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29화 (22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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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2042년, 봄.

전자제품 매장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안시현도 곧장 그리로 뛰었다.

이럴 때는 거의 뻔하다.

클랜 A의 레이드 장면이 재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TV에 클랜 A의 레이드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의 활약에 눈과 귀를 기울이면서 열광한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백 번씩은 보았을 것이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그 영상을 다시 보곤 했다.

그것은 십년도 훨씬 더 지난 영상이었다.

쿠퍼티노에 나타난, 머리가 둘 달린 황소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클랜 A의 클랜원들이 레이드를 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카메라의 방향이 어디로 돌아갈지도 알고 있었다.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웅성거리는 소리 속에서 카메라의 방향이 바뀌었다.

화면 속에서 클랜원들은 괴수의 입에서 흩뿌려지는 검은 재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검은 재에 맞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던 모습은 아마 앞에서 지나갔을 것이다.

카메라는 근처에 있던 높은 건물을 빠르게 훑어 올라가더니 옥상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의 형체를 잡았다. 너무 멀고 초점이 잘 맞지도 않았다. 초점을 맞추려고 해도 검은 재들이 흩날려서 초점이 그쪽으로 맞춰졌다. 그럼에도 어렴풋하게 옥상 위의 남자와, 그 남자가 안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둘러싼 것은 거대한 차크라의 소용돌이였다. 차크라는 마치 호수에서 피어나는 짙은 안개처럼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가 누구일지 궁금해했지만 그의 정체는 거의 이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클랜 A의 클랜원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가슴 속에 그들을 묻은 채 늘 그리워했다. 그들은 클랜 A가 어딘가에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클랜 A가 있었을 때도 늪이 있었고 늪에서 괴수가 쏟아져나오는 때도 있었지만 클랜 A가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것을 수습 불가능한 재앙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클랜 A를 태운 블랙 호크 트리플이 도시에 나타나기만 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전날까지 살았던 삶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카메라는 다시 클랜 A를 비췄다.

클랜원들은 정말로 하나같이 다 대단했다.

그들은 익스트림 헌터에서 특별히 그들을 위해서 만들어준, 공격 증폭률 1천 퍼센트에 육박하는 무기들을 들고서 미노타우로스를 공격했다.

미노타우로스의 얼굴 앞 부분이 떨어져 나갔지만 괴수에게는 무시무시한 회복력이 있었다. 언제 그것이 다시 돋아날지 모를 일이었다.

클랜원들은 검은 재의 재앙이 멈춘 그 틈을 타서 공격을 감행했다.

‘지금이다!’

시현은 어느새 주먹을 꽉 말아쥐고 다음 순간에 등장할 자신의 영웅을 기다렸다.

클랜 A의 에이스이자 전 세계에 다섯 뿐이던 A급 헌터중 한 사람.

안지우가 미노타우로스의 몸을 박차고 올라갔다. 그의 심볼 마크인 거대한 엑스 블레이드에는 벌써 그의 차크라가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 노리고 들어갈 때, 그의 엑스 블레이드와 안지우는 완전히 하나가 된 것처럼 움직였다.

카메라는 급히 움직이면서, 미노타우로스의 또다른 머리를 노리고 올라오는 남자를 잡았다.

클랜 A의 A급 헌터인 야로슬라프였다.

그의 회색 눈은 안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간에 정확한 사인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각각 하나씩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올라갔다.

야로슬라프의 검이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노리고 들어갔을 때 안지우의 엑스 블레이드가 휘둘러졌다. 초승달 모양의 엑스 블레이드는 안쪽에 날이 세워져 있었고 안지우는 날아오르면서 그 반동으로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휘감았다. 괴수의 뼈도 차크라를 잔뜩 머금은 엑스 블레이드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미노타우로스의 두 개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피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시현은 자기가 이룬 일처럼 좋아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웃었다.

