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6 / 0331 ----------------------------------------------
7부. 컨트롤러
***
코모도 괴수의 독침이 지우의 몸에 퍼져나갔다. 때를 맞춰서 태인과 강현이 속속 도착했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전용기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태인의 말에 서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도 문제였지만 임정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지우의 차크라가 임정의 몸을 꿰뚫고 들어가는 것을 봤던 터라 서규태는 아직도 놀란 마음을 제대로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임정은 서규태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지우 형이 비행기에 탈 수 있을까요?”
강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서규태가 무거운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타야죠. 지금은 얌전해진 것 같지만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킵니다. 탱커님이 옆에 있어주고는 있지만 탱커님 상태도 그리 좋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서규태의 말에 임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이 사람의 늪으로 가야 돼요. 그곳이라면 이 사람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지우의 일행이 생각보다 빨리 한국으로 향했기에, 지우를 만나러 한국에서 오던 비행기도 돌려졌다.
“지우형. 괜찮겠죠?”
강현이 말했다. 아무도 그 말에 확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럴 거라고 믿고 싶어했다.
“가면서 보니까 괴수들이 출몰했는데 치안대랑 헌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강현이 말했다.
“씨발. 그걸 이제 누가 상관해!”
태인이 거칠게 말했다. 만약 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일을 이렇게 만든 놈들을 가만 놔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야로슬라프는 괜찮은 거죠, 써전님? 레오니드와 미하일도요?”
태인은 뒤늦게 생각이 난 듯 서규태에게 물었다.
“예. 그렇다고 했습니다. 이 부사장이 한 말이니까 믿어도 될 거예요. 그 사람은 우리를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서규태가 말하고 웃자 다른 사람들도 희미하게 웃었다.
참 희한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써전을 만난 것도, 사체 운반을 하면서 론 디어의 칼 자국을 발견한 것도. 그가 천기정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이익헌을 죽이려고 했을 때 임정이 말려서 죽이지 않기로 한 것도.
“그러고보면. 시현이가 부사장님의 생명의 은인인 거네요.”
태인이 말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서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시현이가 아니었으면 지우가 그때 부사장님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탱커님이 지우를 막은 거잖아요. 시현이 때문에요. 1급 늪들이 성장하고 시현이가 살 세상에 괴수가 출몰할 거라는 이유로.”
“그렇게 되나요?”
임정이 말했다. 이익헌이 시현을 끔찍하게 생각해준다는 것은 임정도 알고 있었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붙잡아가서 브래들리 허버트가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이익헌이 그리로 달려간 것은, 그들을 구하려고 한 의도보다는 시현이를 위한 거였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빚을 갚을 생각에 앞이 캄캄해요. 너무 큰 빚을 졌어요.”
임정이 말했다.
“지우 형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강현이 서규태에게 물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규태도 모두가 그 일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때의 상황을 세세하게 들려주었다. 임정은 다른 누구보다 더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을 괴로워했지만 자신이 이겨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형의 차크라는 도대체…….”
강현은 지우의 정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임정이 지우의 손을 잡아주었다. 지우의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지우가 자유자재로 그 차크라를 꺼내서 쓸 수 있게 되기만 한다면 정말 끝내주겠네요.”
태인이 말했다. 하지만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서규태도 마찬가지였다.
“지우씨는 차라리 죽고 싶어 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느끼는 통증도 끔찍했던 것 같고, 우리를 다치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도 그랬고요. 지우씨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편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예를 들어서 이익헌 부사장 같은 사람이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힘을 썼을 것 같아요.”
서규태가 그렇게 말하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서 모두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그 분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어요. 그 마음을 점점 배워가고 있죠.”
임정이 말했다.
“현미경을 들고 잘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죠. 그래도 사람인데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겠죠.”
태인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익헌이 사라진 이후로 가장 걱정을 많이하던 사람이 태인이었던 것을 서규태도 모르지 않았다.
“지우 형은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해 보여왔지만 이번이 최고인 것 같아요. 대통령을 죽일 줄은 몰랐어요.”
강현이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대통령을 죽이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태인이 서규태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야겠죠. 내가 지우씨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지는 못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할 힘이 없었고 지우씨한테는 능력이 있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예요.”
서규태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자신들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형. 일어나요. 일어나기만 해요.”
강현이 지우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
지우는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평화로운 기분이 전신에 번졌다. 지우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가 두고 온 시현이 생각났다. 그는 깨어나려고 했다.
나가야했다. 시현이를 찾아야 했다. 그 생각에 몸과 마음이 급해졌다.
끄아하하하하.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우는 제 얼굴에 쏟아지는 빗물을 바라보았다. 이건 왠지. 순수한 비가 아닐 것 같다는 예감. 그의 근육이 움직이면서 실제로 웃고 있었다.
