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25)
이중 스파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만약 표현태 후보가 당선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가 우리를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정치적 약점이 우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홍은주의 말에 이응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이번 일을 언론에 알리기라도 하자는 겁니까?”
이응천의 물음에 차은성이 짤막하게 힘주어 말했다.
“증권가 찌라시!”
순간.
“흑.”
“응?”
조영국, 이응천, 홍은주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차은성이 한 명씩 바라보며 말했다.
“증권가에 적당히 흘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자연스럽게 언론에서 냄새를 맡게 될 겁니다. 그리고 상대 후보인 야권의 대선 후보들 역시 그들 나름으로 알아보려고 할 거구요.”
“은성아!”
이응천이 목청을 높였다.
차은성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 말했다.
“증권가에서 나도는 말이니. 우리가 흘렸다고 생각하긴 어려울 겁니다.”
“…….”
“아마도 경찰이나 검찰 쪽에서 흘렸다고 볼 수도 있죠. 그도 아니면 회사 내부에 있는…… 야권과 끈이 이어진 모 직원이 흘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차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위험부담이 너무 커!”
이응천이 재차 목청을 높이며 차은성의 의견에 반대했다.
차은성은 이응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배.”
“…….”
“허종호 의원이 조덕팔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건네받았다는 걸 표현태 후보가 알았건 몰랐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흠칫하더니 급히 물었다.
“무슨 소리야?”
“이유를 불문하고 표현태 의원은 이번 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조덕팔의 불법 자금이 선거 캠프로 들어와서 이미 선거 관련 활동으로 쓰였습니다. 그 대가로 조덕팔은 권력의 비호를 받았고요.”
“…….”
“표현태 후보가 몰랐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사람이! 현직 경찰관이 죽었습니다.”
“…….”
“그렇다면! 응당 표현태 후보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옳습니다.”
“…….”
“자신이 몰랐다고 말한다고 해서 면죄부나 면책이 되는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차은성은 단호한 눈빛을 띠었다.
용납할 수 없다!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그로 미루어 보아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이응천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을 다물고 가만히 차은성을 보더니.
“휴우우. 나도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
한숨을 쉬며 은근 포기라는 속내를 내비쳤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영국과 홍은주가 서로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 서로 동의한 두 사람이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증권가에 찌라시로 흘리기만 하면 다 잘될까요?”
“홍 팀장 말이 맞아. 아닌 말로, 다 거짓말이다, 난, 모르는 일이다, 라고 표현태 후보가 딱 잡아떼면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워.”
조영국은 걱정했다.
사실상 차기 청와대 주인으로 내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표현태 후보다.
잡고 싶다고 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이가 아니다. 가진 권력이란 막강한 힘은 사실상 무소불위에 가깝다.
홍은주 팀장과 조영국은 그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씨익.
차은성은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모르게 음험한 구석이 있는 미소를…….
* * *
며칠 후.
발신인 불명의 서류 봉투 하나가 야권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유성갑의 선거 캠프에 송달되었다.
봉투 겉면에는 유성갑 의원 친전이란 글 외에 필히 유성갑 의원이 직접 개봉, 읽어 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몇 시간 후.
유성갑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청했다.
그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표현태 후보, 허종호 의원, 대종 로펌, 조덕팔의 커넥션을 밝혔다.
그의 발표에 기자들은 진실 여부를 두고 공방을 벌였고. 그날 저녁 뉴스 시간 직전까지 진위 여부를 판명하기 위해 각 언론사가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 경찰서의 교통과 소속 경찰관들이 대거 휴가인 점을 알아내고는 진짜라고 판단.
그날 저녁 뉴스 시간대의 첫 기사로 유성갑의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그 결과,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선 기간 중의 엄청난 이슈라 대번에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장장 열흘 동안, 대선이 거의 끝날 때까지 야권이 이를 물고 늘어졌다.
대선 이슈가 된 해당 커넥션에 여론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치 평론가들이나 관련 전문가들 모두.
표현태 후보가 대선에서 치명적인 악재를 만났다고 말하며 그의 낙선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 * *
옥상.
박영광이 홀로 서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고 발치에는 서너 개의 꽁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저벅저벅.
차은성이 뒤쪽에서 천천히 박영광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그놈의 담배 좀 그만 피우세요! 네에?”
차은성이 짜증 내며 박영광의 왼쪽으로 다가갔다.
이내.
다다르며 박영광과 나란히 섰다.
박영광이 차은성을 힐금거리더니.
“너, 많이 컸다.”
뜬금없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차은성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전재원 순경 관련 보고를 박영광에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박영광의 연락을 무시하듯이 응하지 않았다.
그러니 박영광이 화깨나 났을 것이다.
“왜 말이 없어?”
박영광이 분노를 누른 목소리로 물었다.
“화내시려면 내시고요. 때리시려면 때리세요.”
“배짱이냐?”
박영광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는 재주, 전 없거든요.”
“너!”
