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47화 (47/308)

47화

뚜벅.

건우는 제단에 다가가 부서진 비석을 살폈다.

<종말의 비석>

-등급: 갓

-설명: 신이 예비해둔 종말을 예고하는 비석

-내구도 1/25

*퀘스트 연계 아티팩트

*종말을 예고하여, 최소 3개월 전에 글귀가 새겨진다.

*종말을 대비해 극복하면 제단 위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종말을 예언하는 비석이라. 이런 게 전생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있어도 극복할 수도 있었던 수준이 아니다. 그때는 세계가 정말 멸망 직전이었어. 너보다 강한 영웅들이 왜 죽어나갔겠냐?

“팩폭은 마음이 아파요. 할아버지.”

비석의 파편을 본 건우는 팔짱을 끼며 고심에 잠겼다.

이것은 과연 복원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 복원할 가치는 있다.

허나, 거기에 소요되는 마력은 등급이 갓인 만큼 어마어마했다.

만약 복원을 한다면 마력 태반을 그쪽에 사용하게 되는데, 크나큰 치명타였다.

기량은 물론이고 기력도 자연히 저하될 것이다.

또한 위급한 순간, 상급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한다.

고심하던 건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과거처럼 패배하는 것보다 나아.’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탑에 올라서고 싶었다.

종말의 원수인 ‘똬리를 튼 뱀’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가장 큰 난관이 남아있다.

그건 바로 7성급 던전 보스의 출현 유무다.

그것은 필시 재앙.

한 마리만 넘어와도 인류는 괴멸을 맞이할 것이다

만약 이 비석이 그 종말을 예언해 준다면, 복원할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지.’

건우는 즉각 내린 결론을 실천으로 옮겼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회귀의 링을 발동했습니다.]

다수의 회귀의 링이 비석 부근을 감돌며 복원이 시작되었다.

끼긱.

역시 속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만큼 미미했다.

동시에 건우는 마력이 텅텅 빈 공허감에 쓴 웃음을 지었다.

“며칠이나 걸리려나.”

당분간은 기량이 현격히 떨어질 테지만 건우는 후회하지 않았다.

***

용문산.

레드게이트가 형성된 지 어언 11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유라는 잠도 자지 않고 골똘히 레드 게이트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후웅.

램프가 점등된 것처럼 레드 게이트의 색깔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던전이 공략됐음을 의미했다.

스스.

동시에 게이트 너머에서 서일도와 건우, 그리고 두 명의 아이가 나왔다.

타탓!

유라가 반색하며 그들에게 뛰어왔다.

“허허허, 이 녀석 호들갑 떨기는…….”

서일도는 훈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중 온 그녀를 껴안기 위해 양팔을 벌렸다.

휘익!

그러나 서유라는 아버지, 서일도를 지나쳐 건우에게 와락 안겼다.

그녀는 흐느끼는 어조로 건우에게 말했다.

“다행이에요.”

“…….”

서일도는 멍하니 있다가 곧 건우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뭐랄까?

그의 눈빛은 마치 ‘씹어 먹어도 모자를 새끼’라고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삐질.

건우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바보는 아니었다.

“저……. 유, 유라야. 너무 흥분했다. 대표님 저기 계신데.”

흠칫!

“죄, 죄송해요.”

얼굴을 화끈 붉힌 그녀는 재빨리 건우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더니 서일도에게 다가가 그대로 껴안았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허허허. 순서가 조금 잘못된 것 같지만, 뭐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저 청년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짝짝짝!

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에서 일제히 박수갈채가 튀어나왔다.

그 뒤 함성이 이어졌다.

“호오오오!”

“최건우!”

“최건우!”

그들은 일제히 건우를 찬양했다.

“하지 마요.”

건우는 얼굴을 붉히며 그들을 제지했지만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서유라와 떨어진 서일도는 그녀에게 말했다.

“김광식 부대표는 어디 있지?”

서유라는 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헌터협회에서 진상조사를 한다고 잡아갔어요.”

“……그래.”

서일도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의형제로 지내온 세월이 수십 년인데, 이런 식으로 갈라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크 길드가 그의 배후였어요.”

“……그렇게 된 거였군.”

단지 그 한마디를 들은 것뿐인데, 서일도는 모든 상황을 이해해버렸다.

어째서 김광식이 아크 길드와 집요하게 엮이려고 했는지…….

어째서 자신을 배신했는지…….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서유라는 강렬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국내 3대 길드여도 이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해요.”

“……서두르다가는 오히려 발목을 잡힐 게다.”

서일도는 쉽사리 결정지을 수 없었다.

아크 길드가 작심하고 발을 뺀다면, 모든 게 도로 아미타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건우가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서일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와 나 사이에 이제 그런 자질구레한 예식은 필요 없다네.”

“네?”

과도하다 싶은 답변에 건우는 잠깐 당황했다.

그래도 얼마 안 가 표정을 고치고 의견을 제기했다.

“이번 사건은 김광식 부대표와 봉황 길드가 엮여있는 사건인 만큼 대외로 노출돼봤자 좋을 건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확실히 이름이 언급된 건, 선우진 한 명뿐입니다.”

“그렇군.”

공감한 듯 서일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부분은 그도 고심하던 부분이었다.

그러자 서유라가 건우에게 섭섭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럼 저들을 가만 내버려 두자는 건가요?”

피식.

건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완전히 덮고 선우진에게만 벌을 주면 됩니다.”

“그게 가능한가?”

“증거는 이미 다 저한테 있습니다.”

건우는 일전에 송덕 길드에서 빼간 자료를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혹시 몰라서 챙겨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서일도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네. 물론 그렇게 이행할 거고.”

“그럼 서둘러서 준비를…….”

서일도가 건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이 사건을 완전히 덮을 생각은 없네.”

