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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그건 아니야. 기본 공격력의 70퍼센트, 100퍼센트, 120퍼센트, 150퍼센트. 이런 식으로 데미지를 입힐 수 있게 되니까.”
“콜로니란 정말 복잡하네요. 그동안 잘 지켜지고 있던 약속을 갑자기 뒤집고 새로 규칙을 만들자고 멋대로 정해버린 느낌이예요.”
무영이 말했다.
“그래서. 무영이 너는 그렇게 된 게 싫어?”
효재가 무영에게 물었다.
“어?”
이거. 잘 생각해서 대답하지 않으면 바보가 돼 버리겠다는 생각에 무영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강한 사람한테는 유리한 룰이다.
강해지면 된다.
강해질 생각을 하고, 새로 바뀐 룰을 환영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게 효재의 생각인 것 같았다.
효재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기는 룰이 바뀌었다고 징징거리기나 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영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일방적이기는 하잖아.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한 거야. 시스템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거에 대해서.”
무영이 진땀을 빼면서 해명을 하는 것을 보고 시현이 무영의 등을 툭 쳤다.
“아, 뭐! 시발놈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고!”
괜히 발끈하는 무영을 보면서 모두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일정은 정말로 빡빡했다.
한눈을 팔 틈도 없었고 사체 운반 일도 중간 중간에 투입이 돼서 해야 했고 가끔은 독에 맞아 기절도 해야 했고.
거의 유일한 낙이라고 하면 주말에 효재 할머니의 댁으로 가서 개미핥기들처럼 폭력적으로 먹어치워대는 것뿐이었다.
효재의 할머니는, 이 인간들이 도대체 어디까지 먹을 수 있는지 보자는 실험정신으로 음식을 만들었지만 매번 녀석들은 상상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식탁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먹다가 하나 둘씩 벨트를 풀고 단추를 풀면서,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는 배를 해방시켜 줘 가며 먹어댔다.
“할머니. 이건 진짜. 맛이. 진짜.”
무영은 우걱우걱 씹어대면서 말을 했다.
“그렇게 맛있냐?”
할머니가 기쁜 표정으로 물었다.
“맛이 웃겨요.”
“이 자식! 이 놈이 아카데미 다니다가 미쳤나. 맛이 웃기는 게 어딨어!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아니예요. 할머니. 맛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근데 얘는 웃기는 맛이예요. 맛이 없는 게 아니라니까요?”
무영은 희한한 소리를 한다고 또 한 대를 얻어맞았고, 엄지를 세워 올리면서 할머니 음식이 항상 최고라고 말했다.
효재는 그런 무영을 보면서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효재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효재의 할머니는 효재가 클수록 꼭 제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깊으면서도 정작 살갑게 표현을 하지는 못하는 성격이었다.
무영은 이렇게 덥썩 덥썩 안기고 제가 안아주고 어떤 때는 뽀뽀까지 해 주고 볼도 비비고 그러지만 정작 친손자인 효재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서 무영이가 그러는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성격이 그렇게 적극적이지 못할 뿐 효재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아는 할머니는, 가끔 할머니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면 효재는 큰소리로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도망치기에 바빴다.
“너는 무영이가 할머니한테 저러는 거 싫지 않아? 너희 할머닌데 무영이가 더 친해지는 것 같잖아.”
시현이 그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아니. 나는 고마워. 나는 성격이 그렇질 못해서 그렇게 못하겠거든. 기숙사에 있을 때는, 할머니 보면 사랑한다고 말도 해드리고 그래야지, 하는데 막상 보면 말을 못하겠어.”
“아우우우. 야. 그런 말은 나도 못해. 나도 지금까지 그런 말 해 본 적 없어. 삼촌한테도.”
시현은 닭살이 돋는다는 듯이 제 팔을 쓸어대면서 말했다.
“너는 아직 삼촌이 더 편하지?”
효재가 물었다.
“응. 편하기는 삼촌이 훨씬 편해.”
“그런데 삼촌한테 그 말도 안 해 봤어?”
“응. 커서는. 해 본 적 없는 것 같아. 갑자기 그런 말 하면 서로 어색해할 걸? 그리고 이제는 나한테 그런 말 듣는 거 별로 안 좋아할 거야. 아카데미 교수님들한테라면 모를까.”
“교수님?”
