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36)
감찰실
대선이 끝나고 당선인이 결정된 이상, 판은 이미 뒤집어졌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은 현 대통령에서 당선인 이시목에게로 옮겨 간다.
“쯧.”
차은성은 낮게 혀를 찼다.
서울로 돌아가면 감찰실 사람들을 필히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후우우. 어쩔 수 없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로서도 수습 불가이니.”
조금 후회되긴 한다.
“내가 너무 막 나갔어.”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다중 성격 장애.
쉽게 말해.
다중 인격 장애와 유사하다.
외부 자극이라고 할 수 있는 주위 환경의 변화에 의해 한 사람에게서 다양한 성격이 나오는 질병이다.
마치 한 사람 몸속에 전혀 성격이 다른 몇몇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 때문에 달리 다중 인격 장애라고도 한다.
차은성은 주치의를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가면 한번 들러야겠어. 어차피 약도 떨어져 가니까.”
차은성은 중얼거리며 메일을 열려 했다.
자신이 미국에 있는 동안 어떤 메일들이 들어와 있는지 확인하려는데…….
멈칫.
차은성은 키보드를 치려는 손을 멈췄다.
지금 이용하는 노트북은 보안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흠.”
차은성은 침음을 흘렸다.
이어.
폰을 꺼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자신의 친우 최우성이 폰에 모종의 몇몇 앱과 프로그램을 원격으로 깔아 주었다. 개중에는 보안 관련 앱과 프로그램도 있다.
차은성은 폰과 노트북을 블루투스로 연결. 폰을 통해서 메일을 확인했다.
5통.
차은성은 일일이 확인했다.
세 개는 일상적인 광고 메일이었고 다른 두 개의 메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가 보낸 것이었다.
―와히브 빈 무샤드 왕자와 알 하르비.
차은성은 두 사람이 보낸 메일을 열어 눈으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차은성의 눈동자는 읽는 내용에 비례하여 빠르게 커졌다. 화등잔만 하게.
* * *
늦은 오후.
해가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국제공항은 불야성을 이뤘다.
대낮처럼 밝았다.
입출국과 관련하여 수많은 이들이 바삐 공항 안팎을 오갔다.
입국장.
양복을 입은 건장한 세 남자가 일렬로 서 있었다.
그들의 앞에.
여성 정장을 착용한 정가연이 서 있었다.
“들어오긴 했어?”
정가연이 좌를 힐긋거리며 묻자 좌측에 서 있는 남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확인했습니다, 계장님. 입국 수속에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
정가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면에 있는 유리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 *
몇 분 후.
가장 늦게 항공기에서 내리고, 느긋하게 입국 수속을 마친 차은성이 터벅터벅 유리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세 남자와 안면이 있는 정가연.
네 남녀는 보는 순간.
와락.
차은성이 인상 썼다.
‘이럴 줄 알았어. 왜 안 좋은 예감은 이러게 딱딱 잘 맞는 건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머릿속으로 감찰실을 생각했다.
차은성은 유리문으로 걸어가며 얼굴 표정을 밝게 폈다.
히죽.
유리문 너머에 서 있는 정가연을 바라보며 차은성은 환하게 웃었다.
그사이.
차은성의 두 눈동자에서 짓궂은 빛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 * *
차은성이 다가가자 센서와 연동된 유리문이 좌우로 열렸다.
스르르.
차은성이 열린 유리문을 지나치며 정가연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차은성이 오른손을 머리 높이 들었다. 그러곤 좌우로 흔들며 매우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연아! 가연아!”
모종의 오해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연인 정가연을 만나는 차은성.
딱 그런 모습이자 상황이었다.
한편.
정가연은 돌연한 차은성의 언행에 순간 당황했다.
동시에.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저 개자식이!”
차은성이 장난을 치며 자신을 물 먹이려 함을 모를 수 없다.
그사이.
정가연의 뒤에 서 있는 세 요원.
그들은 흠칫거리며 당황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들이다.
감찰 및 조사 대상인 차은성이 상관인 정가연을 마치 연인처럼 대한다.
세 요원은 마주한 상황에 영문 몰라 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일제히 앞에 서 있는 정가연을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계장님.
세 요원의 시선에 그런 무언이 담겨 있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승객들보다 늦게 입국 수속을 마친 몇몇 이들이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 높이 손을 들고 정가연에게 외치는 차은성을 보고는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연인을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이라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은성의 외침이 매우 큰 탓에.
다분히 오버하는 과도한 행동에.
그들은 피식피식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풉.”
“역시 젊음이 좋긴 좋아.”
얼마나 오래 헤어졌다 만나면 저럴까?
몇몇 이들은 호의적인 눈빛을 띠며 자신들의 걸음을 재촉했다.
* * *
차은성은 손을 내리며 거리낌 없이 정가연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그러며 입국장이 떠나가라 계속 소리쳤다.
“자기야아아! 나 왔어어어어!”
정가연은 기막혀 하며 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승객은 이미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예의 몇몇 이들과 차은성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없었다.
정가연은 흔한 말로 쪽팔려 고개를 숙이며 걸어오는 차은성을 흘낏거렸다.
