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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32)화 (32/208)

NIS의 천재 스파이 (32)

미션 도쿄

귀에 댄 폰 너머에서 김아름이 계속 말했다.

“……해상 테크에서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한조 반도체와 거래를 한 적이 없는데. 기존 거래 업체들을 포기하고 한조 반도체에 생산 물량을 대거 돌릴 순 없다고…….”

“…….”

“국내 반도체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해상 테크를 압박하면 고분고분 말을 들을 줄 알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안 통했다!”

차은성의 말에 김아름이 대답했다.

“네. 정부에 은근 기대하고 있던 한조 그룹이…… 해상 테크를 대상으로 매우 공격적인 M&A를 걸었어요.”

“…….”

“어차피 앞으로 웨이퍼는 계속 필요하고 국내 웨이퍼 생산업체 중 해상 테크만 한 회사도 없고. 현재 주가도 연일 상한가다 보니 한조 반도체에서 해상 테크를 한조 계열사로 흡수하는 것이 이익이면 이익이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 그룹 사장단 회의에 안건으로 올렸는데.”

“…….”

“한조 그룹 한필승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상 테크를 인수 및 합병하라고…….”

“…….”

“한조 그룹은 재계에서 한성 그룹과 함께 1, 2위를 다투는…… 해상 테크가 속한 해상 그룹은 겨우 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아요. 더욱이 해상 그룹 오너 일가에게 해상 테크 정병훈 사장은 왕따 당하는…….”

“…….”

“재혼까지 정략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고 정병훈 사장이 고집을 부리며 끝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어요. 그 때문에 사실상 해상 그룹 내에서…… 지금 해상 테크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 있어요. 주변에 모두 적이고, 우군이라고는 없는…….”

김아름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차은성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런 한편으로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기업 간의 일이다 보니 도움을 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기도 그렇다.

그런 이유로 차은성은 심중 매우 답답했다.

“팀장, 팀장.”

차은성이 아무 말이 없자 김아름이 거듭 불렀다.

“아름아.”

“네, 팀장. 무슨 일 있어요?”

김아름이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물었다.

“아마 한조 그룹에서 정부 쪽에…….”

차은성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아름이 말했다.

“기재부 이상복 차관이에요.”

“뒷조사 좀 해 줄래?”

“팀장!”

“순수하게 국가 경제를 생각해서 그렇게 나선 건지. 아님, 한조 그룹에서 받아먹은 것 때문에 그렇게 나선 건지 알고 싶은데.”

“팀장. 굳이 조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뻔한데요.”

“그래도 확인해 봐야 하니 알아봐 줘.”

“네, 알겠어요. 그 외에 따로 지시할 것은 없으세요?”

“지금은 없어. 있으면 다시 전화하마.”

“예에에. 어련하시겠어요. 들어가세요.”

“응.”

차은성이 김아름과의 통화를 끝내고 폰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하염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휘이잉.

늦은 겨울. 찬바람이 무척이나 휑한 느낌을 준다.

*    *    *

한 달 후. 공덕동 모 중국집.

방 중앙에 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박영광과 차은성이 마주 보며 앉았다.

두 사람은 짜장면을 먹으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결론이 났어.”

박영광이 말하며 젓가락으로 단무지 하나를 집었다.

차은성이 씹던 면발을 삼켰다.

“찝찝한데요.”

박영광이 단무지를 씹으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렇지?”

“네.”

“한데, 하지 않으면 CIA 애들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없어. 그리고 외교 안보 수석이…… 사장님이 속이 뒤집혀 죽겠다고 요즘 위장약을 달고 사셔.”

“함정일 가능성이 큰 것 같은데요.”

“외교 안보 수석이 그런 거 신경 쓰는 인간 같으냐? 그 인간은 늘 결과가 중요하지,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에는 전혀 관심 없어. 오죽하면 우리더러 왜 CIA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냐고, 아주 대놓고 사람 복장을 뒤집어 놔.”

차은성이 컵을 들었다.

“현 정부.”

물을 마신 후.

“문제 많은 거 아시죠?”

컵을 내려놓았다.

그새.

박영광이 면발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래도 역대 정부 중에서 제일 나아.”

“나아요?”

“그래. 몇몇 놈들이 문제지.”

박영광이 면발을 씹었다.

“우리만 해도 그래. 우물우물. 1차장 그 인간, 어휴, 답이 없어, 답이!”

“이번 일에 1차장이 관여…….”

차은성이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실숩니다.”

1차장이 국외 활동을 총괄한다. 당연히 관여되어 있다. 더욱이 1차장 뒤에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외교 안보 수석이다.

박영광이 계속 면발을 씹으며 말했다.

“DIA 쪽에 뒷문을 하나 열어 두었으니깐 넌…….”

차은성이 젓가락으로 면발을 들어 올리다가 멈칫했다.

CIA와 견원지간인 기관이 둘 있다. 하나는 FBI이고 다른 하나는 DIA다.

차은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참에 DIA와 손을 잡고 시먼스 부국장을 한직으로 밀어낼 생각이다.”

박영광의 말이 끝나기 전에.

“미쳤어요?”

차은성이 놀라 외쳤다.

“쉿!”

박영광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차은성이 목소리를 낮췄다.

