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30)
변종수는 궁금한 눈빛을 띠며 박스를 보았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한 눈치다.
은빛의 목걸이.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영롱한 빛깔의 루비.
목걸이를 본 순간, 변종수가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아…….”
우아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목걸이였다.
차은성이 상자를 덮더니 옆으로 돌아섰다.
“형. 나 잠시만 쉴게.”
“어?”
변종수가 걸어가는 차은성에게 물었다.
“너, 여자 생겼니?”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엄마!”
차은성이 간결하게 대답하자.
“아차!”
변종수가 실수했다는 듯 당황하더니 급히 폰을 꺼냈다. 그러곤 달력을 확인했다.
“맞네. 얼마 안 남았잖아.”
변종수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그새 계단을 올라가는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은성아…….”
이내 변종수가 알아듣기 매우 어려운 목소리로 가만히 차은성을 불렀다.
* * *
몇 시간 후. 라센느 인근의 한 카페.
안쪽에 있는 아담한 테이블에 두 남녀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히잉. 라센느 구경 좀 시켜 주라. 으응, 오빠?”
“안 돼!”
이복 여동생 정예서의 말을 차은성이 단호하게 뿌리쳤다.
“치사하게!”
“치사해도 할 수 없어. 미성년자가 출입할 만한 곳이 아니야.”
“그래서 만날 때마다 여기야?”
“…….”
“그동안 얼마나 자주 왔으면 내가 이 카페 메뉴를 달달 외운다고. 외워!”
“그래도 안 돼!”
“오빠, 으응? 한 번만. 따아악 한 번만 구경시켜 줘. 으응?”
정예서가 통사정했다.
상체를 쏘옥 내밀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며 오른손 검지를 일직선으로 세웠다.
한 번만!
보기에 꽤 귀여운 모습이다.
하지만.
“안 돼!”
역시나 단호한 차은성이다.
“에이! 관둬! 그래, 관두라고! 내가 치사해서 더는 부탁 안 해. 안 한다고.”
대뜸 정예서가 언성을 높였다. 아무래도 삐진 것 같다.
* * *
한참 후.
정예서가 아무리 사정하고 애원해도 차은성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 돼!
참다못한 정예서가 반쯤 장난스럽게, 오른손 바닥으로 테이블을 세게 탁탁 쳤다.
“이보세요, 차 실장님. 내가 미성년자인 건 맞지만요…… 그 애들도 라센느 드나들잖아요. 그런데 미성년자라고 출입 금지라니. 이건 차별이라고요, 차별!”
“네 장난 받아 줄 기분 아니야. 그리고 걔네들은 소속사가 우리 라센느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고객으로서 방문하는 거라고.”
“그럼 나도 라센느에서 고객으로 머리하면 되잖아.”
“꿈 깨.”
“오빠야!”
“나중에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그때…….”
“맨날 그놈의 주민등록증!”
“케이크나 먹어.”
“차갑긴.”
예서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앞에 있는 포크를 집었다.
차은성은 앞에 있는 머그잔을 들며 심중 미소 지었다.
씨익.
예서가 한사코 라센느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라센느의 고정 고객이기 때문이다.
해당 그룹이 몇 월 며칠에 라센느에 오는지 사전 파악한 후, 해당 날짜에 라센느에 와서 아이돌 그룹을 만나 보려는 속셈이다.
* * *
한참 후.
케이크를 다 먹은 예서가 일어나며 테이블에 카드 봉투를 하나 내려놨다.
차은성이 말없이 봉투와 예서를 번갈아 봤다.
“조금 있으면 엄마 생일이야. 작년도, 재작년도 일 때문에 안 왔잖아.”
“…….”
“엄마가 은근 오빠 보고 싶어 하는 눈치야. 그러니깐 오라고. 알겠지?”
예서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했다.
“너…….”
“볼일 끝났으니깐 난 간다.”
예서가 성큼성큼 걸음을 떼더니 이내 앉은 차은성의 좌측을 지나갔다.
차은성이 돌아서며 물었다.
“너, 집에 가는 거 아니지?”
“이보세요, 차 실장님. 교복 안 보이세요. 교복 입고 제가 어디를 가겠어요? 네에?”
예서가 뒤돌아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그러곤 고개를 바로 하며 빠른 걸음으로 카페 입구로 걸어갔다.
차은성이 그 모습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교복 입었다고 네가 안 놀 애냐?”
이어 뒤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며 테이블에 놓인 봉투를 보았다.
순간.
차은성의 눈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빛이 나타났다.
* * *
부슬부슬 비가 온다.
창가에 서서 답답한 속을 콜라로 달래는 차은성.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좌로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작은 액자. 그리고 사진.
한때는 단란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으며 모든 일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두고 재혼한 어머니 조혜선.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적당한 호칭이 없는 정병훈.
병원비를 비롯하여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고, 어머니 조혜선을 매우 사랑한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정병훈에게 팔려 간 것 같은 기분에, 가능한 만나지 않으려 했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면! 그만입니다!”
중얼거리는 차은성.
모친 조혜선이 아버지와 자신을 이제 그만 잊고 현재의 가정과 가족에게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아 줬음 한다.
이제 자신은 충분히,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에.
* * *
일주일 후.
산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형성된 최고급 주택가.
끼익.
택시가 서고 차은성이 내렸다. 이어 택시가 떠나가고 차은성은 가만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예서의 집이자, 어머니가 살고 있는 저택.
