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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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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에서 내린 시현의 얼굴은 거의 흑빛으로 변해 있었다. 시현은 제 엄마를 찾아갔다. 시현을 가장 먼저 발견한 태인이 임정을 불러 주었다. 임정은 핼쑥해진 얼굴로 시현을 맞았다. 이익헌이 곧 뒤따라 나와서 시현에게 콜로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하나씩, 하나씩 시현이 왔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나왔다. 모두들 지우를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해서 시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라이어 버드라는 괴수가 한 짓이라는 거예요? 그게 전부요? 아빠를 속이고 아빠를 연못으로 끌어들인 거라고요?”
익헌의 설명을 듣고 시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놈들. 어떤 계획 아래에서 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밑바닥에 있는 놈들은 이용만 당하겠지만. 콜로니의 괴수들이 콜로니의 구성을 작위적으로 바꾸려는 느낌이 들었다. 약한 녀석들을 잡아먹었어.”
익헌이 말했다.
“저를 콜로니에 데려다 주세요.”
시현이 말했다.
“네가 뭘 어쩌려고?”
“뭘 할 수 있는지는 가 봐야 알겠죠.”
사람들은 일제히 레오니드를 바라보았다. 시현의 레이드 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인, 게다가 시현을 데리고 같이 레이드를 해 본 경험도 있는 레오니드일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레오니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시현의 차크라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시현에게는 싸움의 기술이 없었다. 차크라의 양에서는 비할 바가 안 되겠지만 차라리 백전노장의 서규태가 시현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러울 거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시현은 다른 사람들이 주저하는 시간에 아버지가 연못 아래에서 혼자서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저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임정이야말로 고통스러웠다. 시현은 지연에게 다가갔다.
“저를 데려다 주세요. 밖에서 감응기로 보실 수 있잖아요. 연못이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려주세요.”
지연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려고 했지만 시현이 앞을 막아서면서 지연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다른 분들을 보실 것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해 주세요. 같이 가 주지 않으시면 혼자라도 갈 거예요. 콜로니가 어디에 있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겠죠.”
시현이 그렇게 나오자 다른 클랜원들도 시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현을 따라나섰다. 클랜원들이 모두 콜로니 앞에 다다랐을 때 지연은 감응기로 콜로니의 상황을 설명했다. 콜로니의 입구에 많은 괴수들이 밀집해 있었다. 분명히 헌터들이 입구에 있던 탑시스와 헤르겐, 레드 런들을 쓸어버려서 그 곳은 한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그곳에 있던 자잘한 괴수들은 사라졌지만 콜로니의 깊숙한 곳에서 방관자 모드로 있던 괴수들이 콜로니 입구쪽으로 옮겨와 있었다.
“여기 있는 괴수들은 콜로니 내 서열 4순위에서 7순위까지의 괴수들이야. 아예 입구에서부터 막아버리겠다는 생각인가봐.”
지연이 말했다.
“연못은 어디쯤에 있어요?”
시현이 묻자 지연은 감응기의 화면을 이동시켜 연못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가다가 나오면 내가 알려줄게.”
임정이 말했다. 그러자 시현이 고개를 저으며 입구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저 혼자 들어가요. 입구에서부터 자잘한 것들을 전부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제 차크라를 쓸 거예요. 차크라의 도움을 받을 거예요. 다른 분들이 제 차크라에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시현아!”
이익헌이 시현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들도 이제 시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았다.
“그건 안 돼. 그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안시현. 네 아빠도 못했어. 네 아빠도 괴수의 독침으로 마취되고서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어!”
서규태가 소리질렀다.
“다른 분들이 같이 가시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잖아요. 저 혼자가면 괜찮을 거예요. 다른 분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아버지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도 아시잖아요. 저 혼자 가요.”
시현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시현이 서 있었던 곳에서 더 이상 시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크라를 사용해서 빠르게 달린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그렇게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는 없었다.
작은 바람만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지연이 감응기를 가리켰다.
“시현이예요.”
지연이 하나의 차크라를 가리켰다. 따로 설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콜로니의 입구에서 압도적인 차크라가 제왕처럼 군림했다.
“이게 뭐야…….”
야로슬라프가 감응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현의 차크라 옆에 라벨이 생겨났다. 가장 크고 가장 분명한 동그라미가 표시되었다.
“서열 1위로 올라섰어. 시현이가.”
“시현이가 서열 1위?”
임정이 다가갔다.
“지연씨. 다른 사람들도 이랬어요? 서열이 표시됐어요? 특별한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 말이예요.”
임정이 완곡하게 물었다. 하지만 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요. 아무도 그런 게 나타나지 않았었어요. 클랜 마스터님도요. 야로슬라프, 미하일, 레오니드한테도 이런 건 없었어요.”
“미치겠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거야?”
익헌이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때였다. 감응기 화면이 번쩍거렸다. 순간적인 섬광 때문에 감응기 모니터가 터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이게 뭐예요?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임정이 잔뜩 긴장한 채로 지연에게 물었다. 콜로니의 입구에서 차크라 기둥이 치솟았다. 그것은 콜로니의 천장까지 한순간에 다다랐다.
시현은 한 자리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시현의 주위가 완벽하게 소제되고 있었다.
“저걸 본 적이 있어.”