건우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영웅을 가려서는 안 되는 법이지.”

그의 입가는 묘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

TV에서는 연일 두 가지 화제로 들썩이고 있었다.

[아크 길드, 하청 길드에 대한 지나친 갑질 횡포로 연일 논란! 갑질한 당사자는 선우진이라는 문건 내용이 제보.]

[잠정 S급 헌터, 선우진. 자칭 S급 헌터에서 위선자로 전락하다.]

[S급 헌터, 최건우. 용문산 레드 게이트에서 인명구조 및 공략에 성공하다.]

[학창 시절, 같은 동기인 두 사람. 잘못된 길로 간 소악마와 올바른 곳에 힘을 쓴 영웅. 어쩌다 이런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는가?]

콰직!

선우진은 쥐고 있던 리모컨을 힘껏 던져 75인치 대형 TV패널을 박살내버렸다.

“젠장! 왜 저 문건이 저기 있는 거야! 개새끼들!”

갑작스런 위기에 선우진은 정신을 수습하지 못 했다.

바로 그 순간.

콰앙!

방문이 부서지면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아크 길드의 수장, 선우혁이 버젓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우진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아, 아버지. 오해예요. 이건 저 개새끼들이!”

짜악!

그는 주저 없이 선우진의 뺨을 내려쳤다.

선우진의 뺨이 심히 부어오르고 입가에는 피가 터졌다.

그러나 선우진은 아픈 티를 내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선우혁은 싸늘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멍청한 새끼! 아니 믿었던 내가 더 멍청한 건가? 너랑 학창시절인 친구는 S급에 신망도 아주 두텁더구나. 배가 무척 아팠다. 부러워서 말이지.”

선우진이 황급히 변명하려고 했다.

“억울합니다. 저 새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F급…….”

선우혁은 노호성을 내질렀다.

“주둥이 닥치지 못 해!”

그의 목소리가 집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바르르.

선우진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그에게 선우혁은 칼날처럼 벼린 눈매로 말을 이어갔다.

“네놈은 우리 집안의 수치다. 최초로 네놈이 구속될 참이니 말이다.”

선우진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런?! 아, 아버지. 한 번만 더 저에게 기회를…….”

그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선우혁이 손을 쓴다면 구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선우혁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건, 오로지 분노였다.

빠득!

선우혁은 애원하는 자신의 아들, 선우진을 보며 이를 갈았다.

“추한 놈! 이딴 걸 자식이라고!”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손을 쓰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덥석!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재빨리 낚아챘다.

“그만하시죠. 아버지. 애, 잡겠습니다.”

선우혁의 손목을 잡아낸 이는 그의 아들이자, 선우진의 형인 선우유정이었다.

그는 알로하셔츠에 단출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선우혁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넌 시국이 어느 땐데 그런 경박한 차림으로 돌아다닌 거냐?”

“협회 가서 늙은 영감탱이랑 협의 보고 왔죠.”

여기서 늙은 영감탱이로 지칭한 것은 협회장, 구자혁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그래도 7년 형량을 6개월로 감형 받았습니다. 다만 제 활동이 어느 정도 제약될 겁니다. 대략 7번 정도?”

“엄청난 손해군.”

선우혁은 이를 갈았다.

S급 헌터인 선우유정은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 무력은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선우유정이 선우진의 형량의 감량을 조건으로 협회의 호출에 조건 없이 7회 봉사를 해야 한다.

길드 입장에서는 매출만 400억 이상 손해를 보는 것이다.

선우혁은 선우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6개월 동안 그 썩어빠진 꼬락서니 고치지 못하면 이곳에는 얼씬도 못할 게다.”

선우혁이 균열이 간 TV화면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인터뷰를 하는 건우의 모습이 있었다.

“차라리 저놈이 더 쓸 만했을 텐데. 쯧쯧”

그는 눈길도 안 주고 그대로 문밖으로 나섰다.

“휘익!”

선우유정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자식이 아니라 완전 벌레 보는 눈초리네.”

파르르

모멸감에 선우진은 최건우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저 새끼를 이용해야 돼.”

선우혁은 자식마저 내칠 정도로 냉혈한이다.

그런 그가 선우진에게 기대, 아니 요구하는 수준은 바로 S급이었다.

통상적이라면 당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건우라면 방법이 있을 거다.

그는 무려 F급에서 S급이 된 사나이가 아니던가.

선우진은 선우유정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제, 제발 도와줘. 나 이대로 쫓겨나면 정말…….”

“걱정 마. 다리를 족치든 팔을 부러뜨리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선우유정은 티비 속의 건우를 보며 생각했다.

‘제안을 거절하면 죽여서라도 알아내면 되는 거고.’

***

이른 아침, 봉황 길드의 무도장.

건우와 서일도는 나란히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 서일도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게. 봉황검술을 전수해 주지.”

“검술 말입니까? 괜…….”

“자네 검술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자고로 검술의 역사는 깊고 줄기가 다양하다네. 터득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암.”

“제가 바…….”

“차량이랑 식대는 모두 지원할 테니까 그리 알게.”

“…….”

‘뭐, 뭐야? 왜 갑자기 답정너야?’

건우는 심히 당황했지만 서일도는 눈을 빛냈다.

“대답은?”

“아,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고, 건우는 귀갓길에 올랐다.

서일도는 도장에 남아 명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그의 곁에 머물던 애제자, 염용필이 슬쩍 눈치를 보다 물었다.

“스승님. 봉황검술은 분명 사위될 사람에게만 물려주기로 한 거 아닙니까? 어째 그 부분만 쑥 빼고…….”

서일도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나중에 말하면 되지. 저 친구가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은 아닐세.”

“……”

치졸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굳건한 결의가 실려 있었다.

48.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