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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레이카는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레이카에게는 아키라가 그곳에 서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야로,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해. 괴수의 차크라니까 괴수로서의 기억을 갖고 있을 거야. 맵에서 헌터들에게 공격을 받던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 몰아세워.”
야로슬라프는 지우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차크라로 눌렀다. 여섯 개의 차크라 중에 두 개가 반응을 보였다. 지우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야로슬라프의 차크라에서 엄청난 압이 느껴지는지, 뒤섞인 차크라들이 불편해하면서 여기저기로 빠르게 튕겨나갔다.
“안에서 도망치게 하지 말고 그곳을 포기하고 나오게 해야 돼.”
지우가 말했다.
차크라가 어디로 도망치는지는 눈으로도 보였다. 그 부위의 육체가 눈에 띌 정도로 툭툭 불거지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모두들. 차크라가 튀어나올 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다른 숙주를 찾아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세요.”
지우가 소리쳤다.
“튀어나오면 여기에서 우리가 죽이는 게 낫겠는데요? 나가서 다른 놈 몸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서규태가 말하자 클랜원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듯이 각자 무기를 바로 잡고 차크라가 튀어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차크라는 숙주의 몸 속에서 그 말을 전부 들었다. 그랬기에 차크라의 고뇌가 깊어졌다.
레이카의 몸은 이전처럼 안락하게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갑자기 한 놈이 사라지면서 그 녀석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을 서로 더 차지하고 레이카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고 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후회하고 있었지만 돌이킬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차크라들은 약한 녀석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헌터들에게 최후를 맞게 된 것도 알 수 있었다. 차크라들은 더 이상 안에 있으면서 이대로 무의미하게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레이카의 몸이 꿈틀거렸다. 아이가 들어있다가 몸을 찢고 나오려는 것처럼 극렬한 움직임이었다.
“지금부턴 더 서둘러. 한 번에 끝내야 돼, 야로. 도망치지 못하게 퇴로를 막아. 나는 다른 녀석을 맡는다.”
지우가 말했다.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우가 시킨대로 이행했다.
차크라가 다시 빠져나왔다. 레이카는 출산이라도 한 여자처럼 땀을 흘리고 진이 빠진 모습이었지만 임정의 건강한 차크라가 계속 주입되는 덕에 그런대로 버텨가고 있었다.
아키라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클랜원들은 클랜원들대로, 일반인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차크라에 집중을 하고 있다가 차크라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그것을 공격했다.
“형. 지금 하나가 새로 들어왔어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야로슬라프가 지키고 있던 길목에 멍청한 차크라가 새로 진입을 한 모양이었다. 피한다고 하필 그리로 간 것이다.
“같이 하는 거다. 그 놈을 먼저 노려.”
지우가 말하자 야로슬라프는 엄청난 압으로, 그쪽으로 새로 이동해온 차크라를 눌렀다. 차크라는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지만 그 안에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밖으로 나갔다.
클랜원들은 그 차크라도 해치웠지만 이제는 전처럼 소리를 요란하게 내지 않고 조용히 그 일을 끝냈다. 밖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안에 있는 차크라들이 어떻게든 레이카의 몸 안에서 버틸 방법을 찾으려고 할 거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제 레이카의 몸은 기다란 풍선처럼 보였다. 이쪽 저쪽이 불룩해지다가 순식간에 푹 가라앉았다.
“레이카. 버틸 수 있겠죠?”
임정이 레이카에게 말했다. 레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임정이 더 걱정될 판이었다. 지우와 야로슬라프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였지만 임정은 아니었다.
이익헌이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고, 아무 말 없이 임정의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었다. 지우와 야로슬라프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키라는 그것이 캐츠 아이 스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맵에서의 공략이 아닌 상황에서 캐츠 아이 스톤을 갖고 있는 것이 등급을 올리는데 도움이 될지 어쩔지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헌터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작은 소망을 품고 건넨 거였다.
아키라가 재빨리 이익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품 안에 들어있던 여섯 개의 캐츠 아이 스톤을 건넸다.
이익헌은 그것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만일을 위해서 간직하고 있었던 모든 것을 털어내고 있는 거라는 것을 이익헌은 깨달았다.
“저 헌터한테 통하는 것 같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주세요. 저 사람들도 결국 기운이 달리게 될 겁니다.”
아키라가 말했다.
옆에서 그런 얘기가 오고 가는데도 지우와 야로슬라프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차크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거기에 반응을 하는데 모든 집중을 기울였다.
“레오니드. 미하일. 이리 와. 다리를 잡아. 다리쪽으로 내려갔어. 약한 녀석들은 너희도 할 수 있을 거야. 감을 잡으면 협공한다!”
지우가 말하자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달려왔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청바지를 입은 다리를 붙잡자마자 레이카가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레이카가 하는 짓이 아니라 차크라가 하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아키라가 레이카를 달랬다.
“레이카. 조금만 참아.”
