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21)
자정이 넘은 시각. 빌딩.
환한 내부는 정적이 감돌 정도로 고요했다.
“…….”
침중한 분위기!
큼직한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차은성,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우형광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맞은편에 서 있는 황민준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팀장.”
“…….”
“저는 형광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자가 저희 생각과 달리…….”
차은성이 고개를 까닥였다.
“예상 밖의 상황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차은성의 말에 김아름, 황민준이 일순 어리둥절했다.
우형광은 슬그머니 숙인 고개를 들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실은…… 범행 현장들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이 아니면…… 틀림없이 연고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장소에서 범행을…….”
차은성은 의문이란 진한 감정을 내색했다. 이어 황민준을 보았다.
“민준아.”
알아낸 것이 있는지 돌려 물었다.
“담당 형사들을…… 현장에서 혈흔, 지문, 발자국, 족적, 정액 등…… 일절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현장에 출동한 감식반이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몇몇 형사는 범인이 현장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감식, 법의학, 형사, 검사 등…… 특정 직업군의 이가 아닐까 의심하긴 합니다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별로 소득이 없습니다.”
황민준이 머리를 숙였다.
“음…….”
차은성이 침음을 흘렸다. 절로 점입가경이란 말이 생각난다.
차은성이 김아름을 돌아봤다.
“아름아.”
“죄송해요. 저도 그다지 소득이 없어요.”
“휴우우.”
김아름의 대답에 차은성이 한숨을 쉬었다. 이어 당혹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놀랍다!
이렇게 단서가 없을 줄이야.
“팀장. 보통 놈이 아닙니다. 미행과 추적 등 관련 교육 및 훈련을 받은 절 따돌린 놈입니다.”
우형광이 차은성에게 말했다. 그러자 황민준이 뒤이어 말했다.
“팀장. 범행 현장이 그렇게 깨끗하다는 것은 관련 전문 지식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저도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이에요, 팀장. 경찰, 검찰 등 제가 알아볼 수 있는…… 그 어디에서도…… 경찰이나 검찰도 놈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김아름의 말에 차은성이 중얼거렸다.
“놈의 범행에서 생존자가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몽타주가 작성되었을까?”
의구심을 내비쳤다. 그러자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순간 움찔했다.
“누군가가 놈의 얼굴을 보았으니 몽타주를 그렸을 거 아냐?”
차은성의 말에.
“제가 관련 경찰 자료를 훑어봤는데, 목격자는 없었어요. 다만!”
김아름이 차은성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만?”
차은성이 김아름을 보았다.
“놈에게 형사가 당해…….”
김아름의 말에 차은성이 놀라 반문했다.
“놈이 형사를 죽였단 말이야?”
“네. 몽타주가 아마 그 형사가 남긴…….”
“팀장!”
황민준과 우형광이 동시에 차은성을 불렀다.
“우리 상대가 아주 골 때리는 놈인 것 같은데…….”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재차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에.”
“형광이가 차고 있던 캠들의 영상 말인데.”
“현재…… 이렇다 할 이상한 점은 없어요. 놈의 얼굴 확보에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아요.”
김아름이 미안해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차은성이 말하며 황민준과 우형광을 돌아봤다.
“지금 우리에게는 놈을 추적할 단서가 하나도 없어. 그리고 놈은 지금 태준 선배의 딸 연지를 노리고 있어.”
차은성의 말에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침묵했다.
“…….”
“……흠.”
차은성이 침음하며 고개를 숙였다. 눈에 테이블이 한가득 들어왔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분명 놈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있어. 단지 우리가 그 단서를 찾지 못하는 것뿐이야.’
세상 모든 수학 문제에는 답이 있다!
* * *
얼마 후.
김아름, 황민준, 우형광이 고개를 숙인 차은성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런 한편으로 서로 힐긋거리며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편.
공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가 잠시 이어졌다.
천천히.
차은성이 고개를 들어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팀장.”
“×× 지도를 띄워 봐.”
“네?”
김아름이 영문을 몰라 했다.
“아, 그리고 지도에 그자의 범행 장소를 따로 표시해 줘.”
“네.”
김아름이 대답하며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의아한 것은 황민준과 우형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차은성의 눈치를 보며 물을까 말까 망설이더니 서로 돌아보았다. 그러곤 무언으로 서로 재촉했다.
―네가 말해.
―네가 해.
무언의 실랑이를 주고받았다. 결국 황민준이 조심스럽게 차은성을 불렀다.
“팀장.”
“할 말 있으면 해.”
차은성이 양손을 벌려 테이블을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왜에 지도를…….”
황민준의 물음에 차은성이 힐끔 쳐다봤다.
“민준아.”
“네.”
“만약에 말이다.”
“…….”
“네가 범인이라면?”
“…….”
“넌.”
“…….”
“네가 사는 동네에서 범좌를 저지를까? 아님, 다른 동네에 가서 범죄를 저지를까?”
차은성의 물음에 황민준이 어안이 벙벙한지 뭐라 말하지 못했다. 무심코 우형광을 돌아봤다.
그러자 우형광이 차은성을 보았다.
“팀장. 당연히 다른 동네에 가서 하지 않겠습니까?”
우형광의 말에 차은성이 빙긋 웃었다.
“그렇겠지?”
“네. 자신이 사는 동네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자칫 자신이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 자신이 의심받지 않고 범죄와 자신을 결부시킬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사는 동네와 멀어지려고 해.”
“…….”
“그런데 이동 거리와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
“자신이 사는 동네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오가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그럼. 오가는 것이 귀찮고 짜증이 나. 그게 사람의 마음이야.”