“제정신이세요? 누구를 한직으로 밀어네요. 네에?”

“마아! 국장이 이번 일에 목을 걸었어.”

“국장님이 목을 걸어도, 그게 될 일입니까? 도대체 뭔 정신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차은성은 말끝을 흐렸다.

두 명의 CIA 부국장. 그중 한 사람인 시먼스를 한직으로 밀어내겠다니. 더욱이 앙숙 중 앙숙인 DIA와 손을 잡고서.

“그러다 시먼스 부국장이 보복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차은성이 불안한 어조로 말하자.

씨익.

박영광이 웃더니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꿀꺽, 꿀꺽.

연후.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월터 부국장도 우리와 손을 잡았으니깐.”

“네에에?”

차은성이 크게 놀라 반문했다.

씨익.

박영광이 웃으며 득의의 눈빛을 띠었다.

“우리가 CIA 애들과 어디 한두 해 손발을 맞췄냐? 아닌 말로다가 CIA 전신인 OSS 시절부터 함께 손발을 맞췄어.”

박영광이 CIA 내부에 친한국 인사들이 적잖음을 언급했다.

“……월터 부국장도 그동안 시먼스 때문에 아주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앙숙 중 앙숙인 DIA와 손을 잡은 것을 보면 말이야.”

“삼촌. 월터 부국장까지 나섰다면 시먼스 부국장을 한직으로 충분히 밀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가 돌아와 보복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차은성은 불안했다.

CIA 부국장은 단순히 능력만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더욱이 시먼스 부국장은 미국 내에서 강경 매파에 속한다. 뒷배가 든든하다는 말이다.

“걱정할 것 없어.”

박영광은 자신만만했다.

“시먼스 부국장을 한직으로 밀어내고 월터 부국장이 다음 CIA 국장이 되면!”

박영광의 눈이 반짝였다.

“게임 오버야!”

확신과 자신감이 넘쳤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박영광의 말대로 되면 좋긴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대개의 경우, 생각대로, 장담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    *    *

잠시 후.

“샘 브라운백.”

차은성은 폰 액정을 보았다.

“……시먼스 부국장이 일본을 상대로 일종의 반간계를…… 북방 영토와 관련하여 최근 러시아와 일본 사이가 좋지 않아. 거기에 기름을 부을 심산인지, 러시아와 일본 사이를 최악으로 만들기 위해…….”

“…….”

“일부러 러시아 정보 요원으로 위장시켜 자연스럽게 내각 조사실에 의해 체포되도록 공작했어. 물론 내각 조사실이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졌지. 그런데…….”

박영광의 설명에 차은성이 폰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현재 있는 장소는요?”

“나가다쵸 외곽에 있는 내각 조사실 본청!”

순간.

“컥!”

차은성은 사레가 걸려.

“캐캐캐캑.”

급히 머리를 숙이며 우로 돌아섰다. 이어 급히 컵을 쥐었다. 단숨에 물을 마신 후 빈 컵을 내려놓았다.

연후.

박영광을 보았다.

“저더러 차라리 혀 깨물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으라고 하세요.”

차은성이 화냈다.

그러자 박영광이 살며시 웃었다.

“제 발로 사지로 기어들어 가라고요?”

차은성이 강하게 항의했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지만.”

박영광이 오른손 검지를 들어 차은성을 가리켰다.

“넌! 가능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차은성이 어이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저 지금 얼마나 황당한 줄 아세요?”

“…….”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각 조사실 본청이라고요!”

“…….”

“지금 제정신이세요?”

“마!”

박영광이 검지를 내리더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라렸다. 무언의 야단을 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차은성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나갔다.

“국장님이랑 함께 미치셨어요? 말이 되는 오더를 내려야죠. 네에에!”

말이 되지 않는 오퍼다. 용담호혈이란 말처럼, 내각 조사실 본청으로 잠입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

아닌 말로.

쩌억 벌린 호랑이 입안으로 머리를 들이밀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박영광이 차은성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널 가르쳤어!”

그러자 차은성이 움찔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널……. 그런 내가 널 모를까?”

“…….”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다른 놈들은 못 해!”

“…….”

“오직!”

“…….”

“은성이 너만이 할 수 있어!”

믿음이 실린 목소리였다. 박영광이 자신을 믿고 있다!

“이번 작전은 처음부터 너를 염두에 두고 입안된 거야.”

“…….”

“네가 없었으면 아예 입안도 하지 않았어.”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설마……?”

박영광이 미소 지었다.

“정말이지.”

차은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작전을 입안한 이가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박영광인 것 같다. 처음부터 자신을 염두에 두고 이번 작전을 기획한 것이 틀림없다.

“삼촌…….”

차은성이 나직이 박영광을 불렀다.

그러자 박영광이 눈에 불을 켜듯 형형한 눈빛을 띠었다.

“해야 해!”

“…….”

“CIA를 제외하고서는 우리 NIS의 대외 활동은…… 속에서 천불이 나고 울화통이 터지지만, 우린 CIA가 필요해!”

힘주어 말하며 강조하는 박영광이다.

그는 현실을 말했다. 창설된 지 50여 년이 넘지만, 아직 NIS의 대외 역량은 현저히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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