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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44화 (24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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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아빠는……. 괴순가요? 교수님. 저는……. 괴수예요?”

시현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우리가 괴수로 보이나?”

레오니드가 물었다.

“나랑 미하일이. 네 눈에는 괴수로 보여?”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시현아!”

레오니드는 시현을 달래고 싶었지만 지금 시현에게 무슨 말을 더 해 줄 수 있을지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너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어. 모두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지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미하일이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시현은 흔들리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혼란을 느꼈다.

시현은 그들을 떠나 혼자서 달리기 시작했다.

“안시현!”

레오니드가 시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시현은 멈추지 못했다.

***

시현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헌터 아카데미와 현신 고등학교 사이에 있는 숲이었다. 빽빽한 숲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울창한 나뭇잎 때문에 하늘은 작은 조각도 보이지 않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낮에도 어두웠다.

한참을 달리다가 시현은 자기가 너무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들어와 버리면 길을 잃기가 쉬웠다. 주위에는 온통 나무 뿐이었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멍청한 짓을 해 버렸군!’

시현은 제 자신에게 화가 났다. 화를 내며 냅다 뛰다가 숲에서 길을 잃다니. 꼴 좋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더 어두워질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아나서기는 하겠지만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끔 숲에서 길을 잃는 녀석들이 생겨났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동원돼서 찾아냈다. 대개는 헌터 아카데미 교수들이 찾곤 했다. 시현은 멍청한 모습으로 미하일과 레오니드에게 구조되고 싶지 않았다.

제 힘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현은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도대체 학교에 이런 곳을 만들어놓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하고 불만을 품다보니 그 사람이 용하 삼촌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현신은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곳이 아니다. 강한 사람을 키워내려는 곳이다.’

삼촌이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걸어도 길은 나오지 않았다. 무슨 조화인지 그곳에서는 스마트폰도 터지지 않았다. 시현은 자기가 미로속에 완전히 갇혔다고 생각했다. 시현이 걷기를 포기하고 멈춰섰을 때 어디선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현은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보이는 것은 뒷모습 뿐이었지만 가늘고 부드러운 선으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여자치고는 큰 키였다.

여자는 한쪽 팔을 뻗고 있었고 손가락 끝에서 누르스름한 차크라가 뭉쳐지고 있었다. 시현은 넋을 잃은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잘 되지 않은 듯, 여자는 한숨을 깊이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현을 향해 돌아섰다.

생각했던 것보다 젊은 얼굴이었다. 시현보다는 나이가 많겠지만 스무살이나 스물 한 살을 넘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아……. 훔쳐본 건 아니고요. 길을 잃었어요. 보고 있어서 놀랐다면.”

시현은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상대는 놀란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상관없어. 길을 잃었다는 건 그냥 딱 봐도 알겠다.”

“그런데. 누구신데 여기서 이런 걸 하고 계세요? 방금 차크라 훈련을 하신 거예요?”

“아니. 레오니드 교수님이 하는 걸 시도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네.”

“레오니드 교수님요? 교수님을 아세요?”

“헌터 아카데미 동룐데 알아야겠지?”

“네? 교수님이세요?”

“왜? 교수라기엔 너무 어벙해보여?”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요. 굉장히 젊어보여서요.”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도 스물 넷은 됐다고.”

“스물 넷요? 더 어리게 봤어요.”

“윤해민이다. 괴수생태학을 가르치지. 너는? 헌터 아카데미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전 현신 고등학교 학생이예요. 안시현입니다.”

“안시현?”

윤해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시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시현은 이제 윤해민의 시선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시현을 보던 사람들은 자기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지 모르면서 시현에게 친숙한 기분을 느껴왔고 쉽게 호감을 느꼈다. 시현을 경쟁자로 느끼는 남자들은 묘한 열패감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여자들이나 어른들은 아니었다. 시현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시현에게서 보이는 지우와 임정의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은 시현의 얼굴이 낯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현의 얼굴이 지우를 닮아서 그런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고 그들은 편한대로, 언젠가 본 적이 있던 아인가보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해민은 말을 하다말고 웃음을 지었다. 뭐가 어떻게 됐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해민의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레오니드 교수나 미하일 교수가 자기에 대해서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 입었다고 자랑하고 싶은가 보네? 하긴. 그건 네 나이 아이들의 특권이기도 하지. 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짧게 끝내는 게 좋다.”

해민이 말했다.

“네?”

홑꺼풀의 깊은 눈 끝에 웃음이 맺혔다. 자상해보이는 웃음이었다. 왠지 윤해민 교수가 그런 웃음을 아무한테나 지어보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인상은 냉철해보였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꽤나 인정머리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시현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서 있다가 윤해민을 바라보았다.

“언제 나가실 거예요? 제가 길을 잃은 것 같아서 교수님을 따라 나가야 할 것 같거든요.”

“안 나갈 건데?”

“네?”

“농담이야.”

윤해민이 웃었다.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은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편해져서 시현도 어느새 따라 웃어버렸다.

“차크라 훈련을 하고 싶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저는 헌터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예요.”

“그래. 알아. 현신 고등학교 학생이라고 했잖아. 안시현이라며. 내가 기억력은 나빠도 방금 전에 들은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니야.”

