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49)
차은성이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팀장.”
김아름이 돌아봤다.
“바로네에 전파 방해 시작해.”
“팀장!”
“알아. 하지만 CIA의 지원을 최대한 늦춰야 해.”
“빈집 털기예요?”
김아름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알겠어요. 바로 시작할게요.”
김아름이 시선을 바로 하며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차은성이 김아름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비라디스 빌딩에서 하지 못한 일을 시도해 볼 참이다.
이 기회에 노동당 33호실과 CIA의 정보를 최대한 모을 생각이다.
박영광의 오더 중 하나가 해당 정보의 수집이다. 그 때문에 33호실 요원들의 공격을 담고자 다수의 카메라를 동원. 현재 쥐도 새도 모르게 촬영 중이다.
* * *
은폐한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각자의 망원경으로 바로네를 살폈다.
“와우. 북쪽 애들 화끈한데요.”
우형광이 말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저렇게 무식하게 공격하면 어쩌자는 건지?”
황민준이 답답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통신망을 통해 우형광과 황민준의 말을 들은 노태준이 말했다.
“그만큼 북쪽 애들이 열 받은 거야. 아마도 평양에서 뭔가 단단히 한 소리 들은 모양이다.”
“평양에서요?”
황민준이 물었다.
“뻔하잖아. 전쟁을 시작한 건 CIA라고. 호전적인 북한 성향상 이번 일은 가만히 못 넘어가.”
우형광의 말에 황민준이 말했다.
“그래도 저건 너무 도에 지나쳐.”
“우리와 뭔 상관이야.”
우형광의 말에 노태준이 말했다.
“일단 지켜만 봐. 행여 은폐한 거 들키지 말고.”
“네에.”
“알겠습니다. 선배.”
우형광과 황민준이 대답했다.
* * *
33호실의 공격은 30여 분 남짓 이어졌다. 이후, 33호실 요원으로 보이는 다섯 명이 김병두로 여겨지는 이를 부축하며 급히 밖으로 나왔다.
다른 33호실 요원들이 그들을 엄호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바로네 내부에서 뒤쫓아 밖으로 나오는 CIA 요원은 없었다.
33호실 요원들의 기습이 크게 주효한 것 같다.
김병두를 구해 낸 33호실 요원들이 이내 바로네를 떠났다. 그 뒤를 33호실의 다른 요원들이 따라붙었다.
* * *
차은성,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바로네에 들어갔다.
33호실 요원들의 공격을 받은 바로네는 엉망진창이었다. 곳곳에 총탄이 박힌 흔적들이 즐비했으며 폭발로 인한 흔적들 역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죽은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널려 있었고, 각종 집기와 가구들이 산산이 부서진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차은성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에게 소리쳤다.
“중요하다 싶은 것은 닥치는 대로 챙겨. 특히 하드나 USB, 영상 녹화 테이프, 메모리 칩 등 저장 기능이 있는 건! 무조건 수거해.”
“네. 팀장.”
“알겠습니다.”
황민준과 우형광이 대답했다.
“선배.”
차은성이 노태준을 돌아봤다.
“알아. 코드!”
“네. 그리고 CIA 애들 암호 시스템 알고리즘과 위성 접속 코드…… 어쩌면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거나 인근 국가에서 활동하는 요원들 명단이나 해당 요원들을 호출. 접선하는 콜사인이나 코드네임. 그리고 기타 컨택트 방법 등 챙길 수 있는 건 모두 다 챙겨 주십시오.”
“알았다. 그런데 넌 뭘 하려고?”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씩 웃더니.
“바로네가 CIA의 핵심 거점이라면 책임자가 단독으로 랭글리의 중앙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고유 보안 코드가 있을 겁니다.”
차은성의 말에 노태준이 움찔거리며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CIA 애들이 바로네의 비상 구조 신호를 받고 올 동안, 아름이에게 전해 랭글리 중앙 서버에 뒷문을 미리 만들어 둬야 합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습니다.”
노태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 거냐? 그리고 바로네를 털 생각까지…….”
놀랍다는 어조로 말하는 노태준이었다.
랭글리 중앙 서버.
중요도로 말한다면, 미 대통령이 가지고 다닌다는 핵 가방에 필적한다.
* * *
잠시 후.
차은성은 바로네의 책임자가 있을 법한 개인 사무실들을 뒤지고 다녔다.
한참 동안 사무실들을 뒤지다가 다른 사무실보다 규모가 크고 상당히 고가의 책상이 있는 한 사무실로 들어서게 되었다.
느낌이 팍 온다고 말해야 할까? 다른 사무실과 다르다는 느낌에 차은성의 얼굴이 다소 경직되었다.
* * *
한참 후.
이어폰에서 김아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 ……팀장!”
“무슨 일이야?”
차은성이 물었다.
“다수의 헬기가 접근 중이에요. 아무래도 CIA 같아요.”
“알았다. 퇴출할 테니 민준이, 형광이, 태준 선배에게도 알려 줘.”
“네.”
김아름의 대답에 차은성이 주변을 둘러봤다.
“아쉬운데.”
책임자의 개인 사무실이라면 좀 더 뒤져 볼 필요가 있다. 뭔가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CIA로 의심되는 다수의 헬기가 접근 중이라면. 서둘러 퇴출해야 한다.
노동당 33호실 요원들의 공격을 받자마자 자동적으로 시스템이 비상 구조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당 다수의 헬기에는 CIA의 기동타격 팀이 탑승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차은성이 긴장의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예의 긴장 때문일까? 얼굴 역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 * *
모두 일곱 기였다. 무장 헬기들이 공중에서 호버링 하는 동안, 익숙한 동작으로 중무장한 병력들이 레펠 강하했다.
