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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리커버리 마도사-9화 (9/308)

9화

미하노프의 사무실 겸 공방.

“박물관 같네.”

방 안을 둘러보던 건우는 자연스레 감탄했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건 다름 아닌 유리 전시관이었다. 그리고 유리관 안쪽에는 각종 아티팩트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허허, 낯선 것들이 널려 있구나. 권능이 실린 것도 간혹 있어 보이고.

“할아버지한테도 생소한 건가요?”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살짝 당황했다.

그러고는 스쳐 지나쳤던 유리관 안을 다시금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는 고대부터 사람들이 칭송해 왔던 대마법사였다.

이그너스 가문의 시초이자, 파멸의 마도사.

세상의 온갖 지식을 모두 접한 그가 모르는 게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 세이비어도 쿨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800년 가까이 온 세상을 누빈 내가 모르는 게 있다면, 탑이란 게 대단한 거지.

“하긴.”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가 다 알아볼 수 있다고 하면 화내시겠지.’

[쿨린의 양탄자 조각]

[아두카의 잿빛서문]

[쿠두라스의 숨결이 깃든 방패]

[봉인의 사슬, 레이징]

시스템의 영향 때문인지 건우의 눈에는 물건의 정체가 새록새록 엿보였다.

-호오! 이거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구나.

그때, 세이비어가 들뜬 어조로 무언가를 보고 환호했다.

유리관 안에는 두꺼운 가죽 책자가 펼쳐져 있었다.

속지는 군데군데 삭고 찢어져 있었다. 무엇을 서술했는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지만, 세이비어는 반가운 듯 입을 열었다.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이다. 한때 나도 배우려다가 포기한 거지.

“마도사가 웬 검술이에요?”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저건 다크엘프 영웅, 니제르의 검술이 깃든 비급이야. 녀석은 나도 죽일 뻔한 강자였다고.

건우는 적잖이 당황했다.

“설마 할아버지가 진 거예요?”

울컥!

건우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세이비어가 언성을 높였다.

-지긴 누가 져! 그냥 좀 위험했다고 한 것뿐이지.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흐음.”

무심코 눈빛에 힘을 주고 쳐다보니 시스템창이 다시 떠올랐다.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

-등급 : 레전드

-설명 : 고대, 다크엘프의 영웅, 니제르가 서술한 검술서. 혈통 계승으로 전승되는 것이 특징이며 검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종종 죽는 엘프가 많이 나와 저주받은 금서로 취급됐다. (현재는 사용불가 상태)

-습득 난이도: 최상

-내구도 35/125

*제한 : 엘프 전용

“레전드?!”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며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봤다.

주변에 다른 아이템을 살펴봐도 등급이 레전드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뭘 혼자 그렇게 숙덕거리고 있나?”

건우의 뒤에서는 미하노프가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볼일 끝나셨어요?”

“생각보다 오래 걸려 미안하게 됐군. 앉게나.”

건우는 미하노프가 가리키는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이게 뭔지 나한테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사례라면 내 충분히 하지.”

미하노프는 기동석 목걸이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사례라…….’

건우는 슬쩍 유리관 쪽을 곁눈질했다.

“사례는 저기 있는 서적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미하노프는 의외로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답이 가치가 있다면 얼마든지. 저기 있는 건 어차피 소생 불가능한 아이템뿐이거든. 그런데 왜 저런 것에 관심을 두는 건가?”

“……어떤 물건인지 궁금하잖아요.”

“나도 알아낼 수 없는 걸 무슨 수로.”

-멍청한 놈. 내가 알아냈다. 이 건방진 난쟁이 똥자루야.

쿵쾅!

화들짝 놀란 건우가 반지를 꽉 쥐었다.

“자네,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나?”

“아, 아니요.”

“아니면 말고 그래서 대답은?”

다행히 미하노프는 자신에게 도취돼 있는 상태라 흘려들은 듯했다.

