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쿵!
바알 교단의 교주 구마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건우는 저도 모르게 한마디 남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인 아닌데?”
크기는 대략 3미터.
육중한 체구에 오른쪽 눈은 파리의 눈알이었고,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치솟아 있었다.
그 외에도 몸을 세밀히 살피면 파리와 유사한 부분이 엿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지저분하고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교주님.”
구마니의 손에 잡혀 있던 주교, 구덕이 목숨을 애원했지만…….
피잇!
구마니의 얼굴에 달린 촉수가 구덕의 목에 꽂히며 양분을 그대로 빨아 섭취했다.
“커, 커헉!”
구덕은 점차 미라처럼 메말라가다가 이내 목숨을 잃었다.
타악!
구마니는 구덕의 시체를 버리며 건우에게 말했다.
“죽인다. 이 개자식! 감히 내 귀한 자식들을 죽여!”
쿵! 쿵!
그가 천천히 다가왔지만 건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이비어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건 대체 뭐예요?”
-너와 같은 권능 보유자다.
건우는 인상을 홱 찌푸렸다.
“저게 어딜 봐서 저랑 같아요?”
-바알제붑의 권능을 받은 녀석은 대체로 폭식을 하게 돼 있어. 몸집은 비대해지고 섭취한 사람의 힘을 고스란히 자기가 가질 수 있지.
“폭식의 권능이라 영 별로네.”
“뭘 그렇게 구시렁대는 거야?”
구마니는 날개를 움직이며 빠르게 건우를 향해 돌격했다.
[실드를 발동했습니다.]
[실드를 발동했습니다.]
건우는 즉각 눈앞에 실드를 연달아 중첩하여 생성했다.
콰아아아앙!
그러나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힘에 실드는 단번에 산산조각 났다.
“뭐?!”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드득!
“커헉!”
잠깐의 충격으로 건우의 갈비뼈가 분질러지고 큰 내상을 입었다.
[골격이 크게 손상됐습니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습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몸의 기능이 원래대로 회복됩니다.]
몸을 원상 복구시킨 건우는 입가에 묻은 피를 스윽 닦았다.
위이이잉!
구마니는 날개를 움직이며 건우를 내려다보았다.
“크하하하하! 내 자식들의 원수를 이렇게 갚게 되는구나.”
“근력부터 민첩까지 내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어 주네. 몇 사람이나 먹은 거냐?”
“너는 고기를 얼마나 먹었는지 질문하고 다니나? 실력은 좀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 네 인생은 끝이야!”
건우는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
“반사.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는 크로엘의 마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저놈이 너무 빨라서 지금 너의 마법으로 격추하기는 어려울 게다.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킬을 전개하며 동시에 칭호를 변경하였다.
[초감각을 발동했습니다.]
[칭호가 ‘독의 여왕’으로 변경됩니다.]
우웅!
독의 여왕의 영향으로 크루엘의 마검이 서서히 보랏빛 독기로 뒤덮였다.
구마니 역시 허리춤에 얹어 둔 금색 지팡이를 꺼내 들어 곧장 건우를 덮쳤다.
카앙!
크루엘의 마검과 지팡이가 격렬하게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초감각 덕분에 건우ㄷ 아까와 달리 구마니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채채채챙!
격전 중인 두 사람 사이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고속으로 공방을 주고받은 건우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강해?!’
굼뜰 것만 같던 구마니의 움직임이 달인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능숙했다.
콰아아앙!
무엇보다 제일 까다로운 건, 저렇게 빨리 움직이면서도 힘 역시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죽어라! 자식의 원수.”
힘에 밀려 5미터 가까이 밀려난 건우가 숨을 헐떡거렸다.
크루엘의 마검은 격렬한 전투로 이가 빠지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흐흐흐흐, 애초에 마법사가 검으로 날 이길 방법은 없지.”
씨익!
그 말을 들은 건우는 입꼬리를 올렸다.
구마니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웃어?”
“너도 날 주술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육탄전으로 나오는 거잖아.”
“…….”
