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90)화 (90/208)

NIS의 천재 스파이 (90)

이른 아침의 옥상.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함께 서 있는 박영광과 차은성의 몇몇 머리카락이 살며시 날렸다.

차은성이 낭랑한 목소리로 서연이에 관한 것을 말했다.

박영광이 엄청 당황했다.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윽고 차은성의 말이 끝나자 박영광이 두어 번 심호흡했다.

“후, 후우.”

이어, 상의에서 라이터와 담뱃갑을 꺼내더니 천천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쩐지. 네 녀석이 전화를 하더라니.”

일전에 차은성이 박영광에게 전화해서 회사 영상분석 팀의 도움을 받았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박영광의 물음에 차은성이 대답했다.

“관여를 한 이상, 마무리를 지어야죠.”

“그 애들 부모!”

“…….”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집단으로 움직이면, 아무리 은성이 네가 우리 NIS 소속이라고 해도 다칠 수가 있어.”

“…….”

“특히!”

“장 & 홍 로펌은 법조계를 장악한, 사실상 사법 권력이나 마찬가지야.”

“…….”

“현 대통령도 장 & 홍 로펌을 어떻게 하지 못해.”

“…….”

“장 & 홍 로펌이 자문이란 명목으로 매달 엄청난 돈을 건네며 관리하는 이들 중에 전직 총리만 다섯 명이 넘어. 장관들은 10여 명이 넘고.”

“…….”

“어디 그뿐이야. 전직 대법원장, 지법원장, 지검장 등 법조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수십여 명이야.”

“…….”

“그들 모두가 장 & 홍 로펌의 힘이자,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배경이야.”

“…….”

“어디 그뿐인 줄 알아.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판사, 검사, 경찰 등.”

“…….”

“장 & 홍 로펌이 관리하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박영광이 차은성을 걱정하며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

박영광의 얼굴 앞에서 연기가 흩어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런 장 & 홍 로펌의 신기동 고문의 아들이자, 남부 지검 차장검사의 조카와…….”

박영광의 안색이 흐려졌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세상의 이면에는 국가권력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몇몇 힘이자 세력이 있음을.

차은성이 천천히 말했다.

“삼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같은 소리 하네.”

박영광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네가 경찰이야? 아님 검사야?”

“…….”

“왜 자꾸 고유 업무와 무관한 일에 연루돼?”

박영광이 짜증 냈다.

차은성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꾸했다.

“도와주실 거죠?”

박영광이 담배를 피우며 물었다.

“계획은 있고?”

그러자 차은성이 눈웃음쳤다.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박영광이 투덜댔다.

아들 같은 차은성의 아킬레스건.

그것은 재혼한 모친과 모친이 낳은 이복 여동생 예서였다.

두 모녀의 일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차은성이다.

박영광은 그것을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편.

박영광이 투덜대며 생각하는 사이.

차은성이 살며시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씨익.

*    *    *

당일 오전 9시 45분.

경찰청 상층부가 발칵 뒤집혔다.

민경구 청장이 치안감 이상의 고위 간부들을 긴급 소집했다.

예정에 없던 회의를 소집할 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 된다. 그 때문에 경찰 고위 간부들은 너나없이 적잖은 긴장을 느꼈다.

시간대가 출근하여 막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때다. 그런 시간에 청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남다른 의미를 고위 간부를 모두 인지했다. 그런 이유로 삽시간에 상층부는 물론이고, 실무를 담당하는 중간 간부들까지 웅성웅성했다.

“뭐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인데.”

“오늘따라 왜 이래?”

“뒤숭숭한 것이, 마치 뭔 일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드는데.”

“안 좋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단 말이야?”

실무진들이 삼삼오오 모이거나 단톡방 같은 곳에 모여 쑥덕거렸다.

그들 모두 실무를 맡은 터라 훤히 알고 있었다.

경찰청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하면 언제나 뒤로 까무러치고도 남을 만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    *    *

한편.

치안감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흑!”

“뭐, 뭐야?”

“웬 긴급회의?”

“무슨 일이기에 예정에도 없는 긴급회의를?”

“무슨 일이기에.”

치안감들은 영문을 몰랐다.

다들 절로 의문이란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폰의 액정을 바라보는 장년인.

허장강 수사국장.

“으음.”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더니 숙고하기 시작했다.

‘뭐지?’

덜컥 경계심이 인다. 뭔가 큰일이 터진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에 허장강 국장의 낯빛이 흐려졌다.

*    *    *

10여 분 후. 경찰청 대회의실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깊고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회의용 테이블 중앙에 앉은 민경구 청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오른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머리가 아프다!

무언으로 그리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맞은편 연단에 서 있는 임범철 정보국장.

빙금 전까지 서연이 사건을 브리핑했다.

