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96)
개고생 중의 개고생.
상 개고생!
차은성은 자신이 사람인지 샌드백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퍼억.
배를 깊숙이 파고든 주먹이 주는 충격과 고통.
“꺼어억.”
절로 신음이 흘러나오고 상체가 숙여졌다.
“53번 교육생!”
상대가 소리쳤다.
“정신 안 차립니까?”
마흔 초반의 진태한 준위. 최선임 공정 통제사다.
차은성은 그를 상대하며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름 자신이 강하다고 자부하지만 진태한 준위에게는 알짤 없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후, 후욱.”
차은성이 심호흡하며 상체를 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진태한 준위가 다가서며 왼 주먹을 뻗었다.
휙.
차은성은 급히 좌로 피하려 했다.
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진태한 준위가 왼 주먹을 거두고 오른손 주먹을 내뻗었다.
스위치다!
퍼억.
차은성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었다.
충격에 이른 고통에.
“아악!”
차은성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털퍼덕.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무슨 철퇴로 맞은 것처럼 묵직한 충격에, 속수무책이다.
주먹의 파워도 파워지면, 순식간에 스위치로 주먹을 바꿔 버리는 속도를 쫓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진태한 준위와의 격투 훈련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말았다.
“허, 헉.”
차은성이 바닥에 누워 가쁜 호흡을 이었다.
그러자 진태한 준위가 차은성의 좌측 머리맡으로 걸어와 서더니 내려다보았다.
“53번 교육생. 안 일어납니까?”
“진 준위님. 한 번만 봐주시죠.”
“훗.”
진태한 준위가 실소했다.
“안 됩니다. 박 대령님이 확실히 교육시키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진 준위님…….”
차은성이 울먹일 것 같은 어조로 진태한 준위를 올려다봤다.
“53번 교육생. 할리우드 액션은 안 통합니다. 빨리 일어나십시오.”
“정말 너무하십니다.”
“…….”
“밥 먹고, 하루 온종일 1년 365일 맹훈련만 하시는 진 준위님을 상대로 제가 어떻게 이깁니까?”
“이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차은성이 어리둥절해했다.
“버티십시오.”
“버티라고요?”
“그렇습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훈련 성과는 충분합니다.”
진태한 준위의 말에 차은성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끄응.”
“빨리빨리 일어나십시오. 저 외에 다른 부사관들이 53번 교육생과의 즐거운 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절 죽이시죠.”
차은성이 말하며 왼손을 뻗었다.
진태한 준위가 손을 마주 잡으며 차은성을 끌어 올렸다.
“그럴 수야 있습니까?”
진태한 준위가 막 ‘까?’라고 말할 때였다.
휘릭.
진태한 준위가 일어나던 차은성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러곤 삽시간에 양손으로 차은성의 머리를 감쌌다.
일련의 행동이 삽시다. 보통 민첩한 것이 아니다.
‘역시!’
차은성은 내심 예상한 대로 진태한 준위가 움직이자, 몸에서 힘을 재빨리 빼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쏘옥.
그러자 진태한 준위의 손아귀에서 차은성의 머리가 아래로 빠져나왔다.
“어?”
진태한 준위가 당황했다.
격투 센스에 있어서는 그 못지않은 차은성이다.
* * *
차은성은 그렇게 매일 한 명씩, 일곱 명의 공정 통제사를 상대했다.
다들 저마다의 주특기로 차은성을 상대하며 괴롭혔다.
차은성은 그들 중 그 누구도 이겨 보지 못했다.
그들은 강했다.
10년이 넘는 군 복무. 매일같이 밥만 먹고 초고강도의 훈련을 거듭한 그들은 차은성과는 레벨 자체가 달랐다.
박영광은 단순히 차은성의 생존 능력만을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전투 및 격투 등 일련의 능력을 보다 더 끌어올리려 했다. 그 때문에 박영광이 박상익 대령에게 단단히 부탁했다.
박상익 대령은 차은성이 NIS 필드 요원이라는 것을 일곱 명의 공정 통제사에게 말하며 차은성을 특별히 다룰 것을 명령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음지에서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요원이야. 강하면 강할수록 나라와 국민에게 이익이겠지. 그러니 철저히 다뤄.”
일곱 공정 통제사는 그에 적극 부응했다. 개개인이 전투 및 격투 능력에 있어 차은성보다 상위의 이들이라, 차은성은 그들을 상대로 매일매일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 *
“예?”
차은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임부광 교관을 바라보았다.
“지금 군화와 군복을 입은 저에게 맨손으로 일주일 동안 생존하라고요?”
차은성이 묻자.
임부광 교관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을 위한 나이프도 없이?”
차은성이 재차 묻자 임부광 교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차은성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맨손으로 일주일 동안 생존하라니.