네이비씰. 장거리 타격 전문 부대 랄프, 데브그루, 리컨 등.
다양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된 CIA 기동타격 팀의 행동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신속하게 바로네로 진입하는 한편, 주변으로 흩어졌다. 각자 정해진 듯 일정한 위치에 서며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교전 상황에 대비했다.
* * *
그 광경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차은성,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스마트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
“와아! 죽이네. 도대체 훈련을 얼마나 받아야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야.”
707 특임대 출신인 우형광이 CIA 기동타격 팀의 움직임에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내키진 않지만 대단하긴 대단해.”
옆에 서 있는, 북파 공작 팀 출신인 황민준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쟤네들이 그 유명한 CIA 기동타격 팀이라 이거지.”
노태준의 말에 차은성이 망원경의 광도를 조절하며 말했다.
“네. 움직임으로 보아 맞는 것 같습니다.”
“쟤네들이 그렇게 대단해?”
살짝 의심하는 노태준이었다.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최고죠. 모르긴 몰라도 구르카 용병들도 쟤네들을 상대로는 아마 답이 없을 겁니다.”
“뭐?”
노태준이 놀라 망원경을 내리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흑!”
황민준이 무의식적으로 헛바람을 삼켰다.
“팀장!”
불복하는지.
우형광이 망원경을 내리며 강한 어조로 차은성을 부르더니 이내 돌아봤다.
“쉿!”
차은성이 망원경으로 CIA 기동타격 팀을 계속 주시하며 우형광에게 주의를 주었다.
“팀장.”
우형광이 낮은 어조로 재차 차은성을 불렀다. 그러자 차은성이 고저가 없는 어조로 우형광을 불렀다.
“형광아.”
“네. 팀장.”
“너, 707에 있을 때 사람 몇 명 죽여 봤지?”
“예에?”
우형광이 반문하며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명 죽였냐고?”
차은성이 재차 물었다.
“그, 그게…….”
우형광이 대답하지 못했다.
“니들은 전역할 때까지 줄곧 훈련만 받아. 운이 좋아 실전에 투입. 실전 경험을 쌓아도 죽인 사람의 수는 겨우 한두 명이야.”
“…….”
“CIA 기동타격 팀은 각 특수부대에서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을 선발해. 그들 모두 기본적으로 죽인 사람의 수가 두 자리야.”
“…….”
“그런 최고의 베테랑들을 대상으로 다시 CIA 방식으로 재선발 과정을 거쳐서 CIA만의 독립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재교육 및 훈련을 받아.”
“…….”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긴 하지만.”
“…….”
“사막의 폭풍 작전 때.”
“…….”
“쟤네들. 1개 팀이 바그다드 외곽에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 알 사아카를 무려 1시간 동안 붙잡아 뒀다고 해.”
“…….”
“707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차은성의 물음에 우형광은 침묵했다.
불가능하다.
707 특임대가 총동원되어도 과연 알 사아카를 1시간 동안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차은성이 계속 말했다.
“CIA 기동타격 팀은 전 세계를 통틀어 겨우 5개 팀밖에 없어. 그만큼 CIA로서는 귀중한 자원이란 말이지.”
차은성의 말을 듣고 노태준이 불렀다.
“은성아.”
“네.”
“너어.”
“…….”
“쟤네들에 관해 아는 게 꽤 많은 것 같은데…….”
뭔가 느꼈을까?
노태준이 말하며 차은성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차은성이 천천히 망원경을 내리며 노태준을 돌아봤다.
씨익.
말없이 웃었다.
* * *
얼마 후.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설치한 카메라들을 수거하며 이동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사이.
차은성은 박영광과 통화 중이었다. 얼마나 통화했을까?
“야!”
폰 너머에서 박영광이 화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일 안 생기게 하라고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압니다. CIA 애들이 아직은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만에 하나입니다.”
“콱! 그냥!”
“그리고 말씀하신 정보는 충분히 수집했습니다. 의외의 소득을 기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건 그거고. 만에 하나의 상황 말인데.”
“신경이 쓰이십니까?”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지.”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살며시 웃었다. 이어 북한 영사관 내에 있을 이중 스파이를 언급했다.
“확실해?”
“네. 당일 김병두 영사의 동선을 알고 있고, 이혜란을 비롯하여 33호실 요원들이 비라디스 빌딩을 공격할 때 CIA에 정보를 흘린 자가…… 조사해 보십시오.”
“흠.”
“CIA가 개입을 알게 될 경우, 이중 스파이로 딜을 시도해 보십시오. 조용히 넘어가자고 말입니다.”
“조금 약해.”
“그럼 이번에 확보한 정보를 거기에 얹든가요.”
“너어…….”
“최악의 상황이 없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란 게 어디 그렇습니까? 그러니 미리 대비해 두셔야 합니다.”
“말은 잘한다. 끊어, 인마!”
“넵!”
차은성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위성 통화를 끊었다.
* * *
한참 후.
부우우웅.
밤의 도로를 트레일러가 정속 주행 중이었다.
차은성, 김아름,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이 바로네에서 가져온 정보들을 분류하는 한편,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의외로 소득이 쏠쏠하다.
그러던 중.
“팀장.”
김아름이 뒤돌아보며 차은성을 불렀다.
그러자 차은성이 쳐다봤다.
“뭔가 건졌어?”
물음에 김아름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 * *
차은성, 노태준, 황민준, 우형광, 김아름이 한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김병두 영사.
의식이 없었다. 꿈을 꾸듯 몽롱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웅얼웅얼했다.
차은성이 해당 광경에 눈을 반짝였다.
‘이건…….’
짐작 가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