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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진작에 비교 대상을 지우로 삼을 것이지 괜히 야로슬라프로 삼는 바람에 야로슬라프만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야로슬라프는 시현에게 감히 비교 대상도 되지 않았다. 1급 괴수와 5급 괴수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였다. 야로슬라프는 유독 지우와 시현 부자 옆에만 서면 그런 수모를 당하게 됐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대로라면 차크라 소모가 너무 커요. 시현이의 차크라라면 1급 괴수를 한 번에 두 세 마리를 죽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연못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마스터님을 구출해야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는 불가능해요. 누군가 말해줘야 돼요.”
지연이 말했다. 지연의 말을 듣고 있었던 사람은 괴수 차크라를 가진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무영과 효재가 콜로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동안은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도 없었다. 무영과 효재의 옆에 보이지 않던 제이는 감응기의 화면 안에서 나타났다.
“이 녀석들이!”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당장 그들을 쫓아갔다. 그러나 콜로니에 진입을 하지 못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효재와 무영까지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안으로 들어갔었기에 놀라움이 더욱 컸다.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가면서 진입을 시도했지만 강한 결계가 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콜로니가 그들을 막았다.
“혹시…….”
지연이 감응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콜로니 안에 남아있는 괴수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동안 헌터의 입장이 무제한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건,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서 들어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콜로니 내에 살고 있는 괴수의 개체수가 2백일 때 헌터가 천 명까지 입장이 가능했다고 해 봐요. 오백명, 육백명이 들어가도 입장이 되니까 그동안 베로니카 공격대나 다른 헌터들은 콜로니의 입장이 무제한이라고 생각했던 거고. 한 번도 콜로니의 개체수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줄여본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거라면.”
“지금 콜로니 안에 남아 있는 개체 수가 여덟 마리라고요?”
세진이 물었다.
“아니. 아니.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비율인지는 모르고. 그냥 내 생각이예요.”
“어떻게 딱 저 세 사람이……. 만약에 제한이 있는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들어가는 게 나았잖아.”
이익헌이 말했다. 모두들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자기들이 들어가는 게 나았다고. 감응기에 보이는 신입 헌터들의 차크라는 너무나 가녀리게 빛나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의 주위에 보이는 괴수의 차크라는 없었고 콜로니의 깊숙한 곳에서 두 개의 차크라가 발견될 뿐이었다.
“제발. 제발 아무도 다치지 마.”
임정은 두 손을 꼭 모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이가 두 사람을 불렀다.
“여기야. 이쪽으로 가면 되는 것 같아.”
제이의 신호에 맞춰서 효재와 무영이 같이 움직였다. 무영은 무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는 적당하게 둬야 돼. 너무 빨리 따라 잡으면 우리도 시현이의 차크라에 휘말릴 거야.”
제이가 말했다.
“그래도 시현이한테 말해주기는 해야 돼. 차크라를 아껴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은 주위에 괴수가 없어. 계속 저렇게 차크라를 낭비하다가는 정작 괴수하고 마주쳤을 때 차크라가 고갈돼 버릴 수도 있어.”
효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 얼굴이 완전 창백해. 그냥 나가는 게 좋지 않겠어? 너까지 챙길 여유는 없어. 너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니야. 나도 도울 거야.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괜한 고집이 아니라, 자기도 돕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같아서 효재도 그런 무영이 싫게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의 경고를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혼자 앞서서 가고 있던 시현도 차크라가 소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현의 의지로 차크라가 사그라졌다. 콜로니 입구에는 그렇게 많이 모여 있더니 이제는 괴수의 기척이 발견되지 않았다. 시현은 연못이 있다는 곳까지 빠르게 달렸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괴수잖아.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고.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라는 말은 그냥 그럴싸한 거짓말이야. 괴수라고. 사람 모양을 한 괴수지. 괴수 차크라를 가졌는데 헌터라고?”
“괴수야. 괴수. 결국에는 괴수 편에 설 걸?”
“지금은 헌터들이 우세하다고 생각하니까 헌터 행세를 하는 것 아닐까? 균형이 무너지고 괴수가 득세하게 되면 그때는 괴수한테 붙지 않겠어? 지금 자기들이랑 같이 싸웠던 우리한테 얼마든지 무기를 겨눌 걸?”
“괴수잖아. 안지우. 버려. 이런 애를 어떻게 키워? 사람들이 클랜 A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겠어? 얘는 너하고도 달라. 지우야.”
“형. 시현이는 괴수예요.”
목소리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계속해서 들렸다.
“쟤는 괴수래. 그러면서도 학교에 다녀. 뻔뻔하지 않아? 늪으로 들어가서 헌터들한테 공략을 당하고 자기 늪이랑 함께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니야?”