정곡을 찔렀던 건지, 구마니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주로 파리와 더티 플라이를 이용해서 저주를 거는 게 그의 주 수법이었다.
하지만 건우의 빠르고 막강한 마법은 대응할 여지조차 남겨 두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구마니는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크흐흐흐! 그래서 네까짓 게 날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구마니는 날개를 휘저으며 엄청난 속도로 건우를 덮쳤다.
건우는 자세를 낮추며 그대로 검을 움직였다.
‘어?’
구마니는 낯선 감각에 오한이 들었다.
건우의 검이 아까와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아까는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폭풍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나비가 꽃에 살포시 앉는 것 같았다.
건우의 검이 살포시 구마니의 팔에 다가왔다.
스스스스스.
검신에서는 스산한 검은 오러로 뒤덮은 채 말이다.
오싹!
뒤늦게 구마니가 팔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니제르 사식, 우각(Wing lay)
그것은 자신의 힘은 조금도 쓰지 않고 상대방의 힘만을 이용한 극단적인 카운터.
극도로 단련된 감각과 센스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서걱!
구마니는 결국 스스로 자신을 베는 결과를 가져왔다.
깔끔하게 절단된 팔이 허공에 흩날렸다.
푸싯!
절단면에서 피와 체액을 뿜어 대며 구마니는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악! 이 개자식!”
하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 달리 그는 발을 박차 다시 한번 건우를 덮쳤다.
휘익!
건우는 그대로 몸을 선회시켜 우각으로 구마니의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서걱!
“크아아아아악!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구마니가 기염을 토해 내며 건우를 향해 돌격했다.
이번에는 미처 방비할 수 없었는지 건우는 마검을 들어 수세를 취했다.
카앙!
격철 소리와 함께 구마니는 힘으로 건우를 밀어붙였다.
콰앙!
“크윽!”
신전 기둥에 등을 부딪친 건우는 핏대가 두드러진 구마니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독기 때문에 고통스럽나 보네.”
어느새 절단된 부위에서 보랏빛 독기가 피어오르며 점차 구마니의 몸을 갉아먹었다.
“네까짓 게 뭔데 날 우롱하는 거냐!”
“넌 뭔데? 멀쩡한 사람들을 파리 먹잇감으로 삼냐?”
“그건 내 먹이다!”
“그 이론대로라면 넌 내 사냥감이네.”
오싹!
구마니는 일순간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혀 표정이 굳어 버렸다.
그 틈을 타 건우는 구마니의 지팡이에 손을 얹고서 복원을 발동했다.
[폭식의 지팡이를 복원하셨습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구마니는 내구도가 완전히 회복된 자신의 지팡이를 보며 당황했다.
“공짜로 고쳐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
[폭식의 지팡이에 소유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지팡이에 형성된 결계로 인해 구마니는 남은 한 손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 때문에 건우를 압박하던 기세도 줄어들었다.
건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스 미사일을 발동했습니다.]
[아이스 미사일을 발동했습니다.]
[아이스 미사일을 발동했습니다.]
주변의 온도가 급작스럽게 내려갔다.
동시에 구마니의 정면으로 빼곡하게 생성된 얼음송곳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자, 잠깐 기다려!”
뒤늦게 불길한 징조를 알아챈 구마니가 서둘러 지팡이를 놓고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푸푸푸푸푸푸푹!
얼음송곳은 자비 없이 날아들어 구마니의 전신에 빼곡히 박혔다.
“커, 커헉!”
쩌적!
그의 몸은 입에 허연 김을 토해 내며 점차 얼어붙었다.
“후우, 끝났네.”
-수고했다.
건우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쓰러진 구마니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끝난 게 맞나?’
그러다가 뇌리에 스쳐 지나간 모순에 건우는 발을 멈췄다.
시스템 특성상, 퀘스트를 마치면 자연히 알림창을 띄우기 마련인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건우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네놈.”
구마니는 허연 김을 토해내고 있을 뿐 죽지 않았다.
우두두두두둑!
“끄웨에에에에에엑!”
순간 그의 육신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며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외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두 팔과 두 다리 달린 것 외에는 이제 완전히 파리와 유사한 외형이 돼버렸다.