건우는 대답하기에 앞서 반지를 향해 조용히 으름장을 놓았다.

“한번만 더 곤란하게 하면 이 반지랑 같이 용광로에 빠뜨릴 겁니다.”

-네, 네놈. 어디서 그런 협박을.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

세이비어는 얌전히 침묵을 지켰고 건우는 그제야 미하노프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기동석은 골렘을 움직일 때 쓰이는 겁니다.”

“골렘?”

미하노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통 골렘은 마나하트를 통해 움직이지만 단순한 명령밖에 듣지 못하잖아요.”

“확실히.”

대개의 골렘은 팔을 들라고 명령하면, 팔을 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떤 장소를 지키라는 등의 추상적인 명령은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

“그걸 보완하는 게 바로 이 기동석이에요. 인공지능이랑 비슷한 역할을 해서 골렘이 스스로 움직이게끔 만들어 줘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내가 탑에서 비슷한 주술은 봤지만 그건 고도의 마법이었어.”

“보석 안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거든요.”

“룬 문자?”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어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룬 문자의 배열이 바뀌면서 골렘에게 명령을 주는 거죠.”

미하노프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어. 왜 룬 문자를 고려하지 못했지.’

룬 문자.

그것은 과거 신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체라고 일컬어지며, 문자 자체가 살아 있다고 전승되어 왔다.

그러나 탑에서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아 잊혀가는 신비의 언어 중 하나였다.

호기심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미하노프는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 대상은 바로 건우였다.

‘나를 납득시키다니 보통 재간이 아니야.’

“정체가 뭐지?”

“단순한 짐꾼이이에요.”

“허허, 나랑 농담하자는 게냐? 짐꾼이 어떻게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어?”

사실은 전생에 전쟁터를 배회하면서 골렘을 복원하는 과정 중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건우는 그냥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요즘 헌터는 분야가 다양하거든요.”

“알아놔서 나쁠 건 없겠군.”

미하노프는 유리관에서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을 꺼내 건우에게 내밀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미하노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가 일전에 말한 거 기억 안나나?”

“……?”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그 주인이 될 사람이야. 난 그게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자네에게는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거겠지.”

“그럼 감사히 받죠.”

건우는 비급을 어루만졌다.

“내 이름은 미하노프 두로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하게. 대신 나 역시 자네 자문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지.”

“생각보다 호탕한 성격이시네요.”

미하노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력 있는 사람은 존중할 가치가 있지.”

그는 그대로 손을 내밀었고 건우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굳은살이 꽉 박힌 그의 손에는 의외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

시간은 7시 반.

건우는 지혜와 함께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호텔에서 막 조리해서 배달한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었다.

“자, 먹어.”

건우는 나이프로 썬 스테이크를 지혜 앞에 놓아줬다.

분위기 적응이 안 됐는지 지혜는 뚱한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보았다.

“오빠.”

“응, 왜?”

“한강 갈 거면 꼭 말해 줘. 말려야 하니까.”

“나 죽을 생각 없는데.”

건우는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우물우물 씹었다.

“오빠 이거 다 과소비인 거 알고 있지? 우리 빚이 얼만지 알고 있어?”

“그거라면 당분간 걱정할 필요 없어. 한 1/3은 갚았으니까.”

탁!

놀라 포크를 떨어뜨린 지혜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오, 오빠 아무리 그래도 장기를 팔면…….”

“어허. 갑자기 왜 그런 무서운 말을 하실까나. 그런 거 아니야.”

“그, 그럼 어떻게 갚았어?”

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 요즘 잘나가는 헌터잖아.”

“F급이?”

지혜는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건우에게는 그 모습도 그저 귀엽게만 보일 뿐이었다.

“이제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 줄게.”

지혜는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다시 걱정하게 하기만 해 봐.”

마음이 놓였는지 지혜도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맛을 만끽했다.

째각.

시침은 어느새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건우는 게이트를 통해 던전, 이그너스의 영지로 넘어온 상태였다.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은 자신의 공방이었다.

