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2화 (2/308)

2화.

게이트 너머로 드러난 던전은 폐허가 된 궁궐이었다.

쓰러진 기둥과 균열이 간 천장 등,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고 크기 또한 장엄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드러난 거울의 방.

챙! 콰앙! 콰앙!

현재 그곳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팬텀울프와 난전을 벌어지고 있었다.

거울이 와장창 깨져나가며 헌터들은 고군분투 전투에 힘썼다.

선우진은 여유롭게 검은 짐승의 목에 검을 휘둘렀지만…….

스윽!

마치 물을 베는 것처럼 팬텀울프는 검을 통과했다.

영체화.

고스트 속성을 지닌 몬스터가 실체를 속이는 방법이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선우진은 미처 방비하지 못했다.

“……캬오!”

이윽고 영체화를 푼 팬텀울프는 그대로 선우진에게 달려들었다.

“……?!”

콰앙!

그 순간 거대한 메이스가 팬텀울프의 머리를 뭉개버렸다.

“정신 차려! 임마!”

조력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선우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한편, 격전 끝에서 건우 역시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그의 포지션은 짐꾼. 원래 정석대로라면 당연 보호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건우는 구석에서 양철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그를 덮쳤고, 건우는 즉각 방패로 맞받아쳤다.

콰드득!

양철방패의 모서리 부분을 문 팬텀울프는 철을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

그러자 이때다 싶었는지 팬텀울프들이 일제히 건우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회를 틈타 아크 길드의 단원들이 팬텀울프를 절단 냈다.

서걱! 서걱! 서걱!

전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건우는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샹, 이게 탱커지. 뭐가 짐꾼이야. 개새끼들, 이럴 거면 부르지 말았어야지.’

건우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단검을 들어 다른 짐꾼들과 함께 팬텀울프를 해체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하급 마정석과 발톱들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앞으로 얼마나 가야 나올까?”

선우진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길드원에게 물었다.

“경험상 앞으로 두세 곳 정도만 가면 될 거야.”

“그래?”

휘릭! 콰앙!

그때 선우진이 날이 무뎌진 자신의 철검을 건우에게 던졌다.

깜짝 놀란 건우는 선우진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렇게 던지면 위험하잖아?”

비위가 거슬렸는지 선우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끝까지 눈치 없이 말 놓는구나. 앞으로 내구도 다 깎아먹은 무기는 전부 이 녀석한테 몰아서 줘. 나머지 아이템들은 다른 짐꾼들한테 양도하고.”

“뭐?!”

제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근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건우가 감당할 수 있는 중량은 120kg.

만약 무기를 건우가 다 떠맡는다면, 아공간 배낭을 활용한다고 해도 그 중량을 가볍게 초과할 것이다.

줄곧 선우진과 동행하던 강진혁이 걱정스런 낯빛을 띠며 말했다.

“음, 그렇게 하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 계약사항도 위반돼. 너 저번처럼 하면 협회에서 경고문 날아온다.”

“아니, 하게 될 거야.”

선우진이 피식 웃으며 건우에게 말했다.

“천만 원 더 얹어 줄게. 괜찮지?”

“…….”

건우는 모욕감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선(死線)에서 이런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 때문에 거절하려는 찰나 선우진이 말했다.

“너 앞으로 일하고 싶지 않아?”

그 말은 앞으로 헌터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할게.”

건우는 결국 협박에 굴할 수밖에 없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선우진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띠며 걸음을 옮겼다.

건우도 검을 챙겨 배낭에 넣은 다음 뒤따랐다.

“……예나 지금이나 짜증나는 놈이야. 그나저나 여기 어디서 많이 본 곳인데?”

멈칫.

방을 자세히 살펴보던 건우는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발을 멈췄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으로 낯선 단어를 내뱉었다.

“……로한.”

그 이름은 꿈에서 몬스터와 격전을 벌이던 한 마도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놀랍게도 이 던전은 꿈속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했다.

“우연이겠지.”

묘한 기시감을 느낀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길을 옮겼다.

***

던전의 사투는 고됐다.

하지만 아크 길드가 어째서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가 되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인재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줄곧 갈고닦았던 실력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서걱! 서걱! 콰앙!

선우진을 필두로 한 그들의 돌파력에 대부분의 몬스터가 퇴치됐다.

“후우.”

반면 건우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휘청!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배낭의 중량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

주변의 짐꾼들은 선우진의 눈치 때문에 모두 그를 외면했다.

‘질까보냐?’

건우는 아랫입술을 힘껏 깨물며 어떻게든 버텼다.

보스 방까지는 이제 코앞이었다.

“이거 너무 쉬운데.”

자신감을 얻은 선우진은 기세등등했다.

“까분다.”

강진혁이 선우진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더 이상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선우진의 실력이 출중해지는 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방은 성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홀이었다.

계단 곳곳에는 해골들이 바닥에 검을 꽂은 채 쓰러져 있었다.

“뭐야? 이거 완전히 모양 빠져 보이잖아.”

툭툭.

선우진이 가장 먼저 앞서 나가더니 해골을 발로 툭툭 쳤다.

바로 그때 건우의 뇌리 속에 낯선 음성이 울려 퍼졌다.

-영광의 기사들이여 축배를 들어라.

-너희 모두 살아라. 이건 명령이다.

낯선 음성의 주인은 바로 로한. 그리고 이 주변에 널려 있는 해골들은 그의 가신인 기사들이었다.

건우는 묘한 데자뷰 속에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꾸었던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게도 자신이 지금 그 꿈의 현장에 도달했다는 것을…….

착각일 가능성은 없었다.

왜냐하면 건우는 완전기억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어?’

던전에서 풍기는 낯선 마력이 건우의 몸을 훑고 지나더니 금광이 그의 동공을 뒤덮었다.

