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23화 (223/331)

0223 / 0331 ----------------------------------------------

9부. 카르마 클랜의 헌터들

대충 이해를 하자면, 나도 너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너를 위해서 내 일을 전부 포기하고 여기로 올 수는 없다. 그런 말인 것 같았다.

미키가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그리고 만약 미키가 그런 결단까지 내렸다면 조금 부담도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규태는 결혼하자는 말을 한 게 아니라,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정도의 표현이었다고 생각이었는데 여기까지 냉큼 날아온 것도 그렇고, 일을 정리하고 여기로 올 생각도 혼자서 해 봤다는 것도 그랬다.

서규태는 선을 분명하게 해야 하나, 하고 속으로 고민을 했지만 미키는 속이보인다는 듯이 시원하게 웃었다.

“각자 이렇게 자기 일을 하면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가끔 보는 게 우리한테는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거야말로 서규태가 원하던 거였고, 서규태는 자기와 연애관이 맞는 여자를 만난 것 같다면서 좋아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두 사람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서규태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미키와 함께 와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에 미키를 데려갔다. 미키는 그 장소의 아름다음보다, 서규태가 그런 생각을 해 주었다는 것에 더 감동을 받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같이 찍은 사진도 많이 남겼다.

“이 사진을 비싸게 팔 수도 있을 걸요? 세계적인 헌터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라고 자랑해야겠어요.”

미키가 말하자 서규태가 웃었다.

“세계적인 헌터하고 같이 사진 찍는 게 자랑할 게 된다고요? 더한 걸 하면 그것도 자랑할 건가요?”

뭐래. 말이래. 말밥이래. 말을 해 놓고 저 혼자 그렇게 생각을 할 정도였다.

연애세포가 다 죽은 시점에 연애를 시작하려니 혀는 굳고 어휘력은 달리고 자기가 하는 말에 미키가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주눅만 들었다. 게다가 상대는 말과 글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키 위도가 아닌가. 미키는 서규태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말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나는 써전님이 말하는 방식이 좋아요.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은 그런 게요. 재치와 순발력이 넘치지는 않지만 써전님은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골라서 하잖아요. 써전님한테 선택돼서 나오는 단어들은 깨끗한 물에 씻겨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 말이 저 사람 속에서 선택돼서 저 사람 입을 나왔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 그 단어들이 전부 특별하게 느껴져요.”

미키의 말에 서규태는 감격했다. 미키라면 자기보다 말 잘 하는 사람은 숱하게 만나봤을 거고, 한 눈에 넘어갈만한 매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텐데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고 자기 일을 궁금해해 주는 게 고마웠다.

서규태가 미키를 위해서 숙소를 잡아주고 체크인을 도와주고 숙박료를 계산해 주었을 때, 그 모든 것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서규태를 미키가 붙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와 팔짱을 끼고 캐리어 하나를 서규태에게 넘겼다. 서규태의 얼굴은 그때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미키는, 미키 자신도 긴장되고 걱정되고 떨렸지만 이 사람이 과연 오늘 괜찮을지 걱정이 돼서 자꾸만 서규태를 신경쓰게 되었다.

방에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은 한 편으로는, 큰 짐을 내려놓은 사람들 같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큰 과제를 받아든 사람들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미키를 실망시키지 않으면 좋겠어요.”

서규태가 말했다.

“실망하게 될 것 같지 않아요.”

미키가 말했다.

그 순간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격정적인 키스를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된 순간에야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 그 오랜 시간을 걸어오고 기다려온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떨어지지 못할 것 같아요.”

미키가 말했다.

머리 모양만큼이나 딱 떨어지는 사람이, 감정의 군더더기라고는 갖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입을 열어서 그렇게 고백했을 때 서규태의 안에서 무언가 폭발을 일으켰다.

혹시 결정적인 순간에 페니스가 자신을 배신하면 어쩌나 하고 오랫동안 걱정해 왔던 것이 모두 헛된 근심이었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미키는 저도 모르게 눈을 내려 서규태의 바지춤을 바라보았다.

“미키. 지금까지 미키한테 화난 적도 없었고 섭섭한 적도 없었지만. 괜히 여기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하면 미키한테 좀 화가 날 것 같기도 해요.”

서규태가 말했다. 미키는 그의 말을 알아듣고 그의 바지를 벗겨 주었다. 그의 체격에 비해서 귀엽게 생긴 드로즈를 벗겨내자 그가 페니스를 칼처럼 겨누고 미키를 잡아 끌었다.

미키는 서규태의 손길이 제 몸 위를 지나갈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황폐했던 대지에 생명이 깃드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섹스가 지루하게 느껴졌고 이제는 자위에 대한 관심조차 사라진 몸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불감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불감증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치료를 받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될만큼 미키에게는 섹스가 차지하는 부분이 극악하게 낮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미키는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서규태를 열렬히 그리워하고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을 만나려고 그랬던 건가 봐요.”

미키가 말했다. 서규태는 미키와의 입맞춤을 쉽게 끝내고 싶지가 않았다.

미키는 헉헉 소리가 날 때까지 서규태의 혀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황홀한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미키의 손은 계속해서 서규태의 페니스와 엉덩이를 더듬었다.

“엉덩이가 진짜 귀여워요. 탱탱하고 조그맣고. 계속 이렇게 만지고 싶어요. 미국에 가서도.”

