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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69화 (26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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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다른 한 명의 신입생 중에, 툭하면 쓰러지는 허약 체질의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범식이라는 이름을 놔두고 ‘툭 하면 쓰러지는 애’라고 불리고 통했다. 그냥 허약 체질이라고 말하는 걸로는 부족하고 저질 체력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 형국이었다. 그런 체력으로 어떻게 헌터 테스트에 통과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길무영은 헌터 아카데미 신입생 중에 최약체가 자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범식을 보고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이범식이 낙오하지 않고 오래오래 다녀주기를 진심으로 바랐기에 가끔 간식도 사다 바치면서 정성을 다 쏟았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수업이 없을 때도 기초 체력 훈련을 해야 했다. 그럴 때는 동기들끼리 같이 운동장을 도는 과정도 포함이 됐는데 이범식은 2백미터도 돌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서 쓰러지곤 했다. 이범식이 쓰러지면, 아이구, 벌써 200미턴가 보다 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길무영은 그런 이범식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됐다. 이범식이 그만둔다면 최약체는 자기 차지가 될 텐데 그건 정말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이를 이긴다고 해 봐야 여자를 이기는 건데. 이제이는 도무지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이제이를 못 이기면 그때 감수해야 되는 모멸감은 굉장한 반면, 이겼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은 너무 미미했다. 그러니 길무영으로서는 어떻게든 이범식이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헌터 아카데미를 수료할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무영은 이범식에게 남모르게 특훈까지 시켰다. 특유의 사교력, 특히 강한 자 앞에서 약해지며 비위를 잘 맞추는 성격으로 무영은 선배들의 귀염둥이가 되어 있었다. 무영은 선배들에게 앞으로의 훈련 과정에 대해서 미리 들을 수 있었고 다른 녀석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선행 학습을 하면서 준비를 했다.

효재나 시현에게는 앞으로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될지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범식에게는 달랐다. 이 자식이 갑자기 새로 시작되는 과정에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두겠다고 하기라도 하면 자기가 신입생 중 열등아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 같아서였다.

하필 다음 과정이 그래비티를 드는 거라는 걸 알았을 때 무영의 마음은 엄청나게 급해졌다. 일단 무영이 계획을 세우기로는, 자기와 범식이 열심히 연습을 해서 허벅지 정도까지 드는 걸로 하고 이제이를 희생양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제이에게 함정을 놓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다음 과정이 그래비티 들기라는 것을 제이에게 알려주지 않겠다는 것 뿐이었다.

무영은 범식에게 은밀하게 접선을 했다. 범식을 불러낸 무영은 범식에게 그래비티를 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영이 생각했던대로 범식은 그래비티가 뭔지도 몰랐다.

“그래비티? 그거. 중력 아냐? 중력을 어떻게 드냐? 바보야.”

‘너 따위 놈한테 바보라는 말 들을 생각 없거든!!’ 하고 거칠게 말해주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 무영은 범식에게 그래비티를 건네주었다.

건네주는 방식도 특이했다. 무영 자체가 그래비티를 번쩍 번쩍 들지 못하다보니, 땅에 꽃을 심는 것처럼 몸을 잔뜩 기울이고서 범식을 불렀던 것이다. 그렇게 그래비티를 건네주자 범식은 그것을 받아들다가 비명을 질렀다.

“흐응!”

‘당연하게도’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범식은 당연하게도 그래비티를 들지 못했다.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범식은 손에 그래비티를 올려놓자마자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범식은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가서 시즌 아웃되었지만 그것은 결단코 무영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범식이 헌터 아카데미 과정을 더 이상 이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범식에게 도대체 왜 헌터 타투가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는 깊은 의문점만 남긴 채 범식은 사라져버렸다.

더군다나, 그래비티 과정은 생략이 되어 버렸다. 레오니드 교수와 미하일 교수가 이미 신입생들의 평균 수준을 알고 있었기에 그래비티 수업은 지나가도 된다고 해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그래비티만 가지고 죽어라 선행학습을 했던 길무영은 얼굴이 검은 빛이 되었다. 점점 시현과 효재는 앞서 나갔고 길무영은 자기가 잘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효재는 시현만큼은 아니었지만 시현이 10을 해 내면 항상 8정도는 해냈다. 제이는 4정도였고 무영은 5정도의 성과를 냈다. 제이 한 사람을 이겼다고 좋을 것은 전혀 없었다.

시현이야말로 지금 감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 그 정도인 것이지 일단 잠재력이 폭발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이 훤했다.

무영은 승부욕이 강한 녀석이었다. 더군다나 현신고 시절에 자기가 개무시를 해 왔던 녀석들한테 뒤지는 것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다보니 의욕이 전혀 생기질 않았다. 가끔은 무영이 심하게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고 효재와 시현이 실력을 조절해 주는 때가 있었는데 사실 그게 더 화가 났다.

딱 보면 그 녀석들이 실력발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보이는데 그런 경우에도 무영이 전심전력을 다 해야 겨우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영은 녀석들이 힘 조절을 해 줄 때, 그딴 동정은 필요없다고 차갑게 말해버리고 싶은데 그런 기회에라도 이겨보고 싶어서 애쓰는 자기 자신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닥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갈 즈음이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헌터 아카데미 선밴줄로만 알았던 사람이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 사람이 교수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독성학을 가르치게 될 서문열입니다. 반갑습니다.”

서문열은 가볍게 자기 소개를 했다.

