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62)
‘그래도…….’
화이트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기다리는 차은성.
한번 시도해 볼 생각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몇 개월이나 1년 후로 차은성을 처리하는 것을 미루면 된다.
지금 죽이나 몇 개월 혹은 1년 후에 죽이나, 죽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별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감추는 것이고, NIS의 이목에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요원들이 죽어 나갔으니…….’
화이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혹 모른다. 차은성이 자신에게 당할까 봐 NIS 요원들이 입국장 주변에 깔려 있을지도…….
화이트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시도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 없지. 뒤로 미룰 수밖에.’
화이트가 쌩긋 웃었다.
* * *
얼마 후.
화이트는 당혹스러웠다.
‘나와야 하는데?’
입국장 어디에서도 차은성은 없었다.
화이트는 우를 돌아봤다.
대형 전광판.
도착하는 항공기에 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비행긴가?’
화이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금 입국장을 둘러봤다.
‘음…… 이상한데?’
의아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NIS 요원들이 없다!
바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응당 자신이 차은성을 노린다고 생각.
경호 인력을 공항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공항에 요원들을 잔뜩 풀어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살펴야 하는데, NIS의 행보가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잡으려고 해야 정상인데. 혈안이 되어야 마땅한데.
입국장에는 아무래도 NIS 요원들이 없는 듯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으음.”
화이트는 침음을 흘리며 협력자를 생각했다. 연락이 단절된 것이 너무 아쉽다.
NIS 내부 동향이나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만 해도 그렇다.
입국장에 NIS 요원들이 있는지 없는지, 그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도 있었을 텐데.
화이트는 아쉬웠다.
없다면.
왜 없는지, 그 이유 역시 알 수 있는데.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이 가능해지는데…….
그런데 이젠 협력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화이트는 가만히 입국장을 바라보았다.
혹 모른다!
다음번 항공기로 차은성이 올지도…….
* * *
몇 시간 후.
입국장으로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사이에서 차은성이 걷고 있었다.
드르르.
왼손으로 작은 여행용 캐리어를 끌며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걷고 있었다.
화이트가 눈을 반짝이더니 살며시 혀로 윗입술을 훔쳤다.
‘호호호. 기다린 보람이 있네.’
차은성이 늦게 도착했다. 전달받은 정보가 부정확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화이트는 자신만만했다. 꺼림이나 조심과 같은 것은 그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화이트는 차은성을 기다리는 동안, 수여 회에 걸쳐 주변을 면밀히 살피고 살폈다.
NIS 요원들은 없다!
화이트는 내심 그렇게 확신했다.
―NIS가 아직 자신을 모르고 있다.
―차은성이 팀원들의 죽음을 아직 알지 못한다.
화이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쾌재의 눈빛을 띠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인 양 화이트는 사람들 사이에서 걷는 차은성을 예의 주시했다.
* * *
차은성은 캐리어를 끌며 완만한 걸음을 내디뎠다.
팀원들을 죽인…… 자나, 자들.
개인인지 조직인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노리고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미끼로 던진 이상, 그들이 틀림없이 자신 주변으로 모여들 것이다.
차은성은 걸으며 감각과 신경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곤두세웠다. 그런 한편으로 귀에 집중했다.
귀에 들리는, 주변에서 오가는 이들의 발자국 소리, 대화, 중얼거림, 안내 방송 등등.
온갖 소리가 들린다.
차은성은 걸으며 예의 소리를 의식했다. 불필요한 소리를 걸러 내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몰입하려 하였다. 쉽지 않지만 해야 한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자칫 그들에게 자신이 무슨 눈치를 챘다는 것을 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차은성은 주변을 돌아보는 것을 자제했다.
‘음…….’
침음을 흘리며, 들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재차 몰입하려 하였다.
일반인들의 발걸음은 무질서하고 즉흥적이다.
하지만 훈련받거나 사람을 죽이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규칙성을 띤다. 정연하다고나 할까?
일반인들의 발걸음 소리와 매우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알아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지, 자신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지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차은성은 의도적으로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예의 발자국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 * *
얼마 후.
공항철도 차량 내부 시트에 앉은 차은성.
가만히 정면을 보며 의아해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들이 주변에 없는 것 같다.
‘으음.’
마음속으로 침음을 흘리는 사이, 사람들이 속속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출발 직전이라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코트를 입은 한 여성이 차은성의 맞은편으로 다가와 의자에 앉았다.
* * *
공항 철도의 차량이 서서히 움직이며 속도를 높였다.
마주 보는 차은성.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딱히 이렇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나 감흥 같은 것을 느꼈다.
맞은편 시트에 앉은 여인.
한국인 같으면서 한국인 같지 않은 느낌이다. 혼혈 같기도 하고 동남아 쪽 사람 같기도 하다.
일순.
빙긋.
마주 보는 여자가 웃었다.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움칫했다.
싸한 느낌!
왜 소름이 느껴지는 걸까?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전신을 쭉 훑어 내리며 송연한 느낌을 준다.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경계심이 일었다. 즉각 주변을 훑어봤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
그런데 마주 앉은 여인.
기분 나쁘게도 자신을 마주 보며 방실방실 웃고 있다. 마치 조롱하는 것처럼.
