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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4화 (24/308)

24화

건우가 바알 교단을 빠져나왔을 때는 주홍빛 햇살이 도시를 물들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6시.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완전히 질 거다.

“의외로 빨리 끝났네. 응?”

길을 걷고 있던 중, 건우는 돗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잡상인을 목격했다.

파는 물건을 살피니, 공장에서 재고떨이로 내놓은 물건인 것 같았다.

“할머니 이게 얼마예요?”

건우는 물건 중에 전기 파리채를 들었다.

방금 전 바알제붑과의 사투 때문인지 구매 의욕이 당겼다.

할머니는 슬쩍 쳐다보다 입을 뗐다.

“만 원!”

“조금 비싼데요.”

“만 원!”

“알았어요.”

할머니의 단호한 말에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다음에 또 와!”

“시간되면요.”

구매를 마친 건우는 전기 파리채의 스위치를 꼭 눌렀다.

파직!

그물망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보니 불량은 아닌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세이비어가 반지 속에서 음성을 흘려보냈다.

-역시 호구 맞네.

“어쩌면 이게 만 원 이상의 가치를 해 줄지 어떻게 알아요? 알면서도 속는 거죠. 뭐.”

-으이구 자랑이다.

세이비어의 쓴소리에 건우는 피식 웃었다.

삐리리리.

그때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건우는 무덤덤하게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뭐야?!”

[최지혜]

-부재중 24통

웬만하면 전화를 걸지 않는 그녀가 어찌 이렇게 다급한 걸까?

놀란 건우는 즉각 통화에 응했다.

“지혜야!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했어?!”

[오, 오빠 살려 줘! 나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아!]

‘그 자식들이 설마!’

건우는 지난번에 송덕 길드와 엮인 일을 떠올리며 눈에 핏대를 세웠다.

“금방 갈게! 기다려! 집 맞지?”

[지, 집 맞기는 한데, 오빠 지금 여기 오면…….]

지혜가 끝에 몇 마디를 더하려고 했지만 건우는 즉각 전화를 끊었다.

우웅!

마음이 얼마나 급했던 건지, 그의 발끝에 마나가 밀집됐다.

[헤이스트를 시전했습니다.]

콰앙!

아스팔트에 발을 힘껏 걷어찬 건우가 질풍처럼 거리를 내달렸다.

약 20분 정도 질주하니, 집까지는 이제 500미터도 안 남았다.

‘느려!’

마음이 얼마나 급했던지 건우는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역중력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타앗!

건우는 단숨에 건물들을 뛰어넘으며 도약했다.

후우웅.

공기저항 때문에 머리칼이 거칠게 흐트러졌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눈이 부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뭐, 뭐야!!”

뒤늦게 건우는 그것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임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집 근처 반경 50미터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기자들부터 시작해서 상당히 강한 헌터들까지.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에서 이제 막 착지하는 건우에게 쏟아졌다.

“최건우 헌터야!”

“드디어 11번째 헌터다!”

“세상에, 저만한 높이에서 날아오네.”

찰칵! 찰칵!

다시 한번 플래시가 터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경황이 없어 어떻게 사태 수습을 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아마 지혜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했던 이유도 이 인파와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

그때, 한 여기자가 건우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며 현장 인터뷰를 요청했다.

“최건우 씨 국내에서 11번째 헌터로 라이선스를 땄다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혹시 컨택 받은 길드 있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사신 길드의 정승연 대표입니다. 시간 있으시면 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요?”

“허어, 사신 길드는 이미 A급 헌터가 무더기로 있잖습니까? 안녕하세요! 로즈픽코의 대표…….”

“어허! 왜 새치기를 해요! 저희 회사 아직 S급 헌터는 없습니다.”

“새치기는 누가 한다고?! 욕심도 많아가지고.”

왁자지껄.

TV에서 연예인이나 유명한 헌터들만 겪는 현상.

사람들은 눈빛은 사냥감을 포착한 맹수처럼 살벌했다.

“…….”

