은성은 여승무원에게 얼음을 띄운 콜라를 부탁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여승무원이 콜라를 가져다주었다.
차은성은 느긋하게 콜라를 마시며 생각했다.
항공기가 LA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승패는 처음부터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살 확률보다는 죽을 확률이 높다.
그걸 알면서도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
“가만히 앉아서 죽으나 발버둥이라도 치다가 죽으나. 죽는 것은 매일반이야.”
차은성은 콜라를 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고 싶다. 그 피해가 크면 클수록 자신에게 이익이다.
참새도 죽을 때는 잭! 하고 운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할까?
자신을 죽이려는 AOA!
그들이 자신을 건드린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지 필히 중명해 주고 싶다.
차은성은 콜라를 마시며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창밖.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깔렸다.
세상 그 어떤 화가도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환상적인 광경을 그려 내지는 못할 것이다.
차은성은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스스로 사지로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남은 콜라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런 다음.
빈 컵을 내려놓고 좌석을 뒤로 눕혔다. 그리고 두 눈을 내리감으며 잠을 청했다.
LA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다.
* * *
LA 국제공항 입국장.
미국 서부의 관문 공항으로 불린다.
매일, 전 세계 각국의 수많은 이들이 LA 공항을 오간다.
차은성은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9.11 이후.
미국 입국 절차가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워졌다. 그런 이유로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차은성의 차례가 되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완만한 걸음으로 출입국 직원 앞에 다가섰다.
“패스포트?”
직원이 여권 제시를 요구했다.
차은성은 말없이 손에 든 여권을 내밀었다.
직원이 여권을 받아 들고 몇 장 넘기며 차은성을 힐금거렸다.
“이싸락?”
발음이 어려운지 직원이 넌지시 눈살을 찌푸렸다.
“예스.”
차은성이 간결하게 대꾸했다.
“베트남분이 무슨 일로 미국에 오셨습니까?”
“학회 세미나 때문에 왔습니다. 세미나가 끝나는 즉시 돌아갈 겁니다.”
차은성이 말하며 상의에서 미리 구매한 왕복 항공권 티켓을 꺼내 직원에게 슬쩍 보여 주었다.
―미국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차은성의 무언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회 세미나라면 학자일 것이다. 돌아갈 티켓을 구매한 것으로 보아 미국 내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 같다.
직원은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에 머물며 불법체류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직원이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감별기에 차은성의 여권을 갖다 댔다. 위조 여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곧
삑.
짧은 단발의 전자음이 울리며 감별기 상단에 작은 녹색 불이 들어왔다.
이상 없다!
직원은 여권을 떼며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직원이 여권을 내밀었다.
차은성이 여권을 받아 들며 간결하게 대꾸했다.
“탱큐.”
차은성은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완만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 * *
차은성은 공항에서 차를 렌트한 후 LA 도심을 향해 도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한참 후, LA 도심을 몇 분 거리에 두었을 때.
차은성은 한적한 도로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비상등을 켜고 운전석에서 내려 트렁크와 보닛을 열었다.
고장 났다!
그럼으로써 차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었다.
차은성은 도로가 한편으로 걸어가 서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차은성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 * *
꽤 시간이 지났다.
한 대의 레커차가 달려오더니 세워 둔 차 뒤에 이르러 정차했다.
끼익.
레커차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동양인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