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01)
차은성은 혹 지켜보는 이가 있지는 않나, 경계의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필요한 경비를 제한 나머지는 당신의 수수룝니다.”
“예?”
차은성의 말에 장춰린은 깜짝 놀랐다. 차액 10만 달러가 자신의 몫이라니.
그새.
차은성이 이어 말했다.
“경비를 줄이면 줄일수록 당신의 수수료는 올라갈 겁니다.”
장춰린은 매우 반색했다.
차은성이 부탁한 일은 자금만 뒷받침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한 말, 진심이십니까?”
장춰린의 물음에 차은성은 거침없이 대꾸했다.
“네.”
“…….”
“한 가지!”
“…….”
“우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
“당일 촬영을 전후하여 서너 번의 추가 촬영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그쪽이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장춰린은 눈에 띄게 들떴다.
무엇보다도 차은성이 그의 안전을 신경 써 주며 크게 한몫 챙겨 주려 한다.
장춰린은 그것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공짜가 아니다.
충분한 대가를 약속받았다. 그것도 선불로 말이다.
“신경을 많이 써 주어야 할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장춰린이 즉답했다.
“알겠습니다. 만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장춰린의 대답에 차은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는…….’
지켜보는 이가 없는 것 같다.
자신이나 팀원들이 노출되지 않은 것에 차은성은 마음 한구석으로 다소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차은성이 장춰린을 돌아보았다.
장춰린은 서둘러 차은성을 마주 보았다.
차은성이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하려 했다.
차은성은 천천히 장춰린에게 말하며 신신당부했다.
이윽고 차은성의 말이 끝나자 장춰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위험한 일임을 안다.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
위험하기에 손에 쥘 수 있는 대가가 크다.
* * *
다음 날.
프놈펜 시내에 위치한 맥000.
차은성은 2층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치즈버거를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
우물우물.
씹으며 내심 놀랍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단해. 프놈펜까지 맥000가 들어와 있다니.’
아무리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프놈펜까지 진출할 줄이야.
차은성이 버거를 먹으며 생각하는 동안.
저벅저벅.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기척에 차은성은 슬쩍 뒤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사내 안용국이 흠칫했다.
차은성은 부드럽게 씩 미소 지었다.
그러곤.
끄덕끄덕.
두어 번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자신이 맞다고 무언을 건넸다.
그러자 안용국이 천천히 차은성의 왼쪽으로 다가오더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버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묻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차은성이 왼쪽에 앉은 안용국을 힐긋거렸다.
안용국이 그런 차은성을 마주 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안용국은 머릿속으로 부친을 생각했다.
예비역 육군 대령으로 의외로 발이 넓다.
특수부대 통으로 불릴 정도로 특수부대를 전전하며 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여느 예비역들과 달리 인맥이 장난이 아니다.
“그럼,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차은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이번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아무래도 안용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안용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정선의 탈북 성공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니깐 말이다.
* * *
깊은 밤.
라트비아 수도 리가 시내를 관통하는 다우가바 강의 강변도로.
밤이라 오가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부, 부우웅.
주행하는 몇몇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얼마 후.
강변도로에 세 대의 차가 나타났다.
앞뒤의 두 승용차가 콘보이 하는 한 대의 SUV.
세 차량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빠른 속도로 강변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콰앙.
맞은편 도로에서 주행 중이던 트럭이 좌로 방향을 꺾었다.
그러곤 도로를 구분하는 중앙분리대를 부수고 반대편 도로에 난입했다.
끼, 끼이익.
선두의 승용차를 필두로 SUV와 뒤따르던 승용차가 급정지했다.
트럭은 앞뒤의 두 승용차를 무시하고 중앙에서 급정지한 SUV를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받았다.
쿠아아앙.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SUV는 트럭에 밀려 힘없이 뒤로 나뒹굴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SUV였다.
이내.
끼익.
트럭이 서고.
운전석과 조수석. 그리고 트럭 뒤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와르르 쏟아지듯이 내렸다.
그들은 모두 머리에 복면을 쓰고 있다. 각자의 얼굴을 가리고 양손에 AK47 소총을 들었다.
그들은 내리자마자 두 승용차와 SUV를 향해 소총을 마구 난사했다.
타타타타타탕.
숨 돌릴 틈도 없이.
요란한 다수의 총성과 함께 39mm 총탄들이 허공을 지나 두 승용차 곳곳에 박혔다.
퍼퍼퍼퍼퍽.
승용차의 차체는 총탄에 너무 무력했다.
쏘면 쏘는 대로.
차체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삽시간에 30발의 탄창 하나가 비워졌다.
한두 명이 사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의 이들이 사격하는 것이기에.
뭘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수백 발의 총탄이 두 대의 승용차와 SUV에 박혔다.
두 승용차는 총탄 세례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콰, 콰앙.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으며 주변을 대낮같이 잠시 밝혔다.