미키가 말했다.

“그런 칭찬은 처음 듣네요. 그리고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인 것 같고요.”

서규태가 당황하면서 말했다.

황당하게도, 미국에 가는 비행기에 서규태의 엉덩이만 같이 따라가는 모습이 상상되어버렸다. 미키의 애무가 지속되자 페니스를 애무하는 손길과 키스만으로도 사정을 할 것 같아서 서규태는 엉덩이를 뒤로 뺐다.

“미키. 혹시 기사에, 미키랑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에 대한 걸 쓰진 않죠?”

서규태가 물었다.

“그래본 적은 없지만 모든 일에는 처음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서규태를 놀리는 것은 쉬웠다. 서규태는 미키가 하는 모든 미친 소리에 깜짝 깜짝 놀라면서 미키를 말렸다.

서규태는 미키가 그의 목을 두 팔로 잔뜩 끌어안고 매달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기 위해서 오래 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키가 그 순간을 위해서,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하며 기대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규태가 커다란 손으로 미키의 볼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날 들어서 처음으로 키스를 하는 것처럼 다시 뜨겁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한 부탁이지만. 완전히 벗기지는 말고 조명은 어둡게 해 주세요. 가능했다면 다이어트를 하고 오고 싶었지만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미키의 얼굴이 불타는듯했다. 서규태는 그런 미키가 사랑스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허리가 아무리 두툼하다고 해도 미키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키의 그런 생각이야말로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해서 보편적으로 내리는 혹독한 저평가였다는 것이 곧바로 드러났다.

테니스로 다져진 몸은 탄력이 넘쳐났고 특히 그 허벅지는. 서규태는 그 허벅지에 목이 졸려서 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허벅지는 여러 가지 묘기로 그를 천국으로 인도했다.

“미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미국에 가서 당신을 납치해오는 건데 그랬어요.”

서규태가 말했다.

서규태가 미키의 맨 살을 쓰다듬을 때마다 미키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도 좋았다.

미키는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내는 것 같았는데 어쩔 수 없이 흘리는 그 신음 소리가 서규태의 귀에 자극적으로 들렸다.

미키는 자기가 한 사람의 타인에게 이렇게 몰두한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서규태의 손길은 마법 같았다. 그를 바라보는데 열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두 사람은 어느덧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의 페니스가 몸을 찔러오는 기분은 특별했다. 뜨거운 것이 여기 저기를 밀면서 제 존재감을 발휘했다. 미키가 다리를 벌려 그것을 제 안으로 인도하려고 했을 때 서규태는 살짝 허리를 움직여 뒤로 물러났다. 미키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규태가 지속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키. 당신을 본 이후로 당신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를 거예요. 내가 상상속에서 당신을 그런 식으로 전락시켰다는 걸 알면 미키가 실망할 것 같았거든요. 뭐. 그래봤자 매번 실패했지만요.”

미키는 웃으면서 서규태의 페니스를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서규태는 매번, 이게 한계라고 생각되는 자극을 경험했다.

미칠 것 같아. 미칠 것 같아. 미칠 것 같아.

이제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문장은 그것뿐이었다.

고개가 저절로 뒤로 꺾였다. 마침내 미키가 서규태의 페니스를 입에 물었을 때 그는 울음이라도 터뜨려 버릴 것 같았다. 미키는 서규태가 자신의 애무로 황홀경에 이르는 것을 기쁘게 바라봐줄 의향이 있었지만 개껌을 담아둔 봉지 옆으로 가는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도 열망에 불타버려서 주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서규태로 채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서규태는 미키가 자신의 목을 팔로 감고 허벅지를 벌리는 것을 보고 미키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미키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번졌다.

서규태는 잠시 움찔하고 그대로 멈추었다가 천천히 진입을 다시 시도했다. 미키의 입구가 부드럽게 준비될 때까지 같은 행위를 반복해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그 안에서 그를 맞아준 환희는 기다림의 순간을 모두 보상해 주었다.

격정의 시간은 길었다. 미키의 구석구석을 전부 제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욕망으로 서규태는 미키를 사랑했다.

새벽이 지날 때까지 침대를 넓게 활용하면서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며 두 사람은 열정을 불태웠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미키가 말했다.

서규태는 그 말이 신기했다. 자기도 딱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미키가 물었다.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간절했다. 하지만 그 먼 거리를 두고 그 감정을 유지해 갈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서로 그리워질 때, 그때 옆에 누가 있는지 물어보고 다시 만나는 건 안 될까요?”

서규태가 물었다.

“제 옆에는 다른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사람한테는 쉽게 내 곁을 내주고 싶지 않을 것 같거든요.”

미키가 말했다.

충분한 약속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나눌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

클랜원들은 무심하게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캐츠 아이 스톤이 놓여 있었다. 이익헌이 레이드를 하고 주워온 거라고 했다. 이제 슬슬 사람들은 이익헌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게, 클랜에 캐츠 아이 스톤이 궁해질 때마다 이익헌이 캐츠 아이 스톤을 주워오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이익헌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TV에서는 한 헌터가 기찻길에 뛰어든 남자를 구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헌터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같이 있었다고 했다. 헌터의 이름이 민경욱이라는 것을 알고 이익헌이 볼륨을 키웠다.

“저 사람이?”

“왜요? 아는 사람이예요?”

강현이 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