클랜원들이 두 사람을 보고 있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다시 맹렬히 공격을 퍼부으며 데미지를 넣었다. 목이 떨어지는 공격을 당했지만 몇 분이 지나고 나면 미노타우로스의 목에서 다시 머리가 돋아나고 괴수는 또 살을 태우는 검은 재를 뿌리면서 헌터들을 공격할 터였다. 괴수의 몸이 회복되기 전에 헌터들이 먼저 끝을 내야 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와 하나된 채 미노타우로스에게 딜을 가했다.

그리고 시현은 그 순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늦었다!’

현신 고등학교 2학년인 열 일곱 살의 안시현은 7분 후까지 교문에 들어가야 했지만 차를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어림도 없는 거리였다.

시현은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 주위를 살폈다.

용하 삼촌이 보면 또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내겠지만 선도부한테 걸리는 것보다는 이러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서 시현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방금 전까지 시현이 서 있던 자리에는 펄럭이는 나뭇잎만이 남아서,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었다.

***

클랜 A는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클랜 A가 사라진 직후, 1급 늪의 공략을 클랜 A에게만 의존해 오고 있었던 미국은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최정예 A급 헌터와 B급 헌터들로 구성된 공격대들도 부상없이 레이드를 하지 못했고 현대 무기가 괴수에게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클랜 A의 주가는 폭등을 한 상태였다. 러시아는 클랜 A가 사라진 후에도 그들의 공백을 채운 헌터들의 등장으로 균형을 맞추었지만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 국민의 10퍼센트 가량이 괴수들에게 희생되었고 헌터와 군이 총출동한 대규모 연합작전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다 결국 괴수들이 소탕되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전 인구의 7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 끔찍한 참상을 직접 보았기에 각 나라는 치열하게 헌터 모시기 작전에 돌입했고 헌터들의 위상은 날로 높아졌다.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안겨줄 헌터가 되기를 소망했고 헌터 테스트를 받기 전부터 헌터 예비 학원에 다니면서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시현에게는 1급 러프 스톤이 두 개가 있었다. 러프 스톤은 수집을 위해서 자산가가 모으는 경우가 아니고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거래가 되지 않는다. 시현은 그게 도대체 어쩌다가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용하 삼촌은 그것이, 시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아서 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런 것을 선물할 사람들이라면 괴수를 직접 잡은 헌터들일 거라는 생각만 어렴풋이 하고 있을 뿐, 시현은 그 사람들이 누군지 물어보지 못했다. 평소에는 시현이를 위해서 바보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 삼촌이지만 시현이 그것에 대해서 물으려고만 하면 표정을 굳게 한 채 먼저 입을 다물고 자리를 뜨곤 했던 것이다.

한 쌍으로 만들어진 검과 비수의 손잡이에 러프 스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볼 때면 마음이 뭉클해지고 괜히 슬퍼져서 자주 보지는 않았다.

용하 삼촌은 시현이 노는 순간을 잘도 포착했고 그럴때마다, ‘그래.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놀아도 나중에 러프 스톤을 팔면 그걸로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그걸 너한테 미리 보여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네가 좋은 자극을 받을 줄 알았지!’ 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시현은 그 러프 스톤들을 보면서 자기한테 그것들을 줬다는 사람들이 누굴지 궁금해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자기에게도 친한 헌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우쭐해졌다. 헌터와 인맥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다. 헌터와 인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우를 받을 수도 있고 아는 헌터가 없어서 무시를 당할 수도 있는 사회였다.

헌터를 부모로 둔 자녀들이 그 권력을 같이 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부모의 경제력이 바탕이 된 것이기도 했고, 일반인보다는 그들에게서 헌터가 나올 확률이 높다는 근거없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현신 고등학교는 특히 그런 것이 더 심했다. 학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모 양쪽이 헌터인 아이가 최상위, 한쪽이 헌터인 아이가 그 아래, 일반인의 자녀가 그 아래, 부모가 일반인인데 돈까지 없으면 그 아래.

하지만 그마저도 최하위가 아니었다.

