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52)
경찰청 정보국장실.
1인용 소파에 앉은 임범철 국장이 은근 불쾌하다는 눈으로 좌측에 앉은 비서관 김다연을 바라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최상국 과장은 좌불안석이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양 어쩔 줄을 몰랐다.
상사인 임범철 국장을 물 먹인 것은 물론,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조직에 있어 생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위계질서는 물론이고, 지휘 체계 역시 무시해 버린 꼴이 되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모를 수 없는 최상국 과장이다. 그 때문에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임범철 국장이 입을 뗐다.
“김 비서관.”
“네. 국장님.”
“최 과장에게 노태준이라는 사람의 신원 조사를 부탁했다고?”
임범철 국장의 말에 김다연이 말없이 맞은편에 앉은 최상국 과장을 보았다.
‘칠칠치 못하게.’
임범철 국장 몰래 알아보면 될 것을, 멍청하게도 그만 들키고 말았다.
“국장님.”
“말해.”
“제가 어느 분을 모시고 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김다연의 말에 임범철 국장이 흠칫하더니 물었다.
“청장님 지시였나?”
“네.”
“그런데 국장인 나는 왜 몰랐을까?”
“공적인 업무가 아니라 사적으로 알아보려는…….”
김다연이 말끝을 흐렸다.
“흠. 사적인 지시다.”
“네.”
김다연의 말이 끝나자마자.
“공직자가 사적인 용도로 국가 공권력을 사용해도 되나?”
임범철 국장이 김다연에게 물었다.
“국장님!”
김다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 비서관.”
“네.”
“듣자니, 해경이가 또 사고를 쳤다면서?”
임범철 국장의 말에 김다연이 움찔했다. 역시 정보국장이다. 어느새 다 파악했다.
“…….”
김다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청장님은 언제까지 그렇게 막 나가며 문제를 일으키는 딸을 감싸고도실 참인가?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 말이야.”
임범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감정을 내비치자, 듣기 불편한지 김다연이 서둘러 말했다.
“국장님. 청장님께 과한 말씀이십니다.”
“알아.”
“네.”
“내가 자넬 부른 이유는…….”
임범철 국장이 말을 흐리며 곤혹스럽다는 기색을 지었다. 이어 최상국 과장을 돌아봤다.
“자네 부탁을 받은 최 과장이 노태준이란 사람의 신원을 조회해서…… 처음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어. 그런데 그 사람의 직장과 군 이력을…….”
최상국 과장이 청장에게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 노태준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털려고 했다.
그런데 조회 중에 느닷없이 경고 메시지가 떴다.
“1006!”
임범철 국장의 말에 김다연이 순간 깜짝 놀랐다.
“예에에?”
‘NIS!’를 의미하는 고유 번호다.
임범철 국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몇몇 주름이 잡혔다.
“게다가 얼마 있지 않아 2차장이 좀 보자고 내게 전화가 왔었어.”
임범철 국장의 말에 김다연이 입을 따악 벌렸다. 크게 놀란 그녀다. 휘둥그레 뜬 눈동자에 경악이란 감정이 한가득 담겼다.
1006이 뜬 것도 놀랍기 그지없는데,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2차장 선우종이 임범철 국장을 보자고 했다?
업무상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다. 한데 2차장이, 임범철 국장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너무 빠르게 움직였다.
“그게 뭘 의미하는 줄 아나?”
임범철 국장이 김다연을 쏘아보았다.
“구, 국장님.”
“해경이가 NIS와 엮였다는 것을 의미해. 더욱이 2차장이 그렇게 빨리 내게 연락할 정도로 심각한 일에 말이야.”
“…….”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이제 이해가 가나?”
“…….”
김다연은 침묵했다. 심중 매우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느닷없이 NIS라니!
* * *
한편 최상국 과장은 임범철 국장의 눈치를 보았다.
‘우라질!’
아주 심각한 일에 그만 연루되고 말았다. 국장의 재가 없이 NIS와 관련이 있는 이를 조회했다. 2차장이 직접, 그렇게 빠르게 연락했다면…… 심상치 않다!
‘이건 좌천 아니면 유밴데. 꿀꺽.’
최상국 과장은 죽을 맛이었다. 임범철 국장 성격에 자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디 완도나 신안도 같은 섬에 처박아 버리거나. 아니면, 땅 끝 마을 같은 곳에 파견 보내고도 남을 사안이다.
그런 이유로 최상국 과장은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빌어먹을.’
최상국 과장이 김다연을 바라보았다. 청장을 지근에서 모시는 그녀라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데,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가 될 줄이야.
* * *
이틀이 지났다.
차은성은 오주택 변호사와 함께 아무 소득 없이 경찰서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안 돼! 이런 전례가 없었는데.”
의문조로 중얼거리는 오주택 변호사의 모습에 차은성은 개인적인 경로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았다.
* * *
컴퓨터 모니터에 앉아 메일을 읽는 차은성.
“으음.”
묵직한 침음을 흘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이번 일로 2차장이 정보국장 임범철과 회동했다. 그 결과, 조만간 노태준이 유치장에서 나올 것이다. 이번 일이 커지는 것도, 확대되는 것도 양측 모두 바라지 않는다. 결론은 뻔하다.
“경찰청장이 선배를 건드렸다?”
차은성의 중얼거림에서 분노가 배어 나왔다.