그곳에서 건우는 네 시간 동안 천장부터 벽까지 거대한 마법진을 구현하고 있었다.

“아, 빡세다. 마력이 딸리니까 이렇게 아날로그로 사네.”

우웅!

주변에는 그동안 모아놨던 마나스톤 17개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마력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공방의 가장 중앙에는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이 놓여 있었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모두 이 비급을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건우의 실력으론 레어와 유니크도 복원할 여력이 마땅치 않았다. 하물며 그 이상인 레전드 아이템은 어떠할까?

당연 복원 속도는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보다도 느릴 것이다.

그렇기에 건우는 의식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네 몸 상태로 삼중식은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잘 생각해라. 증폭되는 마력량이 세제곱이라고.”

지친 건우의 곁으로 간만에 세이비어가 유령의 형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이 얼마나 소모될지 알 수 없잖아요. 또…….”

“또?”

“할아버지를 이긴 엘프의 검술이라니, 보고 싶기도 해서.”

“아, 글쎄 안 졌다니까! 이 자식아! 뭔 청개구리 심보야!”

“농담이에요. 설마 쪼잔 하게 화내신 거 아니죠?”

“그런 적 없다.”

세이비어는 고개를 냉큼 돌렸고, 건우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퉁겼다.

따악!

그러자 공방에 공허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법진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마력성간회로 삼중식이 발동됩니다.]

[주변에 마나가 성간회로에 접속해 27배 이상 증폭됩니다.]

건우의 몸속으로 파도처럼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스며들었다.

두둑.

마력의 유입으로 몸이 팽창하며 전신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찌부러질 것 같네.’

엄청난 중압감에 건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복원 스킬을 전개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 내구도가 점진적으로 오릅니다.]

[35…… 41…… 50]

내구도가 연신 갱신되자, 비급도 점차 형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찢어진 종잇장에 스르륵 가루가 붙으며 깨끗해졌다.

그와 동시에 여백의 공간에 잉크로 글자와 그림이 연신 새겨졌다.

우우우웅!

가죽 책자에 묻은 이물질은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실로 기이한 변화.

하지만 정작 건우는 복원에 쓰이는 마력량에 대경실색했다.

빠직! 빠직! 빠직!

마나스톤이 마력을 탕진하고 그대로 쪼개져 산화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레전드 복구하려면 한 10억 넘게 쓰겠네. 신급은 한 100억 정도 되려나.’

아이템 가치를 보면 당연히 해야 될 투자지만, 효율이 영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 복원이 완료됐습니다.]

[복원 스킬 숙련도가 향상됐습니다.]

<고대 엘프의 검술 비급>

-등급: 레전드

-설명: 고대, 다크엘프의 영웅, 니제르가 서술한 검술서. 혈통 계승으로 전승되는 것이 특징이며 검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종종 죽는 엘프가 많이 나와 저주받은 금서로 취급됐다.

-습득 난이도: 최상

-내구도 125/125

*제한: 엘프만이 사용가능

세이비어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자아냈다.

“오호, 제법이구나. 한데, 어쩌려고 그러냐?”

“뭐가요?”

“그 비급은 엘프만 전승 받을 수 있을 텐데. 내가 괜히 포기한 게 아니야.”

건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 생각이 있어서 가지고 왔죠. 안 그러면 뭐 하러 돈 아깝게 복원시켰을까요.”

그리고 그대로 비급을 손에 쥐었다.

[소유권 부여를 발동하셨습니다.]

[아이템의 저항으로 소유권 부여에 실패하셨습니다.]

“어쭈?”

오기가 생긴 건우는 연신 소유권 스킬을 발동했다.

우우우우웅!

비급은 어떻게든 거부하려고 했지만, 건우에게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마력의 파장을 이길 수 없었는지 결국 기운이 사그라졌다.

[소유권 부여에 성공하셨습니다.]

[아이템의 일부 항목이 변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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