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58)
연락책이 달튼에게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개입이 확정적인 이상, 자네가 이끄는 CMC 팀을 알아채는 것은 시간문제야. 그러니…….”
“…….”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키돈과 같은 전문 암살 팀이 움직이면, 아무리 자네들이라고 해도 무사하긴 힘들어. 그러니 최대한 빨리 이번 암살 공작을 끝내도록 해. 그럼.”
달튼이 뭐라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빠르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연락책이 전화를 끊었다.
“이봐! 이봐!”
달튼이 연이어 연락책을 불렀지만, 이미 끊긴 통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달튼은 성난 어조로 소리치며 신경질적으로 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퍼석.
폰이 바닥과 부딪치며 깨어졌다. 바닥에서 튀는 폰에서 몇몇 작은 파편이 주변으로 흩날렸다.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십팔!”
달튼이 크게 화냈다. 처음부터 자신과 자신의 팀에게 암살 공작을 맡겼으면, 끝까지 관여하지 말든가.
공작 후에 주기로 한 남은 의뢰 대금을 빌미로 메이저에 이어 CIA가 최대한 빨리 암살 공작을 종결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달튼이 돌아서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곤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짜증 가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누군 빨리 안 끝내고 싶은 줄 알아!”
달튼은 불안했다.
일이 너무 꼬인다. 이렇게 꼬이면, 경험상 반드시하고 해도 좋을 만큼 극히 안 좋은 상황이 생긴다.
달튼은 손을 내리며 진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망할 MSS!”
그들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때 무샤드 왕지는 대전차지뢰에 의해 폭사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찬스였는데. 그만 망쳐 버리고 말았다.
“틀림없이 무샤드 왕자의 경호가 엄중 강화되었을 텐데.”
달튼은 암살이 더 힘들어질 것임을 직감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무샤드 왕자가 이젠 안다. 그러니 자신의 경호에 만전을 기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설사 어렵게 암살에 성공한다고 해도, 와히브를 빠져나가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자칫 와히브 내에 갇혀 버리기라도 하면…….
“결국에는 체포당할 테고. 그럼.”
달튼은 심중의 불안감이 급격히 증대되는 것에 입술을 콱 깨물었다.
이슬람 율법대로!
장성한 공주가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돌팔매질 끝에 죽임을 당한 사우디다.
무샤드 왕자를 암살한 자신들이 체포될 경우, 필히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최후를 맞을 것이 자명하다.
“메이저 놈들이나 CIA 놈들은 여차하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손을 떼며 모른 척할 것이고, 우린 버림받은 채…….”
달튼은 중얼거리며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다. 해당 상황과 직면하고 싶진 않지만, 상황이란 것이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달튼은 해당 상황을 피하는 동시에, 해당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무엇인가를 준비해 둬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꼈다.
“최악의 경우, 내 목숨이나 팀원들의 목숨을 구해 줄…….”
달튼은 우려하는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죽고 싶지 않다!
* * *
김아름이 급히 차은성을 돌아봤다.
“팀장!”
다급한 목소리였다.
차은성이 김아름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다수의 차량이 접근 중이에요. 사방에서 CMC 아지트를 포위하고 조여들어 가고 있어요.”
“영상. 모니터로 빨리 돌려.”
“네.”
김아름의 대답에 이어 급히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타타타탁.
차은성이 모니터를 돌아봤다.
네 개의 분할 영상.
다수의 SUV 차량과 두 대의 밴이 CMC의 아지트를 향해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차내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다수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순간.
차은성은 아차 싶었다.
“하르비!”
소리쳤다.
그러자 김아름이 깜짝 놀라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팀장!”
“아만이야!”
“네?”
“우리 뒤통수를 치려는 거야? 젠장!”
차은성이 화냈다.
김아름은 뭐가 뭔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
“드론은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제공해 준거야. 그렇지?”
“네. 그렇죠.”
“드론의 영상은 그들이 우리보다 앞서 캐치해.”
“그야 당연…….”
김아름이 말하다 멈칫했다.
“설마?”
“그 설마가 맞아. 교활하게도 우리를 이용해 CMC의 아지트를 알아냈어. CMC를 쓸어버리면 더는 무샤드 왕자의 암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간단하지?”
“그럼 우린?”
“이스라엘의 사냥개가 된 거야. 사냥꾼인 아만을 CMC의 아지트로 안내하는 사냥개가 말이야!”
차은성이 화냈다.
하르비에게 당했다.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얻어맞았다. 설마 이렇게 뒤통수를 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비, 무기, 자금을 지원해 줘 협력자라고 생각,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경계했어야 했는데. 경계에 실패하고 말았다.
“팀장. 이제 어떻게 하죠?”
김아름이 차은성에게 물었다.
“지금 즉시 민준이와 형광이에게 알려 주고 대기하라고 해.”
“네. 대기요.”
“그래.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차은성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아쉽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차은성이 잠깐 생각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아름아.”
“네.”
“혹시 CMC 애들 중에 도주에 성공하는 애들이 있을지 몰라.”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별도의 아지트?”
김아름의 반문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
“외부에 경계 인력을 배치해 둔 CMC야. 그러니 곧 보고가 들어가겠지. 다수의 차량이 그들 아지트로 급습, 접근 중이라고 말이야.”
“수뇌부가 도주할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래. 그러니깐 민준이와 형광이에게 그들을 미행하라고 해.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당부하고.”
“네. 팀장.”
김아름이 대답하며 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더니 서둘러 황민준과 우형광에게 연락했다.