‘저 개놈의 시끼가!’
펄펄 끓는 물처럼.
속이 부글거렸다.
매번 차은성과 맞닥뜨리면 이런 식이다. 감찰실을 엿 먹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동기인 자신을 갖고 놀려고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진짜 자신에게 무슨 흑심이 있어 그러는 것인지.
정가연은 내심 매우 혼란스럽다.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차은성이 일부러 저런다는 것.
감찰실을 물 먹이려 한다는 것.
‘내가 어쩌다 차은성 저 자식과 엮여 가지고. 이런 개쪽을!’
정가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까이 걸어오는 차은성을 재차 흘낏거렸다.
이윽고.
차은성이 정가연에게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서더니.
“날 기다렸어?”
빠르게 말하며 양손을 들었다.
그러곤 누가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정가연의 양쪽 뺨을 잡더니 적당한 힘으로 좌우로 잡아당겼다.
“아유. 우리 가연이, 예뻐서 어떻게 해. 이렇게 날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면 이 오빠가 하루라도 빨리 오는 건데.”
차은성의 장난기 가득한 언행에 정가연은 황당함을 가눌 수 없었다.
그녀는 우거지상을 하며 극렬한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뭐라 고함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보자.
그렇게 무언으로 말하듯.
정가연은 차은성을 직시했다.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
정가연의 모습은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정가연의 뒤에 서 있는 세 요원은 흠칫거렸다.
‘미친!’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래?’
‘계장님을 상대로 저런 황당한 짓을!’
정가연은 입국장을 지나가는 몇몇 이들을 힐긋거렸다.
은근 그들을 의식한 그녀다.
여기서 차은성과 주먹다짐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몇몇 이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정가연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부글거리는 속을 꾸욱 눌러 참았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는 차은성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몇몇 이들만 아니었다면!
정가연이 극렬한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며 입국장 바닥에 양탄자처럼 깔릴 것 같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손 치워!”
으르렁거리는 듯.
정가연이 엄청 사나운 눈으로 차은성을 쏘아보았다.
그녀가 한 성격 함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은성은 태연했다. 당연히 정가연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아유. 우리 가연이, 그동안 오빠 생각 하느라 살이 많이 빠졌네, 빠졌어. 볼살이 이게 뭐야? 응?”
차은성이 정가연의 시선과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정가연을 계속 자극했다.
그러자 정가연이 예의 낮은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손 놔!”
차은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가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며 정가연만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란 피우면 사람들 이목을 끌게 돼.”
순간.
“이!”
정가연이 엄청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살기 띤 눈빛을 번쩍였다.
몇몇 이들.
차은성이 그들의 이목을 믿고 정가연을 도발한 것 같다.
그사이.
정가연의 뒤에 서 있는 세 요원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얼굴을 바로 하는 차은성을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가연 계장.
감찰실에서는 여자로 치지 않는다.
사내 여럿 잡아먹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을 호랑이.
감찰실 직원들은 그런 존재로 정가연을 치부한다.
그런데 차은성이 그런 정가연의 뺨을 양손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세 요원은 마치 자신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부정의 눈빛을 띠었다.
그러는 동안 몇몇 이들이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차은성은 재빨리 정가연의 뺨을 당기던 양손을 놓으며 서둘러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믿고 있던 몇몇 이들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으아아아!”
정가연이 고함을 지르며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차은성에게 달려들었다.
휙.
차은성의 얼굴을 향해 내지르는 정가연의 오른손 주먹.
차은성은 재빨리 뒷걸음치며 거리를 벌렸다.
정가연의 주먹이 허공을 스치고.
“야아아. 장난이었어. 장난이었다고.”
차은성이 급히 말했다.
“뒈져 버려!”
정가연은 차은성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차은성을 패 죽이고 싶은지 살기를 풀풀 날리며 주먹과 발을 마구 날리고 걷어찼다.
휘, 휘이익.
차은성은 신속한 동작으로 정가연의 주먹과 발을 피하며 계속 정가연과 거리를 벌렸다.
“야아아. 이건 아니지.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입 닥쳐!”
정가연이 고함쳤다.
차은성은 뒤돌아서더니 이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연아, 진정해. 진정하라고.”
“거기 안 서!”
정가연이 고함치며 차은성을 뒤쫓았다.
세 요원은 도망치고 뒤쫓는 차은성과 정가연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돌아보았다.
곤혹스러운 세 쌍의 눈동자.
“어쩌지?”
“글쎄.”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세 요원은 말을 주고받으며 재차 차은성과 정가연을 바라보았다.
차은성은 넓은 입국장을 누비듯 원을 그리며 뱅뱅 맴돌았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다.
정가연이 그런 차은성을 급히 뒤쫓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서어! 서라고! 이 시팔 놈아!”
“진정해. 진정하라고, 가연아.”
차은성과 정가연이 주고받는 외침이 한동안 입국장을 맴돌았다.
* * *
10여 분 후.
한 대의 차량이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왔다. 차량은 곧바로 도로를 주행하며 서울 방면으로 향했다.
해당 차량 뒷좌석에 차은성과 두 요원이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