“…….”
건우가 다시 검을 뽑으려는 찰나.
“크흐흐흐흐. 재미있군. 너 때문에 내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됐어.”
구마니의 입에서 수상쩍은 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구마니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눈치챈 건우가 천천히 물었다.
“넌 누구냐?”
“크흐흐흐흐. 나는 높은 거탑의 주인, 바알제붑이라고 불리는 마신이다.”
“신이 개입하는 건 오버인 것 같은데?”
건우의 반박에 바알제붑이 말했다.
“호기심이 동해서 그만 대화나 하러 왔다. 넌 누구지? 왜 차이트의 냄새가 흘러나오지?”
“…….”
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알제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뭐 알려 주지 않아도 괜찮아. 혹 나에게 귀속될 생각은 있나?”
“무슨 말이지?”
“내 심복이 돼라. 이 돼지는 이제 못 써먹어.”
“써먹지 못하는 건 너겠지. 이 구더기 새꺄?”
“크흐흐흐흐. 신에게 한없이 건방지군. 뭐 좋아. 우린 언젠가 다시 보게 될 운명이니까.”
“다시 볼일 없어.”
“그럴까?”
홰액!
바알제붑은 단숨에 날개를 휘저으며 돌격했고, 건우는 미리 구현한 마법을 펼쳤다.
[파이어 월을 발동했습니다.]
화르르르륵. 콰아아앙!
바알제붑은 건우에게 도달하기가 무섭게 땅속에서부터 치솟는 맹렬한 불에 휘감겼다.
몸이 타닥 타들어 가던 바알제붑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탑에서 기다리마! 애송아! 크흐흐흐흐.”
“그러니까 난 용건 없대도.”
권태로운 표정으로 반박 한 건우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니제르 일식, 암전(Dark slash).
서걱!
검게 물든 반월이 단숨에 바알제붑의 얼굴을 도려냈다.
“크흐흐흐흐. 반드시 오게 돼 있어. 왜냐하면 너는…….”
화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알제붑은 삽시간에 불타 사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히든 퀘스트 ‘명운역전’을 완수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명운역전’을 획득했습니다.]
[일정레벨 달성 및 명운역전 획득으로 전직 퀘스트가 생성됐습니다.]
-협박 한 번 지저분하게 하는군. 파리 새끼가.
세이비어는 불타오르는 구마니의 사체를 보며 빠득 이를 갈았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탑으로 올라갈 때는 전기 파리채를 챙겨야 할까 봐요.”
그러자 세이비어는 한술 더 떠 농담을 던졌다.
-스프레이도 단단히 챙겨 놔라. 아니, 그냥 해충제 잔뜩 사가자.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게요.”
답변을 마친 건우가 잠깐 고심에 잠겼다.
‘탑이라…….’
탑.
그곳은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이세계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과장된 소문이 퍼져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은 있다.
지금 세계에서 강자로 불리는 헌터들이 탑에 진입을 해도 하이랭커가 되기까지는 적게는 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또 그전에 탑의 시련으로 죽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언젠가 들어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더 강해져야 돼.’
생각을 마친 건우는 곧장 보상으로 받은 스킬을 살폈다.
<명운역전> 액티브
-등급 : ?
-설명 : 격이 현격히 높은 상대에게 발동해 인과율을 역전시킬 수 있다.
*스킬 시전 후 5분 뒤에 발동한다.
*직업이 없는 관계로 현재는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그러고 보니 전직 퀘스트도 생겼다고 했지.”
건우는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전직 퀘스트>
-자격: Lv30 및 명운역전을 획득한 자.
-UNKNOWN
-UNKNOWN
건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팔짱을 꼈다.
“전생처럼 뻔하게 재생의 마도사일 것 같은데.”
건우가 계속 고심을 하자, 보다 못한 세이비어가 다그쳤다.
-잔말 말고 피곤할 테니 그만 집에 가서 쉬거라.
“그래야겠어요.”
건우는 어깨를 탁탁 두들기며 바알 교단을 빠져나갔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