“종종 등산객이 길을 잃고 군사 보호 구역인 이곳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
“절대 그런 관광객의 눈에 띄면 안 됩니다.”
임부광 교관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들킬 경우, 생존 훈련을 다시 합니다.”
임부광 교관의 말에 차은성이 우거지상을 지었다.
‘차라리 죽이지.’
요즘 들어 심중 빈번하게 죽이라고 중얼거린다.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임부광 교관을 보았다.
“생존 훈련과 위장 훈련을 동시에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53번 교육생.”
“…….”
“아주 절 괴롭히기로 작정하신 것 같습니다. 교관님.”
임부광 교관은 차은성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할 뿐이었다.
“주변에…… CCTV 카메라가 몇 대 설치되어 있습니다. 53번 교육생. 주어진 행동반경인 섹터를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공간 제한까지.”
설상가상이다.
“그래도 겨울이 아닌 것에 감사하십시오. 겨울이라면 더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도 힘든데요. 교관님.”
“그럼, 행운을 빕니다. 53번 교육생.”
임부광 교관이 할 말만 하고는 뒤돌아섰다.
차은성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아닌데…….”
절망적인 어조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늦여름의 숲.
먹을 것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찾지 못하면 일주일 동안 쫄쫄 굶어야 한다.
아닌 말로, 닥치는 대로 뭐든 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차은성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휴우우.”
고개를 푹 숙였다.
수중에 가진 것이 없다.
“타군의 특수부대는 그래도 생존 나이프라도 주는데.”
맨손으로 일주일을 버티라고 한다.
“그래도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눈에 덮인 겨울. 먹을 것이 눈에 뛸 리 없다.
“하아아아.”
차은성이 숨을 길게 내쉬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저벅저벅.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운이 좋다면.
칡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굶는 것보단 낫다.
차은성은 계속 걸으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초목이다. 식용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식용이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작은 개울에 이르러 섰다. 이내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양손으로 물을 떠 마셨다.
심중 불안했다.
혹 탈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정수 가능한 것이 수중에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음용할 수밖에.
물을 마신 차은성이 일어나 개울가 주변을 둘러봤다.
민물가재라도 있었으면.
멸치보다 작은 피라미라도 있었으면.
심중 바랐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먹을 만한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수풀로 걸어가 나물이라도 있나 싶어 주의 깊게 둘러봤지만 나물은 없었다.
“망할!”
차은성은 절로 화가 치밀어 거칠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굶어야 한다.
“일주일인데. 일주일인데!”
차은성이 연거푸 중얼거렸다.
버텨야 한다. 그러자면 뭐라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먹을 것이 절실한데.
가혹하게도 먹을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차은성은 서서히 절망이란 감정에 젖었다.
* * *
첫날
굶었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자신을 절망적으로 만들 줄이야.
둘째 날.
비가 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사람을 처량하게 만든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해 비를 홀딱 맞고 말았다.
따뜻한 불이 너무도 그립다.
마음 같아서는 어떡하든 비를 피해 불을 피우고 싶지만.
수중에 불을 피울 만한 도구가 없다. 게다가 배가 너무 고프다.
비를 맞다 보니 체온이 떨어지고 몸이 절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떡하든 체온을 올려야 한다. 이대로 체온이 떨어지면 몸에 탈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이리저리 사지를 놀렸다.
돌아 버리겠다!
배가 더 고프다.
셋째 날.
굶주림에 심리적 공황이 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먹을 것으로 꽉 차 버렸다.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으니, 더욱더 생각난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아 내고 싶다.
삼촌 박영광.
아주 대놓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욕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너무 허기가 져서일까?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치킨?
너무 먹고 싶다.
짜장면?
그게 얼마나 한다고?
이성이 급격히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뭐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할 것 같다.
넷째 날.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왜 이런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왜 굶주려야 하는지. 누군가에게 묻고 따지고 싶다.
굶주림에 의지가 무너지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물로 배를 채운 것이 결국 탈이 났다. 먹은 것도 없는데…….
한차례 일을 치르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이대로 있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먹을 것을 찾아보고 또 찾아봐야 한다. 뭐라도 먹어 배를 채워야 한다. 이대로는…….
정말 큰일 난다!
다섯째 날이 지나고 여섯째 날.
눈에 보이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먹었다. 벌레든 개미든 가리지 않았다.
굶주림이 날짐승으로 만들었다. 이성이 마비되고 오직 먹고 싶다는 일념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눈에 띄는 풀들 중 먹을 만한 건 닥치는 대로 뜯어 먹었다. 독초건 나발이건 모르겠다.
무조건 배를 채워야 한다는 예의 일념으로 미친 듯이 뜯어 먹었다.
공정 통제사들.
새삼 존경스럽다. 어떻게 이런 훈련을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일곱째 날.
훈련이 종료됨과 동시에 군 병원으로 차은성이 이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