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24)
미션 장춘
한참 후. 종로 뒷골목.
노천에 내다놓은 다수의 원형 드럼통 테이블. 사람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와아아…….”
연지가 불판에서 다 구워진 제비추리를 보곤 탄성을 흘렸다.
냉큼.
그러곤 쥔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이어 씹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오물오물.
작은 입술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맛있지?”
차은성이 묻자 연지가 눈을 뜨더니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죽여요. 입에서 치즈처럼 그냥 녹아요.”
연지의 말에 차은성이 싱긋 웃으며 노태준을 돌아봤다.
“선배. 애 고기 좀 자주 사 먹여요.”
“자주 먹어.”
노태준의 대꾸에 연지가 재빨리 말했다.
“닭고기랑 돼지고기만!”
그러자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웃었다.
“호호호.”
“하하하하.”
연지가 다시 젓가락으로 제비추리를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이어 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새벽에 이렇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진한 의외라는 감정을 피력하는 연지였다.
씨익.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여기뿐 아니라 찾아보면 이 새벽에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 단!”
차은성이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연지 네가 그것을 사 먹을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지.”
차은성의 말에 노태준이 말하며 젓가락으로 부챗살을 한 점 집었다.
“애 데리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옙.”
차은성이 장난치듯이 말하며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쪼르르.
그러곤 노태준의 앞에 있는 빈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 * *
두 달 후. 압록강 중류.
전에 없이 지난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다.
때아닌 갈수기로 강의 수심이 매우 줄었다.
철퍽철퍽.
내딛는 발아래에서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타타타타탕.
콩 볶는 것처럼 요란한 총성이 이어졌다. 수십여 명의 북한 국경 경비대가 강변으로 몰렸다. 그들은 강 중앙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한데.
의아하게도 그들 사이에,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이들이 몇 서 있었다.
* * *
강 중앙.
스물 초반 어름의 여인이 두 남자와 함께 바삐 뛰고 있었다. 세 남녀는 중국 강변으로 넘어가려 했다.
파파파파팟.
뛰어가는 세 남녀의 주변과 발치 인근 바닥에서 총탄이 마구 튀었다.
수십여 명의 북한군이 총을 난사 중이다. 그런데 단 한 발의 명중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광경이다.
북한군의 사격 실력이 형편없었다. 평소 사격 훈련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수십여 명이 동시다발로 난사 중이다. 하여 보기에 이만저만 위태로운 것이 아니다.
* * *
여인의 뒤에서 뛰는 중년인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서자마자 뒤돌았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중년인이 두 손으로 권총을 받쳐 들었다. 그러곤 한쪽 눈을 감으며 가늠좌에 집중했다.
타타타탕.
조준 사격하는 중년인.
그의 사격으로 이내 두서너 명의 북한군이 힘없이 쓰러졌다.
* * *
여인을 인도하듯이, 앞에서 뛰던 남자가 뒤돌아봤다.
북한 국경 경비대가 얼마나 뒤쫓아 왔는지 확인하려던 그는 조준 사격하는 중년인을 보곤 깜짝 놀랐다.
“선배!”
소리쳐 불렀다.
중년인이 조준 사격을 멈추지 않으며 마주 소리쳤다.
“가!”
“선배!”
“빨리 데리고 가아아!”
중년인이 연거푸 소리쳤다.
“선배!”
“가란 말이야!”
중년인의 말에 사내가 주춤거렸다.
어떻게 해아 할지 모르겠다!
사내가 망설였다. 그를 독촉하듯이.
“꺄아악!”
뛰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녀는 머리를 숙이며 양손을 들어, 예의 머리를 감쌌다.
겁에 질려 있음을 모를 수 없다.
* * *
중국 쪽 강변에 서 있는 네 사람이 그 광경에 목이 터져라 외쳤다.
“빨리!”
“어서!”
“서둘러!”
“뭐……해!”
그들은 매우 다급했다. 거리가 있어 총탄이 닿기에는 무리라 안전하지만.