“헌터 타투가 나타났대. 말도 안 돼. 쟤가 왜 헌터야? 괴수잖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들도 들렸다. 시현은 그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에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라이어 버드에 대해서도 들었고 라이어 버드가 어떻게 공격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 말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왠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했을 말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감정을 가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라이어 버드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안시현은 내 아들이 아니야. 나는 그 애가 가진 차크라를 이용하려는 것 뿐이야.”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 소리가 너무 생생해서 시현은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시현이가 눈치채게 하면 안 돼. 얼굴은 그럴 듯하잖아. 너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안심할 거야. 시현이가 그 얘기를 계속 믿게 해야 돼. 지금은 거의 넘어왔어. 의심하지 않을 거야. 계속 그렇게 믿게 만들어. 자기가 안지우와 임정의 아들이라고 말이야. 그러면 안시현은 헌터들을 위해서 싸우겠지. 자기 동족을 향해서 무기를 겨누고.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을 대신 싸울 거야.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익헌의 목소리였다.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삼촌이 아니야. 아빠가 한 말이 아니야!”
그러면서도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어머. 쟤봐. 정말 믿는 얼굴이잖아. 내가 엄마라고 믿나봐.”
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울한 시현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니야…. 엄마가 하는 말이 아니야.”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시현.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애초에 너무 허무맹랑한 얘기였잖아. 안 그래? 정말로 그 말을 믿었어? 너도 정말 웃기는 애다.”
강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잖아요.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이잖아요!”
앞에서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콜로니가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시현은 앞으로 달려갔다. 그 소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이어졌다.
시현의 눈 앞에 연못이 나타났다. 하지만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럿이 달려가는 소리가 안쪽으로 이어졌다. 시현은 갈등을 일으켰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안시현!”
뒤에서 갑자기 무영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시현은 그것 역시 라이어 버드가 만드는 소리인 건가 했다. 하지만 시현이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가장 못미더운 순으로 세 사람을 추려서 안으로 들여보낸 것 같다는 생각에 시현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효재와 무영이 달려왔다.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보고 무영이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아주었다.
“이 자식. 그런 거 가지고 울면 나중에 제이가 울 때 어떻게 놀리려고 그래?”
시현은 자기가 놀림을 받아도 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영은 거기에서 멈추고 시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제이는 시현이 감정을 어지간히 수습한 후에 다가왔다.
“라이어 버드라는 괴수. 진짜 악랄하다. 나라도 넘어가겠어. 전혀 사실이 아닌 말이라고 해도 넘어갈 것 같았어.”
효재가 말하며 시현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도 콜로니에서 듣지 못한 목소리는 흉내내지 못하는 모양이네. 우리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자기가 들은 목소리로 다른 말을 만들어서 한다는 게 끔찍하다. 괴수의 지능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어.”
제이가 말했다.
“여기 같아. 시현아.”
무영이 얼음을 쿵쿵 밟으면서 말했다.
“이걸 깰 수 있겠어?”
시현과 효재가 각자 시도를 했지만 되지 않았다. 쉽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잘 되지 않았고 시현은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무영에게는 애초에 기대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무영이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이에게도 기대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암습을 했다. 얼음조차도 자기가 그렇게 갑자기 얻어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듯했다.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렸을 때 시현과 효재는 그게 갑자기 왜 뚫린 건가 했다.
“제…이야…….”
제이가 주먹쥔 손을 거두는 것을 보고 있던 무영이 놀란 얼굴로 제이를 불렀다.
“됐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시현이가 들어가는 거지?”
제이가 말했다. 시현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김에 한 번 더 해 줘. 아빠도 같이 나와야 하니까.”
시현의 말에 제이는 분부만 내려달라고 말하고 다시 손에 차크라를 모았다. 파동이 일더니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꽤 먼 곳까지 빠지직 소리를 내면서 금이 가 있었다.
“빨리 가. 시현아.”
무영이 재촉하지 않았으면 시현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시현은 팔을 감싸고 있던 보호구만 빼놓고 그대로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괜찮겠지?”
효재가 말했다.
제이와 무영 두 사람은 입을 열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서 그렇게 압도적인 긴장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
벽에서 날아오는 것들이 뭔지 시현은 알지 못했다. 해초 같기도 했고 미역줄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것들에게 붙잡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시현은 제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랬으니 도움 받는 것을 사양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평소에 하는 일도 없이 제 안에서 기생하는 괴수의 차크라를 얻어쓰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도 없었다.
시현은 괴수 차크라를 동원했다. 시현을 향해 다가오던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불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촉수를 확 움츠리는 생명체들처럼 그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현은 더이상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지친 듯 보였지만 아직 숨은 쉬고 있었다.
“아빠.”
시현이 지우의 목 밑으로 팔을 집어 넣어 지우를 깨웠다.
“아빠.”
지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 앞에 있는 시현을 봤으면서도 그는 꿈에서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동안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 저예요. 시현이요.”
시현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울먹이는 아이의 목소리만큼 아버지의 정신을 단번에 들게 만드는 소리는 없을 것이다. 지우가 눈을 떴다.
이번에는 훨씬 선명해졌다. 지우는 눈에 힘을 주고 시현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