* * *
뜰에 서른 명 어림의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대화 중이었다. 그들 사이를 호텔 식음료부에서 부른 직원들이 오가며 서빙하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차은성.
오른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홀짝이며 사람들을 구경하듯 지켜봤다.
“은성이?”
귀에 들린 음성에 차은성이 움찔하더니 천천히 돌아봤다.
서른 초반의 워킹 걸. 정병훈의 장녀 정의서. 현 해상 테크 홍보실장이다.
“맞네.”
정의서가 알은척했다.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 너무 오랜만에 봐서 긴가민가했어.”
웃는 정의서.
차은성은 그녀에게 별 감정이 없었다. 때문에 샴페인을 홀짝이며 그녀와의 대화를 차단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의서가 다가서며 말을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요즘 머리와 미용을…… 라센느가 회원제던데, 나 좀 가입해도 되지?”
물음에 차은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정의서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넌 예나 지금이나 말이 없구나. 너무 과묵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자식에게 말 안 거는 게 좋아, 누나.”
불쑥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차은성이 쳐다보고 정의서가 돌아봤다.
걸어오는, 차은성과 동갑으로 보이는 청년.
유일한 아들 정지용. 현 해상 테크 상무다.
“지용아.”
정의서가 부르며 힐긋 차은성을 보았다.
“그렇게 볼 것 없어.”
냉랭하게 말하며 정지용이 걸어와 서더니.
“너는 예나 지금이나 밥맛이야.”
적대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
차은성은 침묵했다.
“지용아.”
“하긴.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온 놈이 제정신일 리 없지.”
“지용아!”
정의서가 언성을 높이며 정지용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정지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 2년 정도 눈에 안 보여 좋았는데. 지금 이 순간 내 기분이 뭐 같은 거 아냐?”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차은성에게 무척 도발적인 정지용이다. 싸움을 못 걸어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차은성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차은성이 침묵함으로써 시비를 피했다.
차은성은 정의서를 돌아봤다. 그러곤 말없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은성아. 지용이 말은 그게…….”
정의서의 말이 끝나기 전, 차은성이 말없이 뒤돌아서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은…….”
말을 멈춘 정의서가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놔둬. 누나.”
정의서가 정지용을 돌아봤다.
“넌 왜 은성이를 보기만 하면 시비를 못 걸어 안달이야.”
“휴우. 나도 모르겠어. 저 자식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가능하다면, 평생 동안 저 자식 얼굴을 안 봤으면 좋겠어.”
“너도 참.”
정의서가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은성이는 라센느에 만족하고 있어. 아버지 재산을…… 유산상속 가능성이 현저히 낮단 말이야. 그리고 한다하는 집안 사모님들과 유명 여배우들이 라센느의 회원이야. 잘만 하면…… 은성이를 통해 상당한 인맥을…… 우리 해상은 아직 멀었다고. 알겠니? 겨우 계열사 5개를 거느린 중견 그룹에 불과해. 앞으로 사세를 확장하며 회사를 키우려면 인맥을 비롯하여…….”
“…….”
“너나 내게 떨어지는 건 해상 테크밖에 없어. 지금까지 아버지가 잘 키워 놓으셨지만. 최근 한조 그룹의 M&A로 회사 안팎으로…….”
정의서는 정지용을 타일렀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면전에서 이를 드러내며 덤벼들려고만 하면 어떻게 하니?”
정지용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잔소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누나 정의서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렸다.
정지용은 그새 멀어진 차은성을 보았다.
마음에 너무 들지 않는다. 자신과 누나 앞에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철저히 속내를 감추는 차은성. 그 때문에 마음 한구석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어머니 조혜선을 통해 아버지의 재산에 혹 욕심을 내지는 않을까?
세 어머니 조혜선이 아버지를 구워삶아 차은성에게 크게 한 재산 떼어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은성이 라센느를 열 때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고 한 것을 아직 잊지 못하는 정지용이다.
의붓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차은성이 혹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을까, 마음 저 깊은 곳에 어쩌면 두려움이란 감정의 씨앗이 싹튼 것인지도 모른다.
* * *
샴페인 잔을 들고 천천히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시간을 때우는 차은성이었다.
‘생각 외로 사람들이 적은 것 같은데.’
의아하다.
정병훈은 매년 어머니의 생일에 지금처럼 파티를 연다.
상당한 수의 지인들이 늘 참석한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 더욱이 참석한 이들 태반이 회사 사람들이다.
“……M&A를 건 것이 한조 그룹이 맞아?”
“맞는 것 같아. 그 때문에 지금 증권가가 난리야.”
“젠장. 왜 하필이면 한조야? 한성과 함께 재계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거대 그룹인데.”
“휴우. 이러다 한조에게 우리 해상 테크를 뺏기는 거 아닐까?”
“만약 M&A가 성공해서 우리 해상 테크가 한조 그룹의 계열사가 되면, 고용이 보장이 될까?”
“힘들지. 한조 그룹이 고용 승계 같은 걸 할 그룹이 아니라고.”
“하긴. 얼마나 지독하게 쥐어짜는데.”
“이거 직원들 정리 해고하는 칼바람이 부는 거 아니야?”
“글쎄. 일단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맞아. 지켜보자고. 사장님도 요즘 그것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는 눈치니깐 말이야.”
차은성은 회사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다들 M&A를 입에 올렸다.
‘뭐지?’
M&A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차은성이다. 그 정도 시사 상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