민경구 청장 이하 치안감들 모두 해당 브리핑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다들 말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신석구 이하 8인.

그들이 마약에 중독된 것도 몰랐고.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마약 파티를 한 것도 까맣게 몰랐다. 거기에 술과 여자들까지.

어디 그뿐인가?

치사량이 넘는 약물을 강제로 주입받고 쇼크사로 죽은 서연이.

명백한 살인이다.

그런데 예의 8인의 부친들이 문제다. 장관에다가 차장검사에다가 대한민국 최고 로펌인 장 & 홍 로펌의 고문이다.

그뿐인가?

여당 원내 대표인 조덕재까지 연루되어 있다.

경찰로서는 핵폭탄급 사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경구 청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할 만한 안건이다.

천천히.

민경구 청장이 숙인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연단에 서 있는 임범철 국장을 바라보았다.

“임 국장.”

“네. 청장님.”

“그런 정보를 알아 가지고 와서 보고한 자네를 유능하다고 말해야 하나? 아님, 너무 유능해서 문제라고 말해야 하나?”

민경구 청장의 물음 아닌 물음에 임범철 국장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청장님. 해당 정보를 인지하고도 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이라……. 면목 없습니다.”

임범철 국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장님!”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민경구 청장을 불렀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경찰 간부들이 일제히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장년인.

경찰청 차장 송이인.

경찰청 넘버 2인 그가 임범철 국장을 돌아보았다.

“유능한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송이인 차장의 말에 이어.

“차장님 말씀이 맞긴 합니다만.”

허장강 국장이 말하며 민경구 청장을 돌아봤다.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청장님.”

“끄으응.”

민경구 청장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허장강 국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임범철 국장이 가져온 정보가 사실일 경우,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 하면, 허장강 국장 파트에서 수사를 맡는다.

한편.

송이인 차장은 허장강 국장을 바라보며 내심 언짢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저 자식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경계해야 하는 이들 중 한 명이 바로 허장강 수사국장이다.

그사이.

“그렇다고 수사를 안 할 수는 없잖습니까? 허 국장.”

허장강 국장의 맞은편에 앉은 형사국장 조정식이 말하며 민경구 청장을 돌아봤다.

“청장님. 사건을 인지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가는…… 언론에 알려질 경우, 청장님 옷을 벗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

“우리 전 경찰이 국민들에게 욕을 먹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이 차가운 눈으로 우리 경찰을 보는 현실을…….”

조정식 형사국장이 우려의 눈빛을 띠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허장강 국장이 급히 입을 떼며 조정식 국장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버렸다.

“맡았다가는, 여덟 놈의 부친들이 우리를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고 달려들 겁니다.”

순간.

타아앙.

송이인 차장이 오른손 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회의실이 떠나가라 버럭 고함쳤다.

“야야아! 수사국장!”

돌연한 상황에 참석한 고위 간부들이 순간 깜짝 놀라며 송이인 차장을 쳐다봤다.

민경구 청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가 그러고도 수사국장이야! 명색이 수사국장이라는 놈의 입에서 그게 나올 말이야!”

“차장님!”

허장강 수사국장이 송이인 차장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며 마주 보았다.

“마……아아!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 수사국장. 네가 맡아야 해. 그런데 아직 사건을 맡기도 전부터 그렇게 수사할 의지가 없으면 어쩌자는 거야?”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에 허장강 국장이 일순 움칫했다.

“그놈들 부친들이 무서워서 지금 수사를 못 하겠다니. 너! 경찰이 맞긴 맞아!”

송이인 차장이 엄청 화냈다.

그러자 발끈한 허장강 국장이 급히 말했다.

“차장님. 그 인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차장님도 뻔히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들 부친들이 가해 오는 외압을 저더러 모두 감당하란 말씀이십니까?”

허장강 국장의 말에 조정식 국장이 그를 쳐다보며 고함쳤다.

“그래서 덮고 모른 척 지나가자, 그 말입니까? 허 국장!”

허장강 국장이 조정식 국장을 돌아봤다.

“조 국장!”

“…….”

“난 덮자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어!”

허장강 국장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민경구 청장이 좌우를 돌아보며 일갈하듯이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

“니들 눈에는 청장이고 나발이고 안 보여!”

민경구 청장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재차 소리쳤다.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그 기세에 고위 간부들 모두 눌린 듯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고요.

임범철 국장이 민경구 청장을 바라보았다.

“청장님…….”

작고 낮은 저음의 목소리.

민경구 청장이 임범철 국장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음 해.”

“내.”

임범철 국장이 대답과 함께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이어 천천히 좌우에 앉은 간부들을 둘러봤다.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말해 계륵입니다.”

임범철 국장의 말에 앉은 몇몇 간부가 흠칫흠칫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