주저앉은 여인의 안전 때문에 그들은 당장이라도 발을 동동거릴 만큼 매우 안타까워했다.
* * *
앞의 남자와 여인이 무사히 중국 쪽 강변에 도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엄호사격을 하던 중년인.
순간.
퍼퍼퍼퍽.
그의 몸에 대여섯 개의 총탄이 거의 동시에 박혔다.
“커……허어억!”
중년인이 크게 신음하며 몸을 앞뒤로 휘청거리더니 이내 앞으로 꼬꾸라졌다.
“선배!”
예의 앞에 있던 사내가 그 광경에 소리쳐 중년인을 불렀다.
그 와중에도.
계속 총탄이 날아와 꼬꾸라진 중년인의 몸에 박혔다.
퍼퍼퍽.
사내가 금방이라도 울듯이 매우 슬픈 표정을 짓더니.
홱.
돌아섰다. 그러곤 여인에게 급히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가요! 어서!”
여인을 종용하며 사내가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러곤 북한군을 향해 상체를 돌리더니 이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사내의 사격이 연이어졌다.
조준 사격이 아니었다. 북한군의 사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일종의 위협사격이었다.
그러는 동안.
사내가 서 있는 주변으로 북한군의 총탄이 날아왔다.
퍼퍼퍼퍼퍽.
총탄이 박히고 물이 마구 튀었다.
사내가 뒤돌아봤다.
“뛰어요! 어서요!”
“…….”
“뒤돌아보지 말고 강변으로 뛰라고요!”
사내가 소리쳤다.
여인은 그의 종용에 뒤돌아봤다.
“어서 가라고요!”
사내가 소리치며 권총에서 빈 탄창을 꺼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곤 품속에서 새 탄창을 꺼내 권총에 삼입했다.
그 순간.
퍼퍼퍼퍽.
서너 개의 총탄이 날아와 사내의 몸 여기저기에 박혔다.
“커…허억!”
그러자 사내의 몸이 앞뒤로 휘청거렸다. 그 와중에도 사내는 여인이 총탄에 맞지 않도록, 자신의 몸으로 여인을 가렸다.
그사이.
여인이 중국 쪽 강변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강변으로 뛰었다.
* * *
중국 강변에 서 있던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뛰어오는 여인을 향해 마주 뛰어갔다.
다른 두 사람은 상의에서 권총을 꺼내 북한 강변을 향해 사격하기 시작했다. 사정거리에 미치지 못하는 위협사격이었다.
타타타탕.
* * *
잠깐이란 시간이 지나고.
“멈춰! 사격 중지!”
북한 국경 경비대의 지휘관인 듯한 대위가 소리치며 좌우를 번갈아 봤다. 그러자 북한군이 하나둘 사격을 멈추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왜 총을 쏘지 않아!”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군복을 입은 상위가 고함치며 지휘관을 쳐다봤다.
성난 얼굴이다.
그러자 대위가 상위를 쳐다봤다.
“정치 군관 동무!”
“…….”
“에미나이래 국경을 넘었소.”
“…….”
“중국 땅을 향해 계속 사격하다가는 문제가 되오.”
“지금 그게 중요하오, 대위 동무! 저 에미나이를 잡지 못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걸 모르오?”
“정치 군관 동무. 지금 설마 우리더러 국경을 넘으라 그 말이오.”
“이!”
상위가 인상 쓰며 여인을 돌아봤다.
여인은 이미 반 이상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두 남자가 그녀를 부축했다.
북한군이 사격을 중지하자, 강변에 서 있는 다른 두 남자 역시 사격을 중지했다.
그 모습에.
으득.
정치 군관인 상위가 이를 악물었다.
“저 반동 에미나이를!”
죽이고 싶은데 죽일 수가 없다.
총성이 크게 다수 울렸으니, 곧 중국 국경 경비대가 올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를 쫓아 국경을 넘을 수도 없다.
