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71)
함정에 든 범
며칠 후. 시그너스 호텔 로열층.
에나가 앉아 코리아 헤럴드를 보고 있었다.
룸서비스를 신청한 까닭에 그녀의 좌측에는 푸드 수레가 있었다.
쟈넷이 옆에서 앉은 에나의 앞에 커피와 미니 케이크, 초콜릿 등을 내려놓았다.
“쟈넷.”
“네. 디렉터.”
“대사관에서 연락 온 거 있어?”
“네.”
“누구야?”
“NIS로 의심된다고 합니다.”
에나가 멈칫하더니 보던 헤럴드를 반으로 접었다. 그러곤 옆으로 툭 던졌다.
“NIS라면 한국 정보기관이잖아?”
에나가 물으며 앞에 있는 커피 잔으로 손을 뻗었다.
“네.”
쟈넷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왜 우리를 미행한 거지?”
궁금증과 경계심이 어린 에나의 물음에.
“저희가 한조 투금에 한화 30조 원이라는 거액을 입금했습니다.”
에나가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 정도 정보도 모르고 있다면 무능한 겁니다. 디렉터.”
“흠.”
에나가 침음을 흘리며 커피를 마셨다.
“아마도 디렉터와 저희에 관해 NIS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에나가 입에서 잔을 떼며 화제를 돌렸다.
“도·감청 장치가 몇 개나 나왔어?”
“정확히 열두 개가 나왔습니다.”
쟈넷의 말에 에나가 잔을 내려놓으며 아미를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아.
에나가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심한데.”
“당연합니다.”
“당연하다고?”
에나가 쟈넷을 돌아봤다.
쟈넷은 흔들림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과거 론스타와 엘리엇 등 국제 핫머니들이 한국에 들어와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은 국제 핫머니에 매우 큰 반감과 악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관련 사안에 있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한국에 관해 매우 심도 있게 조사한 듯한 쟈넷이다.
* * *
통상 국제 투기 자금.
속칭 핫머니라 불리는 몇몇 헤지펀드는 특정 대상국에 들어가면 필히 언론 및 정관계를 대상으로 사전 정지 작업을 한다.
론스타와 엘리엇 펀드 역시 그런 수순을 밟았다.
즉, 해당 국가의 부패 세력과 손을 잡고 분탕질을 친다는 말이다.
* * *
에나가 말했다.
“흠. 우리가 한국에서 엄청난 자금으로 시장을 교란 및 유린한 후 막대한 이익금을 챙겨 국외로 튈까 걱정한다, 그 말이야?”
“네. 그리고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간접적인 경로로 자제를 표명해 왔습니다.”
“…….”
“주한 미 대사관에 있는 재무성 쪽 관계자 역시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훗!”
에나가 실소했다.
“자본주의가 뭔지는 알고 그런데?”
에나의 말에 쟈넷이 주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뉴욕에 연락할까요?”
“됐어. 그 정도 일로 연락한다면 오너가 실망할 거야.”
“그럼.”
“무시해 버려. 그리고 한조에 말해서…… NIS가 불편하니 끼어드는 일 없도록 잘 처리하라고 해.”
“…….”
“……언론과 정관계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이 어느 정도나 진척되어 있는지도 알아봐.”
“네. 디렉터.”
쟈넷의 대답에 에나가 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쟈넷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포크를 미니 케이크로 뻗는 에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먼스 전 CIA 부국장이 메시지를 보내…….”
순간, 포크를 쥔 에나의 손이 멈칫했다.
에나가 천천히 다시 쟈넷을 돌아봤다.
* * *
닷새 후. 각 증권사 매장이 한여름의 열기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등 랠리가 연일 이어졌다.
한성 전자.
주가가 무서운 기세로 폭등했다. 370만 원 선이었던 주가가 닷새 만에 400만 원 선을 돌파했다.
연일 주가 상한선이었고, 단기 폭등에 서킷 브레이크가 발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급등세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국내 최대 전자 회사이자, 글로벌 기업인 한성 전자의 이상 폭등에 다들 흥분했다.
“뭔가 있어!”
“한성 전자의 주가가 저렇게 단기 폭등한다면 틀림없이 뭔가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해.”
“그런데 애널리스트나 기타 주식 전문가들은 아무 말이 없던데.”
“모르는 소리 하네.”
“지금 기관투자가들과 각 증권사가 미친 듯이 한성 전자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는 거 몰라?”
속칭 개미들이 한성 전자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매입 광풍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한성 전자의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틀 만에 440만 원 선까지 폭등하고. 해당 기세라면 500만 원 선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식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되자 매도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매수 세력은 차고 넘치는데 매도가 없자, 한성 전자 주식 거래가 한동안 중지 아닌 중지가 되어 버렸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장세가 속칭 ‘묻지 마 투자’로 치달아 버렸다.
너도나도 한성 전자의 주식을 사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사이.
경제 관련 신문 기사와 관련 TV 방송에서 연일 한성 전자를 다루며 단기 폭등에 의문을 나타냈다.
* * *
한성 전자에서는 자사 주식의 단기 폭등에 혼란에 빠졌다. 주가 관리 팀은 어쩔 줄을 몰랐다. 폭등의 원인을 알고자 동분서주하며 연일 철야에 철야를 했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 *
다음 날. 한성 그룹 회장실.
한우종 회장이 커피를 마시며 우를 돌아봤다.
차녀 한승미.
3인용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회장님께서 무슨 의도로 2팀을…….”