“보고드리면 관여하지 말라고, 손 떼라고 말씀하실 게 뻔한데, 왜 보고드리겠습니까?”
“…….”
“그리고 연락받아 봐야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길길이 뛰면서 화내실 게 뻔한데…….”
“그래서 내 연락을 씹었다?”
“사직서 제출하면 되죠?”
차은성이 박영광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박영광이 멈칫하더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어…….”
“이제 미련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뭐 나갈 수밖에요.”
차은성이 마음을 비운 듯이 말했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응?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은성이 네가 지금 딱 그 짝이야.”
“그럼 저, 감옥 보내시겠어요? 무슨 죄목을 생각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너! 지금 내 부아를 돋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박영광이 차은성에게 돌아섰다.
단단히 화난 것 같다.
“아닌데요.”
차은성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아우! 이걸 그냥 콱!”
박영광이 거칠게 피우던 담배를 발치에 집어 던졌다.
그러곤 오른손을 어깨 높이로 들며 주먹 쥐었다.
당장이라도 차은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칠 기세였다.
차은성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태연하게 박영광에게 돌아섰다.
이어.
서 있는 박영광의 발치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담배꽁초 버리면 경범죕니다.”
“아우우! ……이걸 그냥!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자니 내 속이, 속이 아니고!”
박영광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엄청 신경질 냈다.
차은성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나와 상관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태연자약하다.
아직 봉투에 관해 모르는 박영광이다.
뭐, 모르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차은성이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는 동안.
박영광이 주먹을 내리고 정면으로 돌아섰다. 그러곤 두어 번 심호흡했다.
“후, 후욱.”
심신을 추스르는 박영광.
차은성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 * *
잠시 뒤.
심신을 추스른 박영광이 USB를 하나 꺼내더니 차은성에게 건넸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박영광의 말에 USB를 받아 든 차은성이 움찔했다.
몇십 초 후.
차은성은 폰의 액정을 보았다.
마흔 조반의 중년인.
“이름은 세바스찬 박. 교포 혼혈 2세로 현재 미 해군 정보부 선임 분석관으로 근무 중이다.”
“…….”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북한 관련 미 해군 정보부의 정보를 건네주는 이중 스파이였다.”
“…….”
“그런데 이틀 전에 FBI에 꼬리가 밟히며…… 체포 직전에 가까스로 도주했다.”
차은성은 박영광의 말에 흠칫했다.
예상 밖이다.
미 해군 정보부 내에 NIS의 이중 스파이가 있을 줄이야.
지금까지 까맣게 몰랐다.
보나 마나.
NIS 내부에서 1급 기밀로 분류, 세바스찬 박을 특별 관리 했을 것이다.
들키면 미국과 외교적으로 아주 불편해지니깐.
그런데 FBI에게 덜미가 잡혀 버렸다.
박영광이 계속 말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모처에서 우리 요원들이 그를 보호 중인데, 상황이 녹록하지가 않아.”
“…….”
“FBI가 지금 세바스찬 박을 체포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이 잡듯이 수색 중이다. 그 바람에 현재 고립되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어.”
“그럼.”
박영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세바스찬 박을 서울로 데려와!”
차은성이 박영광의 눈치를 보았다.
“상대가 FBI라면 머리깨나 아파집니다.”
“협상을 말할 것 같으면 아예 입도 벙긋하지 마라!”
단호한 박영광이었다.
“하지만…….”
차은성이 입을 떼자마자 박영광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FBI와 접촉해 보았지만 씨알도 안 먹혔어. 미국 입장에서 보면 세바스찬 박은 국가 반역자라 아예 협상의 협 자도 꺼낼 수 없었어.”
“…….”
“이대로 세바스찬 박을 놔둘 경우, 그가 FBI에 잡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시간문제야.”
“…….”
“잡히면 최하 20~30년 형이야. 어쩌면 종신형이 될 수도 있고.”
박영광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세바스찬 박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을 것 같다.
혼혈 교포 2세로 한국에 도움을 준 이다. 그런 이가 미국 감옥에서 종신형을 받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차은성이 박영광에게 물었다.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사흘!”
“네?”
차은성이 반문하며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항상 넉넉한 사전 준비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늘 빠듯하거나 다급한 오더를 내렸다.
차은성이 곤란하다는 기색을 짓자.
“알아!”
박영광이 짧게 힘주어 말했다.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걸 알지만.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팀은 너희 아르티펙스 팀밖에 없어.”
박영광이 은근 신뢰를 입에 올렸다.
믿어 주니 고맙긴 하지만, 부담은 부담이다.
차은성은 나직이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음…….”
무턱대고 ‘예스!’라고 말하며 오더를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꽤 있다.
차은성은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 부담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란 있을 수 없다.
상명하복!
지시에 순응해야 한다.
그것이 싫다면 회사를 떠날 수밖에…….
“으음.”
고개 숙여 생각하는 차은성이 일순 나직한 침음을 흘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