“나한테서 배울 것은 간단합니다. 아마 헌터 아카데미 과목 중에서 수업 받기 가장 편한 과목이 독성학일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내성이 생길 때까지 앓고 있기만 하면 되거든요.”

서문열은 그렇게 말해놓고 하하하하하 웃어댔다. 그게 도대체 왜 웃기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이 서문열을 바라보자 서문열은 어색해진 얼굴로, 독성을 가진 괴수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동물 분류학 얘기가 나올 때는 다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지루해서 꾸벅꾸벅 졸았지만 다음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들었다.

“각 독극물을 치사량의 100분의 1씩만 주입을 합니다. 독성학 수업은 계속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독은 여러분을 공격할 수 있지만 독을 이용해서 여러분이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치사량의 100분의 1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죽지 않을 겁니다. 웬만해선, 이라고 말하는 건 특이체질을 가진 학생이 있을 수 있어선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입학 과정때 신체 검사를 한 내용을 보면 모두 아무 문제를 갖지 않았으니까요. 자. 그럼. 테트라 먼저 합니다.”

신입 헌터들은 닥치고 독을 주입받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이 사람이 정말 공인된 교수가 맞는가 싶었고 정말로 독성학이라는 것이 이 아카데미에 개설된 게 맞나 싶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의심이 들었다.

치사량의 100분의 1이라고 하는데도 효과가 엄청났다.

무영은 다른 아이들이 먼저 독을 주입받는 것을 보면서 뒤에 서서 제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주사기로 주입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곤충이 갑자기 탁 쏘는 것처럼 기습적으로 독침이 쏘아졌다.

독침에 들어있는 것은 치사량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헌터 아카데미의 모든 기수를 속인 서문열의 거짓말이었고 그 양은 치사량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그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무영은 점점 겁이 났다. 시현과 효재, 제이 모두 반응이 이상했던 것이다. 세 사람 모두 독을 주입받은 후에 제대로 서지도 못했고 효재는 구토까지 일으켰다. 무섭기는 했지만 자기도 빨리 맞아버려야 겁이 덜 날 것 같아서 교수를 바라보았는데 교수야말로 이건 뭔가, 하는 표정으로 무영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저도 빨리 놔주세요.”

무영이 아예 칭얼거리는 목소리로 서문열을 재촉했다.

“…….”

“왜 안 놓으세요? 세 개만 준비해 오셨어요?”

“길무영 학생은 이미 쏘였습니다.”

“네?”

서문열은 무영의 팔에 박힌 침을 보여주었다. 무영은 침이 박힌 것을 확인했지만 이상했다. 시현과 효재, 제이 할 것 없이 일단 독침에 쏘이고 나서는 독침에 쏘인 곳이 붉게 물이 들어가고 단단해지면서 퉁퉁 부어올랐다. 그러나 무영에게서는 그런 반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서문열이야말로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반응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서문열이 말했다.

이유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얼마나요?”

무영이 물었다. 다른 애들이 다 회복돼가는 동안에 자기 혼자만 쓰러질까봐 그것도 겁이 났다. 하다하다 이제 이런 것, 그러니까 독침에 반응을 보이는 속도까지도 열등한가 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 정도였다.

“열 두시간만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요.”

서문열도 무영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그럼 열 두 시간 있다가 나타나려나 보네요.”

무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교수님. 그런데 그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저같은 체질이라면 독침에 찔린줄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혼자 푹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독이 무서운 건 그런 점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조직이 괴사해서 팔이나 다리를 잘라내게 되는 일도 생기죠.”

“네?”

무영은 갑자기 겁이 나서 서문열을 바라보았다.

“기숙사에 있을 거죠?”

서문열이 물었다.

“네.”

“오늘은 대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으면 언제든 내 연구실로 와요.”

“네.”

“지금부터 열 두 시간 안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마. 괜찮다고 봐도 될 겁니다.”

“괜찮다는 게 뭔데요?”

“내성이 있다는 뜻이죠. 몽구스가 블랙맘바의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 블랙맘바를 죽일 수 있는 것처럼. 길무영 학생도 그런 경우인지 모르죠.”

“정말요? 그럼 굉장한 거네요?”

무영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떤 독에 내성이 있다고 해도, 모든 독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계속해서 다른 독을 가지고도 실험을 해 볼 텐데 두, 세 개 정도에 대해서 면역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굉장한 거긴 하죠.”

“정말요?”

누군가 밝기 조절을 하는 리모콘으로 조절이라도 하는 것처럼 길무영의 얼굴이 점점점점 밝아졌다.

“그럼 저도 잘하는 게 하나 정도는 있다는 거네요?”

길무영이 말했다.

“괴수들 중에는 독을 주된 무기로 하는 게 많죠. 독에 내성이 있다고 하면 아무래도 유리하겠죠. 다른 헌터들은 한 번 물리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도망치면서 싸워야 하겠지만 길무영 학생은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정말요? 그러면 정말로 대단한 거죠?”

“대단한 게 맞기는 합니다. 다만 이건 아주 미미한 양이라서. 실제 레이드를 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 자주 주입될 겁니다. 그리고 다른 독에도 내성이 있는지 그것도 알아야 하는 거고요.”

“어쩐지 예감이 좋아요. 교수님. 아예 지금 더 주입을 해 줘 보시겠어요?”

“일단은 지켜보자고요.”

“네, 교수님!”

포기도 빨랐다.

길무영은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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