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66)화 (66/208)

NIS의 천재 스파이 (66)

“카르멘.”

“화이트?”

“그래, 나야.”

“너, 아직 살아 있어?”

폰 너머에서 놀랍다는 음성이 들렸다.

화이트는 실소했다.

“훗.”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대단하긴 하다.

“난 마담 화이트야.”

자부심이 묻어나는 어조로 말하자 청부 중계인인 카르멘이 웃었다.

“호호호.”

“카르멘.”

화이트가 진지한 어조로 그녀를 불렀다.

“말해.”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화이트가 말끝을 흐리며 은근슬쩍 추가 정보가 필요함을 에둘렀다.

“그 이상의 상황일걸.”

“응?”

화이트는 카르멘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한국에서 네가 NIS 요원들을…… 우리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래서 열 받은 NIS가 5백만 불이라는 거액을 현상금으로…… 지금 NIS, 인터폴, FBI, CIA, 살인 청부업자들, 바운티 헌터 등 죄다 널 쫓고 있다고. 알겠어? 네가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단 말이야. 결국 넌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수밖에 없다고.”

카르멘이 사실상 화이트를 죽은 시체 취급하듯 말했다.

“…….”

화이트는 침묵했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뭐지?”

“죽음!”

“…….”

카르멘의 말에 화이트가 눈을 반짝였다.

“죽은 것으로 위장하라고?”

“완벽하게!”

“다른 방법은?”

“다름 방법이라면 의뢰를 취소하게 하거나, 의뢰를 한 의뢰주를 죽이는 것밖에 더 있겠어?”

카르멘의 말에 화이트가 눈을 반짝였다. 현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의뢰주가 죽어 버리면 의뢰는 자연 취소된다. 돈을 받지 못하는데 누가 의뢰를 이행하려 하겠는가?

“화이트.”

“…….”

“의뢰주는 NIS야. 한국 정보기관이란 말이야. 그러니 의뢰주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해.”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

카르멘의 말에 화이트가 정색했다.

“왜, CIA나 FBI에 의탁하게? 아서. 그랬다가는 인터폴이 나서서 신병 인도를 요청할 거야.”

카르멘은 빼도 박도 못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에둘러 화이트에게 말했다.

“카르멘.”

“왜?”

“도움이 필요해.”

화이트가 눈을 반짝였다.

“화이트. 난 이 일에 끼고 싶지 않아. 내가 낄 판이 아니라고.”

“지금까지 내가 의뢰를 수행하며 번 돈!”

“…….”

“어때?”

“미안해. 화이트.”

카르멘이 거절했다.

“카르멘!”

“두 번 다시 전화하지 마……. 그동안 거래해 온 정리 때문에…….”

말과 함께 카르멘이 전화를 끊었다.

“카르멘! 카르멘.”

화이트가 연이어 중계업자 카르멘을 불렀지만 들리는 것은 통화 단절음밖에 없었다.

뚜우우우우.

화이트는 크게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    *    *

사무실.

사방이 벽이었다. 의자에 앉은 차은성이 테이블 너머를 바라보았다.

벽에 몸을 기대고 선 중년인

하비에 스와레즈.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장이다.

차은성은 샌프란시스코 도착과 함께, FBI에 의해 연행 아닌 연행을 당했다. 그러곤 꽤 오랫동안 심문받았다.

하비에가 의자에 앉은 차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장 신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장한 것도 아니고. 이건 아주 보란 듯이 자신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입국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비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감정을 내색했다.

차은성이 오른손을 들더니 검지로 귀를 후볐다.

“내가 무슨 거물이라고.”

“…….”

“대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장이 이리 직접 나서서 심문하는 것인지. 이건 좀 과하지 않나 싶은데…….”

차은성의 말에 하비에가 싱긋 웃었다.

“그럴 수밖에.”

“…….”

“5백만 불을 현상금으로 걸어 전 미국의 살인 청부업자와 바운티 헌터들로 하여금 마담 화이트를 추적하게 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거물이라고 말할 만하지.”

하비에가 말하며 차은성에게 무언의 물음을 던졌다.

넌 어떻게 생각해?

차은성은 귀를 후비던 손을 내리며 하비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하비에를 약 올리듯 일순 히죽 웃었다.

그러자 하비에가 말했다.

“사냥개들을 잔뜩 풀어놓았으니 마담 화이트는 마음 놓고 물 한 잔 마실 수 없을 테고.”

“…….”

“청부업자나 바운티 헌터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의뢰를 취소하게 만들거나, 의뢰주를 죽여 의뢰를 무산시켜야 하는데.”