차은성은 다시 모니터를 봤다.
“하르비. 당신 뜻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아만의 급습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CMC가 알지 못했다면 급습이 성공하겠지만 외부에 경계 인력이 배치되어 있는 이상, 급습 경보가 CMC 팀에 전해질 것이다.
모니터를 보며 눈을 반짝이던 차은성이 무엇인가 잊은 것이 생각난 듯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설마?”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친다.
차은성이 급히 주변을 돌아봤다. 장비와 무기, 자금이야 회수하기 어렵지만. 어차피 고액을 지원해 준 것도 아니다.
하르비가 장비와 무기를 회수하기 위해.
자신들의 개입 흔적을 지우기 위해.
지금 있는 이곳을 치고 들어올지도 모른다.
자신과 팀원들은 현재 MSS로 위장 중이다.
차후 NIS가 아만에 항의하면 ‘MSS인 줄 알았는데 한국 NIS 요원들이었습니까?’라고 적반하장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모든 흔적을 없애 버리면.
NIS가 아만이 자신과 팀원들을 죽인 것을 모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은성이 급히 김아름을 돌아봤다.
“아름아.”
“네, 팀장.”
김아름이 돌아봤다.
“SH를 옮긴다. 지금 즉시 퇴출 준비해.”
“예에?”
김아름이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우리도 급습당할 수 있어.”
“아…….”
“서둘러!”
차은성이 재촉했다.
“예에에.”
김아름이 대답하며 급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C포인트로 이동한다고 민준이와 형광이에게 알려.”
“네. 팀장.”
김아름의 대답을 들으며 차은성이 급히 좌로 돌아서더니.
후다닥.
다급하게 뛰었다.
* * *
잠시 후.
차은성이 지하실 계단을 황급히 뛰어 올라갔다. 상의에는 전투용 조끼를 착용했고 오른손에는 M4A1 소총을 들었다. 왼손에는 두 개의 탄창을 쥐었다.
만에 하나 아만의 급습이 있을 경우, 차은성은 김아름이 퇴출할 시간을 벌어 주려 했다.
친구도 적도 없다!
뒤통수를 친 하르비처럼,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은 속한 세계에서는 일상다반사다.
다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뒤통수치는 것을 밥 먹듯이 한다.
* * *
타타타타타타탕.
요란한 총성이 거주지에 메아리쳤다.
“히익!”
“꺄아악!”
“총격전이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다들 집 안으로 들어가며 창문을 걸어 닫았다.
CMC의 이들은 급습한 아만의 요원들을 상대로 총격전을 이어 나갔다.
퍼퍼퍼퍼퍽.
총탄이 주위 곳곳에서 튀고 박혔다.
“악!”
“크악!”
총상을 입은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콰앙, 쾅.
수류탄이 터지는 폭음이 연이어졌다.
아만의 요원들은 CMC의 아지트 내로 진입하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CMC의 이들이 악착같이 저항하며 그들의 진입을 막아섰다.
특히 경계 때문에 외부에 배치된 CMC의 이들이 급습한 아만의 요원들을 좌우에서 기습 및 타격했다. 그 바람에 아만은 정면과 좌우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좌우에서의 공격에 상당한 수의 아만의 요원들이 당황했다.
좌우에서 공격하는 CMC의 이들이 그들에 비해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다들 AK 소총을 맹렬하게 난사하는 바람에.
세 방향에서의 공격을 미처 염두에 두지 않은 탓에.
아만의 요원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 * *
그사이.
아지트를 빠져나온 달튼과 몇몇 이들이 급히 서너 대의 SUV에 나누어 탑승했다. 그러곤 다급하게 골목길을 내달리며 아지트에서 멀어졌다.
* * *
그리 오래지 않아.
아만 요원들이 결국 CMC의 아지트 내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쿠와아아아앙!
온 세상이 떠나갈 듯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음이 주위로 멀리 울려 퍼지고 화염이 사방팔방으로 내뻗었다.
아지트가 폭발에 힘없이 주저앉고 먹구름 같은 자욱한 먼지가 뭉글뭉글 일어났다.
아지트로 진입한 아만 요원들과 내부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CMC의 이들. 그들 중 상당수가 그만 폭사하고 말았다.
* * *
얼마 후.
와히브의 경찰차들이 떼로 몰려왔다. 그들은 나는 듯이 골목길을 지나, 예의 아지트에 당도했다.
* * *
몇 시간 후. 전통 시장에 위치한 모 데이츠 전문점.
멀 경 자 형태의 내실 정중앙에 앉은 하르비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살아남은 요원들은?”
“중상을 입고 경찰들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현재 경찰들이 병실은 물론 병원을 엄중하게 둘러싸고 있어…….”
부하의 보고에 하르비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털썩.
이어 양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며 참담한 표정을 짓더니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실패…….”
“CMC 놈들이 아지트에 폭약을 미리 세팅해 두었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
하르비가 성난 얼굴을 들어 부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애에!”
주변이 떠나가라 고함치는 하르비. 엄청 화난 모습이었다.
부하가 기가 죽는 듯 찔끔거리며 몸을 움츠리더니 하르비의 눈치를 보았다.
“죄다 일급 요원들이었어!”
하르비가 거듭 고함쳤다.
“…….”
“작전 실패라고 어떻게 상부에 보고해! 그런 피해를 입고도 달튼 소령을 포함, CMC 용병들을 놓쳤단 말이야!”
하르비가 이성을 잃은 듯 부하를 심하게 질책했다.
부하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텔아비브에서 이 일을 알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