그 아래 계층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부모가 없는 경우였다. 안시현이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그거였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 외국에 체류중이시고 곧 돌아오실 거라고 아무리 항변을 해 봐야 그 말을 믿어주는 놈들이 없었다. 부모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냐고 묻는 놈도 있었고 최근에 부모님을 본 게 언제냐고 묻는 놈도 있었다. 수많은 이메일을 보여주었지만, 그건 너희 삼촌이 조작한 걸 거라는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현도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는 삼촌의 말을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에 의심이 생겼다. 정말로 살아계시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볼 수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현은 멍청한 녀석들이 멋대로 만들어놓은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서 그 녀석들을 떠받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비열한 편가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를 일찍 잃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고, 안 그래도 서러운 사람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고 괴롭히는 녀석들이 싫었다.

그래서 열 일곱 살 안시현의 삶은 오늘도 고달팠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의도치않게 문이 탁! 열리고 문틀에 요란하게 부딪쳤다가 튕기는 바람에 소리가 생각보다 요란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시현을 향했다. 시현은 자기가 만들어낸 소리에 놀랐으면서도 괜히 더 당당한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시현의 발을 걸려고 다리 하나가 삐죽 나왔다. 시현은 녀석이 발을 피할 틈도 주지 않고 발을 걷어찼다.

“흐아아악!”

녀석이 놀라면서 책상에 머리를 찧고 주먹으로 책상을 두들겨댔다. 그러면서도 다리를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끌어당기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것을 다른 놈들이 알 턱이 없었다.

“조용히 해라!”

담임은 그 녀석이 괜히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면서 엄하게 말했다. 시현은 조용히 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은 시현에게, ‘자, 그럼! 오늘도 열심히 공부를 해볼까.’ 라는 다짐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애가 정상인가?

시현이는 정상적인 아이다.

오면서 봤던 클랜 A의 영상이 시현의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무언가가 틱 걸려서 톱니바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 들었지만 시현은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는 삼촌의 뒤로 먼저 나오는데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매던 삼촌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서도 왠지 삼촌의 모습이 옥상 위의 남자와 비슷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기럭지. 체형. 불량하게 짝다리를 짚고 섰을 때 나타나는 특징.

‘영상 속의 장면이 십 년도 더 된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우리 삼촌이? 삼촌은 나랑 성도 다른데. 삼촌이라고는 하지만 삼촌은 삼촌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없잖아. 삼촌은 대체 누구지? 삼촌이 혹시 전설적인 클랜 A의 일원이었던 건 아닐까?!’

“안시현. 공부해!”

시현의 추리는 머리 위를 날아가는 분필에 막혔다. 뒤에 앉아있던 녀석의 머리를 맞추고 딱, 소리를 내면서 분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선생님! 왜 저한테 던지세요!”

뒷자리에 앉아있던 녀석이 분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너도 공부해. 처음부터 너를 노렸어. 암습이다!”

담임의 말에 뒤에 앉은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시현의 의자를 발로 찼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녀석은 발로 의자를 차면 당연히 의자가 밀리면서 시현이 굴욕적으로 일어나 의자를 바로잡으며 고쳐 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녀석의 행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앞에 앉은 녀석의 의자를 발로 찼다고 제 무릎뼈가 골절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녀석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담임의 분필 폭격이 시작됐다.

“시끄러워, 인마. 공부해. 공부하라고! 내가 너 떠들 줄 알았어. 그래서 먼저 너를 맞춘 거라고!”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 환경이 나를 안 돕네. 공부 진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시현의 연습장에는 최근에 주위에 새로 생긴 늪들의 위치가 그려졌다. 거기에는 괴수별 공략법이 적혀 있었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우등생 포스지만 시현의 연습장에는 그런 사연이 담겨 있었다.

시현은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조별 과제를 할 게 있어서 삼촌의 노트북을 빌려 쓴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헌터 협회 홈페이지가 즐겨찾기로 등록되어 있는 걸 보고 들어가 봤다가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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