폭발을 일으킨 두 승용차가 허공으로 크게 튀더니 이내 도로에 내려앉았다.
그사이.
뒤로 밀린 SUV 역시 두 승용차처럼 총탄 세례를 받았다.
차체에 구멍이 뻥뻥 뚫리는 것은 당연했고.
그리 오래지 않아.
연료통이 다수의 총탄에 관통당하더니 이내 폭발하고 말았다.
콰아아앙.
양손에 AK47 소총을 들고 난사한 일단의 이들이.
이내 매우 신속하게 날렵한 동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준비해 두었는지. 몇몇 차량과 오토바이를 이용해 급습한 현장을 벗어났다.
불과 몇 분이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급습이었다.
* * *
자정이 넘은 시각.
NIS 중앙통제센터가 돌연한 급보에 발칵 뒤집혔다.
마치 전쟁이 난 것처럼. 보기에 북새통도 그런 북새통이 없었다.
24시간 쉬지 않고 풀로 돌아가는 통제소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요원들과 각 지부를 제어, 통제 및 연락 업무를 담당한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있으면.
긴급한 지원이나 도움이 필요할 경우.
관련 모든 연락이, 정해진 단계와 절차에 따라 통제센터로 들어오고.
센터장이 주어진 권한으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즉각적인 조치들을 취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상황이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터졌다.
“빨리! 빨리!”
센터장 최주광은 애가 엄청 탔다.
가슴이 시커멓게 재가 되는 것 같은 참담함과 다급함을 동시에 느꼈다.
주어진 업무를 포기할 수 없는 최주광의 지시에 따라.
센터 직원들이 마구 키보드를 치며 정해진 몇몇 연락처로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타타타타탁.
다들 미친 듯이 양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국정원장 박희오, 해외 업무를 총괄하는 윤희상 1차장, 동유럽 담당 국장 허종석 등.
고위직 인사들에게 비상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한편.
청와대 안보 수석실, 국가 안보실장실 등.
기타 관계자들에게도 동일한 연락문을 보내며 국가비상 상황 발생을 역시 알렸다.
* * *
서울보다 시차가 2시간 느린 캄보디아 프놈펜.
안전 가옥에서 자던 차은성은 조영국의 다급한 언행에 힘겹게 눈을 떴다.
“일어나! 어서 일어나!”
“으음…….”
깊이 잠들었던 터라 차은성은 곧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조영국은 그런 차은성의 몸을 심할 정도로 마구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Urgency!”
순간.
조영국의 말에 차은성이 눈을 번쩍 뜨더니 무슨 스프링이 튀는 것처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엄청 놀란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조영국에게 고개를 홰액 돌리며 급히 물었다.
“버닝?”
조영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핫이야!”
그의 말에 차은성의 얼굴이 굳어지며 매우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요원들의 죽음이 수반된 긴급 상황!
조영국이 해당 상황이 발생하였음을 돌려 말했다.
차은성이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앞에 있는 의자로 다가갔다. 그러곤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상황 설명, 부탁드립니다.”
차은성의 다급한 외침에 조영국이 즉각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
“회사에서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든 활동을 잠정 중지하고, 비상대기 상테를 유지하라고 긴급 전문이 왔어.”
“…….”
급히 옷을 챙겨 입은 차은성.
긴급 전문이 신경 쓰였다.
그새.
조영국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개인적으로 동기들에게 알아본 거라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일이 생긴 것 같아.”
차은성은 하의를 다 입고 혁대를 맸다.
“……신원 미상의 모 요인을 콘보이 하던 요원 여덟 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조영국이 말끝을 흐리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여덟 명의 요원.
어린 자식들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나이 지긋한 노년의 이들에게는 세상 다시없을 금쪽같은 아들이다.
그들은 이제 두 번 다시 자신들의 가족을 볼 수 없다.
가족들 역시…….
차은성이 무거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리가 같은 곳에 요원들이 그렇게 많이 파견되어 있는 것도 의욉니다만. 콘보이를 해야 할 요인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신원 미상의 요인이라는 건!”
이상하고 의아하다.
차은성이 그런 심정을 내보였다.
라트비아의 리가.
그곳에 요원 여덟 명이 콘보이 해야 할 요인이 있다?
차은성은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하여.
조영국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조영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차은성이 조영국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라트비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도 모르지.”
“콘보이 한 신원 미상의 요인이 아무래도 핵심일 것 같은데요.”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을 했어. 그래서 동기들을 통해 좀 알아봤지.”
“누군지 알아냈습니까?”
“아니. 아무도 몰라.”
“네?”
차은성이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얼마나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는지, 동기들 중에 아는 녀석이 단 한 명도 없어.”
“그럼?”
차은성의 반문에 조영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1차장, 담당인 동유럽 국장.”
“…….”
“아마 그 세 사람만 알고 있을 거야.”
“흠.”
차은성이 상의를 입어 가며 침음을 흘렸다.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