“우리 삼촌은 그동안 학업 상담을 한다는 핑계로 무수한 선생님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거든.”
“밀접한 관계. 그거야말로 중요한 말이지.”
효재가 큭큭거렸다.
무영이 조용하다 싶더니 소파를 차지하고 잠이 들었고 하나 하나 그 옆에서 자리를 잡았다.
효재의 할머니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세상의 이목이 클랜 A에게 집중된 것처럼 언젠가는 여기에 있는 이 녀석들에게 이목이 집중될 거라는 것을 효재의 할머니는 알 수 있었다.
***
“얘.”
수업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시현이 별관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는 아닐 거라고 확신하고 계속해서 달렸다.
“얘. 신입!”
신입?
그러면 저일 가능성이 꽤 높아진다는 생각에 시현이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현신 헌터 아카데미 여학생이 시현을 향해 고고하게 걸어왔다.
선배라는 건 알겠기에 일단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수업이 곧 시작될 터라 거기에서 오래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너. 나 모르겠니?”
그 말에 시현은 여학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너 때문에 나 퇴학당했었어.”
그렇게 말하면서 여학생이 시현을 흘겨보았다.
그렇다고 시현에게 화가 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고 괜히 앙탈을 부리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아아. 현신고 선배랑 숲에서 응응거리던 누나!”
시현은 그렇게 말을 해놓고 자기가 한 말이 꽤 부적절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퇴학 당했는데 왜 여기에 있어요?”
“퇴학을 당했으니까 지금도 여기에 다니고 있지. 안 그랬으면 벌써 졸업했을 텐데. 퇴학 당했다가 재입학 했단 말야. 재입학이라고는 해도 다행히 3학년 수업부터 들을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네에. 잘 됐네요. 근데 저는 수업 있어서요.”
시현은 얘기가 길어지는 것이 신경쓰여서 급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수업 끝나고 거기로 와. 거기가 어딘지는 알지? 네가 일러바쳐서 나를 퇴학당하게 만든 거기 말이야."
"저는 일러바치지 않았어요. 교수님이 보신 거죠. 볼 수밖에 없게 일부러 자리를 그렇게 잡았던 거 아니예요? 그 탓을 남한테 돌리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어쨌든. 너한테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고. 다음 시간에는 수업 없지?”
“네?”
“1학년 시간표는 나도 알고 있다고.”
“그보다……. 제가 선배를 볼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어머? 너는 선배한테 그렇게 대하니?”
“무슨 용건인지 알려주시면 좋겠는데요.”
“왜? 내가 너를 잡아먹을까봐? 귀엽게 구네. 아무튼 거기로 와.”
그래놓고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키면서 시현의 옆을 지나가버렸다.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굉장히 신경 쓰였다.
강의 시간에 영 집중을 하지 못하는 시현을 보고 효재와 무영은 시현이 클랜 A 때문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클랜 A가 콜로니를 공략하러 가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이도 시현에게 신경이 쓰였고 그 연쇄작용은 교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교수도 클랜 A의 콜로니 출격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시현의 상황을 이해-정확히 말하자면 오해지만-해 주었고 단축 수업의 은혜를 베풀었다.
시현 덕에 강의가 일찍 끝나자 효재와 무영, 제이 세 사람은 모두 시현의 주변으로 모여들어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시현을 위로해 주었다.
시현은 무슨 얘긴가 하면서 제 친구들을 보다가 친구들이 걱정하는 일이 다른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내가 쓰레기다. 지금 이런 일에 신경쓸 때가 아닌데.”
시현이 말했다.
“그래? 그 일이 아니야? 그럼 무슨 일인데? 나한테 말해봐.”
무영이 말했다.
무영에게 말을 한다고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말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선배가 숲으로 나오라고 했다가 둘이만 있는 곳에서 생긴 일을 왜곡하고 부풀려서 이상한 소문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녀관계에서 생긴 진실은 당사자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현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뭔데. 말해. 우리를 믿고!”
무영이 결정적으로 그렇게 말하자 시현도 마음을 굳혔다.
시현은 선배와의 악연에 대해서 말했다. 그때는 선배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선배가 됐고, 결과적으로 자기 때문에 퇴학을 당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너 때문이 아니라 레오니드 교수님 때문이었던 거잖아.”
효재가 말했다.
“아니지. 원인 제공자는 그 선배지. 그런 데서 그런 짓을 했으면 퇴학을 당하는 게 맞는 거 아냐?”
