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24)화 (124/208)

NIS의 천재 스파이 (124)

박희오 원장이 말없이 2차장 선우종을 돌아보았다.

“일단 청와대에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내.

박희오 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공을 청와대로 토스해야 한다.

그럼 청와대에서 어떻게 이번 일을 처리할지…….

박희오 원장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현 대통령에게 모든 결정을 미룰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아마도 욕을 엄청 듣겠지만. NIS가 감당하기에는 버겁고 무거운 짐에 다름 아닌 사건이다.

“휴우우.”

박희오 원장이 회의실 바닥이 꺼져라 재차 긴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아프다!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여당 대선 후보인 표현태가 이번 일과 무관하다고 해도, 대선 캠프에서 선거 자금을 맡은 허종호 의원이 깊이 연루되어 있다.

아니라고 말해도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표현태 의원이 법적책임은 없다고 해도 도덕적인, 윤리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현재 대선 기간 중임을 감안하면 야당에서 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대선 이슈로 몰아갈 것이다.

그럼 표현태 후보가 매우 어려워진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일 때문에 대선에서 표현태 후보가 낙선한다면 야권 대선 후보들 중 한 사람이 향후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NIS가 대선에 개입한 꼴이 되어 버린다. 그 후폭풍을 박희오 원장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박희오 원장은 앞이 막막했다.

엄청…….

“휴우우우.”

박희오 원장이 재차 한숨을 쉬며 매우 난감한 눈빛을 띠었다.

그를 바라보는 1차장 윤희상, 2차장 선우종은 물론, 각 국장과 과장들이 하나같이 난처라는 감정을 내색했다.

사안이 너무나도 중차대하다.

*    *    *

며칠 후.

컴컴한 골목길을 홍은주 팀장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주변은 재개발 지역이라 오가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인근의 몇몇 주택은 이미 철거가 이루어져 보기에 매우 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보안등 하나가 덩그러니 어두운 골목을 밝혔다.

영락없는 우범 지대였다.

홍은주 팀장은 골목을 걸어가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에 뭐가 있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자신을 이런 곳으로 오라고 연락한 걸까?

홍은주 팀장은 걸어가며 차은성을 생각했다.

잠시 뒤.

골목을 빠져나온 홍은주 팀장의 눈에 꽤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맞은편에 있는 5층 상가 건물.

재개발 지역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 주는 일련의 흔적에.

“휴.”

홍은주 팀장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유리창은 산산이 깨어지고 부서져, 그 흔적과 잔해가 뚜렷이 남아 있다.

벽에는 각종 크고 작은 금들이 가 있고. 곳곳에 붉은 락카 스프레이 흔적이 남아 있다.

―재개발 반대!

―악질 철거반은 물러가라!

―생존권을 보장하라!

등등.

매우 격한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몇몇 글이 홍은주 팀장의 눈에 보였다.

홍은주 팀장은 반쯤 떨어져 은근 대롱거리는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을씨년스럽다.

가뜩이나 밤이라 어둡고 우범 지대인데.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귀신이 뛰쳐나올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홍은주 팀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상가 건물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안가치고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뒤돌아갈 수는 없다.

*    *    *

잠시 뒤.

다 쓰러져 가는 현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 홍은주 팀장은 순간 기겁할 듯이 놀랐다.

“헉!”

홍은주 팀장은 부지불식간에 헛바람을 깊이 삼켰다.

귀신으로 순간 착각한 한 사람.

어둠 속에서 석상인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홍은주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격투 자세를 취했다. 무의식적인 대응이었다.

한편.

신일권이 홍은주 팀장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어.

우로 돌아섰다.

홍은주 팀장은 계단으로 걸어가는 신일권을 잠깐 바라보다가 곧 뒤따랐다.

*    *    *

잠시 뒤.

계단을 오르며 홍은주 팀장이 신일권을 바라보았다.

“건물이 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챈 신일권이 계단을 오르며 입을 뗐다.

“저희가 들어오면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안심하셔도 됩니다. 보기보다는 튼튼합니다.”

홍은주 팀장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른바 안가다.

그런데 안가가 매우 독특하다. 그 누구도 이런 곳이 NIS 안가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    *    *

몇십 초 후.

신일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홍은주 팀장이 뒤따라 들어갔다.

순간.

“흑!”

홍은주 팀장이 걸음을 멈추고 서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신기하다는 심중의 감정을 가감 없이 밝혔다.

내부는 최첨단 설비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각종 전선이 천장을 종횡으로 오가고. 사방에는 각종 전자 장비가 즐비했으며, 모니터들이 여기저기에 상당수 설치되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홍 팀장님.”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서 있는 차은성이 홍은주 팀장을 바라보았다.

홍은주 팀장이 차은성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대단한 시설이네요.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녀의 말에 차은성이 소리 없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    *    *

몇 분 후.

이응천이 예의 건물로 들어섰다.

“무슨 이런 곳에다가 안가를…….”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방 중얼거리는데.

