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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두 눈에서는 눈물 줄기가 멈추지 않았고, 그러는 중에도 갤러리들을 향해 헌터 타투를 보이고 흔드는 매너는 잊지 않았다. 태인은 저도 모르게 길무영을 향해 달려가서 길무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길무영은 우어어엉, 울음을 터뜨렸다.
효재의 할머니도 달려와 주었다.
"할머니이이이!!"
무영은 할머니를 안고 아예 통곡을 해댔다.
“아이고. 우리 무영이가 혼자 마음 고생을 많이 했구나. 어린 것이 혼자 고생을 해서 속에 눈물이 가득가득 차 있었네. 그만 울어라. 울면 진 빠진다. 무영아. 그만 울어. 그만 울어. 이제 헌터가 됐는데 어떤 헌터가 너처럼 울어. 진 빠진다, 무영아. 그만 울어. 이제 다 된 거야.”
효재의 할머니가 무영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시현은 효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냐?”
시현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저 자식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저 자식이 길무영이라는 거 알고 그러시는 거야? 할머니 눈이 더 안 좋아지신 거 아니야?”
시현의 말에 효재가 피식 웃었다.
“무영이가 부모님이랑 갈등이 있는 것 같기는 하더라고. 무영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한테 인정을 받아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은데 부모님은 무영이를 무시하고 무영이한테 별로 관심도 안 가졌나봐. 이제는 무영이도 저한테 의미있는 것들이 생기니까 부모님이 자기를 특별히 인정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고.”
효재가 말했다.
“그래? 그런 얘기를 너한테는 다 하나보지? 나는 전혀 못 들었는데.”
“길무영이 나한테 그런 얘기를 왜 하겠냐?”
“그럼 어떻게 알았어?”
“할머니한테 했나보더라고.”
효재가 말했다.
“정말? 의외다. 할머니랑 친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얘기까지 다 하는 사인줄은 몰랐어.”
“나도 몰랐어. 그런데 할머니가 그러시더라고. 무영이 좀 잘 챙겨주라고. 사랑을 못 받은 아이라고 하시는데 진짜 황당하더라. 우리 셋 중에는 그 자식이 그나마 제일 나아보이잖아. 너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러게. 저 자식 우는 거 보니까 안 되긴 안 됐다.”
무영이는 실컷 울었는지 클랜원들에게도 자기가 헌터가 됐다고 자랑을 했다.
“저희도 이제 헌터가 됐으니까 야나를 탈 수 있는 거죠? 야나 좀 태워주세요.”
무영이 말했다.
“야나? 글쎄다. 야나는 우리가 시킨다고 하는 차가 아니라서. 일단 시도는 해 보자. 아. 무영아. 부모님 오신다.”
지우가 말하자 무영이 움찔하더니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후회할 일은 안 만드는 게 좋아. 오늘은 뜻깊은 날이잖아.”
강현이 무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무영은 상처가 꽤 깊었는지 자기 부모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무영의 부모는 클랜 A와 안면이 있었던 사이라서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무영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무영은 그쪽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확실해 보였다.
“미안해요. 선약이 있어서요. 오늘도 못 올 거라고 생각해서 선약을 잡았어요. 어차피 헌터 타투가 안 나타났으면 그냥 갔을 거잖아요. 헌터 타투가 안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냥 가시면 되겠네요.”
무영이 말하자 무영의 부모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금방이라도 무영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영을 꾸짖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무영이 그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영이한테 헌터 되면 맛있는 걸 해 주겠다고 했는데. 무영이를 데려가도 되려나요?”
효재의 할머니가 말했다. 무영이가 선약이 있다고 말하자 무영의 부모가 무영에게 험한 소리를 퍼부으면서 네깟 놈한테 선약은 무슨 선약이냐고 말한 것에 대해 한 말이었다.
“무영이가 파티 주인공이죠.”
강현이도 거들었다. 무영이가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났다. 효재가 무영의 어깨에 팔을 얹으면서 무영이는 정말 좋은 헌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영은, 다른 때 같았으면 효재가 그러도록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신경 써 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괜히 울컥해졌다. 이번에는 울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짐은 헛되었고 눈물이 또 흘러버렸다.
“멍청한 자식!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보고 있는데 울기나 하고 있다니."
무영의 아버지는 또다시 무영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너같은 놈이 헌터가 돼서 어떻게 하려는지 훤하다. 괴수를 보고 질질 짜기나 하겠지!”
무영의 아버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소리쳤다.
“내 아들도 헌터였습니다. 내 아들도 헌터 테스트를 받고 울었지만 좋은 헌터가 됐죠. 부모가 하는 말이 아이한테는 길이 되죠.”
효재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가요? 그래서 댁의 아드님은 기차에 치어서 죽은 건가보죠?”
무영의 어머니가 말했다.
효재의 할머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효재를 바라보다가 효재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애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랬을 겁니다. 기차에 뛰어든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제 몸을 던진 거예요. 나는 우리 아이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몸은 부들부들 떨렸지만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클랜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민경욱 헌터가. 효재의 아버지인가봐요."
임정이 지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공격에 특별한 소질을 보이다가 기차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려고 몸을 던졌다 죽은 민경욱 헌터가 효재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익헌이 클랜 A에 정신 공격계통에 강한 헌터를 충원하고자 접선을 꾀하던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서 모두들 안타까워 하면서 소식을 들었었는데 그 민경욱이 효재의 아빠라는 얘기였다.