이래저래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상위가 우거지상을 하며 살기등등한 눈빛을 띠었다.
* * *
대위는 중국 강변을 바라보며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에미나이래 운이 좋구먼기래.”
혹 정치 군관인 상위가 들을까, 알아듣기 어려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
이레 후. 한강.
날이 풀려 강변을 산책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호젓하게 벤치에 앉아 컵라면을 후르륵거리는 박영광.
저벅저벅.
차은성이 걸어와 우측에 앉았다.
“점심입니까? 아님 간식입니까?”
박영광이 말없이 젓가락으로 면발을 건져 올렸다.
후후.
입김을 불어 면발을 식혔다.
“점심이다.”
“밥 안 드셨어요?”
차은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었어.”
“뭔 일인데요?”
박영광이 입에 면발을 넣었다.
“벤치 아래.”
차은성이 흠칫하더니 오른손을 아래로 뻗었다.
손에 뭔가 잡혔다.
떼어 확인해 보니 폰용 USB였다.
차은성이 다시 주변을 살피며 폰을 꺼냈다.
* * *
액정에 뜬 마흔 중반 어름의 군인. 특이하게도 눈매가 무척 날카로웠다.
박영광이 면발을 씹으며 말했다.
“안중만 대좌. 우리로 치면 대령이야.”
“소속은요?”
“호위총국!”
박영광의 말에 순간 차은성이 놀란 듯 몸을 흠칫거렸다.
후룩.
박영광이 컵라면을 들어 국물을 마셨다. 이어 입에서 떼며 설명했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호위총국 내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났었어. 뭐, 지들끼리 꽤나 치열하게 파워 게임을 했었는데, 꽤나 치열했었어.”
“…….”
“최종적으로 윤광섭 중장 파벌이 승자가 됐어.”
“그럼 대대적인 반대파 숙청이 있었겠군요.”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젓가락으로 면발을 건졌다.
“아주 잔인하게 진행 중이야. 죄다 죽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는데.”
“…….”
“안중만 대좌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 왔어.”
박영광의 말에 차은성이 손가락으로 액정을 옆으로 휙 밀었다.
그러자 액정에 스물 초반의 여성이 나타났다.
“안하랑. 이름이 다소 특이하지.”
“…….”
“북쪽 애들이 우리말을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안중만 대좌의 딸입니까?”
차은성이 물으며 재차 주변을 둘러봤다.
“맞아. 몇 달 전에 유학 중이던 스위스에서 북한으로 들어갔는데…… 딸이 죽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한 모양이야……. 우리에게 거래를 제안해 왔어.”
“어떤 정보를 주기로 했습니까?”
“모르면 모를수록 안전한 법이다.”
“제게도 비밀입니까?”
“필드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이 잡히는 상황을 감안해야 하니깐.”
“어련하시겠습니까?”
차은성의 말에 박영광이 컵라면을 벤치 좌측에 내려놨다. 그리고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제게 오퍼를 내리시려는 걸 보니, 고립된 모양이로군요.”
“말해 뭐해.”
박영광이 우려의 눈빛을 띠며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안중만 대좌가 탈북 중에 호위총국 9과에 당해 죽고…… 안하랑을 탈북 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요원 둘이 죽었어.”
“…….”
“현재 장춘에 고립된 상황이야.”
“…….”
“북한 애들이 공안을 움직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전례 없이 공안이 빠르게 움직였어.”
“…….”
“빠져나오기 직전에.”
“…….”
“무장 공안들이 장춘 외곽을 엄밀하게 차단.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바람에 그만 갇혀 버렸어.”
박영광이 답답한 기색을 지었다.
“……게다가 중국 국안부 5과 소속의 뇌전대가 움직여…… 장춘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어.”
박영광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제게 오퍼가 떨어진 겁니까? 아님, 저희 팀 전체에 오퍼가 떨어진 겁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박영광이 담배를 깊이 빨았다가 하얀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허공에서 연기가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