분명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살의가 아닌데도 공포심을 가지게 만들 정도였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세이비어가 흥미가 돋은 어조로 말했다.

-손자야! 저기 카메라 나온다. 브이 한 번만 해 봐라. 티비에 나오는지 보게.

건우는 입을 가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다.

“장난치지 마세요.”

-인마! 다 죽어 가는 늙은이 소원도 못 들어 줘? 진짜로 우리 손자가 TV에 나오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 거지!

“…….”

이미 돌아가신 거 아닌가요?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어째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건우는 얌전히 브이자를 취했다.

“오오오! 여길 봐주세요!”

“엄청 미남인데요.”

찰칵! 찰칵! 찰칵!

다시 한번 플래시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크헐헐! 좋아. 아주 좋아.

“난 창피한데요.”

세이비어가 만족한 것을 확인한 건우가 여기자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근데, 질문 한 가지 드려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자신이 처음으로 건우에게 응답받은 게 기쁜 건지, 여기자가 미소를 지었다.

“S급 공개되는 건, 이틀 뒤로 예정되어 있는데, 어디서 정보가?”

여기자는 명쾌하게 답했다.

“네. 최건우 헌터의 매니저인 로베르토 바토씨로부터 제보를 받았습니다.”

“…….”

건우는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었다.

-참아라. 건우야! 아직은 아니다. 죽여도 나중에 죽여야 된다. 지금은 일단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거라.

건우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 것을 깨달은 세이비어가 다급히 만류했다.

그래도 존경하는 세이비어의 충고니 건우는 최대한 새겨들었다.

“듣자 하니까 광신교 집단의 음모에서부터 광부와 짐꾼들을 구해 주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런 영웅적인 용기를 낼 수 있는 건가요? S급이라서 그런가요?”

그녀의 질문에 건우는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딱히 S급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때 상황에서는 인명구조보다 중요한 게 없었습니다.”

“오오!”

짝짝짝!

사람들 사이에서 연신 박수세례가 터졌다.

‘너무 가식적이었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건우는 그렇게 밖에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여기는 종로라서 퇴근길이 꽉 막힐 겁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 주실 수 있을까요?”

웅성웅성.

“보니까 사람이 다 깍듯하네.”

“그러게. 위에 있는 S급들은 만나주지도 않고 다 싸가지도 없더구먼.”

“아무렴 사람이 저렇게 겸손해야지.”

건우의 부탁하는 태도에 크게 감동한 건지 사람들이 차례, 차례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40분 후.

소란스러웠던 상황은 가까스로 정리될 수 있었다.

건우는 눈을 번뜩 떴다.

“박춘삼, 이 새끼 어디 있어?”

이번에 작정하고 저지른 짓일 테니 틀림없이 도망가지는 않을 터.

무엇보다 건우의 연락처가 없으니 쉽사리 포기하고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집 주변에 있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벅저벅.

그런 추측으로 동네를 이 잡듯 뒤지니 성과가 있었다.

실룩!

건우는 언짢은 표정으로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정면을 쳐다봤다.

편의점 앞.

그곳에는 팔자 좋게 의자에 앉아 통화 중인 박춘삼이 있었다.

“네. 최건우 헌터 매니저인 로베르토 바토입니다. 네 출현 계약을 하자고요? 글쎄요. 제시하실 금액이 얼마나 되는데요?”

치익!

현재 그는 맥주캔을 따며 거들먹거리고 있었다.

통화 내용은 실로 가관이었다.

“네? 20억이요? 5년 가까이 출현하지 않은 11번째 S급 헌터의 가치가 겨우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까?”

[그, 그게.]

안 봐도 뻔히 보인다고 할까?

현재 춘삼의 현란한 말빨에 수화기 너머에 있는 상대는 땀을 삐질 흘리고 있을 거다.

더욱 무서운 건, 박춘삼의 밀고 당기는 화법이었다.

“사장님 그래도 저한테는 사장님밖에 없는 거 아시죠?”

[암, 알고말고.]

빠직!