한승미가 묻자 한우종 회장이 빙긋 웃었다.
“관여하지 말라고 했더니 결국 네가…….”
“회장님.”
“흠.”
“회사에는 사규라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2팀은 업무 분위기에 찬물을…….”
한우종 회장은 말하는 딸 한승미를 보며 내심 생각했다.
말해 주는 것이 좋을까? 아님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
혹여 차은성과 감정적인 대립을 하며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까?
한우종 회장은 우려의 감정을 느꼈다.
잠시 뒤.
한우종 회장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 한성 그룹 사람이 아니다.”
“네?”
한승미가 어리둥절했다.
“실은…….”
한우종 회장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한승미가 아연실색했다. 얼굴 가득히 경악이란 감정을 띠며 눈을 왕방울처럼 크게 부릅떴다. 또한 입을 크게 벌렸다.
“내가 네게 말을 해 주지 않으려고 했다만, 아무래도 네가 차 팀장의 업무를 방해할 것 같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깐 함구해라. 이번 일은 NIS가 이면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며…….”
한우종 회장의 말을 들으며 한승미가 손을 들어 가슴에 댔다. 그러곤 서너 번 심호흡하더니.
“아버지.”
“녀석. 회장님.”
“아, 네에. 회장님. 제가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어서 그만 실례했어요.”
한우종 회장이 슬쩍 웃으며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이어 커피를 몇 모금 마시며 딸 한승미를 보았다.
“최근 저희 한성 전자 주가가 단기 폭등하는 것이 그럼.”
한승미의 말에 한우종 회장이 입에서 잔을 뗐다.
“앨리게이터 펀드의 장난질이야.”
“괘, 괜찮으세요?”
한승미의 말에 한우종 회장이 싱긋 웃었다.
“걱정할 게 뭐가 있어?”
한우종 회장이 잔을 내려놨다.
“그래도 회장님.”
“국가가 우릴 지켜 준다!”
한우종 회장이 무척이나 든든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그도 그러네요. 해당 정보를 알아내고 우리에게 알려 주는 한편, 그들을 막을 방법까지 다 마련해 두었다면…….”
“하하하. 요즘 같으면 세금 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아. 하하하하.”
한우종 회장이 기분이 매우 좋은 듯 웃고 또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권력이 한성 전자를 지켜 준다. 완벽하게!
그런 한편으로 한우종 회장은 한조 그룹에 강한 적의를 느꼈다.
죽은 한조 그룹 회장 한필승.
한우종 회장에게는 작은할아버지가 된다.
* * *
한편.
한승미는 차은성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NIS 요원이었다니. 그래서 카페테리아에서 내게 그렇게 화를…….’
이해가 간다. 앨리게이터 펀드가 30조 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들고 입국.
한성 전자를 노리고 주식시장을 마구 휘저으려 한다면 이를 막으려는 이들로서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한승미는 괜히 차은성에게 미안해졌다.
* * *
이틀 후. 한조 투금 트레이딩 룸.
대형 유리벽 앞에 에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무심히 트레이딩 룸을 내려다보았다.
에나의 우측에는 쟈넷이, 주위에는 에나의 팀원들이 그녀를 경호하듯 둘러서 있었다.
좌측에는 한조 투금의 이들이 서 있었다.
정병옥 전무, 한조 오너 일가인 한세동 이사, 임우진 부장을 포함한 임원들.
면면이 아주 화려했다.
“현재 주가는?”
에나가 묻자 실무 책임자인 임우진 부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480만 원 선입니다. 장외거래를 포함하여…… 오늘내일 중으로 500만 원 선은 충분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반 여건 조성은?”
에나가 다시 묻자 정병옥 전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말했다.
“마무리되었습니다. 미스 에나.”
에나가 그를 흘겨봤다.
“NIS?”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당과 청와대를 통해 손을 써 두었으니 미스 에나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언론은?”
에나가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다. 여론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그러자 정병옥 전무 좌측 뒤에 서 있는 임기복 법무 팀장이 말했다.
“이미 말을 다 맞추어 두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미스 에나.”
에나가 임기복 팀장을 흘낏거리며 뭐라 말하려 했다. 그러자 임기복 팀장이 한발 빨리 말했다.
“앨리게이터 펀드와 우리 한조 투금에 관한 기사는 게재되지 않을 겁니다.”
“…….”
“설혹 게재하거나 방송한다고 해도, 호의적인 기사와 방송을 내보낼 겁니다. 악의적인 기사나 방송과 같은 적대적인 행위는 일절 없을 겁니다.”
자신만만한 임기복 팀장이었다.
에나가 살며시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 * *
사흘 후. 영업전략 팀 회의실.
“현 주가는?”
차은성의 물음에 류성찬이 대답했다.
“540만 원 선입니다.”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뒤.
차은성은 박영광과 통화 중이었다.
“1단계. 시작해 주십시오.”
“알았다.”
폰 너머에서 박영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조 투금의 정관계 및 언론계 로비를 침묵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침묵시켜야지.”
“그리고 한조 그룹의 영향력 밖에 있는 언론 매체들을 통해 해당…….”
“걱정할 것 없어. 이미 다 계획이 세워져 있으니깐.”
자신감에 찬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럼.”
“그래. 수고해라.”
“예.”
박영광과의 통화를 끝내며 차은성이 눈을 반짝였다.
앨리게이터 펀드.
글로벌 투기 자금을 운용하는 헤지펀드인 그들에게 한국이 먹음직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이제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들어올 때는 맘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때는 한국의 허락을 필히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