국가권력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경찰청장 민경구다.
차은성이 메일을 삭제하고 보안 프로그램을 몇 돌렸을 때, 폰이 울렸다.
띠리리리.
보니 박영광이었다.
“훗.”
차은성은 실소했다. 보나 마나다. 노태준 건으로 호출하는 것이다.
* * *
몇 시간 후 옥상.
차은성은 박영광과 나란히 섰다.
박영광이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나서지 마라!”
“…….”
“네 성격에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아 호출한 거야.”
“…….”
“은성아.”
박영광이 돌아봤다.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차은성이 감정이 없는 어조로 말했다.
“은성아.”
차은성이 천천히 박영광에게서 돌아섰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2차장님이 임범철 정보국장과 합의를 본 사항이다.”
박영광을 뒤로하고 차은성이 옥상 입구로 걸어갔다.
“상대는 경찰청장이야. 안 돼!”
박영광이 뒤에서 소리쳤다.
차은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라 말하지 않았다.
박영광은 전례 없이 차가운 차은성의 태도가 불안했다.
“저 자식이! 진짜!”
틀림없이 사고를 칠 것이다. 증거는 없지만 한조 그룹 한필승 회장을 저격으로 날려 버린 것은 아마 차은성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차은성이 이번에는 경찰청장을 노린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만약 진짜 차은성이 그럴 작정이라면 경찰청장은 죽는다!
그럼 그 여파가 이만저만 클 것이 아니다. 아닌 말로 청와대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것이다.
차은성이 바보가 아니니, 일절 증거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차은성의 짓을 의심해도, 입증할 증거 따윈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증거가 없으면 차은성을 살인범으로 기소는커녕 수사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대만민국의 법이!
NIS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신분과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는 필드 요원이기 때문이다. 증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증거 없이는 경찰과 검찰도 차은성에게 손댈 수 없다.
박영광은 차은성의 행위가 불러올지도 모르는 여파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발…….”
박영광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주체할 수 없는 불안한 눈빛을 띠었다.
과격성이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은성이다. 차은성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그 괴물이 혹여 깨어날까?
박영광은 소름이 돋았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피바다가 연출될지도 모른다. NIS 역사상 최대의 위기 상황이 생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 * *
청장실.
민경구가 좌측에 앉은 임범철 국장을 바라보았다.
“청장님.”
임범철 국장이 음의 고저가 없는 어조로 민경구 청장을 불렀다.
“내곡동에서 이번 일을 조용히 묻고 지나가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래.”
민경구 청장이 ‘그럼 그렇지’라는 감정을 내비쳤다.
누가 뭐라고 하든 대한민국 10만 경찰의 수장이다. 주어진 권한이란 권력은 실로 막강! 그 자체다.
그런 자신을 NIS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의 직접적인 과오가 아니다. 딸아이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아닌 말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비화된 격이다.
그런 일에 NIS가 나설 리가 없다.
민경구 청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상체를 숙였다. 그러곤 테이블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더니 이내 불을 붙이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임범철 국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데…….”
임범철 국장이 말을 흐렸다.
그새.
민경구 청장이 앉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하얀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이어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임범철 국장이 입술을 잠깐 깨물었다 뗐다.
“몇 가지 조치를 취해 달라! 그렇게 조건을 달았습니다.”
“조건?”
“네. 그것이…… 정중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그리고 해경이에 대한 법적인 조칩니다.”
“뭐야!”
민경구 청장이 순간 버럭 고함치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임범철 국장이 흠칫거리며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청장님.”
“사과는 뭔 사과? 합의금은 신경 써서 주면 될 테고. 그런데 법적인 조치? 나더러 딸을 검찰로 넘기라 그 말이야?”
민경구 청장이 화내며 손에 쥔 담배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청장님.”
임범철 국장이 급히 민경구 청장을 불렀다.
“…….”
“법적인 조치를 밟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유능한 변호사를 붙여 주면 불기소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검찰도 청장님을 보아 해경이를 곧이곧대로 처리하진 않을 겁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야. 내 딸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민경구 청장이 언성을 높였다.
“나중에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되려고 할 때, 해경이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이 내 약점이 될 수도 있어. 불필요한 구설수는 처음부터 안 만드는 것이 좋다, 그 말이야.”
알고 보니, 심중 아주 야무진 꿈을 꾸는 민경구 청장이었다.
“청장님. NIS와 엮였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기자들이 아는 날에는 온 언론이 난리법석을 피울 겁니다.”
“…….”
“그렇게 되면 청와대나 국회가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이래저래 청장님께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습니다.”
“…….”
“해경이를 법대로 조치를 취해 미담을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임범철 국장이 민경구 청장을 설득하려 하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내 딸이 일진이고, 겨우 어깨가 부딪쳤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학급의 애를 전치 7주가 나오도록 집단 구타 했다는 것을 내 손으로 온 세상에 까발리란 말이야!”
민경구 청장이 성난 어조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씨도 안 먹힐 것 같다.
‘휴우우.’
임범철 국장은 심중 한숨을 쉬었다.
답답해도 이리 답답할 수가 없다.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으려는 민경구 청장이다.
그때.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뭐야?”
민경구 청장이 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내 문이 열리고 김다연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였다 든 그녀가 말했다.
“노태준 씨가 와 있습니다.”
일순 민경구 청장과 임범철 국장이 흠칫하더니 서로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