“…….”

“결국 마담 화이트가 스스로 자네를 찾아오게끔 상황을 유도하며…… 그런 한편으로 화이트가 자네를 찾기 쉽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수를…….”

하비에가 심중 짐작하는 바를 말하며 차은성을 예의 주시했다. 뭔가 감정의 변화 같은 것을 보려는 것 같다.

“…….”

차은성은 침묵했다.

하비에가 어떻게 마담 화이트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CIA와 FBI는 물과 기름처럼 앙숙 관계인데…… CIA 내부 정보를 FBI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의아하다.

혹 하비에가 남몰래 모종의 정보 루트를 따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은성이 생각하는 동안, 하비에가 계속 말했다.

“팀원들을 잃은 것은 유감이야.”

진심인지, 아니면 차은성을 자극하려는 것인지.

하비에가 슬쩍 미끼를 드리웠다.

“나도 동료를 잃은 경험이 있지만, 동료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비에가 말끝을 흐렸다.

난 너와 동병상련이야.

하비에가 차은성과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것 같다.

“…….”

차은성은 계속 침묵했다. 일절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하비에가 은근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죽은 팀원들의 복수를 하려는 자네의 마음에는 공감이 가지만. 우리 미합중국 내에서 복수를 한답시고 사고를 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하비에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

“자네와 마담 화이트.”

“…….”

“이미 여러 구의 시체가 나왔어. 자네가 내건 현상금 때문에 청부업자들과 바운티 헌터들이 화이트를 죽이려다가 거꾸로 당해 버렸어.”

“…….”

“만에 하나라도 민간인이 죽거나 다친다면!”

하비에는 최악이라 여기는 상황을 입에 올렸다.

그러자 차은성이 천천히 입을 뗐다.

“봐하니 강제로 날 송환시키려는 것 같은데.”

하비에의 속내를 짚었다.

씩.

하비에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차은성이 짐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나는 미합중국의 법률을 위반한 것이 없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하비에가 움찔했다. 맞는 말이다. 차은성은 미국의 법을 어기지 않았다.

“FBI가 날 이렇게 장시간에 걸쳐 감금하고 변호사 입회 없이 이렇게 날 심문하는 것은 미합중국의 법률에 저촉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하비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심중 당황하고 있었다.

한편.

차은성이 고저가 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변호사를 불러 주시겠습니까? 이왕이면 한국어가 가능한 변호사로 부탁드립니다.”

차은성의 말에 하비에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법률적으로 차은성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정상적인,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입국했기 때문이다.

*    *    *

며칠 후. 댈러스 남쪽 흑인 거주지.

대낮에도 권총 강도들이 활보하는 우범 지역이었다.

타타타타탕.

총성이 그치지 않고 계속 울렸다.

“허, 허, 헉.”

화이트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부유한 백인들의 동네인 서버브를 향해 뛰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길 하나 차이로 범죄 동네와 부자 동네가 갈린다.

화이트는 댈러스에 도착하며 자신을 감추기 위해 흑인 동네로 숨어들어 갔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현상금에 눈이 뒤집힌 몇몇 흑인 마약 조직원들에게 그만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운이 매우 나빴다.

그렇게 되자 온 동네의 총 가진 이들, 갱, 마약 조직원, 강도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5백만 불.

그들 모두 돈에 눈이 뒤집혀 버렸다. 졸지에 쫓기게 된 화이트는 후회했다.

‘내가 미쳤지.’

흑인들 동네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서버브로 숨어들었어야 했다.

혹 자신이 고급 주택지에 있지 않을까, 청부업자들과 바운티 헌터들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의 예가 마음에 걸려, 흑인들 동네로 숨어들었던 것인데. 그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어 버렸다.

퍼퍼퍼퍼퍽.

뛰는 화이트의 주변에서 마구 총탄이 튀었다.

화이트는 뒤돌아보며 사격을 가했다.

타타타타탕.

뒤쫓아 오는 수십여 명의 흑인이 멈칫하더니 급히 몸을 숨기거나 바닥에 엎드렸다.

화이트는 뒤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며 이내 한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    *    *

몇 시간 후.

화이트는 고립되고 말았다. 백여 명이 넘는 무장한 흑인들이 골목 주변을 면밀하게 에워쌌다.

그들은 조심조심, 화이트가 숨어 있는 골목으로 다가왔다. 올가미가 조여 오듯이.