‘알기는 뭘 알아?’

건우는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뻔뻔한 말투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단 말인가.

“훗.”

상대가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한 건지, 춘삼이 입꼬리를 빙그레 올렸다.

“어느 정도 성의만 맞춰 주시면 당연히 인터뷰를 독점으로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그건.]

상대는 마음이 갈팡질팡한 듯 보였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당연히 사장님 방송사로 5회의 출현을 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저, 정말 그렇게 해 주는 건가?]

수화기 너머의 음색이 밝아졌다.

“그럼요. 저와 사장님 관계 아니겠습니까? 계좌는 제가 말하는 대로…….”

스윽!

춘삼이 한참 떠드는 동안, 건우는 전기 파리채를 들었다.

“할아버지.”

-응?

“제가 말했죠? 틀림없이 가격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파직!

전기 파리채의 그물에서 노란 전류가 튀었다.

-거, 건우야. 약하기는 하지만 사람한테 쓰는 건 위험하지 않겠냐?

과거, 대륙의 소드마스터도 벌벌 떨게 만들 정도의 강자인 그치고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씨익!

건우는 사악하게 웃으며 세이비어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저놈, 각성자라서 괜찮아요.”

탁!

그러고는 춘삼에게 다가가 머리를 꽈악 붙들며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행동.

당연 열이 뻗친 춘삼이 등을 돌려 상대에게 소리쳤다.

“아악! 누군데 장난질이야! 이게 어떤 거랜 줄 알아. 무려 50억이야! 50…….”

그러다 그 상대가 건우라는 것을 알아보자,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건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참 살벌한 금액으로 사기도 잘 친다. 넌 누구 마음대로 남의 신상 가지고 장난치래?”

“혀, 형님. 이건 사기가 아니고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야기를…….”

“닥쳐! 너 때문에 우리 지혜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는 알아?”

건우의 눈 밑에 차가운 음영이 서렸다.

“…….”

진심으로 사람을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우당탕!

춘삼은 그대로 의자를 박차고 도주를 택했으나,

파지지지직!

“크아아아악!”

그보다 한 발 빨리 날아든 건우의 파리채에 감전됐다.

***

해가 진 저녁.

건우의 여동생, 최지혜는 저녁을 준비하다가 거실 탁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 명은 자신의 오빠인 최건우였고, 나머지 한 명은 금발벽안의 아주 잘생긴 외국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 거지?’

그녀의 호기심을 갈수록 증폭됐다.

건우가 갑자기 S급 헌터로 판정받은 것부터 시작해서 저 정체불명의 외국인까지.

‘분위기가 안 좋네.’

아쉽게도 대답을 들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았다.

지혜는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손님 오실 줄 알았으면 미리 가서 사야 됐던 건데, 도저히 밖에 못 나가겠더라고요.”

춘삼이 감동한 듯 눈을 번뜩 떴다.

“오! 미스 최! 캄솨합…….”

“혓바닥 잘라 버린다.”

“크흠. 감사합니다. 저 같은 거한테는 정말 융숭한 대접이죠.”

“오, 오빠?”

보기 드문 건우의 살벌한 언어 표현에 지혜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그리고 점잖게 한국말을 하는 춘삼도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건우가 슬쩍 지혜를 엿봤다.

잠시 비켜달라는 의미임을 깨달은 지혜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중에 다 말해 줘야 돼. 오빠.”

“알았어.”

지혜는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자, 이제 변명할 수 있으면 변명해 보시지.”

건우의 진지한 눈빛에 춘삼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형님. 저와 같이 비즈니스를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후우.”

건우는 잠시 한숨을 내뱉고는 전기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형님?”

그리고 폭발하며 일어섰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기를 치려고 하네!”

“형님, 이야기 하자면서요! 그거 내리시고 이야기 하시죠!”

“닥쳐! 넌 몸으로 하는 대화가 필요해.”

“그, 그건 폭력입니다.”

우당탕!

대화는 이미 물 건너갔는지 다시 한번 얽히고설키는 2차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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