“죄송해요. 할머니.”
무영이 할머니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무영은 이마를 땅에 대다시피하고 효재의 할머니에게 용서를 구했다. 꼭 용서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용서할 수 없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자기가 얼마나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네가 왜 사과를 해. 뭘 사과하는 거야! 건방지게!”
무영의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무영에게 다가가려 하자 강현이 그 앞길을 막았다.
“충분히 하신 것 같습니다. 환영하고 축하할 날을 망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무영의 아버지도 효재의 아버지에 대한 말은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내의 팔을 잡아 끌었다.
“놔요!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어요?”
무영의 어머니가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야나가 다가왔다.
야나는 그날의 주인공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야나를 바라보았다. 무영의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소음은 그날을 망치지 못했다.
야나의 문이 무영의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것을 본 무영의 눈이 커졌다.
“그만 울려고 했는데!”
무영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야나가 태워줄지 궁금해 하더니. 야나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구나.”
효재도 거기에 타고 싶었지만 헌터가 아닌 할머니가 야나에 탈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뒤로 물러났다.
“할머님은 내 차로 모시고 갈 테니까 효재는 야나를 타고 가라.”
익헌이 그렇게 말해준 덕에 효재도 야나에 같이 오를 수가 있었다. 모두들 야나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야나가 출발하자 차 안에서 서규태가 새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뒤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멍청한 일들도 뒤로 털어버려라. 레이드는 레이싱이랑 비슷해.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생각하는 순간 게임을 망치게 되지. 눈에 보이는 걸 보고 직관적으로 움직여. 너희들을 믿을 수 있어야 할 거다. 그 전에 너희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거고.”
서규태의 말에 세 명의 어린 헌터들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너희는 서로한테 좋은 동료가 될 거다. 왜냐면. 너희가 쓸모없는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우리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희를 시현이한테서 떼어 놨을 거거든.”
서규태가 말하자 효재와 무영은 잔뜩 기 죽은 표정을 지었다. 서규태는 장난이었다는 듯이 웃었다.
“세 사람의 힘을 합해서 100이 모아지면 레이드를 성공할 수 있다고 해 봐. '내가 30을 하면 다른 녀석들이 70을 채워주겠지.' 그런 생각으로 레이드에 임하면 안 돼. 내가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내가 100을 채운다고 생각하면서 움직여라. 너희한테는 그게 특히 더 어려울 거야. 우리는 차크라가 많이 숙련됐고 운용하는 차크라의 양도 많지만 너희는 그렇지 않으니까 금방 지칠 거야. 그럴 때는 영리하게 굴어야 돼. 쓸데없이 차크라를 소모하는 움직임이 없는지 체크하고 팀에 기여하기 위해 애써.”
“네.”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일주일 후에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다고 들었다. 현신 헌터 아카데미에는 현신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 다니던 애들도 온다고 들었어. 여기 있는 세진씨도 너희를 가르칠 거다. 짧은 과정이겠지만 많이 배우도록 노력해. 너희한테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거다.”
갑작스런 소개가 이루어지자 세진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시현이가 어느새 다 자라서 헌터 테스트에 통과하고 헌터 타투를 받고 헌터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받게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클랜원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시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같이 보다보니 효재와 무영에게도 정이 갔다.
“정말로 쉽지 않을 거야. 정말로 많이 노력해야 할 거고. 우리는 너희한테 재롱을 부려보라고 하지 않을 거야. 너희들이 빨리 자라서 우리 동료가 돼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우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버렸다.
***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새로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2인실을 한 명이 쓰는 학생도 있는데 시현과 효재는 무영과 같이 방 배정을 받았다. 서로가 전부 욕을 해댔지만 속으로는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몸은 더 커졌고 훈련량이 많아져서 땀 냄새가 살인적으로 났지만 불평할 시간도 없이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하면 잠이 들다보니 그럭저럭 새 방에도 적응을 하게 되었다.
헌터 아카데미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은 현신 고등학교 출신의 3인방을 제외하고 두 명이 더 있었다.
신입생중에 여학생이 있다는 말에 들뜬 사람들은 유독 현신고 출신의 3인방만이 아니었다. 헌터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던 재학생들이나 교수들도 슬쩍 관심들을 가진 눈치였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마주하게 된 후로는 서로를 양보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희망찬 사회가 구현되었다.
이제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은 조각칼로 통통한 무를 깎아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얼굴을 목 위에 얹고 있었다. 오래 보면 친근감이 느껴졌고, 꼭 오래 보지 않아도 초면에 바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는 얼굴이었다.
길무영은 제이를 보고나서 자신의 이성 취향을 확실히 알게 됐다고 선언했다.
“나 말이야! 나는 내가 여자 얼굴을 안 보는 줄 알았거든? 나는 내면 보고 좋아하게 될 수도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제이 보니까 아닌 것 같더라.”
제이가 그 말을 못 들었으니 망정이지 제이도 길무영 같은 녀석은 다스로 가져다 줘도 고맙지도 않을 판이었다.
현신 헌터 아카데미의 신입생 성비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자 넷과 여자 하나였지만 모두들, 당사자인 제이조차도 이번 신입생은 남자뿐이라고 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