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51)
화교 조직
차은성이 양승조에게 말했다.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는 상황이라면, 저는 죽음 속에서 생을 구하고 싶습니다.”
“흠.”
양승조가 침음을 흘리며 가만히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승산이 거의 없을 터인데.”
“승산을 보고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냐?”
양승조의 말에 차은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승조는 묵묵히 앞에 있는 찻잔을 들었다. 몇 모금 마시며 우를 돌아보았다.
정성을 들여 오랫동안 가꾼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네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아들인 네게 갚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전 이미 의부님께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차은성의 대답에 양승조가 시선을 바로 하며 찻잔을 내려놓더니 은성을 마주 보았다.
“은성아.”
“네.”
“난 두 아들을 두었다.”
“…….”
“큰아들은 영아일 때 죽었다. 그 흔한 분유 한 방울 먹이지 못했지. 그놈의 가난만 아니었더라면…….”
“그 애의 죽음에 난 삼합회에 투신했다.”
양승조는 아련한 눈빛을 띠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고, 몇 해 전에 난 또 아들을 잃었다.”
차은성은 양승조의 말에 침묵했다. 가타부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홍콩이 중국 정부에 반환된 이후, 삼합회 내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북경.
달리 중공이라 말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손을 잡으려는 삼합회 조직들이 생겨났다.
반면.
기존의 전통을 고수하며, 해 오던 대로 조직 활동을 고수하려는 조직들.
양 세력의 충돌은 사실상 기정사실이었다.
몇 해 전.
대만 암흑가에서 대규모 전쟁이 있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홍콩의 삼합회 조직들이 신안회를 앞세워 대거 대만에 진출했다.
중국 정부는 그들을 통해 대만 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였다.
그들에게, 사자방을 중심으로 대만 삼합회 세력이 강력히 대응했다.
홍콩 삼합회 세력의 대만 진출은 곧, 대만 삼합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도전이었고.
대만 삼합회 조직 뒤에 있는 대만 정부가 북경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홍콩 삼합회의 대만 진출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홍콩 삼합회 조직들과 대만 삼합회 조직의 격돌이었지만, 이면은 달랐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대만 정부의 전쟁이었다.
달리 항쟁이라고도 부르는 해당 전쟁에서 양승조의 유일한 아들인 양용이 사망했다.
차은성 역시 실전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였고. 그 점에 주목한 박영광이 기꺼이 항쟁 참여에 찬성했다. 그 결과 차은성은 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항쟁의 결과는 홍콩 삼합회의 패배였고. 그들은 대만에서 손을 떼고 홍콩으로 물러가야 했다.
이후.
홍콩 삼합회와 대만 삼합회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고 그 대치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는 소강상태이지만, 언제든지 기회만 오면 항쟁은 다시 발발할 수 있다.
흔히들 양안이라고 말하는 중국 공산당 정부와 대만 정부.
두 정부 사이가 나쁘면 나쁠수록, 양안 관계가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항쟁 발발 확률이 높아지고 관련 분위기가 고조된다.
현재 삼합회 초거대 조직은 크게 두 세력으로 갈라져 있다.
북경의 중국 공산당과 손을 잡은 측.
독립을 꾀하는 대만 측.
해당 두 세력은 암중 갈등 중이다.
마카오의 화용진처럼 중립을 표방하며 거리를 두려는 일부 조직도 있긴 하지만. 전체 삼합회 조직은 엄연히 말해 현재 양분되어 있다.
아슬아슬한 대치가 언제 유리처럼 산산이 깨어져 서로 피를 보게 될지 모른다.
일촉즉발!
그렇게 말해도 무방하다.
양승조가 차은성을 불렀다.
“은성아.”
“네.”
“나는 사자방의 방주다.”
양승조의 말에 차은성은 흠칫했다.
“사적인 일과 방주로서의 공적인 일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명분이 없는 일에 나서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양승조가 선을 그었다.
차은성은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삼합회의 내부 분열을 감안하면 양승조의 말은 타당하다.
홍콩과 대만.
삼합회는 이렇게 양분되어 있고. 양측 모두 공히 미국의 화교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사자방주 양승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홍콩 삼합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작은 빌미라도 주게 된다면, 그 즉시 항쟁이 다시 발발할지도 모르는 일!
양승조로서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곤란한데……. 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반드시 양승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미국 내의 화교 조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달랑 혼자서 맞서 싸우기에는 CIA와 그 위에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막강하고 엄청나다.
개인을 넘어 국가 단위라고 해도 섣불리 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거대하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질서에 다름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맞서 싸우려는 자신을 도와준다?
양승조로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닌 말로.
양승조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자방, 목숨, 가족 등등.