아키라가 레이카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동안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수색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지우와 야로슬라프가 하는 일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들도 그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야로슬라프만 하더라도 엄청난 수준 차이가 난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괴수 차크라는 곧 레이카의 몸 안에 들어있는 차크라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그 차크라들을 괴롭힐 창의적인 생각까지 주었다.
미하일의 방법은 흡입이었다. 차크라들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벽쪽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소스라쳤다. 그대로 빨려들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차크라 하나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른 클랜원들의 몫이 되었다. 임정이 익헌을 바라보았다. 이익헌과 아키라 모두 임정의 안색이 조금 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캐츠 아이 스톤이 헌터를 돕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익헌은 레이카에게 매달린 다른 헌터들에게도 캐츠 아이 스톤을 넣어 주었다. 다행히도 다른 헌터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차크라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며 자기들끼리 지시를 내리고 작전을 수행하기를 반복했다.
“이제 남은 게 몇 개야?”
지우가 물었다.
“이쪽에 두 개 있어요. 하나는 거의 끝나요. 형. 그쪽으로 가버렸어요.”
미하일이 소리치자 지우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야로슬라프의 압이 들어가자 그 녀석도 밖으로 나갔다. 이제 슬슬 레이카의 몸 속에 남아있는 차크라의 종류가 줄어들고 있었다. 지우는 자신의 차크라가 그들을 노리면서 서서히 몸을 키우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우의 차크라는 지우와 한 가지 점에서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우의 차크라는 레이카의 차크라를 남겨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모든 일이 헛수고에 불과할 터였다. 지우는 그것 때문에 아직 제 안에 있는 괴수 차크라를 이 일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카의 몸 속에 남아있는 차크라의 종류가 줄어든다면 자신의 순수한, 통제 영역 속에 있는 차크라만으로도 그것들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은 건 이제 다섯 개예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전과 비슷한 강도로 공격을 했는데 차크라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어리둥절해 하기는 했지만 그게 캐츠 아이 스톤을 소비한 결과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차크라의 수가 줄어들었지만 레이카의 몸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녀석들은 힘이 센 녀석들이었고 저항의 수준도 한층 격렬해졌다.
안에 남아있던 차크라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레이카의 몸을 공격했다. 이대로 죽게 되더라도 제 숙주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그 흐름을 감지한 지우는 점점 조급해졌다.
“야로, 레오, 미하일. 한 녀석만 더 해치워줘.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어!”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틈도 없이 자기들끼리 신호를 주고 받았다. 미친 듯한 속도로 차크라가 도망다니는 통에 레이카의 몸에 허공에 들어 올려질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 차크라 역시 레이카에게서 떠나갔고, 대기하고 있던 클랜원들의 칼날에 사라졌다.
“모두 레이카를 붙잡아요. 움직이면 안 됩니다.”
지우의 목소리가 긴장감으로 떨렸다. 임정이 지우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임정과 짧은 순간 눈빛을 주고받고 지우가 레이카의 팔에 손을 얹었다. 순간적인 척살이 이루어지면서 안에 있던 차크라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그 안에서 분쇄되었다.
다음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두 시간 사이의 간격이 짧아서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 같았다.
“하나 남았습니다.”
“그건!”
레이카가 울부짖었다.
“그건. 남겨주세요. 하나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레이카!”
아키라가 소리쳤다.
“아무 것도 아닌 짐처럼 남는 건 의미가 없어요. 나는 마스터 옆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니까 내 안에서 나랑 같이 싸워줄 괴수 차크라가 필요해요.”
야로슬라프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레이카의 괴수 차크라는 영리했다. 더 이상 요동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알아차린 것이다. 자기가 레이카에게 우호적이라는 것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네머티난가.”
지우가 말했다.
레이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아키라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아키라는 레이카를 알았다. 카르마 클랜의 모든 사람은 알 것이다. 힘을 갖지 못한 자는 썩은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 누가 그렇게 대우하는 것을 떠나서, 본인이 그렇게 느꼈다.
레이카는 아키라를 바라보았고 그가 허락해 줄 거라고 믿는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잠깐 더 누워있어요. 몇 분 더 시간이 걸립니다.”
임정이 말하자 아키라가 레이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카는 잠잠히 누웠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익헌이 아키라와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클랜 마스터님도 레이카와 같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레이카가 네머티나로 변하는 것도 봤고 네머티나가 직접 헌터를 공격하는 것도 봤습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키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모든 헌터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도 알려줄 수 있습니까?”
이익헌의 질문을 듣고 아키라는 레이카를 바라보았다.
“레이카를 보셨다니 알겠지만. 레이카한테 네머티나의 능력이 나타날 때는 레이카의 얼굴이 변합니다. 그건 네머티나가 공격하는 부위죠. 레이카의 얼굴이 그렇게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독성을 가진 액체를 내뿜어요. 그것 역시 네머티나가 괴수였을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죠.”
“네머티나 괴수의 차크라를 레이카한테 주입하고 바로 그 일이 일어났습니까? 레이카의 얼굴이 바로 네머티나로 바뀌던가요?”
이익헌이 물었다.
이제는 다른 클랜원들도 이익헌이 무엇을 물으려는 건지 깨닫고 아키라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