제이가 발끈해서 화를 냈다.
“제이야. 왜 그렇게 화를 내? 너한테는 안 생기는 일이 그 선배한테만 일어나서 화내는 것 같잖아.”
무영은 그 소리를 한 덕에 뒤통수를 정통으로 얻어맞았고, 그대로 책상에 눌려버린 얼굴을 다시 들었을 때는 코가 새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누가 무영이 주둥이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줘야 돼. 안 그러면 무영이는 F급을 벗어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칼침 맞고 죽어버릴 거야.”
효재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의자는 나일 확률이 높아.”
제이마저 진지했다.
무영은 별소리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선배 맞지? 3학년 중에 나이 많은 여자 선배는 이 선배 하나다. 채미영. 맞아?”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가지 말고. 효재가 나가라.”
무영이 말했다.
“내가? 내가 왜?”
“이런 여자들 하는 짓 보면 뻔해. 우리 엄마랑 아빠가 맨날 무시무시하게 싸우잖아. 우리 엄마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거거든. 그런데 우리 아빠가 좀. 내가 보기에도 심한 호구야. 여자들한테 맨날 그런 짓을 당하고 돈 뜯기고 그런단 말이야. 그러니까 엄마도 아빠를 믿지 못하게 된 거고 서로의 인생이 좆같다보니까 나한테 과도하게 기대를 하고 나를 막 조종하고 싶어한 건데. 결론은 여자는 마물이라는 거지.”
자기 인생을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하는 무영의 포스에 눌려서 세 사람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젊은 여자들은 자기들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는 걸 알거든. 그리고 딱 채미영 선배 같은 나이일 때가 제일 위험해. 왜냐. 젖꼭지도 예전 같지 않고 젖도 쳐졌을 거거든. 그렇게 헤픈 여자가 뻔하지.”
제이는 이제 뒤통수를 힘들여서 칠 생각도 하지 않고 무영의 머리카락을 잡히는대로 대충 콱 잡아서 무영의 머리를 책상 위에 박아버렸다.
“그건 명백한 성희롱이다. 제이 있는데서는 말을 가려서 해야지.”
효재가 두둔해주는 바람에 무영은 반박도 하지 못했다.
“너는 다른 데로 가. 먼저 가서 훈련을 하든지. 이건 남자들 얘기야. 시현이가 지금 덫에 걸리게 생겼는데 그럼 내가 입을 닫고 있어야 되냐?”
무영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하던 말이나 계속 해 봐.”
효재가 말했다.
그 녀석도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채미영 선배도 자기 몸을 보면서 꺾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거라고. 그런 여자가 그런 시기에 무슨 생각을 하겠냐? 더 늦기 전에 호구 하나 잡아야겠다. 그런 생각 안 하겠어? 그런데 현신 헌터 아카데미에는 이렇다할 경쟁자가 없잖아. 그러니까 자기 독무대라고 생각하겠지.”
무영은 말을 해 놓고 은근슬쩍 제이의 눈치를 봤다.
“경쟁자가 왜 없어? 우리 귀여운 제이도 있는데. 제이의 수퍼 세이브를 누가 뚫어?”
효재가 말하자 제이의 얼굴이 한없이 붉어졌다.
“문제는 뭔줄 알아? 시현이는. 시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야. 이제이. 너 다른 데 안 가냐? 갈 데가 그렇게 없어?”
무영이 말했다.
“신경 끄셔.”
“내가 너 때문에 시현이한테 중요한 충고를 제대로 못하고 있잖아.”
제이가 무영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너, 제이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시현이 제이를 보면서 무영에게 말했다.
“지금 네가 제이 걱정할 땐 줄 알아? 이럴 때 그냥 멍하니 있다가는 채미영 선배한테 확 잡아먹힌다고. 너는 지금 딱 대기만성이잖아. 대기만 하면 온 몸이 성감대라고. 채미영 선배 같은 여자는 남자들이 자극이랑 욕망에 얼마나 약한지 훤히 다 알고 있을 거라고. 너도 아마 처음에는 네 도덕감정이랑 양심에 따라서 거부를 하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네가 먼저 흥흥 거리면서 그 선배 머리를 붙잡고 네 좆에다가 더 세게 쳐대게 될 걸?”
“으휴. 제이를 내보내길 잘 했네.”
효재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