걸어야 할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또한 걸어야 할 것들이 하나같이 양승조에게는 소중하고 귀중하다.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안 되는 건가?’
실망감이 크다.
전 미국에 걸쳐 형성된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화교 조직망이 필요한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양승조라는 연결 고리가 은근 거절한다.
뜻한 바대로 되지 않는 것에 차은성은 내심 진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의부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차은성의 대답에 양승조가 가만히 바라보더니.
피식.
실소했다.
“은성아.”
“예.”
“네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구나.”
“네?”
차은성이 어리둥절해했다.
그사이.
양승조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나서서 말한다고 해도…… 미국의 화교들에게 은성이 넌 남이다. 형제가 아니란 말이다.”
차은성은 흠칫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을 보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양승조의 얼굴을 보아 도와주는 것이다.
양승조가 말했다.
“화교들이 은성이 널 도와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
“하지만!”
양승조가 말에 힘주었다.
“그들이 널 형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
“말은 달라진다.”
“…….”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양승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차은성이 알아챘다.
―형제.
삼합회의 전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전통의 제례 의식을 거치고.
몇몇 특정한 관계를 맺으면, 비로소 삼합회의 조직원이 된다.
그럼 형제로서 받아들여진다.
양승조가 침묵한 차은성을 보았다.
‘녀석.’
양승조가 불렀다.
“은성아.”
“네.”
“우리의 형제가 되어라.”
“의, 의부님.”
차은성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삼합회에 들어와라!
양승조의 말은 그랬다.
“안다!”
양승조가 힘주어 말했다.
“네가 삼합회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는 것을 알지만. 네가 우리의 형제가 되지 않는 이상!”
“…….”
“미국 화교들의 절대적인 협력과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침묵했다.
“은성아.”
양승조가 재차 불렀다.
“네.”
“난 널 양자로 입적하고 싶다.”
“의, 의부님!”
차은성이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들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아들이 되어 내 대를 이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양승조의 말에 차은성은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양자가 되어 사자방의 소방주가 되고 내 집안의 대를 이어라!
양승조의 제안은 차은성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럼 화교들이 널 자신들의 형제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면, 널 도와 달라는 내 말에 더 힘이 실리겠지.”
“…….”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잘 생각해 보아라. 그동안 난 미국 화교 쪽과…….”
양승조의 말에 차은성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이야. 예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돌연한 제의에 차은성은 혼란스러웠다.
* * *
좀처럼 볼 수 없는 커다란 연못.
산책로처럼.
나무로 만든 난간이 이리저리 종횡으로 나 있다.
차은성은 연못 중앙의 난간에 서서 수면을 바라보았다.
고심 중이다.
“양자라…….”
중얼거리며 미국 화교를 생각했다.
그들의 조직망과 절대적인 협력과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자면 의부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자방의 소방주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의부님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차은성은 곤혹스러웠다.
난감하다!
대를 잇는 것과 관련하여 몇몇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들과 맞서 싸우려면!”
차은성은 자신을 죽이려고 CIA의 전략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SOG까지 동원한 조직을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는 그들과 싸워 이길 승산이 없다.
애초부터 승산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노리고 모스크바로 가 세르게이를 만나고. 텔아비브로 날아가 이스라엘 군사 정보부 아만의 알 하르비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여 최소한의 도움과 협력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미국 화교 조직의 협력과 도움을 받아야 해!”
차은성은 힘주어 중얼거리며 확신의 눈빛을 띠었다.
그들과 맞서 싸우려면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미국 내의 화교 조직이다.
미국 내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임시 거주지?
차이나타운밖에 없다.
경찰이나 CIA 요원들이 자신을 찾아 차이나타운으로 들어올 경우.
차이나타운에 사는 모든 화교가 자신의 눈이 되고 귀가 되어 그들을 감시. 자신에게 위험을 알려 준다.
도피나 도주 역시 마찬가지다.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모든 화교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안전 가옥!
마음 놓고 쉴 수 있으며 지낼 수 있는 곳을 염두에 두면.
역시나 화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지간한 미국 대도시치고 화교들이 살지 않는 곳이 없다.
차이나타운이 없더라도 현지에서 사는 화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단!
그러자면 미국 화교 조직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수다.
안전 가옥 외에도 화교 조직을 통해 필요한 것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음…….”
한일자로 다문 차은성의 입술 사이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고심이 깊어지는 차은성.
의부 양승조의 제의를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그럴 경우…… 하아아아!”
차은성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다.
아들과 대를 잇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중국인들이다.
현재 중국의 남녀 성비 불균형도 남아 선호 때문이다.
그리고 대를 잇는 것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의 마지막 황조인 청조 중기부터 말까지.
해당 시기에, 이전에는 없었던 아주 독특한 풍속이 몇 생겼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풍속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