“헉!”

이응천은 깜짝 놀라며 급히 멈춰 섰다.

언제 나타났는지 최라경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응천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이응천이 말했다.

“야……야아. 기척 좀 하고 다녀!”

이응천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최라경은 소리 없이 실소했다.

“안가를 참……. 너희 팀에 회사에서 예산 안 줘? 좀 그럴듯한 곳에 안가를 만들어. 여긴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잖아.”

이응천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속내를 밝혔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리로.”

“하여튼. 비밀 작전을 하는 애들이 유별나단 말이야.”

이응천이 중얼거리며 최라경을 뒤따랐다.

*    *    *

문을 열고 최라경에 이어 이응천이 들어왔다.

멈칫.

이응천은 걸음을 멈추더니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주위를 빠르게 둘러봤다.

“죽이네. 회사에서 예산 받아 여기에 다 쏟아부었네, 쏟아부었어.”

이응천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배. 이쪽입니다.”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바라보았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홍은주와 이응천을 서로 소개시켜 주었다.

“이쪽은 경찰청 정보국 소속 홍은주 팀장님. 이쪽은 NIS 국제범죄센터의 이응천 팀장님.”

이응천이 홍은주를 바라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응천입니다.”

“안녕하세요, 홍은주예요.”

차은성이 이응천과 홍은주를 지켜보는 사이.

조영국이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에는 커피 캔이 몇 놓여 있었다.

이응천은 조영국을 보더니 어이없어했다.

“영국이 너.”

“오랜만입니다. 선배.”

“오랜만은 무슨! 퇴사한 줄 알았더니 여기 있었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외비 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그나저나 니 연차가 얼만데 그런 일을 해?”

이응천이 쟁반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영국이 피식 웃었다.

“여기서는 뭐…… 별수 없습니다.”

“나, 참.”

이응천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잠시 뒤.

테이블에 차은성, 조영국, 이응천, 홍은주가 둘러섰다.

네 남녀는 조덕팔과 표현태 후보를 언급했다.

“지금 회사가 난리야, 난리.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당 대선 후보 표현태가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이응천의 말에 차은성은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

홍은주는 크게 놀라,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새 말하는 이응천을 바라보았다.

“……조덕팔과 허종호 의원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둘 사이를 연결해 준 것이 알고 보니 대종 로펌 대표 박대종이었어. 그뿐만 아니라 대종 로펌이 조덕팔의 오더를 받아 경찰과 검찰에 로비를 한 정황이 포착되었어.”

이응천은 곤혹스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차은성이 물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응천이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일단은 회사에서 청와대에 보고해서 관련 지침을 받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리고 윗선에서 경찰과 검찰이 서로 모종의 대화를…….”

“그렇담, 사건이 거의 가닥이 잡혔겠군요.”

홍은주의 말에 이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정리에 들어가긴 했습니다만. 문제는 표현태 후보와 대종 로펌입니다.”

“…….”

“우리 쪽에서는 국세청을 통해 대종 로펌을 탈세 혐의로 처리할 작정인 것 같은데. 만에 하나라도 표현태 후보가 이번 일을 아무 일 없이 넘기고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면 판이 뒤집힐 겁니다.”

이응천은 우려했다.

틀림없이 표현태 후보가 보복할 것이다!

은근 그 점을 강조했다.

“결국, 표현태 후보를 잡아야 온전히 사건이 마무리된다는 말이 되는데…….”

차은성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이응천과 홍은주가 차은성을 쳐다봤다.

“일단 청와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조금 더 두고 본 다음에…….”

차은성이 이응천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그럼 늦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이응천이 흠칫했다.

그사이.

홍은주가 서둘러 차은성에게 물었다.

“뭘 하려는 거죠? 차 팀장님.”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침묵한 차은성을 이응천이 바라보았다.

“은성아.”

차은성은 이응천을 마주 보더니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여당 대선 후보 표현태가 당선되기를 바랄 겁니다.”

“…….”

“만에 하나. 야당 대선 후보가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면 현 대통령의 치적은 고사하고 약점을 잡아 공격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보나 마나 그런 상황에 겁을 내며 이번 일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고 할 겁니다.”

차은성의 예상에.

“그건…….”

이응천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현태의 보복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약점을 쥔 NIS를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다. 틀림없이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 보복.

차은성은 현 대통령이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여당 대선 후보인 표현태 후보가 당선되기를 강력히 희망할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설마?”

이응천이 반신반의했다.

차은성이 그를 바라보았다.

“선배,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그건 은성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선배. 저 역시 청와대가 표현태 후보의 편을 들어 이번 일을 덮으려 할 것 같습니다만.”

이제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조영국이 말하고 나섰다.

차은성과 생각이 같다!

이응천은 흠칫했다.

차은성과 조영국이 같은 팀이기 때문일까.

은근 의기투합한다.

‘음…….’

이응천은 선뜻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홍은주가 이응천, 차은성, 조영국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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