*    *    *

골목에 숨은 화이트는 벽에 몸을 기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빠져나가야 하는데 나갈 길이 없다. 지금 서 있는 곳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계속 있다가는 흑인들에게 사냥당해 결국 죽고 말 것이다.

화이트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런 그녀의 눈에 한 사다리가 보였다.

순간.

화이트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사람, 죽으란 법은 없다!

*    *    *

잠시 뒤.

화이트는 사다리를 타고 인근 건물의 옥상에 올라섰다. 그러곤 내려다보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골목 양쪽에서 천천히 흑인들이 접근 중이다.

화이트는 옥상 난간에서 물러서며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난간에 몸을 기대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래는 아니다. 어떻게든 지금 있는 곳을 빨리 벗어나 서버브로 가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다.

화이트는 조급한 눈빛을 띠었다.

웅성웅성.

아래에서 흑인들이 서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끄응.”

화이트는 지친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재차 살폈다. 어디로 가야 할지…….

*    *    *

30여 분 후.

화이트가 도로로 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흑인 동네를 벗어난 화이트는 천천히 인도를 걸으며 주변을 힐금거렸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흑인 동네 외곽으로, 대낮에도 권총 강도들이 날뛰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화이트가 한 골목을 지나치는데.

삐익.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화이트는 무심코 우를 돌아봤다.

‘응?’

총구로 그녀를 겨누고 활짝 미소 짓는 두 흑인 청년.

까닥까닥.

그들 중 한 청년이 오라고 화이트에게 손짓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강도를 당한다.

그렇다고 안 들어가면, 총구를 겨눈 흑인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하면, 그 즉시 사망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화이트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    *    *

얼마 후.

휘, 휘이익.

휘어진 나이프가 허공을 스치더니 두 흑인의 목을 스쳤다.

써……억.

살이 베이고 진홍빛 선혈이 마구 튀었다.

“끄륵.”

“꺼어억.”

두 흑인이 각자의 손으로 목을 움켜쥐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이프를 쥔 화이트는 발로 흑인들의 총을 옆으로 걷어찼다.

휘이이익.

탄환이 없는 빈총이었다. 두 흑인이 탄환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수중에 돈이 없는 것 같다.

털썩, 털퍼덕.

화이트가 앞으로 엎어지는 두 흑인의 모습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비웃었다.

연후.

뒤돌아서는데.

퓨퓨퓨퓨퓻.

나직한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악!”

화이트가 총격에 몸을 휘청거리더니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털퍼덕.

총구로 쓰러진 화이트를 겨눈 차은성.

뚜벅뚜벅.

천천히 화이트에게 걸어갔다.

*    *    *

화이트가 숨을 헐떡였다.

“하악, 하악.”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흐릿한 시야.

하늘이 보인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하늘이다. 이내 그 하늘이 사라지고 차은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겨눈 총구.

“차, 차은성…… 하악.”

화이트가 차은성을 알아보며 숨을 헐떡였다.

“한 가지 묻지?”

차은성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시먼스 부국장.”

“…….”

“어디에 있지?”

차은성의 물음에 화이트가 숨을 헐떡이며 더듬더듬 말했다.

“나, 나도…… 모, 몰라…… 헉.”

“잘 생각해서 대답해.”

“훗.”

차은성의 말에 화이트가 웃었다. 그녀는 차은성을 비웃는 어조로 가늘게 말했다.

“그, 그는…… Gove…….”

화이트가 말을 잇지 못했다.

툭.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축 늘어졌다.

“이런!”

차은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이트가 뭔가 중요한 정보를 말하려던 것 같은데.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그만 죽어 버렸다.

차은성은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내.

으득.

이를 갈며 죽은 화이트를 내려다보았다.

노태준, 연지, 황민준, 우형광, 김아름을 죽였다.

“시먼스!”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강렬한 안광을 번득였다.

수족인 화이트가 이제 죽었으니, 남은 것은 화이트를 움직인 머리, 시먼스밖에 없다.

자신과 팀원들을 포함, 아르티펙스 팀을 처리하라고 마담 화이트에게 의뢰한 시먼스 부국장.

차은성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매우 알고 싶었다. 알아야 찾아가 그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텐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차은성은 총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서둘러 지금 서 있는 장소를 떠나야 한다.

미행하던 FBI 요원들을 얼마 전에 따돌렸다. 그러니 지금쯤이면 댈러스의 FBI 요원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사방을 들쑤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냥개를 풀어놓고 마담 화이트를 뒤쫓는 자신을, FBI 요원들이 따라붙으며 감시했다. 그것이 여간 짜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젠 사라져야 한다.

시먼스 부국장.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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