차은성이 의아한 기색을 지으며 유심히 여자를 보았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앞의 여자를 조심하라고!
차은성이 눈을 반짝였다.
맞은편에 앉은 여자.
어쩌면 팀원들을 죽인 자들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주변에는 소수의 몇몇 사람이 앉아 있을 뿐이다. 그들 중 이상한 느낌이 들거나, 주의 또는 경계해야 하는 이들은 없는 듯한데.
‘설마 혼자서…….’
차은성은 맞은편 여인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 생각하며 그녀 단독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하나? 내심 의아해했다.
차은성은 천천히, 마주 앉은 여인이 알아채지 못하게 두어 번 심호흡했다. 그런 한편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며 천천히 양손을 상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주변을 흘낏거리며 마주 앉은 여인을 경계했다.
여인은 마치 차은성의 동작을 따라하듯 양 호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그녀는 차은성을 가만히 바라보며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가 오른발을 들어 왼발에 얹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오른발 상부, 엉덩이에 접한 다리 안쪽이 차은성의 시야에 훤히 들어왔다.
순간.
절로 아찔해진다.
여느 사람이라면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숙여, 해당 광경을 보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한데.
차은성은 그녀의 오른발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시선을 끌려는 수작임을 알기 때문이다.
잠깐!
시선을 다리로 주는 사이, 이마에 총탄이 박힐 수도 있다. 여인이 가진 특유의 무기를 쓸 줄 아는 화이트다.
차은성은 화이트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초점을 맞추기라도 하듯.
네 수작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하듯이.
* * *
화이트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의도적으로 오른발을 들었다. 차은성이 발을 보는 순간, 호주머니에 있는 초소형 미니 건을 쏘려고 했다.
여인들의 호신용 총기로, 장전 가능한 탄환은 겨우 두 발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일발 필살이라는 상황에서라면 매우 유용한 무기다.
소지도 쉽고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으며 쥐도 새도 모르게 특정인을 사살하기에 최적이다.
화이트는 차은성의 양손이 있는 좌우 호주머니가 신경 쓰였다.
불룩한 것이 틀림없이 총을 가지고 있다.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총기라면.
‘22구경 미니 리볼버!’
화이트가 눈을 반짝이며 유심히 차은성을 보았다. 심중 바짝 긴장한 그녀다.
‘Cut Your Throat!’
조금 전에 차은성을 죽이려 했는데. 그만 최적의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알아챈 것 같은데.’
화이트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차은성을 죽이지 못한 이상. 지금 있는 장소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허용하지 않겠지만.’
틀림없이 차은성이 도주하는 자신을 뒤쫓을 것이다.
화이트는 슬쩍 주변을 훑어봤다.
그녀와 차은성이 있는 칸에는 사람이 몇 없다.
‘흠.’
화이트는 머릿속으로 궁리했다. 차은성을 죽이려던 것이 실패한 이상, 차은성의 암살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차은성 같은 베테랑 요원이,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마음 놓고 있을 리 없다. 틀림없이 경계할 것이다. 하면, 죽일 수 있는 확률이 대폭 떨어진다.
화이트는 프로답게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았다. 태연하게 앉아 차은성을 마주 보며 어떻게 도주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 * *
차은성은 화이트의 호주머니를 보았다. 자신처럼 상대의 눈으로부터 양손을 감췄다.
‘어쩌면!’
자신처럼 호주머니에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주머니의 사이즈를 미루어 보아 미니 사이즈의 총기일 가능성이 크다.
차은성은 화이트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런데…….
* * *
천천히.
화이트가 호주머니에서 양손을 꺼내더니 이어 코트 안쪽에서 폰을 꺼냈다. 그러곤 고개를 조금 숙이며 오른손으로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응?’
화이트의 행동에 차은성이 당혹스러워하는 순간.
파파팟.
암전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두워졌다. 지하 터널 구간에 막 들어섰다.
차은성은 움칫하더니 즉각 움직이려 하였다.
그 순간.
찌이이이이잉.
135DB의 음파가 차은성을 공격했다. 폰에서 쏘아진 음파에 차은성은 즉각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아악!”
고통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자 상황이었다.
차은성은 불의의 공격에 그만 당하고 말았다.
설마 폰이 음향 무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차은성은 앉은 시트에서 앞에 있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느새 뺀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새우처럼 말았다.
바르르.
또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으으으…….”
차은성은 고통에 반응.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렸다.
그사이.
내부가 확 밝아졌다.
차은성은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화이트를 찾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화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그새 도주하고 말았다.
“이!”
차은성이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을 쓰며 이를 악물었다.
빠드득.
차은성은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음파에 당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아!”
차은성이 주위가 떠나가라 고성을 질렀다.
팀원들을 죽인 놈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르는데.
그녀가 바로 범인일지도 모르는데.
멍청하게도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
차은성이 멈추지 않고 계속 고성을 질렀다.
분하다!
분함을 주체할 수가 없다.
* * *
한편.
주변에 앉아 있는 이들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이상하다?
어라? 왜 저러지?
뭘 잘못 먹었나?
다들 그런 눈으로 차은성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