‘수, 숨 막혀.’

낯선 감각에 건우는 기도가 막힌 듯 숨 쉬기가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귀에는 웅하고 환청이 들리기까지 했다.

왜?

지금까지 수많은 레이드에 참여했음에도 건우는 이런 감각은 느끼지 못했다.

‘서, 설마 마나역류!’

다른 말로는 주화입마.

그 비슷한 증상에 건우는 바싹 겁을 집어먹었다.

“여기가 보스방인가?”

강진혁과 선우진은 어딘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계단 중앙에 있는 거대한 문.

그곳에는 보스로 추정되는 몬스터의 불길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건우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 안 돼!”

선우진은 건우의 외침에 인상을 잔뜩 구겼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야, 선우진. 그거 열면 진짜 후회한다.”

선우진은 코웃음쳤다.

“지랄하고 있네. 기껏해야 D급 던전이야. 나랑 진혁이 형 정도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서걱!

선우진은 건우의 충고를 무시하고 문을 봉인하고 있던 자물쇠를 절단했다.

끼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오래된 쇠문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이, 이건 뭐야!”

강진혁이 재빨리 선우진의 목덜미를 붙들고 뒤로 물러섰다.

콰직! 콰앙!

그리고 이어서 문 한쪽이 완전히 박살나며 거미의 하반신과 여인의 상반신을 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엑!”

수십 년, 아니면 수백 년?

세월을 짐작할 수 없지만, 몬스터의 몸에는 검에 찔린 자상이 매우 많았다.

그 때문에 몸을 휘청거렸지만 녹색 체액을 뚝뚝 흘리며 보이는 포식의 광기만은 여전했다.

건우는 금광이 서린 이채로 그 존재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 이그너스 침략자, 아라크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몬스터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마를 매만졌다.

‘자꾸 뭔가 머리를 헤집어.’

지금까지 생전 접해 보지 못했던 어떤 정보들이 머릿속에 빼곡히 들어차 고통스러웠다.

“뭐야? 한 방만 치면 골로 가겠네.”

실실 웃던 선우진은 검을 고쳐 잡고서 그대로 휘둘렀다.

그 순간 아라크네의 입가에 녹색의 독기가 가득 들어찼다.

“으아아아악!”

불행하게도 그 독기에 닿은 짐꾼 중 하나가 곧바로 중독돼 쓰러졌다.

아라크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잡히는 대로 헌터들을 덥석 집으며 물어뜯기 시작했다.

콰직!

“으아아아악!”

아라크네의 원초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공격.

이빨에 깃든 독 때문에 살점이 물린 사람들은 죄다 육체가 부식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선우진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강진혁이 급히 판단을 내렸다.

“다들 도망가! 5성급 이상이야!”

5성급.

그것은 제대로 된 파티가 레이드를 치러야만 잡을 수 있는 등급이었다.

아크 길드원들은 강진혁의 명령과 동시에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윽!”

건우 역시 힘껏 발을 내뛰었지만, 배낭 때문에 쉽사리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계약이고 뭐고, 일단 버린다.’

배낭을 막 벗어던지려는 찰나,

덥석!

건우의 배낭을 붙든 선우진이 건우를 냅다 뒤로 집어던져 내팽개쳤다.

순식간에 길드 전력의 30퍼센트가 희생됐기 때문일까?

선우진은 공포에 질려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해? 새끼들아! 빨리 문 폭파시켜!”

정신을 차린 건우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선우진, 뭐 하는 짓이야? 이 미친 새끼야!”

아직도 길드원들이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데 자기만 그대로 도망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안 돼!!!”

그러나 길드원들의 절규 끝에 돌아온 것은 폭발 소리였다.

폭발과 함께 낙석 더미가 출구를 가로막았다.

“아, 안 돼!”

당황한 길드원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오히려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아라크네의 공격이 더욱 매서워질 뿐이었다.

“끄으으윽!”

아라크네의 공격에 헌터들은 죄다 몸이 부식되어 백골로 변했다.

“우욱!”

그 장면을 목격한 건우는 두통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발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살고 싶다.

무엇보다 절박한 그 마음이 그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건우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저기 있는 해골에게 가야 돼.’

건우의 시선이 향한 곳은 계단 부근에 홀연히 완드를 쥐고 있는 해골이었다.

거리까지는 50미터.

타탓!

건우는 곧장 계단을 타고 앞뒤 보지 않고 달렸다.

푹!

“끄아아아아악!”

때마침 마지막 헌터를 죽인 아라크네가 고개를 돌려 맹렬히 건우를 쫓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건우는 숨통이 절로 조여 왔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이라도 배낭을 버리고 싶지만, 분명 버리려고 하는 사이에 살해당할 것이다.

그렇게 건우의 뒤에서 음습한 그림자가 그늘처럼 덮치려는 순간,

“으아아아악!”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아이템 주머니를 뒤로 던졌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각종 보석이 흘러나왔다.

사아아아악!

그중 붉은 보석, 익스펠이 광채를 발휘하며 우연찮게 발동됐다.

“키에에엑!”

건우를 덮치려던 매서운 손이 일순간 멈췄다. 익스펠의 기운에 아라크네가 본능적으로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건우의 손이 해골에 닿았다.

-드디어 만났다.

한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건우의 머릿속에 퍼졌다.

그리고 건우는 떨리는 음색으로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했다.

“로, 로한.”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수많은 시스템 창이 배열됐다.

[기적적으로 전생체와 만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재각성합니다.]

[전생의 기억 발현으로 포탈마법이 발동됐습니다. 공방으로 이동합니다.]

스윽!

금빛의 파문에 휘감긴 건우는 그대로 사라졌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