시현이는 제 아빠의 얼굴을 붙잡고 그 위에서 꺼억꺼억 웃어대는 중이었고 그때마다 침이 정신없이 튀었다. 아빠가 놀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는 중이라서 얌전히 기다리지만은 못하고 아빠 얼굴 위에서 푸바바바, 옹알이를 해대면서 지우의 얼굴에 폭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아빠빠빠빠.”
침이 한까번에 너무 많이 떨어진 것 같으면 제 손으로 문질러주기도 했다. 그래봐야 닦이는 것은 아니고 넓게 번지는 것 뿐이었지만 아빠가 깰 때까지는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겠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한 건지, 지우의 곁을 떠나지도 않고 며칠째 그러고 있었다.
늪은 그들에게 한없이 부드럽고 관대했다. 늪이야말로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지우가 깨어나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임정은 근심스런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가 웃음을 짓는 것을 보고 이제야말로 깨어나려는가보다고 생각했지만 지우는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지연은 지우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야로슬라프는 그 의견에 반대했다. 이익헌은 야로슬라프에게 클랜 A를 떠나라고 했지만 지우가 그런 일을 당하자 곧바로 그들을 불러들였다. 지금 괴수의 차크라에 대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는 야로슬라프였다.
야로슬라프는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대동하고 지우의 늪으로 찾아왔다. 자기가 멍청한 짓을 했다고 자책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도 야로슬라프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로슬라프가 그들을 위해서 내려준 결정을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안타까워해 주었고 그들이, 특히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완전히 회복된 건지 걱정을 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임정이 나서서 그들을 치료해 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임정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권투 경기장의 개인 관람석으로 뛰어 들어가 그곳에 포개져있던 헌터의 시체들을 뚫고 지우에게 달려갔을 때 지우의 앞에는 찢어진 천조각처럼 누더기가 돼 버린 서규태가 있었다. 임정은 지우의 목에 코모도 괴수의 마취 주사를 찔러 넣으면서 지우의 차크라에 공격을 당했고 그때 임정이 입은 부상도 만만치가 않았다. 지우는 두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부들부들 떨면서 제 움직임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며 그를 응원했다. 이제 곧 잠잠해질 테니까 당신도 고요해지라고.
“우리 돌아가요. 당신의 늪으로요.”
임정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두사람은 같이 쓰러져서 같이 피를 흘렸지만 임정은 재생능력이 탁월한 탱커였다. 임정은 지우가 천천히 의식을 잃는 것을 바라보면서 서규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서규태를 치료하는데 전념했다.
“탱커님 몸을 먼저 돌보세요.”
서규태가 말했지만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제 남편이 저지른 짓이니까 제가 수습을 해야죠. 제 몸에 상처가 생겼다고 뭘 어쩌겠어요. 자기 잘못인데 그냥 데리고 살겠죠.”
차크라를 거의 전부 쏟아부었음에도 서규태의 상처는 완전한 회복을 보이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익스트림 헌터 전용기에서 임정은 자신의 몸에도 차크라를 돌렸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우의 특별한 차크라는 특별한 상처를 남겼다. 그렇게 쓰러진 상태에서 자신의 늪으로 옮겨진 후로 지우는 벌써 5일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늪 아래로 들어올 수 있는 헌터들은 수시로 들어와서 지우와 임정의 상태를 살폈다.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만 동동거리는 지연과 용하와 천기정에게는 태인이 수시로 두 사람의 상황을 보고했다. 처음에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걱정만 하던 그들은 이내 지우의 상태가 호전되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지우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감응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지우를 완전히 감싸고 사납게 지우의 몸을 주장하던 차크라가 이제는 순한 바다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취 주사를 맞고도 순간 순간 발작을 일으키곤 하던 지우는 늪으로 들어오자마자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임정도, 그곳에서는 지우가 편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치료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이 지우에게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동안 미국에서는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괴수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습격을 했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더군다나 대통령까지 살해당하고 국가는 무정부상태와 다름없는 혼란을 겪었다.
혼란한 와중에 대통령의 뒤를 이은 부통령은 대통령의 죽음에 관련된 권투 경기장의 영상을 입수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많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전에 감시 카메라의 작동을 모두 멈추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통령은 대통령이 그곳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는지, 헌터 협회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부통령은 그의 말을 듣고 대통령 살해범으로 안지우를 지목했다.
그것은 진실의 실체와 부합했지만 그것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었다. 앞 뒤 말을 다 잘라내고 대통령 살해범이라는 타이틀만 지우에게 달아줌으로써 그는 지우가 공공의 적으로 등극하기를 기대했다. 미국의 부통령은 자국의 대통령 살해 혐의로 지우를 체포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나서서 협조를 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은 그것을 거절했다. 누구도 클랜 A와 척을 지고 싶어하지 않았다.