“그런데 왜 저한테 차크라 훈련을 시켜주신다고 하세요?”

“이건 비밀인데. 오늘은 네가 상처입은 영혼인 것 같아서 특별히 말해주는 건데 말이야. 나는 괴수생태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프레딕터야.”

“프레데터요?”

“프레딕터. 예언하는 사람이지. 모든 일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다 들려올 때가 있어. 내 생각을 가로막고 갑자기 말을 하는 목소리가 있지.”

“…….”

숲에 들어와서 길을 잃은 것도 안 좋은 일이었지만 숲에서 길을 잃고 미친 여자를 만나는 건 정말로 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가 헌터 아카데미 교수라고 했던 말도 그대로 믿으면 안 됐던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숲을 빠져나가는 길은 혼자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윤해민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여자는 아니야. 내가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이유는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백이면 백 명이 전부 너같은 표정을 지어서야. 그래도 안시현.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네 상황도 조금은 버티기 쉬워지지 않겠어? 가끔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먹고 일어서기도 하거든. 내가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미워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게 될까봐 겁이 나지? 네 감정이 뭔지 모르겠고 겁이 나지? 그리움인지 원망인지. 너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라 속이 상하지? 너만 슬펐던 게 아니라는 생각에 더 괴롭고. 삐뚤어지고 싶은데 너도 너무 잘 아는 거잖아. 그 사람들은 지금도 너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있다는 걸.”

“그래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저도 강하다고 하잖아요. 저도 도울 수 있다고요. 제가 선택한 게 아니예요. 저라면 절대로 그런 결정은 안 했을 거예요.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적도 있었다고요!”

“곧 그럴 때가 와. 안시현. 생각보다 훨씬 빨리.”

“…….”

“마침 잘 됐네. 숲 속에서 길을 잃었잖아.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서로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 주고 있고. 울고 싶으면 여기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지. 울고 나올래?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윤해민의 말에 하마터면 시현은 그러겠다고 할 뻔 했다.

“제가 갇혔다는 것 잊어버리셨어요?”

“맹하게 생겼길래 정신 빼놓고 슬퍼할줄만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네?”

윤해민은 처음부터 다 알고 노렸던 거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뜨끔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그것을 잊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레오니드 교수님이랑 미하일 교수님 난처하게 만들지 마. 위로받고 싶다고 큰 소리로 울어댈 나이는 지났잖아? 그 쿠폰은 15년 전에 기간이 만료된 것 같다.”

시현은 한숨을 쉬었다.

“저는 운이 좋은 건가요? 교수님의 능력이 저한테 통한 걸 보면요.”

“도움이 됐나보구나? 그렇다고 나한테 많은 걸 기대하지는 마. 모든 일을 미리 아는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특히 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겠어. 오늘 시도한 일이 안 될 거라는 걸 알았으면 여기까지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야.”

“저는 이제 어떻게 돼요? 십 분 후에 어디에 있을 것 같으세요?”

“그건 몰라. 그래도 네가 내일 저녁에 어디에 있을지는 알겠다.”

“어디에 있는데요? 여기라고는 말하지 마시고요.”

“…….”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말하지 말라며.”

“제가 내일 여기로 올 거라고요?”

“너는 아주 대단한 엄마를 가진 아이랑 같아. 네 힘이 아니라 엄마가 가진 힘이지. 언제든지 너를 위해서 나서줄 엄마고 믿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네 힘으로 서지 않으면 안 되잖아.”

“제 차크라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해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을 봐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나한테선 별로 배울 게 없을 것 같아 보여?”

“아뇨.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요. 저녁에는 더 어두워지지 않아요?”

“그럼 이 시간에 올래?”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여기에서요?”

“너는 이 장소가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

“네?”

“이 나무들은 자연적으로는 죽지 않는 나무들이야. 씨를 퍼뜨리고 다시 또 자라지. 그게 이 숲이 이렇게 빽빽해진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기서는 괴수를 상대로 해서 해 보고 싶은 공격을 얼마든지 연습해볼 수 있지. 나무가 쓰러진 자리에는 다른 나무가 다시 자라날 테니까.”

시현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해민을 바라보자 해민은 간단히 웃음을 짓고, 허벅지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해민의 칼은 해민이 무언가를 누르자 세 배의 크기로 불어났다. 해민은 중간 부위를 잡고 칼을 휘두르다가 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차크라를 실은 채 해민은 나무 위로 달려 올라갔다.

시현은 나무 위로 올라가는 해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해민이 달려 올라간 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나무의 곁가지들이 베어져 떨어지는데 한참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시현이 올려다 보았을 때 이십 미터는 족히 되는 나무의 꼭대기에서 해민이 다른 나무로 넘어가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현의 옆에 있던 나무가 두 쪽으로 쪼개졌다.

해민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그 옆의 나무를 향해 돌아섰다. 해민의 무기에 푸른 기운이 번지더니 그대로 나무를 잘랐다. 칼이 나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제 허리가 칼에 베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굵기가 가느다란 나무도 아니었다. 성인 남자 둘이서 팔을 한껏 뻗어야 안을 수 있을만한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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