레오니드가 말했다. 야나를 타고 다른 클랜원들과 다같이 레이드를 하러 갔을 때 레오니드는 그 거대한 차크라 기둥을 보았었다. 시현이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날, 레오니드의 몸 안에 숨겨있던 괴수 차크라의 힘이 밖으로 발현되어 나왔었다.
감응기에 나타난 차크라의 본체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거대한 불길이 일렁거리듯 차크라만이 움직였다. 시현의 차크라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람들조차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효재와 무영은 어느새 서로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무서웠다. 충격을 넘어서 두려웠다. 시현이 인간 외의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 엄청난 이질감 때문에 그들은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라이어 버드가 시현이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죠, 누나?”
강현이 말했다.
“라이어 버드는 시현이를 피해서 도망칠 수 있을 거예요. 라이어 버드가 어둠 속에 숨어서 시현이를 공격한다면. 라이어 버드라면 지우 형 목소리를 흉내내서 시현이 마음을 흔들 수도 있을 거예요. 라이어 버드는 그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 것 같잖아요.”
“내가 들어가야겠어.”
임정이 나섰다.
“누나는 안 돼요. 누나는 이미 차크라를 한계치까지 썼어요. 제가 갈게요.”
강현이 나서자 이익헌이 강현의 손을 잡았다.
“지금은 안 돼. 지금은 콜로니에 들어가지 않는 게 시현이를 돕는 길일 거야. 시현이는 능동적으로 싸우는 게 아니야. 괴수의 차크라 힘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자기 편이라는 걸 알고도 제어하기 어려울 거야. 더군다나 저 정도의 차크라를 사용하는 중이라면, 잘못 건들면 폭주해 버릴 수 있어. 괜히 나서지 마. 너를 죽였다는 것 때문에 시현이가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지 말라고.”
냉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딱 필요한 말이었다. 얼쩡거리다가 시현이를 죽게 해서 시현에게 괜한 죄책감을 주지 말라는 게 요지였다.
“입구에 괴수들이 몰려 있어요. 연못은 여기고요. 제 생각에는 라이어 버드가 공격을 한다고 해도 이 근방이 될 것 같아요. 시현이가 차크라로 소제를 하는 동안은 기다리다가 시현이가 여기까지 가면 그때 다시 판단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쓸어버릴 괴수가 남지 않으면 차크라도 자연스럽게 잦아 들지 않을까요?”
지연의 말에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라이어 버드가……. 어떻게 공격을 하나요?”
효재가 조심스럽게 익헌에게 물었다. 익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설명을 해 주었다. 라이어 버드가 스켈을 유인해서 타일락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는 얘기도 했다.
신입 헌터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동료로 대해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것 뿐이라면. 그게 왜 치명적인 게 되는 건데요?”
효재가 물었다.
“사람들은 마음에 쓴 뿌리를 지니고 있어. 그게 건들어지면 자기가 스스로 공격하게 되기도 하지. 너처럼 자존감이 없는 애한테,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고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만 안겨주고 있고 뻔뻔하고 몰염치하다고 말을 한다고 해 봐라. 네가 가장 믿었던 사람 목소리로 그런 말이 들려온다고 해봐. 어떨 것 같냐?”
이익헌의 말을 듣고 효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말처럼 엄청난 무기가 없는 거거든. 말이라는 건 혀에서 날아가는 가장 막강한 비수인 건지도 몰라.”
레오니드가 자신의 어린 학생을 위로하듯이 말했다.
“효재가 정신 공격에 강한 이유를 알겠어요. 효재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공격해와서 내성이 생긴 걸 거예요. 아무리 정신 공격에 능한 괴수라고 하더라도 효재가 하는 것만큼 효재 가슴을 난도질 할 수는 없을 걸요?”
무영이 말했다. 그럴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클랜원들이 효재를 바라보며 그러지 말라고 한 사람씩 진지하게 위로를 해 줄 정도였다.
효재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공격을 당할 때 그걸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한 가지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는 거다. 그리고 그것부터 시작해서 네가 다시 쌓아가면 돼. 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정죄를 당한다면 그냥 단순한 한 가지에서 시작을 하면서 그걸 부정하면 된다.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할머니한테는 내가 필요해. 그러니까 나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을 거야.'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익헌의 말에 무영과 제이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효재. 너한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냐. 앞으로 바뀔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순간에 한 가지 정도는 바로 떠올라야 할 거다.”
익헌이 말했다.
“시현이요.”
“시현이?”
“우선은 시현이예요. 시현이는 제가 얻을 수 없었을 기회들을 만들어준 녀석이니까요. 저를 믿어줄만한 근거가 전혀 없었을 때 저를 믿어준 친구고요. 한 번쯤은 저도 갚아주고 싶어요.”
“그래. 그런 것도 좋아.”
이익헌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보나마나 치기어린 명예나 돈이나 할머니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익헌은 효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우리도 믿어보자.”
이익헌이 말하는 동안 레오니드와 야로슬라프가 지연에게 다가갔다. 미하일도 그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그리로 움직였다.
“시현이 차크라는 어느 정도나 되는 거예요? 충분할 것 같아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지연이 감응기에 나온 시현의 차크라와, 야로슬라프가 콜로니에 있었을 때 기록되었던 차크라의 양을 비교해서 보여주었다. 시현의 차크라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건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우형이랑 비교하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예요?”
미하일이 물었다.
“3분의 1정도요.”
“지우 형의 3분의 1요? 그럼 엄청나게 늘어난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