“…….”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오가기가 쉽고, 설사 그곳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자신과 연관되지 않을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시간의 장소!”
차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황민준과 우형광이 다시 돌아봤다. 차은성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긴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두 사람이다.
그때.
“팀장!”
김아름이 차은성을 돌아봤다.
그러자 차은성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이 모니터로 바뀌고 지도가 떴다. 지도에는 세 개의 범죄 현장이 깜빡였다.
“아름아.”
“네, 팀장.”
“일전에 연지가 당할 뻔한 장소를 표시해 봐.”
“네.”
김아름의 대답에 이어, 곧 지도에서 해당 장소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스윽.
차은성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화면의 지도에 종횡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깜빡이는 점과 점을 잇고 앞뒤, 좌우, 좌우 사선으로 계속 선을 그었다.
그러자 서서히 마름모꼴에 가까운 형상이 나타났다. 해당 형상의 정중앙.
여러 선이 교차하는 한 점!
차은성이 양손으로 해당 점을 확대했다.
“옥계 3동!”
그러곤 지도에 표시된 행정구역을 힘주어 중얼거렸다. 이어 김아름을 보았다.
“아름아.”
“네.”
“옥계 3동 거주 주민들 검색 좀 해 봐.”
“검색 조건은요?”
“옥계 3동 주민들 중 여자들은 모두 제외하고…… 노인, 아이, 청소년도 제외해…….”
“…….”
“남자들 중에서 30~40대!”
“그들을 집중 검색해.”
김아름을 바라보는 차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
“밤에 범행을 저지르니, 오전 늦게나 오후 일찍 일어날 거야. 그렇다면 늦게 출근해도 된다는 말이 되지. 그리고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남자가 있는지도 검색해.”
차은성이 황민준과 우형광을 번갈아 봤다.
“해당 검색 조건 외에…… 미행과 관련이 있거나, 감식 및 법의학 쪽과 연관이 있거나, 경찰이나 검찰 출신이 혹 거주하지는 않는지…….”
“…….”
“놈은 지능적이고 계획적이야. 그렇다면 상당한 지적 능력이 있다는 말이 돼. 그러니깐 고학력자일 가능성이 있어…….”
“…….”
“그놈처럼 범행 현장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면…… 머리가 나쁘면 범죄도 제대로 못 저질러…… 범죄도 머리가 좋아야 저지르지.”
차은성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팀장. 검색 조건이 너무 광범위해요.”
“조건을 하나씩 입력해서 검색해 봐. 그리고 일치되는 대상자들을 추려.”
“팀장!”
김아름이 차은성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일이 많다는 무언의 항의다.
“지금으로서는 놈을 추적할 단서가 없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아름아.”
“하지만 그 사람이 과연 옥계 3동에 거주할지, 아직은 모르는 거잖아요.”
“가능성이 높건 낮건,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가능성이 있으면 뭐라도 뒤져 봐야지.”
“…….”
“각 검색 조건 중 2, 3개 이상 겹치는 놈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휴우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요. 팀장.”
김아름이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빨리!”
그러자 차은성이 힘주어 말했다.
“네에. 해 볼게요.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몰라요.”
“알았다.”
차은성이 김아름에게 말한 후 황민준을 보았다.
“민준아.”
“네.”
“내일부터 네가 연지를 마크해.”
“네?”
황민준이 반문하며 우형광을 흘겨봤다. 우형광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우형광은 차은성을 쳐다보며 뭐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차은성이 먼저 말했다.
“그자가 형광이를 알아볼 수도 있어. 그러니 민준이 네가 연지를 마크하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차은성이 우형광을 돌아봤다.
“……범행이 일어난 시간대를 형광이에게 말해 줘.”
“네?”
황민준이 대답하며 어리둥절해했다.
“형광아.”
“네, 팀장.”
“옥계 3동에 있는 차들 중 해당 시간대에 없었던 차들과 차주들을 알아봐.”
“팀장. 너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당 시간대에 차가 옥계 3동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걸 어떻게…….”
어렵다!
우형광이 에둘러 말했다.
차은성이 오른손을 우형광에게 뻗었다.
까닥까닥.
손을 앞뒤로 움직이자 우형광이 황민준을 슬쩍 보았다.
연후.
차은성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그러자 차은성이 양손으로 옥계 3동을 확대했다.
“잘 봐.”
“네에.”
우형광이 고개를 숙여 지도를 보았다.
“어느 동네나 인근에 주도로가 있어.”
“…….”
“옥계 3동에서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여기, 여기, 여기…… 이 세 곳을 반드시 지나가야 해. 반대로 옥계 3동으로 들어올 때도 세 곳을 지나야 해……. 해당 시간대에 세 곳을 지나간 차량들 모두! 인근 주차 카메라나 방범 카메라에 찍혔을 거야.”
“…….”
“그리고 차량 블랙박스도 뒤져 봐……. 인근 술집이나 장사하는 점포의 카메라. 불법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한 적발 카메라 등등.”
차은성이 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카메라를 입에 올렸다.
그러자 우형광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팀장. 카메라가 너무 많습니다. 설마 그 많은 카메라의 영상을 모두 다 따 오라는…… 그런 지시를…….”
“알아들었으면 서둘러.”
차은성의 말에.
“티, 팀장!”
우형광이 당황하며 울 것 같은 어조로 차은성을 불렀다.
“놈을 찾아! 명령이야!”
차은성이 강렬한 안광을 번득이며 우형광을 보았다.
그러자 우형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꽉.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실수, 만회하겠습니다. 기필코 놈을 찾겠습니다.”
“…….”
“그런데 놈이 과연 옥계 3동에 살고 있을까요?”
우형광의 물음에 차은성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